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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듬, 12월
저녁이라 좋다
거리에 서서
초점을 잃어가는 사물들과
각자의 외투 속으로 응집한 채 흔들려 가는 사람들
목 없는 얼굴을 바라보는 게 좋다
너를 기다리는 게 좋다
오늘의 결심과 망신은 다 끝내지 못할 것이다
미완성으로 끝내는 것이다
포기를 향해 달려가는 나의 재능이 좋다
나무들은 최선을 다해 헐벗었고
새 떼가 죽을 힘껏 퍼덕거리며 날아가는 반대로
봄이 아니라 겨울이라 좋다
신년이 아니고 연말, 흥청망청
처음이 아니라서 좋다
이제 곧 육신을 볼 수 없겠지
움푹 파인 눈의 애인아 창백한 내 사랑아
일어나라 내 방으로 가자
그냥 여기서 고인 물을 마시겠니?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널 건드려도 괜찮지?
숨넘어가겠니? 영혼아
넌 내게 뭘 줄 수 있었니?
김경후, 문자
다음 생애
있어도
없어도
지금 다 지워져도
나는
너의 문자
너의 모국어로 태어날 것이다
박용래, 막버스
내리는 사람만 있고
오르는 이 하나 없는
보름 장날 막버스
차창 밖 꽂히는 기러기떼
기러기뗄 보아라
아 어느 강마을
잔광(殘光) 눈부신 그곳에
떨어지는가
권혁웅, 수면
작은 돌 하나로 잠든
그의 수심을 짐작해보려 한 적이 있다
그는 주름치마처럼 구겨졌으나
금세 제 표정을 다림질했다
팔매질 한 번에 수십 번 나이테가 그려졌으니
그에게도 여러 세상이 지나갔던 거다
구석본, 사라짐을 위하여
한 마리 짐승이 그 길로 사라진다
슬픔과 기쁨이 만나 사라지고
육체와 정신이 하나가 되어 사라진다
길에는 안개가 풀리며
사라진 것들의 울음이 풀리며
해가 지고 바람 불어
하늘이 흐린 날
사라진 것이 새로 나타나는 것을
그것이 울음인 채
무수히 나타났다 거듭 사라져 가는 것을
우리는 보고 있는가
바람은 끊임없이 한쪽으로만 불고
길에서 서성이는 우리들
사라져 가는 발자욱 소리를 들으며
누운 것은 누운 채 흙은 흙인 채
이쪽에서 저쪽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