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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혼자2
게시물ID : gomin_12548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널소유하겠어
추천 : 2
조회수 : 213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1/09 20:3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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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건 있잖아. 그냥 네가 행복했으면 하는 거야."
술에 취해 무뚝뚝하게 옹알거리다 알아들을 수 있는 아부지의 첫 마디였다.
"내 인생 개같이 살아왔지. 만날 후회해. 왜 진작 이렇게 살지 못했을까하고. 그래서 너한테도 정말 미안해."
자기도 안다. 얼마나 잘못했는지, 얼마나 잘못됐는지,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몹쓸 짓들이었는지 이제는 돌이켜보니 후회만 남는가 보다.

나는 그를 이해할 수 없다. 하지만 그를 이해할 수 있다.
어느 부분은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부분도 이해할 수 있게 됐다.
이런 것을 이해하는 내가 그저 가족이라는 유대감과 연민과 동정때문에 그를 감싸버린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마음 속에서 그를 이해한다는 것은 악마를 이해하는 것과도 같다고 내 안의 내가 나한테 소리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변명할 수도 없었고, 마땅히 받아칠 대답도 생각나지 않았다. 백지상태였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책을 읽다 생각이 떠올랐다.
만약에 내가 그 사람과 같은 시대에 살고, 같은 것을 배우며, 같은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면,
나도 그 사람처럼 되어버리진 않았을까?
하기야 나도 과거에 그 사람과 무척이나 닮았었다.
툭하면 친척 어른들이 내게 너는 어째서 네 아빠가 하는 몹쓸 짓만 따라하니? 라고 할 정도였으니까.
그만큼 아빠가 망나니같았던 것이고, 나 역시 그런 수순을 밟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솔직하게 내 짧은 인생에도 수많은 선택에 순간이 있었고, 하마터면 그런 삶을 살았는지도 모른다.
중학교 때, 처음으로 가출했던 때에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지금쯤 철가방들고 중국집 배달이나 하며 양아치처럼 살고 있진 않을까? 
역사와 인문학에 원래 관심이 있었지만, 관심을 가진 또 다른 이유는 그를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나를 깨우치게 도와준 은사님은 말했다.
"그것은 네 잘못이 아니란다."
어찌보면 가장 흔한 위로의 말이었지만, 그때의 나에겐 더할나위없는 최고의 위로였다.
"책을 읽고, 공부하고, 배우는 것은 너에게 새로운 기회를 열어주는 거란다."
책을 가까이하라는 그 사람의 말에 난 의심했고, 학창시절에 국어책 읽는 것도 싫어하던 내가
처음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때, 이것이야말로 신세계가 따로 없었다.
역사는 내게 그 시대가 얼마나 부당했는지 알게해줬고,
인문학은 내게 폭넓게 사고하는 방식과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시켜주었다.
늘 집에서, 학교에서 '시키는 대로 해!'하는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하고 싶어서 하는 자율적인 공부라 더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어릴 때 왜 때리냐는 물음에 대들었다고 더 혼났고,
그렇게 쌓이고 쌓인 상처들로 매일 반항하며 보냈었다.
그는 모든 것이 '사랑'때문이라고 말한다.
"이 세상에 너와 나 우리 부자(父子) 둘 뿐이잖아."
나는 반강제적으로 그에게 종속됐어야만 했고, 그의 인형에 불과했다.
이제는 그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연인사이에 그렇게 집착하는지, 사랑하는 사람이 왜 그렇게 보고싶고, 계속 찾게되는지 조금은 이해하리라.
그 시절에는 이런 것들이 당연하던 시대였으니까 그리 믿어보리라.
다양한 것들이 그를 옥죄였고, 그의 인생 역시 고달팠으니 나 역시 그 심정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됐으니,
이제는 그에 대한 분노와 복수의 감정들을 모두 치워버려야만 했다.

그 날 오후, 갑자기 빨리 집으로 와줬으면 좋겠다고 걸려온 아버지의 전화.
그러면서도 조심스럽게 내뱉은 첫 마디는 여전히 거리감이 느껴졌다.
"바쁘니? 혹시 지금 바로 집으로 올 수 있니?"
"왜?"
"응. 잔말말고 지금 바로 좀 와라. 택시타고 10분 내로 올 수 있지?"
곧장 집으로 도착하자 형사 둘에게 둘러쌓여 안절부절 못하며 눈치를 보는 아빠를 발견했다.
경찰들도 생각외로 어려보이는 나의 외모에 놀랐다는 표정이었다.
확실한 건 그는 경찰에게 잡혀가야한다는 것이고, 나는 혼자 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정말 고통스러웠던 것은 그에게 속해있던 나의 모습이다.
항상 내 주변에서 사라지길 원하고, 없어졌으면 하는 존재였는데
그런 존재가 내게서 사라진다면 난 안도감과 행복을 얻는 것이 아니라,
불안감과 두려움으로 가득찬다.

내 옆에서 내가 두 눈으로, 두 귀로 그를 지켜보고 있지 않으면
그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할지 모른다는 어떠한 공포가 내 마음 속 깊숙하게 자리잡았다.

수많은 컴플렉스와 강박증과 정신병이 내게 존재한다.
사람들에게 말못할, 그들에게 말해도 이해못할 사소한 질병들이다.
이런 것들이 뭉치면 큰 위력을 발휘하는데 그 위력은 당신이 상상하는 그 이상보다 훨씬 높다.

어릴 적 2층 집에 살았는데 현관문을 어찌나 쌔게 닫아대는지 쇠문짝이 망치로 두들겨 팬 것처럼
헐어서 문이 제대로 닫히지도 않을 정도였는데, 겨울이면 그곳으로 바람이 솔솔 새들어 오는 것이 고통이었다.
특히 밤 9시가 지나는 시간부터는 인기척이 뜸하고, 또 차들도 잘 다니지 않아서인지 고요했는데
그 속에서 30m 멀리서부터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는 내게 저승사자가 다가오는 공포처럼 생생했다.

터벅. 터벅.
여자들 흔히 야심한 골목길 혼자 걸을때 무섭지 않은가?
일종의 강박증처럼, 뒤에 쫓아오는 누군가가 나를 해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처럼,
나는 매일 밤이면 술에 찌들은 아빠 덕분에 그 발소리만 들으면,
설마 또 술을 먹고와서 행패를 부리진 않을까?하는 공포가 마음 깊숙히 자리잡아있었다.
그 공포는 지금은 많이 나아졌지만, 아직까지 현관문 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기울이곤 한다.

시끄러운 현관문 소리와 함께 쿵!하는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현관문을 닫고 나타난 시뻘건 그의 얼굴.
그때 드는 생각이 무엇인지 아는가? 없다.
그냥 두려움에 질린 나의 얼굴만이 그에게 보일 뿐이다.
늦은 시간도 아닌데 괜히 시간이 늦은 것 같고.
쳐다보는 것도 괜히 잘못인 것 같고,
숨쉬는 것도 잘못인 것처럼 느낄 정도의 두려움이다.

김기덕 감독의 나쁜 남자라는 영화에서 창녀 선화가 다시 창녀촌으로 돌아올 때에 그 느낌을 나는 완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바로 '익숙함'이다.
그것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익숙함을 느낀다면 발을 떼내는 것이 두려워질 것이다.
학창시절 야영갔을 때, 수학여행 갔을 때 일정을 마치고 돌아올 때 정말 아쉬운 느낌이 드는 것처럼 
그만큼 익숙함은 무서운 것이다.
포기하는 심리가 결국 안정감을 불러오는 아이러니한 상황인데,
언젠가 이런 글을 본 적 있었다.
'어려운 상황에 처한 사람이 더 크게 성공한다'고.
내가 이 사회를 보면서 느낀 점은 항상 '성공'한 사람만을 비춘다는 것이며,
우리는 누구나 다 '성공'을 위해 꿈꾼다.
하지만 성공하는 사람은 적고, 좌절하는 사람은 수도 없이 많다.
나도 그렇고 시발.
그때는 막연히 뭐라도 해서 성공하고 싶었는데 지금은 아니다.

아무튼 포기하는 심리가, 내가 이 상황에서 아무리 발버둥쳐봐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다.
회피하는 거다. 이 상황에서 내가 덜 고통스러울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시도한다. 하지만 성공하지 못한다. 또 다시 찾는다. 시도한다. 그러다가 결국 가장 가까운 해답을 찾는다.
그것이 바로 포기하는 거다.
곧 생각을 포기한다. 고통스럽기 때문에.
그러다보니 성격은 망가진다.
내가 왜 사는지, 왜 이래야 하는지 도통 해답을 찾을 수 없다.
포기해버렸으니까.
그때의 나도 그랬다. 
출구는 없고, 오직 입구만 있었으니라.
그 입구에 한 번 발을 들이면 다시는 나갈 수 없는 늪에 빠져버린 것이라고 난 생각했다.

내게 닥친 문제에 대해 이렇다저렇다 해결방안을 내놓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그것에 대한 본질이 무엇인지 가르쳐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코로 내쉬는 숨소리. 하품소리. 뒤치닥거리는 소리. 그냥 귀를 자극하는 소리에 나는 유별나다.
아주 어릴 적에 자면 누가 잡아가도 모를 정도로 청각에 둔했던 나였지만,
두 눈을 질근 감고 제발 잠이 들어라. 깨어나지 마라. 주문을 외우며 매일 밤을 지새다보니
누구보다 청각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었다.

커가면서 새로운 인간들을 만나며 나는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한다.
허세부리고, 잘난척하고 이기적이며, 반항적인 전형적인 사춘기 소년으로.
늘 하라는 걸 하라던 소년은 하라는 것을 하지 않고, 반기를 들었다.
독재국가에 반란을 일으킨 샘이되겠다.
하지만 언제나 반란군은 패배했다.
그러면서도 언젠간 이 패배를 앙갚음하리라는 마음이 늘 사로잡았다.
증오하고 분노했으며, 늘 이를 갈며 복수를 꿈꿨다.

그때에 나는 몰랐다.
내가 그 사람을 닮았다는 것을.
나는 그 사람처럼 되기 싫었고, 그 사람처럼 살고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반항의 수단으로 그 사람과 닮아가는 것을 선택했고,
결국 난 그에게 늘 패배의 빌미를 제공했던 것이었다.
이 길고 긴 싸움은 누군가 하나 백기를 들 때까지 계속됐다.

....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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