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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세世학學][306 보충대 입소]
게시물ID : lovestory_6990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세학
추천 : 0
조회수 : 62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1/02 18:36:48

BGM정보 : 브금저장소 - http://bgmstore.net/view/xsGS7
 
[연재소설 세][306 보충대 입소]
 

침을 질질 흘리며 땀을 흥건히 배출하며 졸고 있던 나를 깨워주신 고마운 버스 기사님 덕분에 무사히 목적지에서 하차. 눈꼽을 떼어가며 뜬 눈 앞에 있는 광경은 꽤 장관이었다. 족히 수십은 되어 보이는 노점상. 도로를 가득 메우는 차들. 그리고 나와 같은 신세인 불쌍한 절대 다수가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그러나 숫자와 관계없이 이 거리를 가장 많이 점유하고 있는 것은 노점상 할머니들이었다. 노점상 할머니들은 하나같이 돗자리를 펴놓구선 전자시계, 고무링, 편지지, 볼펜, 군화, 군화깔창, 구급약품 세트, 뭐시기 뭐시기 세트 등 잡다한 물건들을 쟁여놓은 채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다.
 

"이봐 학상- 이거이거 사가. 이거 전자시계 군대에서 꼭 필요해- 내가 삼만 오천원 아니 삼만원에 싸게 줄게"
삼 만원이라니.
"--괜찮습니다. -"
벗어나자.
"? 그거 필요해요?"
능숙하게 사기꾼을 피해 달아나는 내 뒤에서 호구가 한 명 호굴로 제 스스로 걸어 들어간다. 딱 보니 외관도 멸치 호구다. 이 전자시계의 시중 가격은 1.5~2.5. 나는 이 물품들을 전부 부대 PX나 부대에서 구할 수 있으며 요 행상들이 전부 바가지를 씌운다는 것을 인터넷을 통해 미리 알고 있었기에 다행히도 그들의 장삿속에 속는 것은 피할 수 있었다.
요 미련한 호구에게 '바보야 살 필요 없어' 라는 눈빛을 쏘아 보내 주었지만은 그는 나의 동정을 이해하지 못하고 15만원을 그 자리에서 털어버리고 만다. 특이한 것은 주변에 이러한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라 버글버글 하다는 것이다. 누군가는 홀로, 누군가는 부모님, 형제, 친구와 함께 자신의 쌈짓돈을 몇 십 만원 단위로 털어내고 있었다. 그들을 돕고 싶다는 잠깐 스쳐갔으나 할머니 노점상들에게는 생계가 달려 있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니 쉽사리 그런 행동을 할 수는 없었다. 나는 씁쓸한 마음을 뒤로 하고 등을 돌렸다.
 

 

 

군중을 따라 앞으로 나아가니 그곳 좌우에는 음식점들이 가득 펼쳐져 있었다. 삼겹살, 오리고기, 추어탕, 국밥 등 먹자골목처럼 저가부터 고가 음식까지 웬만한 음식점 종류는 모조리 모아 놓은 것 같이 거리가 형성되어 있다. 지글지글 하니 풍겨오는, 고기 굽는 소리와 냄새에 입 안 가득 침이 고인다. 생각해보니 아침을 먹고 나서 7시간 정도 아무것도 먹지 않은 것 같다. 지금 이 빈 속에 물기가 살짝 남아있는 싱싱한 청록의 상추. 자작하니 구운 삼겹살 두 점. 마늘과 김치, 쌈장을 올려 한 번에 콱 싼 것을 입 안에 넣으면?
"~"
즐거운 상상의 향기가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발걸음도 냄새의 진원지중 한 곳을 향해 절로 옮겨진다.
 

음식점에 도착해 숨넘어가듯 급히 음식 주문을 하던 나는, 돌연 입을 멈추고 죄송하단 말을 남긴 채 뒷걸음질을 치고 말았다. 카운터 이모님 너머에 있는 테이블 손님들을 보고 말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대개 아니 모조리 가족단위 손님들이었다. 몇일 전부터 부러 생각하지 않으려 하던 것들이 떠오르고 말았다.
 

실은 그들이 너무도 부러웠다. 군 입대라는 인생에 한 번 뿐인 대행사이자 관례. 처음으로 둥지를 떠나 2년간 거친 생활을 하려는 자식을 위해 기꺼이 휴가를 낸 부모님들. 직장인들은 연월차를 내고, 자영업자는 임시 휴업 팻말을 걸고서라도 아들을 환송하기 위해 이 보충대까지 따라온 것이다. 경기도에 위치한 이 306 보충대.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면 모를까 지방 사람이라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입소 시간으로부터 차량 이동 3시간 30, 식사 및 준비에 1시간 30. 그리고 음식 준비를 하시는 분들은 그보다 1~2시간 일찍 일어나야만 한다. 농흑의 커튼이 걷히지 않은 그 새벽부터 일상에 찌든 피곤한 몸을 일으켜 준비를 해야 하는 그 모든 것을 그들은 기꺼이 감수한다. 오로지 아들을 위해서.
 

"--"
밖으로 나와 고개를 숙인채 한 숨 뱉어내고 나니 답답하던 마음이 조금은 풀린다. 그래. 사실 그렇다. 내 스스로 따라 오시겠다는 부모님을 만류하였다. 아버지는 회사로, 어머니는 교직 생활에 매진 할 수 있도록 고집을 부린 것은 나 자신 아니었던가. 지금의 상황이 스스로의 가치관과 자존으로써 선택한 결과라는 것을 옳게 인지하면서도 부모님에 대한 서운함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래저래 머리만 어지러우므로 잠시 눈을 감고 한숨을 뱉아낸다. 그리고 다시 길을 재촉한다. 음식점을 외면하며 앞만 본 채 곧장 걷자 금방 보충대 정문이 보인다. 306보충대 입소 장정을 환영합니다. 20081014이라 쓰여 있는 플랭카드. 화살표가 그려져 있는 입간판부터 안내 부사관 까지 다양한 사람과 사물들이 안내를 하고 있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려다 멈칫 하고 멈춰서고 만다. 막상 입대하려 하니 겨우 20분 남짓 남은 시간이 너무나도 아쉽다. 그래도 사회에서 남은 마지막 20분인데 무언가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심정에 뒤를 돌아보았다가, 다시금 눈앞에 펼쳐진 맘 불편한 풍경에 되돌고 만다.
 

 

 

정문에는 조교, 교관이라 써진 모자를 쓴 사람들이 둘씩 서 있다. '당신을 환영합니다' 라는 말을 표정으로써 나타내고 있다. 의외로 밝은 현역 군인들의 얼굴에 아주 조금은 긴장이 풀린다.
요새 군대도 많이 좋아졌다던데, 그 악명 높던 똥 군기가 없어진 걸까? 그런 군대라면 기꺼이 충성을 바칠만도 하겠는데.
 

문을 지나 정면 방향에는 운동장, 아니 연병장이 있다. 그곳 벤치에는 수많은 사람들. 아니 장정들이 앉아 먼 산만 바라보고 있었다. 나와 같은 신세의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지 다들 혼자 앉아 있다.
현역 군인들의 안내에 따르자면 나는 그곳에 얌전히 앉아 입소식의 시작을 기다려야 했을 터이지만 그 우중충한 분위기 속에 끼어 20분을 보내는 짓은 도저히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갈 길을 찾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던 발걸음을 부대 내부로 통하는 우측 길로 돌렸다.
 

 

 

잘 정비된 콘크리트 도로 좌우로는 생육이 오래된 수목이 펼쳐져 있고 무엇인지 모를 건물들이 잔뜩 늘어서 있다. 부대 부지도 생각보다 넓고, 시간도 있으니 집합 방송이 울리기 전까지 어정어정하니 구경하기로 한다.
그러나 날이 워낙에 무더운 탓에 나는 또다시 땀범벅이 되고 만다. 구경보다도 땀을 날리고 싶은 마음에 그늘을 찾아보지만 소용없다. 큰 아름드리나무 밑 명당자리들은 이미 가족단위로 방문한 사람들이 전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다들 하나같이 돗자리를 깔고 배기 싫은 장면을 연출하고 있다. 그리고 저 앞의 커플들은... 어이구야.
 

언덕을 한참이나 올라서야 인적 없는 건물 옆 그늘에 어렵사리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땀을 식히러 온 것인지 아니면 땀을 배출하러 온 것인지 모르겠다. 밑에 있었으면 지루하긴 했어도 삭신은 편했을 것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이제는 대충 다 돌아 봤으니 딱히 구경할 것도 없고 돌아다녀봐야 좀 전처럼 야시꾸리하니 눈꼴신 광경이나 보게 될 테니 그냥 여기서 잠이나 한 숨 때리기로 한다.
 

 

 

"아이-- 제발..."
지옥의 개문을 알리는 군가가 사방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한다. 고등학교 시절 오인용이라는 유머 동영상에서 처음 들었을 때에 그토록 재미있게 들렸던 음정이 어째 이제는 장송곡과 같이 음울하게 들리는지 알 수 없었다.
교관, 조교들이 사람들을 인솔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도 슬슬 일어나 합류해야지 않나 싶다. 눈꼽을 떼어내며 욕지끼를 몇 번 쏟아내다가, 하나의 물길처럼 흐르기 시작한 군중에 합류하였다.
 

내가 조금 늦게 왔는지 연병장은 이미 수많은 사람들로 버글버글 하다. 벤치 쪽은 택도 없고 연병장 중앙까지 가득 인파가 들어찬다. 사방에는 웅성거리는 소리, 한탄하는 소리, 통곡하는 소리와 수많은 사람으로 인한 열기로 가득하다. 그 와중에
"에에-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지금 이 시간 부모님과 기타 동행인 분들은 전부 연병장 라인 바깥으로 물러나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통곡하는 소리가 더욱 커진다. 그들은 마치 이상가족 상봉의 마침 시간 때처럼 떨어지지 않으려 애를 써 보지만, 시간이 지나고 사회의 룰이라는 압력이 더해지자 이내 현실을 인지하고 힘없이 연병장 라인 밖으로 향한다. 그들은 저어 멀리에서 걱정스런 눈길을 주고받고 있다.
 

단상 위에서 마이크를 잡고 있는 사람의 연설이 시작된다.
"- 오늘부로 입대하게 된 장정들, 모두 주변에 감사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부모님, 좋아하는 여자친구, 오랜 시간을 함께 해 온 친구, 모두들 오늘 자기 자신의 일들을 뒤로 물러 두고서라도 시간을 내어 이곳에 함꼐 와 주셨을 것입니다. 너무나도 감사한 일입니다. 자식의, 애인의, 소중한 친구의 힘든 시간에 단 한 순간이라도 같이 있어주기 위해서 온 것이지요. 여러분 맞지요-?"
 

--!!
 

설자의 눈물 아롱진듯한 말과 진정된 연설이 군중 모두를 사로잡는다. 모두들 한 목소리가 되어 그의 물음에 답한다. 나 역시 벌겋게 벅차오른 가슴으로 그들과 함께 화답했다.
"그럼 여러분 이제는 자신의 정말로 소중한 사람이 누구인지 모두들 아시겠네요?"
 

--!!
 

양자 모두의 목소리가 점점 더 눈물에 젖어간다. 묻는 사람도, 대답하는 군중도 모두들 목이 메인다.
 

"그러면 지금 마지막 이 순간. 헤어지기 전에 자신의 소중한 사람에게 감사의 경례를 바치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알겠습니까?"
 

--------!!
 

 

 

"일도옹- 차렷!"
 

...
 

"자신의 진정으로, 진심으로 소중한. 부모님! 애인! 그리고 진정한 친구에 대하여어-- 경롓!"
 

!! !!
 

전원의 하나 된 움직임으로 대지가 울린다. 가슴이 터져 눈물을 흩뿌리는 부모님, 애인, 친구들의 눈물과 통곡이 하늘을 찌른다. 연병장 안의 장정들도 전원 눈물을 흘리고 있다. 다만 그들은 자신의 소중한 사람을 걱정시키지 않기 위하여 너무나도 의연히 그리고 멋지게 경례자세를 유지하고 있다.
 

오늘 하루 흩뿌려진 수많은 눈물에 의해 비라도 내릴 것 같은 풍경이다. 경례를 받은 동행인들은 모두 안내를 맡은 군인들에게 점점 밖으로 밀려나기 시작한다. 그들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우리들은 거수경례한 오른손을 내리지 않았다.
 

 

 

그들이 완전히 시야에서 밀려나 점 하나 보이지 않게 되어서야 우리들은 마음 놓고 오열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우리들이 충분한 감정을 뱉아내기도 전에 역사는 시작되고 말았다.
"--이 개새끼들아! 줄 맞춰! 안 맞춰?"
"새끼들아! 달려! 줄 맞추란 말이야-!"
"-이 멍청한 새끼들아 줄 서! 줄 설 줄 몰라? ! !"
모두의 통곡과 오열의 한 가운데를 가르고 죄악과 욕설, 폭력이 순식간에 들어찬다. 숨 막힐 정도로 당황스럽고도 빠르게 전환된 그 무엇은 순식간에 우리들의 사고를 앗아가 버리고 지나치게 빠른 시간만에 우리들을 군인으로 만들고 말았다.
 

 

 

인파에 쓸려, 조교들의 욕설과 폭력에 쓸려 황망한 심경으로 줄을 맞추고 있으려니 머릿속에 예전에 보았던 책 한 권의 문구가 생각난다. 모 유명한 군인분의 자서전에 쓰여 있던 문구다.
 

 

 

군인은
 

굴복하는 자
 

이제야 조금 이해가 간다. 그런 것인가. 그런 것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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