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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의 도시
게시물ID : panic_9059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달과그림자
추천 : 5
조회수 : 821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09/12 03:5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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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어느 날 어떤 도시의 사람들에게 그들의 그림자들이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안넝하세다.)

 "뭐, 뭐야!"

 (저는 그림자세니다.)

 서투른 언어로 그들 주인만 들을 수 있도록 그림자는 속삭였다. 무시하는 자는 많았지만 그 이상으로 들어주는 자들이 많았다. 그들은 두려웠지만 그 이상으로 궁금했다. 

 (주권 탈취릉 시도즁이댜.)

 그림자들은 가끔씩 의미모를 언어로 떠들다가 더듬대며 무언가를 말해주었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의미를 가지지 않았지만 가끔씩 그림자는 중요한 것들을 말해주었다.

 어느 선택이 맞을지., 이 화장실을 가야할지 말아야할지. 회사에서는 계약할지 말지. 그림자가 흑백의 논리로 답을 속삭여주었다.

 (해.)

 (하지마.)

 대부분의 경우 그림자의 선택은 최선의 선택이었다. 그림자의 답은 언제나 이끌어낼 수 있는 최고의 결과를 이끌어냈다. 사람들은 더욱 그림자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답은 5번이야.}

 사람이 그림자의 말을 들을 수록 그 사람의 그림자는 점점 더 똑똑해져갔다. 시험문제의 답도, 법적인 문제도 그림자는 전부 답해줄 수 있을정도였다. 

 {명예훼손죄가 성립한다. 고소하면 좋아.}

 학생들은 대부분 만점을 받기 시작했다. 법적인 공방에서는 그림자의 말을 듣지 않은 사람은 100%의 확률로 패소한다는 말이 떠돌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전부 성공한 사람들이 그림자의 말을 꾸준히 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17, 61, 84,93, 26, 47.]

 간혹, 질문을 많이 받았던 그림자는 주인에게 로또 번호도 알려주었다. 그림자의 의견을 따르던 남자는 그대로 1등에 당첨되었다. 

 그림자의 말을 듣지 않던 사람들은 그림자의 말을 들어주기 시작하고 본디 그림자의 말을 듣던 사람들은 그림자가 침묵하고 있을 때에도 그 침묵에 귀를 들이댔다. 한 마디도 놓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그림자는 참으로 편리한 도구였다. 말을 걸어오는 그림자는 모두는 아니더라도 그들 대부분을 행복해지게 만들어주었다. 도시 사람들은 웃는 낯으로 서로 인사를 건넸다.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었고 완벽한 결과만이 그들에게 주어졌다. 도시 내의 사람들은 전부 도시 내에 한정하여 인류가 진화한 듯하다고 느꼈다. 




[호모 사피엔스는 실패를 거듭하는 과정을 거쳐 성공을 움켜쥐지만 우리는 과정 없이 최선의 결과를 얻는 방법을 얻었다.]



{우리는 호모 사피엔스를 극복했다!}







도시의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시의 주민들이 완벽해져갈 때 모두가 그에 찬성하지는 않았다. 그래서 도시의 모두가 완벽해지지는 않았다. 본디 남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는 이들, 남의 의견을 하찮게 여기는 이들은 자신의 그림자라 하더라도 그 말을 듣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해나갔다.

 신의 시험이라고 생각하거나 악마의 장난이라고 생각하는 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그 목소리를 들어 이익을 얻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겼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고 여기는 부류 역시 대가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들으려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림자의 말을 듣지 않는 그들을 기분 나빠했다. 완벽할 수 있던 도시에 그들은 흠집이었다. 소위 덜 진화한 사람들을 대부분의 사람들은 혐오했다. 그러나 혐오스럽다는 이유로 도시에서 강제로 추방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은 생각보더 어려운 문제였다. 

 호모 사피엔스들은 호모 사피엔스를 극복한 자들의 혐오를 박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 날, 이변이 일어난다.


 

 "이번엔 오른쪽으로 가."

 그림자는 이제 사람이 해야할 움직임 하나마저도 알려주기 시작했다. 그림자는 근육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고 사람들은 수긍했다. 그림자가 하는 말은 틀리지 않을테니까.



(오른쪽?)



"그래, 오른쪽으로 가."



대부분의 경우 남자는 받아들였을테지만 오른쪽은 철로였다. 남자는 거절했다.

 (안돼.)

 "오른쪽."

 그러나 남자는 거절할 권리가 없었다. 본디 사람에 얽매여 사람이 움직이는 것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 그림자일진데, 사람이 그림자에 얽매여 움직이다보니 어느새 사람의 부분은 몸의 주권을 잃게 된 탓이었다.


 남자의 발이 충실히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린다. 남자는 절규한다.

 "웃어."


 남자는 절규하지 않는다. 대신 활짝 웃는다. 남자는 저항한다.

 "웃어."

 남자는 저항하는 대신 웃었다.

 오랫동안 자신의 의지로 움직이지 않았기에 그의 몸은 이제 그의 것이 아니었다. 그의 의지는 존재하지 않았다. 선택할 권리를 스스로에게서 박탈하고 주어진 것만 받아먹은 대가였을지도 몰랐다.

 남자는 봄날 공원에서 카메라를 들어올리면 렌즈 저 편으로 볼 수 있는 아이들처럼 활짝 웃으며 철로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은 남자가 웃은 채로 토막나 고깃덩이가 되는 것에 전혀 시선을 주지 않았다. 하나같이 그림자가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의 그림자는 동시에 각자의 사람에게 말했다.

"스마트폰을 켜고 문자를 확인해."


"저번에 깔았던 게임을 해."


"하늘을 보며 콧노래를 불러."


"화장실로 가자."


"3-1로 옮겨."

 남자의 죽음을 아무도 목격하지 못한 것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다. 주변 모든 사람들의 그림자가 그 쪽으로는 시선을 돌리지 않게 동시에 각자 다른 말을 내뱉은 것이 우연이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남자가 죽음을 향해 걸어갈 동안,문자를 확인하고 게임을 하고 콧노래를 부르고 화장실을 가고 3-1로 자리를 옮겼다.

 사람들은 그렇게 자신을 빼앗긴 남자의 비극에서 눈을 돌렸다. 자신이 아직도 제 의지로 몸을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하며.


 그림자가 말을 걸어온 지 한달 후.




 그림자가 말을 걸어오는 것을 꺼림칙하게 여기던 자들은 이미 모두 떠나갔다. 그림자에 잠식당하고 싶지 않아, 악마의 유혹에, 신의 시험에 걸려들고 싶지 않아서 그들은 모두 떠났다. 자신의 행동은 무엇도 아닌 자신만이 결정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떠났다. 그들은 아직 사람인채로 도시를 떠났다.

 그리고 사람이지 못한 것들, 그림자의 그림자로 남아 남이 움직이는대로 휘둘리던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다. 남의 말을 듣지 아니하며 저 자신만 아는 사람이지 못한 것들도 그곳에 있었다. 

 "포크를 집어."


 (............)


 "토마토를 먹어."



(.............)



 그림자는 움직이고 단백질 덩어리들은 그에 따라 움직인다.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스스로 귀속되기를 택해 생각하는 권리를 포기한 가축과 저만을 아는 짐승만이 그 도시에 음습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그곳을 그림자의 도시라 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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