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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승객(passenger).11
게시물ID : panic_9042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인스머스의눈
추천 : 1
조회수 : 112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09/02 01:5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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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우울 42.jpg
우울 43.jpg

지안은 정신을 되찾자마자 결심했다. 오래전부터 틈틈이 해오던 생각이었다. 가끔씩 그들도 피곤을 느끼고 잠에 들 때도 있음을 느껴왔다. 하지만 틈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놈들도 지쳤고,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이미 폭우가 한바탕 지나간 직후였다. 그는 폐차된 고물덩어리 같이 망가진 동률의 시체를 보았다. 슬픔이 한차례 휩쓸고 지나갔지만, 그 자리에 감상이 들어찰 여유는 없었다. 어둠은 계곡 주위를 완전히 뒤덮었고, 거친 돌바닥은 비에 젖어 축축했다. 지안은 그 축축함과 미끄러운 감각이 전해올 때마다 기이한 안도감을 느꼈다. 물에 젖은 돌바닥을 미끄러져서 기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전혀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의 정신은 아직까지 그 감각이 온전한 자신의 것은 아니란 사실까진 인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눅눅함과 축축함에서 느끼는 평안은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육체가 기대하고 있던 감각 같았다.


그는 미끄러져 산을 내려갔다. 두족류의 촉수 같은 팔다리를 휘저으면서. 먹구름 사이로 간간이 만월을 얼굴을 내밀 때가 있었다. 지상의 모든 광경을 흡족한 듯 지켜보면서.


오두막에 도착하자마자 화로에 불을 지폈다. 온 몸이 석고칠을 한 것처럼 무거웠다. 하지만 그들이 깨기전에 일을 마쳐야 했다. 혹시 모를 일을 대비하기 위해 창문을 모두 닫고 커튼까지 가렸다. 달과 그들과의 교신을 차단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돌덩어리 같은 몸을 끌고 가서 차고에 있는 모든 휘발유통을 방안으로 옮겼다. 화로에는 불이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는 바닥 곳곳에 휘발유를 뿌려댔다. 차츰 몸안에서 다른 감각이 느껴졌다. 그들 또한 이상한 조짐을 느끼기 시작하는 모양이었다. 불쾌한 오존 냄새가 방안을 가득히 에워쌌다. 그들조차 싫어하는 불쾌감을 지안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망설임 없이 마지막 휘발유통을 머리에 들이부었다. 그리고 화로로 다가갔다. 주저없이 양팔을 불길속으로 집어넣었다. 불길은 순식간에 그의 전신으로 퍼져나갔고, 그는 비명을 질렀다. 그들과 함께 지르는 비명이었다.


일그러진 증오와 악의의 시선으로 자신을 비추는 다른 눈들이 보였다. 지옥을 연상시키는 불구덩이 속에서 그들도 공포를 느끼고 있었다. 그들에게도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있단 사실을 깨닫는 첫 순간이었다. 그는 단테를 떠올렸다. 지옥편의 1부에서 단테가 세 번째 벼랑에서 본 영원한 화염 속에서 형벌을 받는 죄인들을 묘사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이곳에서 영원은 있어선 안 된다. 오직 지금 이곳이 끝이어야 한다.


하지만 풀리지 않은 마지막 매듭의 끈이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그의 몸속에 있는 그들과 똑같지만 다른 신체를 점유한 강탈자들이 어딘가에 있었다. 그는 그 신체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알고 있었다. 그곳에 있는 그놈들도 이곳의 광경을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도 느낄 수가 있었다. 그들이 장악한 육체의 주인이 누구인지도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이곳을 향해 오고 있다는, 그것도 아주 빨리 오고 있음도 알 수 있었다.


오두막의 기둥이 쓰러지면서 천정이 무너졌다. 짧은 순간 하늘의 틈새가 열린 것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지상을 내려다보는 악의 번뜩이는 거대한 눈이 떠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찰나의 순간에 그가 목격한 마지막 광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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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 같이 모든 기력을 다 쓰는 중노동을 반복하는 생활 틈틈이 글을 쓰기 시작인 이후로는

내용은 더 길게 쓸 여유가 없습니다. 더 세심하게 쓰고 싶은 욕구조차 만족시키질 못하겠네요.


그저 몇 안되는 독자들이라도 재미를 느낄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더 바랄 수 있는 것도 없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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