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무서운" 건 아이들이 아니다. 어른들은 무섭다 박노자 블로그
게시물ID : humordata_57562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기상천외
추천 : 10
조회수 : 1329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0/02/14 22:57:11
요즘 한국 포털 사이트의 뉴스나 "주류" 신문 뉴스, 방송을 볼 때마다 "무서운 중딩"이니 "무서운 초딩"이니 이런 단어들은 거의 난무합니다. 뭐가 무서운 지 자세히 보면 대체로 후배에 대한 선배들의 폭력, 상납 요구, 그리고 "팬티 바람 질주"와 같은 "이색 졸업식" 등등의 이야기들은 나옵니다. 물론 - 기자들이 그걸 과연 어느 정도 아는지 모르지만 - 선생들의 고압적인 태도나 군에서의 위계질서적 관계, 가정 안에서의 "피라미드" 관계를 본딴 학생들 사이에서의 폭력적인 "우리끼리 질서 만들기"는 독재시대 때는 더 심했으면 더 심했던 것이죠. 굳이 그렇게 말하자면, 선생들의 구타가 더욱더 태심했던 일제 시대때부터 이와 같은 학생들 사이의 사건들이 꽤나 일어나고 있었어요. 1920년대의 <동아일보>를 읽어보면, "운동회에 같이 안나갔다고 급우를 마구 때렸다"는 소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습니다. 사회의 폭력성을 맨먼저 배우는 게 아이들이 아닙니까? 기자들이 보통 잘 언급하려 하지 않는 또 하나의 측면은, 아직도 미시적 (가족적) 차원에서 유교적 분위기가 약간 남은데다 사회로부터의 "낙오"가 두려운 한국 사회에서 학생들에 의한 교사폭행 사건 등이 구미권에 비해서 대단히 드물다는 점이기도 합니다. "왕따" 피해율 (약 20-25%)은 대체로 영국이나 노르웨이와 같은 수준이고요. 이런 부분들을 다 빼놓고 "무서운 초딩/중딩"을 맹비난하니 꼭 "법질서"에 대한 한국 정권의 반복적인 주문을 뒷받침해주려는 의도가 아닌가, 라는 의심은 아주 쉽게 생깁니다. "법질서" 이데올로기를 확산시키고 주입시키려면 "당신의 아이가 무사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말을 학부모에게 하는 만큼 더 좋은 수법도 없지요, 뭐. 관변 언론의 일종의 "대민 협박", "겁주기"라고나 할까요? 
 
물론 제가 학생들의 폭력을 정당화할 하등의 의도는 없습니다. 일제 때부터 있어왔다 해도, 독재 정권 때에 고질화됐다 해도, 일부 선생들의 매질이나 고압성을 그대로 모방한다 해도, 어쨌든 폭력은 폭력입니다. 피해자를 생각해서라도 폭력을 절대로 허용할 수는 없죠. 그런데 피해자도 생각해야 하지만, 가해자 역시 학생이고 우리 "배려"의 대상이 돼야 하는데, 이들이 하필이면 왜 가해자가 되는지 우리 자신들에게 한 번 물어봐야 할 것 같아요. 제 학교 시절을 생각해보면, 일단 한국과 같은 고질화된 선배들의 폭력이나 상납 요구 등은 당연히 없었어요. 선생들이 체벌을 사용하지 않았고 이념적으로나마 "다 같이 좋은 동무가 돼야 한다, 보다 어리거나 약한 이를 동지적으로 돌봐주어야 한다"는 사회주의적 이상이 존재했기에 그래도 한국이나 일본같이 선배, 급우들의 괴롭힘에 못이겨 자살하는 현상까지는 목격되지 않았어요. 물론 "튀는" (남보다 월등히 더 똑똑하거나 반대로 더 지능이 떨어져 보이거나, 혹은 행동거취가 "이상해" 보이거나) 아이에 대한 급우들의 배제를 가끔 볼 수 있었지만, 선생들이나 소년공산당 등이 나름의 조절 노력을 해서 행정적 처벌 없이 상황을 정상화시키는 경우도 있었어요. 즉, 사회 자체가 더 평등하고 덜 폭력적일 때에 "무서운 아이"들이 생길 확률은 절로 떨어지는 법이죠.
 
물론 꼭 바람직한 급우 관계만이 존재했던 것도 아니었지요. 국가 폭력의 작용은, 학교까지 영향을 미치는 경우들은 종종 있었어요. 스탈린의 폭정으로 중앙아시아로 추방당한 고려인들의 자녀들은 가끔가다 현지 학교에서 "눈이 찢어진 놈"과 같은 종족적 모욕을 들을 때도 있었어요. "국가"에 의해서 집단 처벌을 받은 사람이니 그렇게 대해도 무방하단 심산이었겠지만, 제 스승님이신 임수 선생님은 고등 학교 때에는 아예 권투선수가 되어서 가장 못된 모욕자들을 응징하신 적도 있었어요. 그리고 1980년대 같으면, 몰락해가는 소련 사회의 각종의 "문제"들은 학교 현장에서 그대로 반영되기도 했어요. 대표적으로 술꾼 아버지가 가정 내에서 폭력을 자주 행사했을 때에는 그 아들이 학교 성적이 나빠지고, 상한 자존심을 "주먹질"해서 "주먹왕"의 명예를 얻음으로써 회복시키는 경우들을 볼 수 있었어요. 마찬가지로, 아버지 없고 어머니가 일하느라 아이를 많이 돌봐주지 못하는 가정들의 아이들은 애정 결핍 때문인지 다소 폭력적이었어요. 전체적으로는 학력이 높은 가정의 자녀들은 거의 폭력성을 보이지 않았지만, 학력이 비교적으로 낮아 "콤플렉스"에 시달릴 만한 부분이 있었던 부모들의 아이들은 그 상처들을 "주먹"으로 달래는 건 흔히 보였어요. 그들이 그렇게 하면서 "미래 준비를 한다"고 스스로 이야기하기도 했어요. "니네처럼 부모들이 유식하고 성적이 좋아 대학에 들어갈 아이들이 군대에 안가도 되지만, 우리는 졸업하고 1년 지나면 바로 입대니까 주먹을 단련하지 아니면 안된다, 그게 부대에서의 생존법이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어요. 군대의 폭력성을 중, 고등생들이 미리 인식해서 "주먹남"으로서의 풍모를 갖추느라 바빴지요. 저 같으면, 그 당시에 그 아이들을 두려워하기도 하고 싫어하기도 했지만, 지금 같으면 그 당시의 제 자신의 시선은 부끄럽기만 하죠. 제 (고학력 중산층)으로서의 계급적 배경이 그대로 반영된 시선이었기에. 
 
하여간, 제가 직접 본 아이들끼리의 폭력은 사회의 각종 폭력성 (가정내 폭력, 군내 폭력 등)과 불평등 (학력, 성적에 따르는 각종 차별들)으로 인한 것이었지, 아이들이 "나빠서" 한 것은 절대 아니었어요. 무서운 건 아이가 아니고 "사회주의" 간판임에도 끝내 만족할 만한 비폭력성과 평등의 수준을 달성하지 못한 쇠락기의 소련 사회이었어요. 혁명 이후로 체벌을 폐지한 나라임에도, 고학력 학부모와 저학력 학부모의 임금차가 커봐야 60-70% 정도 밖에 보통 되지 않았던 (극소수 중간, 고위간부를 제외하고서) 나라임에도 학교에서 '주먹남'들이 등장했다면, 체벌이 존속되고 있는데다 같은 동네에서의 여러 가정들의 소득 격차가 5배일 수도 10배일 수도 있다는 대한민국은 과연 어떻겠습니까? "격차 사회"라는 부분도 그렇지만, 우리의 상업적 "문화"의 기절할만한 저수준과 폭력성도 한 몫을 할 것입니다. 온 나라가 안방에서 서로 박살내려는 두 "짐승남"의 "초콜릿 복근"에 매료되고, 표도르니 뭐니 이미 인간의 모습을 거의 잃은 "인간 병기"가 상대방을 박살낸 게 "뉴스"가 되는 수준의 사회에서는 어린 마음에 "주먹남"에 대한 흠모가 어찌 안생기겠어요? 아무리 열심히 매달려봐야 강남족이라는 현대판 성골, 진골의 대열에 이미 합류할 수 없는 신판 "신분 대물림" 사회에서는 이게 인생의 돌파구로 보일 수도 있단 말에요. 더군다나 "근육질남"이 군복까지 입으면 그 "주먹질"은 국가의 신성한 승인까지 받는 게 아닙니까? 특전사의 무시무시한 특공무술을 자랑스럽게 한국방송공사의 뉴스에서 보여주는 게 대한민국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런 수준의 사회에서는 아이들을 탓할 리도 없죠. 
 
1969년, 한 영화에서 혁명 즉후 내전 시대의 청소년 공산주의 의용대 대원이 백군 군인을 사살한 장면이 클로즈업돼 지나치게 강조됐다고 유명한 영화감독이자 가수 알렉산드르 갈리치가 공산당 중앙위원회에 항의서한을 송부했습니다. "이렇게 폭력을 미화하는 것은 사회주의 이상에 배치되고 청소년 교육에 도움되지 않는다"는 이유이었습니다. 살인 장명 정도면 안방 극장의 "기본"이 된 지 오래된 이 위대한 문화수출국 대한민국에서 그런 걸 생각해보면, 거의 고대사나 중세사처럼 머나먼 과거를 생각하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