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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은 아파할 자격이 없다
게시물ID : lovestory_6990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Esprit
추천 : 0
조회수 : 67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1/02 05:40:33
처음에 널 봤을 때
난 널 거들떠도 보지 않았다

너는 그냥 내 하루, 또는 한달, 몇 년의 시간 속에서
한 두줄의 선으로 연결된 채 지나가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었으니까

그래서 난 네가 나에게 눈길을 주지 않는 것에 대해 아파할 자격이 없다



몇 달 후, 마음의 조명
그 그늘에 있던 관객 중 하나였던 널 다시 보았을 때

난 깜짝 놀랐다 
예고 없이 넌 관객석에서 내 마음의 무대 위로 성큼성큼 걸어 올라왔다
자리에서 일어나기도 전부터
너의 자리가 여기였다 하고 
알고있기나 했던듯이

놀란 나는 올라오는 너의 손을 지지해주는 대신에
무대의 뒤쪽으로 종종걸음치며 도망가
벨벳 커튼 뒤에서 내 무대 위의 너를 훔쳐보았다

그래서 난 네가 다른 배우와 함께 서있는 것에 대해 아파할 자격이 없다


이런 때도 있었다
네가 나에게 말을 건네면
내가 대답을 하고
너는 다시 그 대답의 대답을 하던 때였다

네 눈짓이 내 마음엔 꽃가루 날리는 것처럼 간질간질하고
네 손등의 작은 핏줄을 볼때마다 내 대동맥 속 피가 폭포처럼 쏟아지던
그런 때가 있었다

너는 식물학자라도 된 것처럼 봄꽃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나는 그 감정없음에 등허리춤이 찌릿하니 시려와서
꺾어주려던 꽃을 다시 꽃밭에 내려놓았다

그래서 난 네가 받은 그 정갈한 꽃잎과 너의 표정에 대해 아파할 자격이 없다


네가 없이도 많은 날을 살았다
널 보면서도 없는 것처럼 또한 많은 날을 살았다
너랑은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과 관계도 맺었다
너와의 연이 희박한 사람일수록 좋았다
그런 사람들을 볼 때면 긴 터널의 비상 탈출구라도 만난 것처럼
숨을 참고 달려가곤 했다
달려간 끝엔 언제나 어두컴컴한 방, 코에 응결되는 샤워냄새
그리고 잠든, 내 맘과 몸을 다 바친, 하지만 영혼만은 줄 수 없던 여인이 누워있곤 했다

그래서 난 너와, 나와, 내가 모르는, 또는 네가 모르는 A,B,C들의 관계에 대해서 아파할 자격이 없다


네가 너무 서럽게 울던 겨울날이 있었다
나는 네 옆옆옆자리이자 너의 맞은편 옆자리에 앉아 있었다
너는 네 눈물을 홀짝홀짝
나는 내 술잔만 홀짝홀짝 
네가 빨리 울고 탈진해서 엎어져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네가 우는 이유와 네가 우는 그 모습이
노끈처럼 내 목을 몇 분마다 간간히 졸라오곤 했다
숨을 쉬러 밖으로 나가야 했다
뜨거운 마음과 차가운 바람이 만나는 곳엔
장마전선이 생긴다는 걸 알았더라면 
휴지를 좀 가지고 나갔을텐데
넌 안에서 홀짝홀짝
난 밖에서 홀짝홀짝

그래서 난 너의 눈물을 닦아주는 그 사람과 너의 눈물에 대해서 아파할 자격이 없다


봐라, 어떤 사람은 아파할 자격이 없다

칼질을 하다가 베인 상처에 아파하는 사람들에게는 있다
뛰다 넘어져 까진 상처에 아파하는 사람에게도 있다
의자에 앉아 상처 하나 없이 조용히 우그러진 나에게만은 그 자격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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