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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가리 막걸리 사건
게시물ID : sisa_7901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물뚝심송
추천 : 13
조회수 : 447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0/02/19 15:04:08
한 아버지가 있고, 부인이 있고 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60이 다된 그 아주머니가 집에있던 막걸리를 가지고 나가서 다른 사람들과 나눠 먹고는 죽어 버렸습니다. 아주머니하고 또 다른 아주머니(우리나라에서 60근처면 할머니가 아니라 아주머니가 맞겠죠.)가 죽고, 다른 두 사람은 좀 덜먹어서 살아 났습니다. 

막걸리에서는 청산가리, 즉 시안화칼륨이라는 맹독성 물질이 발견되었고 수사에 나선 검찰과 경찰은 이 사건은 아버지와 딸의 소행으로 판단했습니다. 아버지와 딸이 공모해서 어머니를 죽인다는 엽기적인 사건의 원인에 대해 검찰은, 아버지와 딸이 부적절한 관계였으며, 이를 어머니가 지적하려 하자 공모해서 청산가리를 넣은 막걸리를 이용해서 어머니를 살해했다고 결론을 내린 것입니다. 

이 사건은 거의 모든 언론에서 근친상간이네 뭐네 하면서 매우 자극적이면서도 단정적으로 보도가 됩니다. 재판이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그 부녀는 마을에서 짐승대접 받으면서 실제로 돌팔매질을 당할 정도로 사회적인 피해를 입게 됩니다. 

그리고,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쏟아져 나오는 메달로 온 국민이 흥분해 있을 때, 법원은 이 부녀에게 1심 무죄판결을 내립니다. 판결에 의하면 검찰은 애초에 주장하던 아버지와 딸의 범행을 단 한가지도 제대로 입증을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은 애초에 나왔던 근친상간에 이은 살인사건이라는 보도에 비해 백분의 일도 안되는 규모로 취급되고 묻혀 버립니다. 

진실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진짜로 아버지와 딸이 인간으로써 하기 힘든 짓을 벌인 건지, 아니면 뭔가 다른 상황이 있어서 두 아주머니가 죽게 된건지, 단순 사고인지, 알 방법이 전혀 없습니다. 그것을 밝혀내는 것은 경찰과 검찰의 임무입니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과 경찰이 그 임무를 전혀 제대로 수행하지 못했다고 결론을 내려 버렸습니다. 즉, 이 사건에서 일차적으로 잘못을 한 것은 검찰이라는 것입니다. (모든 수사는 검찰의 책임하에 경찰이 수행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

그러나, 저는 여기서 황폐해진 저널리즘, 무개념 언론들의 무책임한 보도의 심각성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검찰도 완벽하지 않습니다. 언제든지 실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검찰이 완벽하다 하더라도, 재판이 끝나기 전까지 피의자는 무죄추정의 원칙에 의해 보호를 받아야 합니다. 그것만이 검찰이 실수할 경우에도 뜻하지 않은 피해자를 만들지 않기 위한 기본 원칙입니다. 

이런 기본 원칙 따위는 가볍게 내던지는 것이 우리의 언론들입니다. 이런 선정성, 상업성의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언론은 이 땅에 단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검찰이 실수했고, 검찰의 발표를 그대로 받아 쓴 자신들 역시 실수한 것이라면, 동일한 비중으로 그 실수를 만회해주는 해명기사를 써야 됩니다. 이런 것은 또 죽어도 안합니다. 실수를 실수라 인정하면 오히려 손해보는 우리 사회의 풍토는 언론에도 여실히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결론을 이 땅위의 언론은 몽땅 다 죽일 넘들이니, 화형에 처해버리자~ 하고 내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만, 그것은 또 그렇지 않게 됩니다. 

저런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언론이라도 쉽게 사법처리하거나 사회적으로 처벌할 수 없는 이유가 또 있습니다. 그들이 언론이기 때문입니다. 언론의 존재이유, 언론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더 말할 이유가 없을 것입니다. 거기에 언론의 의무와 권리 중에서 의무를 강조하다 보면 언론이 위축될 것이라는 점도 따라 옵니다. 

즉, 저런 잘못을 했다고 해서 언론에게 마구 책임을 물어 버리면, 언론은 제 기능을 수행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언론사에서 월급 받는 것도 아니고 우리 가족이 언론사 직원도 아니면서도 언론의 자유를 지켜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언론의 자유가 헌법에 명기된 이유도 그만큼 언론이라는 것이 민주주의 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중요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힘든 겁니다. 그냥 개망나니짓 하는 언론은 그 자리에서 폐간시켜 버리면 속시원하겠지만, 국가권력이 나서서 언론을 처벌하게 되면 민주주의에서 필요한 언론이 존재할 수 있는 기반이 송두리째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결국 언론을 처벌하고 단죄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는 우리들 자신, 즉 이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다수의 시민들의 힘 뿐이라는 것입니다. 

언론이 나쁜 짓 하면, 적극적으로 항의하고 시정을 요구하고 나서야 됩니다. 소극적이라면 그 언론을 더 이상 구독하지 않으면 됩니다. 이 방법이 멀리 돌아가고 어느 세월에 이루어질까 싶은 우회로로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빠르고 정확하며 도덕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입니다. 

결국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렇습니다. 

언론의 역할을 다 하려고 노력하는 언론들을, 권력의 힘으로 법적 논리도 구성되지도 않는 명예훼손 따위로 처벌하려 드는 행태는 힘을 모아 막아서야 합니다. 

반대로 언론의 역할을 망각하고 선정적 보도를 일삼는 쓰레기 언론에 대해서는 항의하고 절독하고 압력을 행사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게 어려워 보이지만, 민주주의 사회를 구성하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전제조건의 하나이기 때문에 우리가 어쩔 수 없이 수행해야 되는 싸움이라는 얘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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