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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장희, 벌레 우는 소리
밤마다 울던 저 벌레는
오늘도 마루 밑에서 울고 있네
저녁에 빛나는 냇물같이
벌레 우는 소리는 차고도 쓸쓸하여라
밤마다 마루 밑에서 우는 벌레소리에
내 마음 한없이 이끌리나니
안도현, 가난하다는 것
가난은
가난한 사람을 울리지 않는다
가난하다는 것은
가난하지 않은 사람보다
오직 한 움큼만 덜 가졌다는 뜻이므로
늘 가슴 한쪽이 비어 있어
거기에
사랑을 채울 자리를 마련해 두었으므로
사랑하는 이들은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하운, 삶
지나가버린 것은
모두가 다 아름다웠다
여기 있는 것 남은 것은
욕이다 벌이다 문둥이다
옛날에 서서
우러러보던 하늘은
아직도 푸르기만 하다마는
아 꽃과 같던 삶과
꽃일 수 없는 삶과의
갈등 사잇길에 쩔룩거리며 섰다
잠깐이라도 이 낯선 집
추녀밑에 서서 우는 것은
욕이다 벌이다 문둥이다
김추인, 벗어 놓은 그의 생을 보았다
삶은 살의 길인게다
알게 모르게 씹히면서
슬픔처럼 부풀면서 따뜻하면서
변용되어 가던 살의 시간들
한 생애 걸어온 길 위에서
사무치게 돌아보는 살의 기억들 무참하고
남은 술잔에 서천이 붉었으리
다 늦은 저녁 때
구름장만 같은 일상도 도리 없이 붙안고 가는
늙은 살의 길이 붐볐겠다만
어느 날 무단히 다운된 PC 속 화면처럼
정지의 일순간
이쪽저쪽 생의 단추들 다급히 짚어 보지만
작동을 거부하는 살의 침묵. 차고 단단했다
눈도 입도 미처 못 다문 채 벗어 놓은 너의 생
마지막 살의 표의(表意)
네가 응시하는 그 끝간 데, 거기는 아름다우냐
신동집, 눈
아주 너를 보내고 돌아오는 길은
펑 펑 눈이 오는 밤이었다
돌아서는 모퉁이마다
내 자욱 소리는 나를 따라오고
너는 내 중심에서
눈의 것으로 환원하고 있었다
너는 아주 떠나 버렸기에
그러기에 고이 들을 수 있는
내 스스로의 자욱 소리였지만
내가 남기고 온 발자욱은
이내 묻혀 갔으리라
펑 펑 내리는 눈이
감정 속에 묻혀 갔으리라
너는 이미 나의 지평가로 떠났기에
그만이지만 그러나 너 대신
내가 떠나갔더래도 좋았을 게다
우리는 누가 먼저 떠나든, 황막히 내리는
감정 속에 살아가는 것이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