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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호 선수 아쉽네요..야구 계속 했으면 좋겠네요..
게시물ID : baseball_8663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가을늑돼곰
추천 : 1
조회수 : 34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1/05 16:54:27
4일 밤, 부산 해운대 부근에서 장성호를 만났다. 그날 아침, <스포츠경향>에서 롯데 구단이 2015년 보류선수 명단에서 장성호를 제외하기로 결정했다는 사실을 최초 보도했고, 이에 대한 장성호의 입장을 제대로 확인하고자 부산에서 만남을 가진 것이다.
2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에서 장성호는 자신의 개인적인 문제부터 롯데 구단의 내홍, 그리고 CCTV 사찰을 지시한 최하진 사장에 대한 얘기를 속 시원히 밝혔다. 장성호는 5월 중순 CCTV 사건으로 선수단이 원정 보이콧을 결정했을 때 자신이 중심에 있었다는 것도 털어 놓았다.
그러다 5일 아침, 최하진 사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CCTV 사찰을 사전에 선수단에 지시했다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장성호는 5일 아침, 기자와의 통화에서 최 사장이 거짓말하고 있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장성호와의 4일 밤 인터뷰와 5일 아침 추가로 나눈 내용을 정리해본다.
 
#1. "최하진 사장에게 CCTV 얘기한 사람이 바로 나이다"
(이 질문은 5일 아침 최하진 사장의 인터뷰 기사를 보고 따로 진행된 인터뷰이다)
 
최하진 사장이 CCTV 사찰을 사전에 선수단에 통보했다고 하더라. 선수단도 알고 있는 내용이었나.
“거짓말이다. 5월 면담 때 CCTV와 관련해서 사장님에게 질문한 사람이 바로 나이다. 당시 사장님께 ‘CCTV 사찰을 사장님이 시키신 것 맞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랬더니 대답을 못했다. 그래서 내가 ‘선수들은 사장님이 (CCTV 사찰을) 시키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라고 다시 말씀드렸지만, 이번에도 대답을 회피했고, 다른 얘기로 화제를 바꿨다. 오늘 아침에 사장님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호텔에 CCTV가 다 있는 거 너희들도 알잖아. 나는 선수들이 사전에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구단 사장이 의지를 갖고 하려고 하는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줄 알았다’라는 내용이 나오더라. 황당했다. 당시 35명의 선수들이 함께 있었다. 사장님은 내가 물어본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사전에 선수단에 통보하라고 했다는 얘긴 금시초문이다. 선수단에 동의를 구하라고 이문한 부장님에게 지시했다고 하는데, 왜 이 부장님에게 다 덮어씌우려고 하시는 건지 도통 모르겠다. 이 부장님은 사장의 지시를 받고 일을 진행하는 위치이다. 선수들이 처음에는 이 부장님을 오해했다. 이 부장님이 선수단 운영에 깊이 관여했고, 간섭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위에는 사장님이 존재했다. 부장님은 심부름 역할을 했을 뿐이었다.”
 
최 사장 말로는 선수단을 보호하기 위해 CCTV로 감시를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핑계일 뿐이다. 자신의 잘못을 합리화하기 위한 말이다. 다른 구단의 사장님은 선수단을 보호하지 않는 건가? 그래서 CCTV로 감시하지 않는 건가? 선수단을 보호하기 위해 CCTV 사찰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넌센스다.”
 
5월 사장 면담 때 원정 보이콧 얘기가 거론됐었나.
“그땐 CCTV 문제와 권두조 코치님, 이문한 부장님 등에 대한 복합적인 얘기가 거론됐고,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잠실 원정 경기를 보이콧하겠다고 말씀드렸다. 그래서 구단에선 권 코치님을 사퇴시키고, 이 부장님의 선수단 출입을 금지시켰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분들은 잘못한 게 없었다. 위에서 시키는 일을 따랐을 뿐이다.”
 
#2. 시즌 초 2군행, 다시 1군에 올라가지 못한 사연
(다음은 4일 밤, 부산에서 장성호와 나눈 인터뷰 내용이다)
롯데 구단과는 어떻게 정리가 되는 건가.
“구단 관계자와 면담을 했고, 이종운 감독님과도 대화를 나눴다. 내심 구단에서 잡아주길 바랐지만, 구단으로선 외국인선수와 (최)준석이와의 포지션이 겹치니까 나를 내보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종운 감독님도 오늘 날 불러서 ‘어차피 이렇게 될 거였다면 시즌 초반이나 중반에 널 놔줬어야 하는데, 김시진 감독이 왜 끝까지 붙잡고 있었는지 모르겠다’라고 말씀하셨다. 그건 내가 더 궁금한 부분이다.”
 
지난 4월 초 2군으로 내려간 이후 시즌 마칠 때까지 1군으로 올라가지 못했다. 부상도 아니고 몸 상태가 좋았던 걸로 아는데 왜 상동구장에서만 머물러 있었나.
“김시진 감독님이나 구단에선 포지션이 겹치는 내 존재가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시즌 개막 후 5경기 출전하고 바로 2군으로 향했다. 당시 김 감독님께서 (조)성환이 형, 용덕환, 나를 불러서 ‘팀이 3연패로 내몰렸고, 이런 상황에선 분위기 전환용으로 너희를 2군으로 내려 보낼 수밖에 없다’라고 말씀하셨다. 부상당했던 히메네스가 몸이 올라오는 상황이라 감독님께선 차고 넘치는 1루수 자리를 교통 정리할 필요성을 느끼셨을 것이다. 2군으로 내려가며 다시 1군에 올라갈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박종윤을 포함해 최준석, 히메네스까지 있다 보니 내가 낄 틈이 없었다.”
 
그렇다면 시즌 중반에 다른 팀으로의 트레이드는 생각해보지 않았나.
“당연히 생각했다. 물론 내가 요구한다고 구단에서 허락하진 않았겠지만, 웨이버 공시로 풀어달라고 요청하려 했다. 그러다 5월 항명 사건이 터진 것이다. 당시엔 개인 문제를 꺼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시즌 끝날 때까지 그냥 조용히 참고 기다려야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2군에서도 얼마 있지 못하고 재활군으로 내려갔더라.
“2군에서 성적이 좋았다. 타격감이 올라온 상태라 당시 1군에서 성적이 좋지 않던 (최)준석이를 내리고 날 올리네 마네 하는 얘기도 있었다. 하지만 거액의 몸값을 들여 데려온 준석이를 2군으로 내리는 게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준석이는 내려오지 않았고, 나도 올라가지 못했다.”
 
사실 히메네스와 최준석이 들어오면서 올시즌이 어려울 거라고 예상했을 것 같은데.
“히메네스를 영입할 때만 해도 기대를 모으고 있다가 준석이가 롯데로 오면서 나에 대한 기대를 접어야만 했다. 전지훈련 때부터 마음을 비우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아무리 잘해도 그 두 선수 대신 날 기용하는 감독은 없었을 것이다. 대신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었다. 울산에서 고양 원더스와 게임이 있었는데 그때 고참들을 포함해 나도 엔트리에서 빠졌다. 원더스 게임은 번외 경기니까 그러려니 했다. 그런데 그 이후로 엔트리에 내 이름을 올리지 않더라. 그즈음에 이문한 부장님이 오라고 해서 사무실에 찾아갔더니 그만두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위에서 지시가 떨어진 듯 했다. 해외 연수를 제안했지만 나로선 이렇게 존재감 없이 은퇴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렇게 못하겠다고 말씀드렸고, 그 후론 계속 2군 엔트리에 올라가지 못했다. 구단의 생각과 선수의 의견이 다르다고 해서 게임에 나가지 못했다. 정말 힘든 순간이었다. 어쩔 수 없이 재활군으로 내려간 갔다. 몸이 아픈 것도 아닌데 재활군에서 웨이트트레이닝만 열심히 했다.”
 
나이 어린 선수도 아닌 서른 일곱 살의 선수가 재활군에서 시즌을 마무리했다? 몸도 아프지 않은데?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구단은 내가 2군에서 잘하면 부담스럽다고 했다. 2군 성적이 좋은 베테랑 선수를 1군에 올리지 않으면 팬들의 비난이 들끓기 때문에 내가 못하길 바랐을 것이다. 그런데 (2군에서)좋은 성적을 내니까 어느 순간부터 엔트리에서 제외시켰던 것이고. 야구선수가 야구 잘할까봐 걱정하는 구단이 세상에 어디 있나.”
 
상동구장에서 보낸 6개월, 어떤 시간들이었나.
“2군에 있을 때는 살짝 (1군 복귀에 대해)희망을 갖고 있다가 구단이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알고 난 이후론 야구선수 장성호를 잊었다. 웨이트 트레이닝만 하는 장성호만 존재할 뿐이었다. 그러다 종종 ‘내가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하는 자괴감에 빠지기도 했다. 사람이 왜 정신병에 걸리는지 알겠더라. 정말 우울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3. kt와의 접촉설, 진실은?
 
하지만 롯데에서 풀어주면 새로운 팀에서 ‘야구선수 장성호’를 되찾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글쎄, 솔직히 자신 없다. 어느 분이 내 기사에 댓글 단 거 보니까 ‘kt가서 이호준 선수와 같은 역할을 해 달라’고 썼던데 이호준 선배 같은 역할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나이 먹은 선수라고 해서 모두 호준이 형처럼 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런 얘길 아내에게 했더니 아내 반응이 ‘천하의 장성호가 이젠 죽었네’라고 하더라. 솔직히 자신감을 잃었다.”
 
kt와 접촉은 했었나.
“구체적인 얘기를 주고받진 않았다. kt에 친구인 채종범 코치가 있다 보니 그 팀의 상황에 대해 들었고,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알고 있다. 문제는 내 자신이다. 지금으로선 은퇴를 하는 게 맞지 않나 싶다. 새로운 팀에 가서 1,2년 더 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게 무엇인가. 개인의 이익을 위해 팀에 민폐를 끼치면 어쩌나 하는 생각도 든다. 나보다는 팀을, 주위 사람들을 돌아봐야 한다. 더 이상 마음 고생하는 게 싫다.”
 
시즌 중반에 기자와 사석에서 만났을 때만 해도 선수 생활에 대한 의지가 상당히 강했다. 그런데 지금 은퇴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는 솔직히 놀랍다.
“상동에서 6개월을 보내며 나에 대해 좀 더 냉정하게 돌아봐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갖고 있는 커리어를 앞세우지 말고 내가 새로운 팀에 도움이 되는 선수가 될 수 있는지, 아직까지 내 마음 속에 야구에 대한 열정이 꿈틀대고 있는지, 진짜 야구를 계속하고 싶어 하는지를 꼼꼼히 되짚어 봐야할 것 같다.”
 
친정팀인 KIA 타이거즈로의 복귀를 기대하진 않나.
“새로 오신 김기태 감독님이 고참 선수들 잘 챙기기로 소문난 분이다. 물론 전혀 생각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거긴 (최)희섭이가 있다. 희섭이랑 자리다툼을 벌여야 하는 상황이 부담스럽다. 이런 것 저런 것 다 따져 보면 내게 가장 잘 맞는 팀은 kt이다. 거기선 기존 선수를 내리거나 다툴 이유는 없으니까. 내 마음부터 정리하는 게 우선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다.”
 
어떤 내용인가.
“사람이 실패를 해봐야 배우는 게 있다고 하는데 동의하나.”
 
실패를 통해 경험을 쌓고 그 경험을 통해 실패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의미 아니겠나.
“난 바닥으로 내려가서 정말 힘들었다. 회의감이 엄습했다. 아주 지겨웠다. 어떻게 해야 상동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를 고민했다. 내 경우엔 실패를 통해 배우는 건 없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란 명언도 나에겐 해당 사항이 없다. 난 올시즌 구단으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했다. 김시진 감독님이 분위기 전환용이라고 2군으로 내려 보낸 후 시즌 종료할 때까지 어떤 설명도 없이 날 방치했다. 2군 감독님도 내 눈을 제대로 마주치지 못했다. 그 분도 위에서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겠지만, 나를 불러서 10분만이라도 대화를 나눴더라면, 그래서 내가 1군도 아닌 2군에 조차 오르지 못하는 이유를 설명했더라면 이렇게 비참한 마음은 들지 않았을 것이다. 내 경력이 무시당했다는 느낌이 들어 견디기 힘들었다.”
 
#4. 조범현 감독과의 불화설에 대해
 
장성호의 야구인생이 어디서부터 꼬였다고 생각하나.
“아마도 KIA에서 나오면서부터 이렇게 된 게 아닐까 싶다. 그 후론 한화 롯데를 돌며 셋방살이 신세를 면치 못했으니까.”
KIA에서 나올 수밖에 없었던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 텐데. 한화로 트레이드 될 당시 조범현 감독(현 kt 위즈 감독)과의 불화설이 나돌았다.
“불화설보다는 내 잘못으로 인해 조 감독님이 화가 나셨고, 그로 인해 2군으로 내려갔는데 내가 잘못을 뉘우치기 보단 감독님에 대한 원망이 커져 트레이드를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어떤 잘못을 한 건가.
“부산 원정 경기 때 지인들을 만나 술을 먹고 새벽에 숙소로 들어가다가 단장님과 마주친 적이 있었다. 당연히 그 상황이 감독님께 보고가 됐고, 감독님은 화가 난 나머지 날 2군으로 내려 보내셨다. 당시 감독님을 찾아가 잘못을 빌고 용서를 구했더라면 2군행이 철회됐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자존심을 굽히지 못했고, 2군 가서도 나 잘났다고 하면서 다녔으니 감독님으로선 기가 막혔을 것이다. 그러다 내 희망대로 한화로 트레이드됐다. 당시엔 조 감독님한테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그게 엄청난 착각이었다는 걸 한화에서 깨달았다. 롯데에서는 절감했고.”
 
그러다 다시 조 감독을 만난 게 언제인가.
“4년 동인 인사 한 번 안했다. 내가 야구를 그만두는 한이 있어도 조 감독님께 인사는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었었다. 그러다 지난 5월 성균관대 수원경기장에서 kt와 2군 경기가 열렸고, 경기 전에 (조)성환이 형이 조 감독님께 인사하러 가자고 하더라. 난 절대 안 가겠다고 버텼다. 오랜 실랑이 끝에 성환이 형의 손에 이끌려 감독님을 찾아갔다. 그런데 감독님께서 의외의 모습을 보이셨다. 성질 부리고 팀을 떠난 선수를 아주 따뜻하게 받아주신 것이다. 더그아웃에 앉아 계시다가 성환이 형 뒤에서 쭈빗거리는 날 보시고선, ‘인마, 들어와서 인사해라. 사내 놈이 왜 그 모양이냐’라며 환하게 웃으셨다. 그 한 마디에 4년간 묵힌 감정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비로소 내가 감독님께 얼마나 잘못된 행동을 했는지를 깨달았다. 아마 감독님도 KIA에서 상처를 받고 팀을 나오셨기 때문에 내 상황에 대해 이해를 하신 게 아닌가 싶다. 즉 KIA를 나온 감독과 선수가 4년이 지나 서로 다른 유니폼을 입고 제대로 마주 선 것이다. 서로를 이해하면서.”
 
kt에서 조범현 감독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 갈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그래서 더 갈 수가 없다. 내가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아서. 감독님에게 마지막으로 인정받고 팀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선수가 되고 싶지만, 실력이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많다고 생각한다. 좀 더 고민해봐야 하겠지만, 마음은 이미 은퇴 쪽으로 기울고 있다.”
장성호는 KIA를 떠나면서 자신의 야구인생이 하락기로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앞을 내다보지 못한 무지함으로 인해 제 발등을 자신이 찍었다며 모든 화살을 자신에게 돌렸다.
 
마지막으로 장성호를 설명하는 ‘스나이퍼’란 별명에 대해 물었다. 어떤 느낌을 갖고 있는지를. 장성호가 대답한다.
“‘스나이퍼’는 한국 야구사에서 ‘라이온킹’과 대적할 만한 인기있는 별명이었다. 실력은 (이승엽과)천지차이였지만. 내 야구인생은 이제 막 호흡기를 떼기 직전의 상황이다. ‘장스나’로 날 불러준 모든 팬들, 아직까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 팬들에게 감사함과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다. 앞으로 ‘장스나’는 추억 속에서만 존재할 것 같다. 이젠 쉬고 싶을 뿐이다.”
 
[출처] 장성호 은퇴기사 소장용 올림|작성자 평범무난몰개성(Naver)
기사내용이 올라간지 10분만에 수정되어 올라왔네요... 롯데에서 로비한건지...
 
임경완 선수도 한화에서 기회얻어서 다시 시작하는데, 장성호 선수도 끝까지 하셨음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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