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애나벨 감상평 (저 인형이 예쁘다고 생각하십니까?)
애나벨을 보았다. 움직이는 인형에 대해서는 왜이리도 참 무서운 영화가 많은지 모르겠다. 쳐키도 그렇고 사일런트 힐의 바니인형도 그렇다. 옛적에 개봉했던 데스사일런스란 영화도 인형이 비명지르는 사람 혀를 뽑아죽이는 영화였다. 어릴 때 이런 영화를 보지 않아서 다행이다. 인형에 트라우마가 생길 뻔 했다.
영화 전에 친구들과 다같이 오컬트무비에 대해 알아보고 모인거라서 좀 자신이 있었다. 심령 주술 공포... 전부 다 오컬트아니겠는가. 애나벨은 이미 작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던 영화 컨저링에서도 잠시 얼굴을 내비쳤던 인형이라서 친숙했다. 비록 험악한 그 못생기고 기괴한 얼굴은 익숙해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영화가 시작하자 컨저링의 앞부분에 나왔던 영상이 똑같이 나온다. 그리고 사이좋은 신혼부부가 등장하여 뭔가 쓸데없는 말을 주고받으며 알콩달콩 다툰다. 뭔 말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심지어 별 내용도 아니다. 사실 시나리오 작가가 대충 (아무말이나 하며 싸운다) 라고 쓴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여튼 남편은 만삭의 아내의 화를 풀어주고자 선물을 꺼냈는데 그것은 바로 흉측하기 짝이 없는 애나벨이었다. 극장 안의 모든 관객이 경악을 금치 못할 때 별안간 아내가 감동하며 애나벨을 끌어안는다. 얼마나 찾던 인형인지! 라며 곧 태어날 아기 방 인형장식장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당당히 애나벨을 앉힌다. 참으로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옆에 앉은 친구들을 슬쩍 보자 그 아이들의 표정도 나의 표정과 별 다를 것이 없었다. 아이에게 미적 기준을 남들과 다르게 세워주고 싶었던 것일까. 설사 애나벨이 특별한 인형시리즈의 일종이라도 아이 정신교육상 애나벨을 준다는 것은 설정미스였다고 굳게 주장할 수 있다.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 애나벨이 집에 온 그 날 옆집에서 남편이 아내를 칼로찌르고 소동이 벌어진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가장 연출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장면이었는데, 자고 있는 주인공 부부의 창문으로 옆집부부의 이상 행동이 보이며 비명과 함께 옆집불이 꺼지는 장면은 적절하게 영화의 긴장감과 "주인공 여자가 뭔일인가 바보같은 짓을 하겠군... 제발 그냥 경찰이나 불러!" 라는 생각을 하게끔 만들었다. 여기까지 꽤 적절한 분량의 전개였으며 사실 애나벨은 여기까지만 봐야 나의 정신건강에도 좋다. 여기까지는 영화가 적절하게 무섭고 모든 부분이 자연스럽다.
그러나 그 이후에 일어나는 모든 연출과 상황은 감독의 부족한 역량을 현저하게 보여준다. 욕심이 과했던지 여기저기에 떡밥을 던져놓고 미처 다 회수하지 못해서 영웅의 희생과 사랑으로 악마를 퇴치하고 만다. 이 무슨 어처구니 없는 결말일까. 하나도 맞지 않는 설정은 드라마로 치자면 15부작 드라마에서 13화부터 감독이 바뀐 느낌이었다. 인수인계가 안되고 중간까지 여러개의 결말을 갈 수 있도록 출구를 많이 마련해두었다가 급하게 고른 느낌? 마치 여러개의 게임 엔딩 영상중 하나를 골라 보는 느낌이었다. 다른 선택지를 골라서 다른 엔딩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너무도 쉽게 예상이 가는 인물들의 행동에 많이 아쉬웠고 중반부부터는 귀신이 나와도 나즈막히 "아...." 라고 읊조렸을 따름이다. 많이 부족하다. 컨저링이 수작이었음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었다.
악령, 악마, 악마숭배, 사이비 등은 오컬트 그 자체였으며 실제로 극중에서도 오컬트라는 단어를 심심찮게 사용해서 공포보다는 예습에 대한 뿌듯함을 더 느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이번 영화는 다같이 오컬트라는 한 장르를 커다란 극장에서 느껴볼 수 있던 좋은 경험이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