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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이에게 첨으로 홀리고 배신당한 썰...
게시물ID : animal_10946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찹쉽쩔
추천 : 1
조회수 : 47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1/10 15:59:42
때는 중학교 시즈얼...
 
많은 학생들이 그랬듯 나도 군것질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줘도 받아들지도 않을 불량 식품들을
 
코 묻은 돈을 기꺼이 바쳐가며 하루에 몇 종류 씩은 먹었던 것 같다...아흐...ㅠ 그래도 그땐 맛있었지...
 
 
동내마다 다 비슷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여튼 우리 집은 본인이 졸업한 초등학교 바로 옆에 있었다.
 
진짜 바로 옆이다. 아침에 지각하면 담 넘어서 등교하고, 가끔 재수없으면 교무실에서 보는 선생에게 걸려서
 
스피커로 주의 방송 나와서 운동장을 미친듯이 질주해야했다.
 
 
초등학교 졸업하고 중학교도 근처로 갔는데 당연히 집은 이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여전히 그 동내에 살았다.
 
 
당시 초등학교 앞에는 크게 두세가지 종류의 가게가 있었다. 문방구, 분식집, 오락실. 혹은 하이브리드로...문방구인데 분식을 팔면서
 
쪼그려서 하는 그 야매 오락기(?;)를 운영하는 문어발식 경영도 자주 보였다. 아, 사행성 뽑기도 기억이 생생하군.
 
 
여튼 그 날은 하교 후, 우직하게 분식만 취급하는 가게 앞을 지나던 터였다.
 
 
분식점 앞은 벌써부터 초글링들로 우글거리고 있었다. 중학생이 되고 조금씩 고급한? 분식으로 입맛을 바꿔가며 초딩스런 분식에는
 
거리를 두었던 나이기에, 초딩들 속에 섞여 군것질을 할 마음은 전혀 없었다. (본인의 기준에서 피까츄 돈까스 같은 것은 초딩스런
 
분식이었다. 그냥 취향으로 넘어가주셈.) 사실 걔들이랑 경쟁하며 물건을 사는 게 더 싫었다. 중딩 가오가 있지. 쯧.
 
 
그 때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내게로 다가와 (작은 목소리로 속삭여줬어
언젠가 먼 훗날에 저 넓고 거칠은 세상 끝 바다로 갈거라고) 앵앵 큰 소리를 내었다. 
 
아무도 못 봤는지 아니면 분식 파티 타임에 흥겨워서 그랬는지 어느 초딩도 그 새끼 고양이에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나는 바닥을 좀 잘 살피는 편이라 (음?) 걔를 쉽게 발견했는데 사실 보지 않았어도 워낙 앵앵 거리는 통에 결국 보긴 봤을 것 같다.
 
아, 그리고 그 시절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지금보다 훨씬 길냥이가 적던 시절이라 더욱 흔치 않았던 일임을 고려해주길 바란다.
 
 
암튼 그 때 처음으로 동물도 의사표현을 한다는 사실을 직접 체험했다.
 
 
뭐 파브르 곤충기라든지 각종 동물들에 관한 글을 많이 읽기는 했지만 사실 속으로는 미심쩍긴 했다.
 
그때는 이 지구와 우주의 모든 생물들이 존재로서 평등하다는 생각 따위 전혀 없었기 때문에 (뭐래 -_-;)
 
한낱 미물이 의사 표현을 한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쉽사리 수긍이 가질 않았던 것 같다.
 
 
개는 손 내밀면 손바닥을 핥는 동물이었고, 고양이는 눈 앞에 뭔가 흔들면 할퀴는 동물이었다.
 
 
그런 존재에 불과했던 고양이가 내 앞에서 앵앵거리며 뭔가를 전하는 것이었다.
 
 
고양이는 나만이 자신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을 눈치채고 본격적으로 나에게 다가와 시선을 맞추면서 앵앵거렸다.
 
어차피 인간도 동물이고 그때는 나이도 어려 사회화도 덜 되었던 터라 두 짐승 간의 교류는 그리 어렵지 않았던 것 같다.
 
 
냥 : 앵애애애애애애애애애애앵 (배가 고프다. 닝겐. 뭔가 수를 좀 써봐라. 닝겐.)
 
나 : 어...음...어...음...
 
냥 : 앵애애앵애애애애애앵애애애앵 (배가 고파 죽을 것 같다 닝겐. 내가 원래 이런 냥은 아닌데. 닝겐. 몇년 뒤 닝겐이 유행할 건 아냐 닝겐.)
 
 
메시지가 너무나도 분명했기에, 그리고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그 앵앵거리는 울음소리가 너무 애처로워서, 그리고 새끼 고양이 특유의
 
요망한 귀여움에 홀린 나는 닭꼬지를 하나 사고 말았다. 피 같은 오백원이었다. 오백원...백원 짜리 다섯개가 있어야 바꿀 수 있지. 크기도
 
백원짜리보다 커...아흑...
 
 
꼬지는 길이가 새끼 고양이보다 길었기에 먹기 편하도록 꼬챙이를 제거하고 반으로 나누었다. 그리고 그 나뉜 것을 양손에 들고
 
쪼그려 앉아 그 새끼 고양이에게 내밀었다.
 
 
나만 그렇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그때의 무지했던 나였기에 더더욱)
 
그때는 이 선의에 가득 찬 행동이 두 종족간의 아름다운 화합의 장으로 마무리 될 것임을 의심하지 않았다.
 
좀 경우는 다르지만 어릴 때부터 트라우마처럼 의식을 지배하던 흥부 제비 다리 고친 썰도 떠올랐다.
 
 
하지만 애처롭게 앵앵거리며 무방비로 내게 호소하던 그 녀석은...
 
 
마치 명견 실버의 필살기를 방불케하는 속력으로 내게서 고기 만을 낚아채어 달아났다.
 
그 속도가 어찌나 살벌하고 신속한지 난 내 손을 때가는 줄 알았다 -_-...
 
그것도 한 손에 든 고기만 가져갔어...남은 이거 내가 먹기도 그렇고 뭐 어쩔거야...
 
 
그 녀석은 옆 건물의 배수구? 같은 좁은 곳으로 들어가서 이미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솔직히 지금까지 곁의 사람이 떠나가도 그 때의 충격과 배신감에 필적하는 경험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나는 망연히 새끼 고양이가 사라졌다고 추정되는 근처에 남은 고기 반토막을 놔두고 털래털래 집으로 향했다.
 
 
요약하면 짧은데 뭘 이리 주절거렸지...;
 
후 여튼 갑자기 생각나서 써 봄...
 
 
그 녀석...지금 쯤이면 하늘나라에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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