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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더이상 과외를 하지 않는 이유
게시물ID : gomin_904354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고양이똥꼬
추천 : 6
조회수 : 612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3/11/15 19:24:49
과외선생 노릇을 꽤 오래 했습니다. 10년 정도.
어쩌다보니 대학을 거듭 다니고, 휴학도 하고 졸업도 미루고 해서 가능했습니다.
아이들 가르치는건 생각보다 즐거웠습니다.
비록 저 오랜기간동안 공부 잘하는 아이는 단 한명도 찾아오지 않았고, 그래서 명문대 간 학생 하나 없지만
'네가 어떤 시궁창에서 허우적대고 있더라도 지금보다 나은 미래를 보여주겠다' 를 모토로 했습니다.
모토가 문제인지 진짜로 스스로 시궁창 속에 있다고 느끼는 아이들만 찾아온건 함정.....
천둥벌거숭이같던 아이가 점차 목표가 생기고, 꿈이 생기고, 그것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신 적 있습니까?
그것 하나만으로도 짜릿하고 행복했습니다.
문제가 많은 아이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 문제가 학생 자신에게서 기인한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가정불화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학생. 부모의 어긋난 기대로 방황하는 학생.
안타깝지만 부모님의 교육수준이 낮아서 필요할 때 바른 판단을 내려주지 못하는 학생.
그래서 의욕을 잃고, 때로는 살아갈 의지조차 잃고 울고있는 아이들이
오랜시간 공들여 대화를 시도하면 마음의 문을 열어줍니다.
그리고 하고싶은 것이 생기고, 그제서야 목표가 생깁니다.
목표가 생긴 아이들은 자신의 도전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내일모레 고3인 아이들이 초등학교 수학문제집을 풀고, 중학교 신입생용 단어장을 외워도
미세하게 보이는 실력 향상에 함께 울고 웃었습니다.
7,8,9가 찍혀있던 모의고사 성적표에 3,4가 찍히면 얼마나 기뻐하던지요.
아이들과 함께 한 10년은 그 웃음이 있어서 부끄럽지 않았습니다.
행복했기 때문에, 본격적으로 교육청에 신고하고 직업으로 삼아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안되더군요.
미친듯이 널 뛰는 입시제도. 갈수록 좁아지는 정시의 문.
뒤늦게 자신을 일으켜 세운 아이들은 정시에 올인할수밖에 없습니다.
고2까지 내신이 바닥인데 어떻게 수시를 쓰겠으며, 그때까지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던 아이들이 어떻게 전형준비를 합니까.
 
바른 국어를 써야 제대로 교육받은 사람이다.
수학 쓸데없는것 같지? 네가 논리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도움을 준단다.
영어 못해서 손해볼거 없다. 영어는 항상 필요한 과목이다.
 
 
.......그런데 대학문이 너무 좁구나.
 
 
참 이상하지요.
수능보는 아이들 머릿수는 점점 줄고 있는데, 왜 대학문도 같이 좁아질까요.
더이상. 저 혼자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지더군요.
나태하게 살아온 너의 잘못이라고, 그렇게 말할수가 없었습니다.
고작 열일곱, 열여덟살에 만나서 열아홉에 이별하는 아이들에게
너의 짧은 인생이 너의 발목을 잡았다고 죽어도 말할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과외선생 때려치웠습니다.
 
가끔 과외 연락이 옵니다.
어느샌가 동네에 골칫덩이 전담으로 소문이 난건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여전히 갈길을 모르는 아이들의 연락이 옵니다.
'저 더이상 과외 안합니다.' 라는 한 마디가 어찌 그리 쉽게도 나가는지 모르겠습니다.
대학생 알바선생 주제에, 나름 사명감은 있었나 봅니다.
거절한 이후에 항상 입맛이 쓴 것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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