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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심리] ROOM - 7. 거울 (2) - ②
게시물ID : panic_90962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카스_네팔
추천 : 2
조회수 : 539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10/01 16:1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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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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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화 : ROOM - 6. 그네와 창문 http://cafe.naver.com/sichunji/714

경고 : 이 글은 극사실적인 공포, 두려움, 고통의 반복적 묘사로 인해 읽는 분에게 불쾌감을 줄 수도
있음을 미리 알려 드립니다. 하지만, 마지막 회까지 함께 하신다면 새로운 방식의 글 읽는 즐거움을
느끼실 수 있을 겁니다. 부족하지만 노력하겠습니다. - 아카스_네팔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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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KARMA 
                                        [1부-ROOM]                                                       

                                                                           akash_nepal
  


7. 거울 (2)



똑! 똑! 똑!

그녀의 시선이 멈춰 있는 곳에서 미리 반응이 왔다. 철판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리는 저 소리. 거울은 이미 그녀의 생각을 읽고 있음이 분명했다. 생각과 감정이 누군가에게 읽혀진다는 것은 참으로 성가신 일이다.

어려울 것 같은데? 저 녀석이 내키지도 않는데 문을 자기 안으로 끌어 들이지도 않을 테고.
"... ..."
거울 속에 문을 넣는다 해도 그 다음엔 어떻게 할 거야? 무슨 방법이 있어? 열쇠도 없이.

대답 대신 그녀가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맞은편 구석에 있는 캐비닛을 향해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캐비닛에선 더 이상 노크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하지만 녀석의 성격상(?) 다가오는 그녀를 잔뜩 경계하고 있음이 틀림없었다. 캐비닛 앞에 선 그녀가 옆면을 쓰다듬으면서 말을 건넸다.

"거울이랑 이야기를 하고 싶어."

똑!
신경질적인 노크 소리가 다시 한 번 들려왔다. 하지만 다음 순간 캐비닛이 벽과의 틈을 만들며 서서히 움직였다.

드르르륵.

벽에 붙어 있던 캐비닛의 뒷면이 그녀 앞으로 열리자 그녀는 거울 쪽으로 한 걸음 더 다가가 오른손을 앞으로 내밀어 거울면을 가만히 쓰다듬었다. 뒤에서 지켜보는 나에겐 그녀의 뒷모습만 보였지만 그것이 교감을 위한 그녀의 노력이었음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단단히 삐친 동생을 어르듯 그녀는 거울에 머리를 기댄 채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한참을 속삭이고 있었다. 

"...화가 많이 났네."
......참 나.
"거울이 날 받아주지 않아. 들어갈 수가 없어. 그리고 얘네들 지금..."

철컥!
갑자기 조용하던 천정에서 자물쇠 잠그는 소리가 들려왔다.

"얘네들은 두려운 거야 저 문이."
뭐야? 아니 얘네들끼리도 그런 걸 느껴?
"응. 그런 것 같아. 캐비닛도 거울도 떨고 있어. 그런데 거울 속에 돌아다니는 저 쪽지..."
그러게. 그 쪽지 아직도 거울 안에 있어?
"응. 어떤 의미일까?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을 텐데."
글쎄. 여튼.. 문을 집어넣긴 힘들겠네. 맘에 들지 않으면 절대 끌어 들이질 않으니.
"아니..."

그녀가 말을 끊으며 돌아 섰다. 

"방법이 있을지도 몰라. 만약 새로운 거울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이미 방안에 거울이 있는데도 가능해?
"예전에 캐비닛을 만들어 본 적이 있어. 어렸을 때 장롱에 갇혔던 기억으로."
왜?
"사다리 대신 이용하려고...하지만 문을 여는 데엔 실패했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거울은 안 돼. 아무리 기억을 떠올려 봐도 만들어 지지 않아."
사물마다 다른 거 아냐? 어떤 건 되고 어떤 건 안 되고?
"그게 아니라...이 거울..언젠가 내가 기억으로 불러냈던 것 같아."
기억으로 한 번 불러 낸 것은 다시 불러 낼 수 없다? 그럼 이전에 물은 왜...?

"두번째는... 니가 필요해서 불러낸 것이 아니니까"

...
"그런데 거울은 가능할지도 몰라. 너에게 거울은 처음이니까."
그런데 난 거울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없는 걸?
"...방법이 있긴 하지. 이쪽으로 와 봐. 거울도 우리 이야길 들을 수 있게."
무슨 꿍꿍이를 생각하고 있는 거야?

그리고 어처구니없는 그녀의 말이  이어졌다. 그녀는 마치 이 방법이 살기 위한 마지막 방법이라는 듯이 말했다. 
이 무시무시한 윤회, 분명 끊어야 하겠지만 난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너무나 당연하지 않은가. 저 담담한 모습, 태연한 표정이 서운할 뿐이었다. 당장 쌍욕을 퍼부으며 못하겠다고 자빠지고 싶었지만 그녀가 말하고 있는 것은 가능성에 가까웠고 나의 고집은 무의미한 것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그녀가 나한테 이럴 수 있나? 젠장, 난 목적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나? 매정했지만 그래도 피붙이 아닌가? 길지는 않았지만 방에서 함께 한 경험으로 인해 열렸던 마음이 싸늘하게 식어 버렸다.

그래서 그걸 나보고 하라고? 너...확실히 미쳤구나.
"... ..."

'만약 뭔가가 틀어져서 잘못되면 어떡할래?'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 왔지만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어차피 더 나은 방법도 없는데 괜히 구차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는 그녀가 있던 거울 앞에 다가섰다. 이제 녀석이 나를 끌어 들이겠지. 어차피 다른 거울을 불러내기 위해서니 녀석이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성가신 일에 엮이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좋아라 하겠지.
그녀의 말인즉, 거울도 그리 탐탁지 않은 나를 끌어 들이는 상황이고 나 또한 거울 안에서 애당초 평온함이나 고요함 따윈 기대조차 않고 있으니 거울 속에 들어가자마자 고통이 시작될 거라는 말이었다. 그런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지켜보면서 고통이 임계점에 다다랐다 싶을 때 나를 꺼내주겠다는 말이었다. 물론 내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을 때 손을 내밀면 그녀가 언제라도 내 손을 잡아 줄 거라는 약속과 함께 말이다. 그렇게 거울 밖으로 나오면 내 머릿속엔 낙인처럼 거울이 대한 공포가 새겨지겠지. 이 무슨 끔찍한 공포영화의 한 장면 같은 일인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에라 모르겠다. 난 눈을 감았다.

내민 손끝에서부터 손가락...팔...어깨, 얼굴과 몸으로 서서히 거울이 느껴진다. 뭔가 투명한 막이 몸을 훑고 지나가는 느낌이다. 숨을 쉴 수는 없었지만 전혀 답답하지 않았고, 막을 통과한 순간부터 무중력의 우주 공간처럼 몸이 가벼워지며 마치 자궁속 태아의 자유가 이런 것일까 싶을 정도로 머릿속이 개운해지고 영혼이 맑아지는 기분이다.
눈을 천천히 뜨니 주위를 깃털처럼 돌아다니는 무언가가 있었다. 그때 거울 밖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괜찮아? 기분이 어때?"

그녀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듣고 괜히 미안해졌다. 거울 속에 들어가자마자 고통이 시작되기는커녕,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평온함과 고요함, 상쾌함, 아늑함....몸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유영을 하면 할수록 살결을 스치는 거울 속 공기의 감촉이 부드럽게 느껴졌다. 뭔가 바깥보다 밀도가 높긴 하지만 최고급 비단으로 된 침대보에 푹 파묻힌 느낌이랄까?
행복에 겨워 나는 나도 몰래 만면에 미소를 띠고 그녀에게 말했다.

여기 너무 좋아. 걱정하지 마.

그러자 밖에 있던 그녀가 거울로 가까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거울 면에 얼굴을 댄 것인지 그녀의 얼굴이 물결처럼 일렁거렸다. 

"괜찮냐고. 말을 해봐."
괜찮다니까? 걱정마. 여기 너무 편하니까.

그녀에게 내 말이 안 들리는 것 같다. 손가락을 동그랗게 말아 괜찮다는 표시를 해 보였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진동도 소리도 아닌 파장이 느껴진다. 오른쪽 귀를 통해 들어 온 그 파장은 내 머릿속에서 나뉘어져 머릿속 곳곳을 매만지는 것 같다. 난 꼭 그래야 하는 것처럼 눈을 감았다. 또 다른 파장이 이번엔 왼쪽귀를 타고 들어온다. 
머릿속을 돌아다니는 파장의 기운이 느껴진다. 찌든 때를 뽑아내고 구석구석을 마사지하는 것 같다. 
거울밖에 그녀가 나의 표정을 보았는지 비로소 얼굴이 밝아졌다. 
목소리가 그녀에게 전해지지 않는 건 이상했지만 다른 것은 모두 최상이었다. 탈출이고 뭐고 머릿속에서 싹 사라져 버렸다. 
그녀가 왜 거울 속을 즐겨 찾았는지 알 것 같다. 거울 밖으로 그녀가 벽에 기대앉는 것이 보인다. 

그래 너도 좀 쉬어. 우리에겐 쉬는 시간이 필요해.

속으로 중얼거리며 아까 거울속을 떠다니던 것을 찾아 보려는 순간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소리는 그네가 있는 뒤쪽 벽에서 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 안돼! 지금은!"
왜? 무슨 일이야?
"아..하필 왜.. 지금!"

 갑자기 캐비닛으로부터 묵직한 진동이 전해져 온다. 아니 정확하게는 방 전체를 잡고 흔드는 힘이 캐비닛을 타고 들어와 거울 속 공기의 흐름까지 방해하는 것이 분명했다. 공중에 자유롭게 떠 있던 두 다리가 갑자기 아래로 털썩 떨어졌다. 뭔지 모를 불안감이 밀려온다. 아...오장육부가 뒤틀린다. 아까와는 다른 울림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야! 날 좀 꺼내줘!

소리를 지르며 그녀를 불렀다. 거울 밖으로 나가려고 몸을 일으켰지만 마치 굳어가는 시멘트 속에 갇혀버린 것처럼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다. 평정심을 잃은 나에게 이미 거울은 누군가가 도와주어야만 나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그녀가 말했던 것 같다. '나가야겠다는 마음이 생겨 버렸다면 도움 없이는 거울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고.

분명 방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정면을 응시 한 채 벽에 기대어 바들바들 떨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그걸 말해 주고 있었다. 그리고 등 뒤에서 들리는 익숙한 소리로 인해 나또한 사태의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다. 

끼기기기기긱!

아..육중한 철판을 집어 삼키는 저 소리. 방이..찌그러지고 있었다! 아..하필이면 이때!

그녀는 어느 새 온 힘을 다해 캐비닛을 두드리고 있었다. 거울이 바르르 떨고 있었다.

"손을 잡아! 내 손을 잡으라고!"
안 돼!...움직일 수가 없어! 
"손을 내밀란 말이야!"

캐비닛과 거울에서 오는 진동이 온몸으로 전해져 왔다. 이미 거울 안은 공기마저 굳어버린 듯 옴짝달싹 할 수가 없었다. 

그만둬. 소용없어.

그녀가 했던 말을 이제 내가 하고 있었다. 애꿎은 거울을 계속 치던 그녀가 갑자기 동작을 멈춘 채 내 눈을 바라본다. 
아마 내 눈엔 절망과 공포와 체념이 가득 차 있겠지.

"너...움직일 수가... 없구나..?"

동시에 그녀의 입에서 통곡소리가 터져 나왔다. 그리고 점점 더 가까이 들려오는 또 다른 소리.

끼기기기기긱!!

캐비닛의 진동이 더욱 심해졌다. 난 느낄 수 있었다. 거울도 어쩔 수 없구나. 난 모든 마음을 눈빛에 담아 울고 있는 그녀에게 말했다. 

'괜찮아. 이 순간만 보내고 다시 만나자...'

나는 나도 놀랄 정도로 담담하게 진심을 전했다. 

'미안해 할 필요 없어'

그녀의 울음소리가, 캐비닛을 두드리며 울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보인다. 하지만 난 지금 임종 직전의 어느 환자처럼 눈꺼풀과 눈동자만 움직일 수 있을 뿐 너무나 무능력하다. 육중하고도 날카로운 금속성이 점점 더 가까이 귓가에 다가온다. 다가올수록 소리는 더 끔찍한 공포를 얼마 남지 않은 방안 가득히 쏟아 넣고 있었다. 
이를 악 물었다.

끼기기기기긱...
조금만 .. 조금만 더.. 참자.

그런데 그 순간 머릿속에 그녀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니가 오고 난 뒤부터 뭔가 달라졌어...일단 죽어야 다시 시작된다는 거..

서...설마?
정말 죽어야 다시 시작되는 건가? 죽을 만큼의 고통이 아니라 죽음을 거쳐야만 돌아갈 수 있다는 건가?!
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시간을 기다리던 나의 의식과 감각과 세포가 일순간에 뒤집히는 느낌이다. 그리고 새로운 공포와 두려움이 몰려온다. 이전과는 다른.
캐비닛은 이제 지진의 진동을 맞은 것처럼 떨고 있다. 그리고 그 진동에 몸을 맡기던 거울에도 한계가 찾아온 듯 했다.

쫘악.

거울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불규칙한 진동이 딱딱하게 굳어버린 거울 속 공기를 타고와 허수아비같은 몸을 흔들고 있다. 손끝의 감각이 서서히 무뎌진다. 하지만 공포와 고통은 오히려 점점 더 또렷하게 의식 속에 새겨지고 있다. 
죽음 직전에선 대부분의 고통이 사라지면서 평온함을 느낄 것이라는 신념이 한순간에 무너진다. 끔찍한 고통과 포기로 인한 평온이 뒤죽박죽이 된 채 마구 날뛰는 것같다

"흐흑..미안해! 내 잘못이야..너를 거기에 들어가게 하는 게 아닌데..아...어떡해...!"

엉엉거리며 울고 있는 그녀를 보니 서운함이 조금 풀린다. 이쯤 되면 용서해줘야지. 눈빛에 다시 마음을 담아 본다.

'괜찮아. 나 때문인걸 뭐...'

그녀가 내 눈빛을 읽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귀청을 울리는 소리와 박살난 거울과 부서지는 캐비닛과 찌그러진 채 사라져버린 방과 함께 
그녀와 나의 육신마저 끝나버렸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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