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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광규, 새싹
겨울을 견딘 씨앗이
한줌 햇볕을 빌려 눈을 떴다
아주 작고 시시한 시작
병아리가 밟고 지나도 뭉개질 것 같은
입김에도 화상을 입을 것 같은
도대체 훗날을 기다려
꽃이나 열매를 볼 것 같지 않은
이름이 뭔지도 모르겠고
어떤 꽃이 필지 짐작도 가지 않는
아주 약하고 부드러운 시작
강은교, 등불과 바람
등불 하나가 걸어오네
등불 하나는 내 속으로 걸어 들어와
환한 산 하나가 되네
등불 둘이 걸어오네
등불 둘은 내 속으로 걸어 들어와
환한 바다 하나가 되네
모든 그림자를 쓰러뜨리고 가는 바람 한 줄기
이근배, 겨울 풀
들새의 울음도 끊겼다
발목까지 차는 눈도 오지 않는다
휘파람 같은 나들이의 목숨
맑은 바람 앞에서
잎잎이 피가 돌아
피가 돌아
눈이 부시다
살아 있는 것만이
눈이 부시다
함민복, 모(母)
까치가 곁가지에 집을 짓지 않듯
어머니 마음 중심(中心)에 내가 있네
땅에 떨어진 삭정이 다시 끌어올려
상처로 가슴을 짓는
저 깊은 나무의 마음
저 깊은 풍장(風葬)의 뜻
새끼들 울음소리 더 잘 들으려
얼기설기 지은 에미 가슴
환한 살구꽃 속 까치집 하나
서러운 봄날
최민, 그리고 꿈에
그리고 꿈에 보았네
길섶 구석진 밭
이랑 속에
감실거리는 안개를
아득한 길을 가다가
문득
미친 두 눈 들어
먼 산
아주 더 멀리 어두컴컴한 산
등성이 위
희미한
나뭇가지의 반짝임
그리고 꿈이 깨어 사라진 날
벌판의 한끝에
그림자도 없이
서서 우는 사내를 보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