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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를 넘어 덕망까지 갖춘 분들의 최후.jpg
게시물ID : bestofbest_9048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푸헷★★
추천 : 934
조회수 : 68022회
댓글수 : 1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2/12/05 20:20:49
원본글 작성시간 : 2012/12/05 19:35:48



전재산 600억(당시 40만원)을 순전히 독립운동하는데에만 바쳐,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현


그러나 현실은 중국땅에서 객사하거나 행방불명



통일신라,고려,조선에서 최고의 벼슬을 한 집안 - 영의정 9명 배출, 오성과한음 주인공 이항복의 후손, 천년동안 양반인집안.

일본이 조선 양반들에게 타협하는 대신 주는 귀족지위와 수십억의 돈을 거절한 집안 - 대부분 양반들 일제에 타협.

급하게 처분했어도 600~800억원(현재가치)이 넘는 재산을 가지고 6형제가 모두 중국으로 가 독립운동을 한 집안 - 식솔60여명이 이동, 신분 해방된 노비들 일부도 주인들을 따라감.

※ 염가처분이어서 600~800억이지 실제 가치는 2조원 정도 되었다고

*신흥무관학교 설립 , 공짜로 먹이고 가르쳐 수천명 독립군 배출 - 이밖에도 헤이그말사 파견지원, 고종황제 중국망명계획등 독립활동.

이회영선생의 집에 시집온 명문가 규수들이 삯바느질과 고생을 많이해서 반지가 안들어갈 정도. - 육형제 모두 강냉이와 풀죽으로 연명




단군이래 가장 덕망있는 집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이들의 최후

첫째
[첫째(이건영),이건영의 둘째아들(이규면)은 신흥학교 졸업 뒤 머나먼 중국땅 상해에서 독립운동하다 병사.

이건영의 셋째아들(이규훈)은 만주에서 독립운동한뒤 귀국, 국군 공군대위로 복무중 한국전쟁때 실종.]



둘째
[가장많은돈을 보탠 둘째(이석영)는 중국빈민가를 80의나이에 떠돌다 굶어죽음,

이석영의 장남(이규준)은 김원봉의 의열단원으로 이해명과 함께 밀정 김달하와박용만을 암살하고 한구(漢口)에서
독립운동하다 20대 나이에 병사.]



셋째
[셋 째(이철영)는 신흥학교 교장을 맡아 일하다 병사]



넷째
[모든계획에 중심에섰던 넷째(이회영)는 일흔이 다되어가는 나이에 독립활동하다 걸려 모진고문끝에 숨짐.

이회영의 둘째아들(이규학)은 사촌 이규준과 함꼐 밀정 암살가담.
이회영의 셋째아들(이규창)은 친일파 암살사건으로 경찰에 체포, 13년의 징역을 살고 광복뒤 석방.]



다섯째
[유일하게 살아남아 해방을 본 다섯째(이시영)는 독립후 김구선생님 옆에서 눈물을 흘리며 초대부통령이 됨.

하지만 이승만의 전횡에 반대하며 결국 국민방위군사건,거창양민 학살사건등
이해할수없는 1인 천하 독재만행에 항거 부통령직 사임.]



막내
[막내(이호영)는 만주북경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1933년 소식이 끊김.

이호영의아들 이규황,이규준도 함께 실종 ( 몰살당한걸로 추정 )]





-이회영선생은 나라를 지키기위해 임시정부를 만들면 또 그안에서 분열된다 하여 임시정부를 참여안하시는등 양반의 머리에서 이런 발상이 나온것자체가 엄청나게 진보적.

-세계적으로 육형제가 독립운동한건 유래가 없는일.

이회영의 아들 이규창에 따르면“1주일에 세끼를 먹으면 잘 먹을 정도였지만 궁핍이 아버지의 독립의지를 꺾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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