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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언덕은 늙은 어머니의 어깨와 같다
게시물ID : lovestory_906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통통볼
추천 : 3
조회수 : 33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20/09/28 22:41:14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

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1.jpg

 

이형기, 비 오는 날




오늘

이 나라에 가을이 오나보다


노을도 갈앉은

저녁 하늘에

눈먼 우화는 끝났다더라


한 색 보라로 칠을 하고

길 아닌 천 리를

더듬어 가면


푸른 꿈도 한나절 비를 맞으며

꽃잎 지거라

꽃잎 지거라


산 너머 산 너머서 네가 오듯

오늘

이 나라에 가을이 오나보다

 

 

 

 

 

 

2.jpg

 

허영자, 작은 기도




눈보담도 희디 흰 마음이게 하소서

떠나는 것 고이 돌려보내고

오는 것 순히 맞아들이게 하소서

반짝이는 반짝이는 물결이게 하소서

가이없는 출렁임 그 아래

깊숙이 풀지못할 신비를 간직케 하소서

몸부림이게 하소서

못 견디는 몸부림이게 하소서

엷음 바람결에도

멀리까지 날으는 은은하고

서러운

저녁 종소리이게 하소서

 

 

 

 

 

 

3.jpg

 

오규원, 이상한 새




나는 아파트 단지를 매일 서너 바퀴

돌았다 아파트 창들이 무덤처럼

소곤거렸다 설화의, 살아 있는 새가

순간 지상을 향해 날아올랐다 껌껌한

빛이 아파트 건물 뒤에 가려졌다

 

 

 

 

 

 

4.jpg

 

정호승, 그는




그는 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을 때

조용히 나의 창문을 두드리다 돌아간 사람이었다

그는 아무도 나를 위해 기도하지 않을 때

묵묵히 무릎을 꿇고

나를 위해 울며 기도하던 사람이었다

내가 내 더러운 운명의 길가에 서성대다가

드디어 죽음의 순간을 맞이했을 때

그는 가만히 내 곁에 누워 나의 죽음이 된 사람이었다

아무도 나의 주검을 씻어주지 않고

뿔뿔이 흩어져 촛불을 끄고 돌아가 버렸을 때

그는 고요히 바다가 되어 나를 씻어준 사람이었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 자를 사랑하는

기다리기 전에 이미 나를 사랑하고

사랑하기 전에 이미 나를 기다린

 

 

 

 

 

 

5.jpg

 

윤곤강, 언덕




언덕은 늙은 어머니의 어깨와 같다


마음이 외로워 언덕에 서면

가슴을 치는 슬픈 소리가 들렸다


언덕에선 넓은 들이 보인다


먹구렁이처럼 달아가는 기차는

나의 시름을 싣고 가버리는 것이었다


언덕엔 푸른 풀 한 포기도 없었다


들을 보면서 날마다 날마다 나는

가까워오는 봄의 화상을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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