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으리, 대장장이들이 칼에 검명(劍銘)을 새기겠다 하옵니다. 글을 내려주십시요 내 숙사로 찾아온 종사관 김수철이 말했다. - 칼에 문자 장식이란 필요없다. - 하오나, 백성들의 정성이오니, 검명을 새겨서 간직하심이 아름다울 듯합니다.몇글자 내려주십시오. 나는 벼루를 당겨 먹을 갈았다. 칼에 문자를 새긴다는 장난이 쑥스럽고 수다스럽게 느껴졌다. 먹을 천천히 갈면서, 그쑥스러움을 밀쳐낼 만한 문구를 생각했다. 문구는 냉큼 떠오르지 않았다. 베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세를 바꾸는 순간의 칼을 나는 생각했다. 나는 칼의 휘두름과 땅위로 쓰러지는 쓰레기를 떠올렸다.
한번 휘둘러 쓸어버리니, 피가 강산을 물들이도다.
라고 나는 쓰기로 했다. 김수철이 종이를 펼쳤다. 나는 붓을 들어서 썼다.
일휘소탕 혈염산하 一揮掃蕩 血染山河
'강산을 물들이도다'에서 나는 색칠할 도(塗)를 버리고 물들일 염(染)자를 골랐다. 김수철이 한동안 글자를 들여다보더니 입을 열었다.
-물들일 염자가 깊사옵니다. -그러하냐? 염은 공(工)이다. 옷감에 물을 들이듯이, 바다의 색을 바꾸는것이다. -바다는 너무 넓습니다 -적또한 헤아릴 수 없이 많다.
그때, 나는 진실로 이 남쪽 바다를 적의 피로 염하고싶었다.
==============김훈....칼의노래中....=============
적의피로 염하고 싶었다...라는 삼도수군통제사의 피끓는듯한 애절한 바램을 지금의 한국인들이 가지고있습니까? 그냥 책을 읽다가 적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