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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자작] GTA in 코펜하겐
게시물ID : science_425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jeeeyul
추천 : 5
조회수 : 733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10/31 13:26:22

한 번은 샌 안드리아스의 한적하고 작은 섬에서 차를 몰고가다, 잠시 차에서 내려 쉬고 있었다. 자정에 가까운 시각인데다, 주변 조명이 거의 없는 벽지였지만, 만월이 밝게 빛나고 있어서, 시골의 정경을 만끽하는데는 아무 문제도 없었다.


시선을 이리 저리 던지다 보니, 작은 언덕 한 켠에 헤드라이트를 켠 차량 한 대가 언덕 뒤로 돌아 들어가고 있었다. 외길이었기 때문에, 잠시 뒤면 언덕 반대편으로 차가 나올 거라 생각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 차는 나오지 않았다. 나는 다시 차에 올라타 언덕 뒤로 가 보았다. 차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분명히 외길이고, 차는 반드시 언덕 반대편으로 나와야만 했었는데 말이다. 이 것이 내가 겪은 첫 이상 현상이었다.


또 한 번은 공원에서 상념에 잠겨 있을때였다. 한 여자가 나를 스치고 지나갔는 데, 그저 무시하고 있다가, 갑자기 뭔가 이야기라도 걸어볼까 싶어 뒤 돌아 보았더니, 그녀는 사라지고 없었다. 탁 트인 넓은 공간이었기 때문에, 괴이한 일이 었다.


하지만 바쁜 일상에 뭍혀, 곧 잊고 지내게 되었다. 이 현상들을 다시 되새기게 된 것은 친구를 만나 들은 이야기 때문이었다.


J는 도심의 작은 스튜디오에서 게임을 개발하는 엔지니어로, 내 단짝 친구이다. J와 게임 센터에 들러 격투 게임을 즐기고 있던 도중,  J가 말하길


“난 리얼한 게임이 좋아. 그런데 버추얼 파이터는 철권보다 훨씬 더 리얼하다는 걸 인정하지만, 그래도 나는 철권이 더 좋아.”


라는 것이었다.


“리얼한 것이 더 좋다며, 왜 그런건데?” 


하고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실재적 묘사 보다, 리얼해 보이는 것이 더 중요하거든.”


술집으로 장소를 옮겨 그는 계속 이야기 했다.


“그 유명한 이중 슬릿 실험말야.”


“응”


“코펜하겐 해석에 따르자면, 무수한 가능성이 중첩되어 있다가, 벽에 닿는 순간 파동함수의 붕괴가 일어나면서, 하나의 상태로 결정된다는 것 말야.”


“응, 그게 왜?”


“우주가 왜 그렇게 복잡하고 괴이한 매커니즘을 가지는 지 이상하지 않아?”


“다른 해석을 지지한다는 거야?”


그는 진 토닉을 반쯤 비운 뒤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그런 것은 아니고, 무수한 확률이 존재하다가 필요한 순간에 하나의 사건으로 고정된다는 건, 생각보다 흔히 있는 일이고 누구나 경험하고 있는 일이야.”


“뭐? 그런게 어디에 있는데.”


그는 나를 잠시 물끄러미 쳐다본 뒤 살짝 웃으며 말했다.


“바로 게임이지.”


내가 다시 묻기 전에 J는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요즘 게임들은 보통 심리스 맵을 이용해.  플레이어가 속한 지역에서 게임을 즐기는 동안, 주변 지역의 데이터가 로드되지. 그리고 크리쳐나 기타 잡다한 것들은 랜덤하게 생성 돼. 플레이어는 주변 세상이 항상 영속적으로 존재한다고 착각하지만 실재론 그렇지 않거든.”


그는 남은 진토닉을 마저 비우고는 다시 이야기 했다.


“심지어는 플레이어가 특정 지역에 도달해 보기 전까지 해당 지역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있어. 마인 크래프트가 좋은 예지. 플레이어가 지역의 경계에 도달하는 순간 새로운 지역이 임의로 생성 돼. 이거야 말로 확률이 붕괴되어 현실로 나타나는 완벽한 예 아니겠어?”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확률의 붕괴는, 가상의 세계를 모사하는 게임 개발에서 널리 쓰이는 방법이고, 이 확률의 붕괴에는 명백한 목적이 있어.”


“음… 그래, 좋아. 그래서 그 목적이 뭔데?”


“바로 최적화지. 모든 가능성을 컴퓨터가 계속해서 실시간으로 시뮬레이션 하고 그 정보들을 유지하는 것은 불가능 하거든.”


그가 이야기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음, 이제 감이 좀 오는 군. 그러니까 만약 코펜하겐 해석이 옳다면, 확률이 붕괴하는 이유는, 효율적으로 정보를 처리하기 위한 것이고. 이 세상은 거대한 정보 체계, 이를테면 게임같은 것이다 이런 이야기야?”


내 이야기에 J는 만족스럽다는 듯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래, 바로 그거야. ”


그는 바텐더에게 새로운 진토닉을 한 잔 더 주문했다. 진토닉 이외의 술을 마시는 것을 본 적이 없다.


“그런데 만약 파동함수가 관측에 의해 하나의 사건으로 붕괴한다면, 그 반대도 가능하지 않을까?”


“음, 그런 이야길 한다는 건, 게임 속에는 그런 현상이 있다는 거군.”


“정확해. 플레이어가 벗어난 지역은 메모리에서 제거 돼. 플레이어의 기억에 남았을 만한 상호작용을 했던 대상들을 제외하곤, 모두 소각 되어 버리지. 그것들은 실재에서 다시 확률의 세계로 돌아가는 거야.”


“좀 오싹한 이야기로군.”


우리는 다른 시덥잖은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더 나누고 헤어졌다. 그것이 J와의 마지막 만남이었고, 나는 다시는 그를 만날 수 없었다.


그 뒤로, 내가 샌안드리아스에서 이상한 점들을 수도 없이 많이 찾아냈다는 걸 굳이 이야기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지금 나를 관측하고 있는 당신은 아마 모든 걸 다 알고 있을 존재일테니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아마 내 의식이 유지될 수 있는 유일하고 합리적인 이유일 것이다. 


이 이야기가 곧 끝날 것이라는 예감이 든다. 당신은 아마 내 이야기에 대한 흥미를 곧 잃을 것이고, 나의 TTL은 곧 0을 가리키게 될 것이 자명하다.


그래서 나는 다른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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