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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살아온 삶이 온통 거짓된 삶이었다는 것입니까?
게시물ID : phil_906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정당한사유
추천 : 2/4
조회수 : 44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05/31 15:17:08
청년 친구의 죽음 앞에서 나는 무엇을 말해야 할 지 말문이 턱 막혀버렸다. 친구의 죽음이라는 이 무거운 주제 앞에서 나는 비통하고도 큰 슬픔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슬픔은 친구에 대한 슬픔이 아닌 죽음에 대한 슬픔이었으며 나 자신에 대한 슬픔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와 가장 가까웠던 이의 죽음으로 나는 이제 다시 나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죽음은 더 이상 남의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렇다, 나는 항상 죽음과 함께하며 삶을 살아온 것이다! 시시각각 나를 목죄여오는 죽음.. 그 죽음 앞에서 나의 삶은 한없이 작아지고 위축되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단 말인가?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한단 말인가? 죽음 앞에 내 자신이 너무나 초라해진다..

노인 슬퍼하지 말라! 죽은 자들이 그들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따르라! 그대는 아직 삶도 모르거늘 어찌하여 죽음을 알고자 하는가? 삶에 대한 깊은 의미를 모르는 자가 어찌 저 피안의 세계를 볼 수 있으랴. 삶에 충실하지 못한 자에게는 매 순간 순간이 죽음일 뿐이다. 참된 삶을 맛보지 못한 자만이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이들이 세월이 영원히 자기의 편인 것처럼 착각하고 살아가지만 세월은 그 누구의 편도 아니다. 그들은 삶을 알지 못한다.. 세월은 삶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삶은 오직 이 순간에 있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인 것이다.

청년 노인이시여. 그대는 삶의 진리를 깨달았습니까? 도대체 삶이란 무엇입니까? 인생은 무엇이지요? 삶의 유한성에 직면한 저는 더 이상 삶에서 의미를 느낄 수 없었습니다. 죽음 앞에서 제 일거수 일투족은 모두 보잘 것 없는 허공의 손짓과 같았습니다. 노인이시여, 제발 제게 지혜를 주소서.

노인 바른 법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에게는 삶과 죽음의 길 또한 길고도 멀다. 죽음을 찾지 말라! 죽음이 그대를 찾을 것이니. 죽음을 완성으로 만드는 길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진실로 삶은 죽음으로 끝나는 것이다. 오늘의 문제는 싸우는 것이요, 내일의 문제는 이기는 것이며, 모든 날의 문제는 죽는 것이다. 삶을 깊이 이해하면 할수록 죽음으로 인한 슬픔은 그만큼 줄어들 것이다. 아! 가엾은 자. 그대는 삶의 유한성에 직면했구나. 그러나 우리는 삶의 유한성에 직면함으로써 삶을 느낄 수 있는 것이다.

청년 노인이시여. 저를 위로하지 마십시오. 저는 위로를 받고자 함이 아닙니다. 삶에 대해 온전히 알고싶을 뿐입니다!

노인 본래 이 삶이란 것은 고통 그 자체이며 허무함 그 자체라! 아픔도, 슬픔도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이 세상은 그저 텅 비어있는 채로 즐거움이 슬픔으로 슬픔이 즐거움으로, 고통이 행복으로 행복이 고통으로 변하며 계속 되어왔다. 때론 즐겁고 때론 괴로운 것이 인생이니, 이를 자각할 때 우리는 슬픔도 즐거움도 자신이 원할 때 떠안기도 하고 버리기도 할 수 있는 것이지. 이 세상은 그저 아무 것도 아니다!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에 구애받지 말고 흔들리는 것들은 거기에 놓고 가야만한다! 삶은 마치 어린아이가 해변가에 그리는 그림과도 같아 죽음이라는 파도가 한번 치고나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니라. 집착하지 말라..

청년 삶에 대한 집착을 버리라는 말인가요? 그렇지만.. 저는 삶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제가 존재하는 것 또한 오직 삶이 있기 때문이지요. 삶이 없다면 그것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입니까?

노인 그렇게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왜냐하면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삶에 집착해왔으니까! 그렇다면 그 집착이 어디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하나? 삶에 대한 집착은 바로 나 자신에 대한 집착에서부터 시작된 것이다! 삶을 집요하게 쫓아다니는 쇠약함과 죽음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지켜보던 자네는 결국 존재를 정당화하고 나아가 삶을 고양시킬 수 있는 또 다른 이야기가 있는지 알고 싶은 것 아닌가? 그렇다면 지금부터 내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으라. 고통과 욕망으로 점철된 삶. 그 삶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그 삶의 원동력을 찾아내 뿌리를 뽑아버리는 것이 첫번째일지니. 그렇다면 그 원동력은 어디에 있는가? 바로 우리가 태어나면서 갖고있는 나에대한 집착이라!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나에 그토록 집착한다. '나'는 좀 더 편안하고 싶고, 남들로부터 좀 더 인정받고 싶고, 남들에게 좀 더 과시하고 싶고. 이 세상에 '나'라는 존재를 각인시키며 끝없는 욕망을 갈구하고 또 갈구하는 것이 우리의 인생일지니! 그런데 이 나라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 결국 죽음이라는 파도가 한번 몰아치고 난 뒤엔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것이 바로 '나'라! 우리는 인생을 살아오며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나'라는 개념을 구체화해왔다. 그리고 이 나라는 개념 안에는 분노, 심판, 증오, 두려움, 불안감 등과 같은 고통을 유발하는 감정들 또한 살아있지. 이러한 감정들은 결국엔 우리 정체성의 일부를 형성하여 '나'가 된다!

청년 선생이시여. 저는 유년기의 트라우마로 지속적인 불안감을 안고 커왔습니다. 그리고 이로인한 불안한 성격은 제 정체성의 일부가 되었지요. 결국 제가 경험해온 과거 경험과 기억의 총체가 저를 구성해온 것이란 말인가요? 그렇다면 저의 본질은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만일 제 경험이 한 순간의 차이로 달라졌다면 저는 지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있을 수도 있단 말입니까?

노인 그대는 결국 아무 것도 아니었다! 본질은 아무데도 있지 않다. 우리는 그저 삶이라는 기나긴 과정 속에 여러가지 옷을 번갈아 입고있는 것일뿐. 우리는 아무 이유없이 세상에 내던져진 존재라! 그러나 많은 이들이 이를 모르고 자신을 자신으로 구속하며 살아가고있다. 삶이 길어질수록, 세월의 관록이 쌓일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을 과거의 경험과 기억 속에서 더욱 더 강하게 구속할 것일지니! 이는 우리가 아무리 새로운 삶을 다짐해도 왠지모를 죄책감과 부정적인 기분이 들게 하여 하여 궁극적으로 삶의 변화를 가로막는 원인이 되는 것이다!

청년 그렇다면 저는 앞으로도 계속 나 자신에 대한 구속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란 말입니까?

노인 구하라! 그리하면 삶은 그대에게 진리를 줄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진리의 문이 그대에게 열릴 것이니. 이는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 진실로 업악의 굴레에서 벗어나 진실된 삶을 살고자 한다면 그대는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삶을 구속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만일 그대가 삶을 구속하는 길을 택한다면 그대의 삶은 평생 억압의 굴레 속에 갇혀 그것만이 전부임을 알고 살아갈 것이니. 삶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대는 여지껏 마음에 지배되온 삶을 살았으며 그랬기에 진정한 삶의 충만함을 누릴 수 없었다. 삶의 충만함은 무엇인가! 삶의 기쁨은 무엇인가! 그것을 궁구하라!

청년 제가 살아온 삶이 온통 거짓된 삶이었다는 것입니까?

노인 그대의 삶은 여지껏 삶이 아니었다. 그대는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고있는가? 항상 어제의 근심과 미래의 이상 속에서 허우적 대지는 않았는가? 현재를 즐겨라!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어라! 삶에 있어서 내일은 없다.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청년 선생의 지혜는 너무나도 급진적이고 파괴적입니다! 기존의 가치관을 부정하며 삶 또한 부정하려 들고 있습니다! 저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막연한 두려움과 죄책감이 앞서기만 합니다. 선생의 말은 분명 옳지만 제 안의 무언가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노인 믿음이 작은 자야,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나는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기존의 어긋난 가치들을 모조리 부수고 그 반석 위에 새로운 가치를 새김이라. 구속된 삶이라는 죄를 뒤집어 쓴 채 태어난 이들에게 그 구속을 벗기기 위함이니, 그대는 내 말을 귀담아 들으라. 나를 의심하는 자일지라도 삶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있으나 나의 말을 의심하는 자는 삶의 구속에서 벗어날 수 없으리라. 우리가 과거의 기억과 경험으로부터 벗어날 때 우리는 비로소 진정한 '나'로서 현존하게 될지니. 이는 본래 우리 모두가 같음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라. 현존하는 자에게 있어선 누구든지 서로가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교만과 야심, 명예욕과 권세욕으로부터 회개하고 변화하라! '나'를 버림으로써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사람이 되어라!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 자신을 낮추는 자만이 진정으로 삶을 알 수 있을지니. 용서하라! 누군가 네게 죄를 범하거든 일곱 번이든 일흔 번이든 계속 용서하라. 그대가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이는 아직 '나'를 버리지 못함이니라, 만일 그리하게되면 그대는 진정한 삶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가리라.

청년 혼란스럽습니다. 제가 알고 있던 기존의 인식들이 모두 부정되고 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나를 어떻게 버릴 수 있는 것입니까? 진정한 삶이란 또 무엇입니까?

노인 그대가 지금 굳게 믿고있는 '그대'는 결국 아무 것도 아니라. 이는 감정에 지배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의 감정이 요동침을 인지하라. 너의 탐욕과 욕망, 교만함과 야심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꿈틀 거리는 것을 <항상> 인지하려고 노력하라. 그리고 그러한 노력이 습관화될 때 너는 비로소 감정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네 자신이 감정을 지배할 수 있게 된다. 그때부터 그대는 감정에 구속받지 않고 모든 욕망과 탐욕으로부터 비로소 자유로워지며 삶의 충만함을 인식할 수 있게된다. 어두운 마음으로부터 가려진 진실을 깨닫게되어 너와 남이 다르지 않고 남과 너가 다르지 않음을 알게되어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게 될지며 심지어는 네 원수까지도 사랑하게 될지니. 이는 더 나아가 모든 만물과 공감함으로써 네가 이전에도 존재해왔고 지금 이 순간에도 존재하며 다음에도 존재할 것임을 알게 될 것이라. 그러므로 그대는 아는 것을 안다는 것의 경지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런즉, 깨어있으라.

청년 선생이시여, 이 삶의 진리를 아는 자가 얼마나 있습니까? 민중들은 어째서 삶의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까?

노인 삶의 비밀을 아는 것이 그대에게는 허락되었으나 아직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다. 내가 입을 열어 비유로 말하고 창세부터 감추인 것들을 드러냈으나 정작 그들은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그대는 이제 삶의 진리를 깨달았으니 이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그대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청년 저는 여태 살아오며 선생과 같은 분을 한번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위대한 선지자이시여, 그대의 이름이 무엇입니까?

노인 나는 주 예수 그리스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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