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분명 어떤 대상들로부터 아름다움을 느낀다.
해질녁 가을산이 아름답고
체조선수의 몸동작이 아름답고
놀라운 건축물이 아름답고
연예인의 얼굴이나 몸매가 아름답고
배려하는 이의 마음이 아름답고
심지어 어떤 규칙이나 공식에도 아름답다는 표현을 쓴다.
이렇게 아름답다는 표현은 흔해 빠졌는데
그리고 우리는 특정 대상이 아름다운 것인지 아닌지 분명히 느끼고 판단할수 있는데
아름답다는 것의 본질이 무었인지는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한다.
어찌되었건 아름다움은 분명 긍정적인 것인듯 하고
아름다움의 본질을 이해하는것은 자신에게 그런 긍정성을 효과적으로 부여할수 있게 됨을 의미한다.
아름답다는 감성적인 느낌에 본질이라는 이성적인 접근은
그다지 어울리지는 않는 조합이지만 감성 또한 뇌의 작용이기에
이런 감성적 뇌의 작용을 이성적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다.
일단 첫번째로 발견할수 있는 것은
아름다움의 대상이 될수 있는 것은 주로 시각적인 심상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장미꽃이니 그림이니 모두 시각자극이다.
맛이 아름답다고 하지 않는다.
냄새가 아름답다고 하지 않는다.
촉감이 아름답다고 하지 않는다.
소리는 아름답다는 표현을 쓰기도 하지만 감미롭다는 표현이 더 어울린다. 여기서 '미'는 맛 '미'다.
물론, 대상의 본질이 비시각적인 것일 경우에도 아름답다는 표현이 붙는 경우가 있고
하다못해 공식이나 마음에서 아름다움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찌 되었건 아름다움의 주는 시각적인 것에서 시작하는 그리고 제법 정교한 고위 정신작용인듯 하다.
둘째로 아름다움이라는 감정의 근원을 두가지로 접근해야만 할듯 하다.
하나는 생존과 관련된 생물로서의 본능에서 오는 아름다움이고
다른 하나는 지적 안정성 또는 인간만의 유희적 속성에서 오는 아름다움이다.
본능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다시 말하면 그것은 자신의 생존에 유리한 대상이나 속성에서 오는 감정이다.
즉, 자신의 생존, 번식에 이로운 것에 본능적인 끌림이 있고 그것을 아름다움으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건강하고 좋은 형질을 물려줄수 있을 것으로 '본능적으로' 판단되는 이성에게서 아름다움을 느낀다.
예컨데, 이성의 선한 얼굴에서 자신에게 이롭게 해 줄것이라는 마음을 읽고 아름다움을 느끼며
이성의 건강한 몸매로부터 이성의 건강함과 자손이 건강할 것임이 본능적으로 계산되어 아름다움을 느낀다.
다음으로 말할 아름다움에 대한 유희적 속성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사실 이 글의 본론이다.
아름다움의 의 본질을 단도직입적으로 말한다면
아름다움은 "특정 (주로 시각적인 심상을 불러일으키는)대상으로 부터 예측하지 못한 뜻밖의 '절묘한' 규칙이나 원리를 암묵적으로 지각하게 되었을때 발생하게 되는 어떤 긍정적인 감정"이다.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는 백지나 또는 무작위 패턴에는 아름다움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에는 어떤 규칙이나 형태에서 인지되는 정보 자체가 없다.
즉, 아름다움에 대한 감정은 최소한 어떤 규칙에 대한 지각을 바탕으로 한다.
그러나 또한 확실한 것은 단순한 사선이나 그냥 동그라미에서 역시 어떤 아름다움은 없다.
사선이나 동그라미에는 분명히 어떤 규칙이 있는데도 말이다.
즉, 어떤 규칙은 아름다움의 필요조건은 되지만 충분조건은 되지 못한다.
그것은 아마도 그것이 예측가능한 규칙이기 때문에서 일 것이다.
예측가능한 기대와 결과가 만나면 지각만 있을 뿐이다.
뇌는 같은 반복된 형태의 자극은 영양가가 없는 것으로 간주를 하기에
즐겁지가 않고 관심도 없어 의도적으로 주의를 훼피한다.
반명 예측되지 않은 뜻밖의 규칙을 지각하게 된다면
그것은 새로운 내적 관념을 형성하는 것이기에 뇌에게는 즐거운 것이고 긍정적인 것이다.
이런 '절묘함'이야 말고 아름다움이라는 감정을 불러 일으키는 대상의 본질이 아닐까 한다.
때론 아름다움에는 보편적인 원리나 진리가 숨어 있다.
차에서 아름다움을 느꼈다면, 그 차에는 어떤 절묘한 규칙이 숨어 있음을 뜻한다. 그리고 그 규칙은 차의 목적과 닿아 있을 것이다.
미끈한 차에서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다.
그것은 저항이 적은 차의 형태에 대한 자신의 막연했던 관념과 유사한 차를 보게 되고 되었을 때일 것이다.
이경우 그 암묵적으로만 느꼇던 절묘한 규칙을 절묘하게 지각하게 되면서 느끼는 유쾌함이 아름다움이 아닐까 한다.
마찬가지로 각진 차에서 아름다움을 낄수 있다.
아마도 견고한 차에 대한 막연한 형태에 대한 직관과 유사한 외형의 차를 보게 되었을 때 일 것이다.
때론 한번 노출된 아름다움에 대해서도 그 예측이 완전히 소화될때 까지 계속해서 그것을 지켜볼수 있다.
그 절묘한 규칙이 완전히 소화 되기전까지는 그런 아름다움에서 오는 즐거움은 계속될듯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어느정도 분석이 되어서 예측이 마무리가 되는 순간이 되면 실증을 느끼게 된다.
훌륭한 예술작품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이런 예측을 곤란하게 하는 절묘함으로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아름다움이라는 감정을 주는 작품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