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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동안의 내 연애이야기
게시물ID : bestofbest_9105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익명ZWFkZ
추천 : 750
조회수 : 47795회
댓글수 : 1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2/12/10 12:24:22
원본글 작성시간 : 2012/12/10 10:21:52

어디 털어놓을 데도 없고. 내 4년동안의 연애중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일을 쓰고싶음.

 

남자친구랑은 대학교 1학년때 전공수업에서 조모임을 같이하게된게 인연이 돼서 CC로 발전하게 됨.

 

둘다 돈이 없어서 같이 데이트라고는 학교에서 시내까지 손잡고 걸어가다가

공원에 앉아서 이야기하기. 중학교앞에서 파는 콜팝사먹고 서점에 들어가서 책읽기.

가끔 여유좀 있으면 영화보고 카페에서 커피 하나 사이에두고 책읽고 그림그리기만 해도 너무나 행복했음.

밤이 새는 줄도 모르고 기숙사 앞 벤치에 앉아서 꼭 붙어앉아 얘기하고. 아무말없이 앉아있기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았음.

연애 2년 넘어갈 즈음에는 키스만 해도 자동으로 서로 어깨로, 목으로 손 올라오고 무릎에 올라앉고 그랬는데

그 시절엔 키스할 때도 나란히 앉아서 두손을 꼭 잡고 키스만 했었음.ㅋㅋㅋㅋ

 

 

그당시 기억에 남는 귀여운 이벤트가 하나 있음.

내가 과대표라서 전공수업이 끝나면 혼자 남아 강의실을 정리했었는데,

남자친구가 갑자기 엄청 멋쩍은 듯이 실실 웃으며 들어오더니 날 강단 밑에 앉히고는

기타를 꺼내서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불러주는거임. 솔직히 기타도 막 틀리고 노래도 별로였는데, 너무 행복했었음.

그 날은 아무 날도 아니었고, 이벤트해줄 이유도 없었음.

근데 순전히 내게 해주고 싶어서 했던거임. 끝까지 그런 사람이었음. 내게 늘 더 해주고 싶어하고, 더 아껴주고 싶고.

 

 

100일이 되는 날, 그런 오글거리는거 싫어하는 나지만 그래도 뭔가 해주고싶었음.

돈은 없었음. 남자친구한테는 100일 그런거 모르는 척 하고..

굿네이버스에 남자친구 이름으로 후원신청을 했더니 후원아동 사진이 들어있는 팜플렛이 왔음.

상자에 그 후원증서랑, 편지랑. 남자친구 얼굴 그린 그림이랑, 군것질거리 몇개랑. 그렇게만 넣어서

남자친구 룸메한테 남자친구가 오기 전에 기숙사 남자친구책상 위에 놔달라고 부탁을 했었음.

그리고는 저녁시간이라서 밥먹고.. 남자친구한테 연락이 없길래 많이 바쁜가보다 하고 자려고 하는데

문자로, '나 아무것도 없이 너 만나러가도 되냐' 라고 오길래 ㅇㅇ했더니 바로 기숙사로 달려옴.

둘이 밤 산책하는데 남자친구가 갑자기 나를 안더니 훌쩍훌쩍 우는거임. 감동받아서..... 마음이 참 올곧으면서도 여린 친구였음.

그 때가 첫키스였음. 가로등불빛 아래서.

 

 

남자친구를 우리집에 데려왔음. 그냥 방학 때 데이트하러 우리동네 근처 놀러왔다가,

다시 헤어지기가 너무 아쉽고, 또 멀리 온 남자친구에게 미안해서

엄마한테 나 지금 남친데려간다고 하고는 데려갔음.

너무 작고, 허름하고, 보잘것 없는 우리집이었지만 왠지 내 남자친구라면 보여주고싶었음.

가족들은 다들 타지에서 공부하고, 일하고있었기때문에 집에는 엄마랑 초등학생 막내남동생이 있었음.

남자친구는 그날부터 2박 3일을 우리집에 묵으며 내 남동생이랑 밤이 새도록 게임도 같이 해주고,

같이 야구도 해주고 하면서 한가족처럼 같이 지냈다.

그 날 이후로는 방학때면 거의 자기집처럼 주말이면 우리집을 들락거렸다.

우리 엄마아빠랑 나란히 누워 팩도 하고,

내 동생들이랑 다같이 우리동네를 누비면서 애들처럼 놀고.

그 땐 그게 왜그렇게 좋았었는지.

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날 밤에 집 앞에서 온 몸이 눈투성이가 되도록 동생들이랑 같이 신나게 눈싸움하고 눈사람만들고는

다음날 다같이 우리집에서 앓아누워서 엄마가 혀를 끌끌차며 죽을 끓여주던 날도 있었다. ㅋㅋ 나 뿐이 아니라 내 동생들도 모두 남자친구를 가족처럼, 형처럼 오빠처럼 대했다.

 

 

남자친구는 독실한 천주교인이었다. 기도도 꼬박꼬박하고.

어느날, 내가 속상한 일로 마음이 짓눌려 길 한복판에서 펑펑 울고 있을 때

어쩔줄 몰라하며 나를 꼭 안아주더니 갑자기 내 손을 이끌고 조용한 성당으로 나를 데려갔다.

내가 울음을 그칠 때까지 옆에서 말없이 기다려 주더니 이윽고 코를 훌쩍이는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힘든일, 복잡한 일 있을 때엔 여기 와서 가만히 앉아있어도 된다고. 조용히 울어도 된다고 말해주었다.

그 날 성당 안으로 조용히 쏟아져 들어오던 햇빛과, 울고있는 나를 무심히 지나치며 묵묵히 청소를 하던 아주머니.

그리고 성모마리아상의 온화한 표정들이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어.

이제 나가자며 이마에 뽀뽀를 해주던 남자친구가 흠칫, 성모마리아상을 바라보며 "헉, 여기서 뽀뽀해도 되나?" 하는 모습에

가슴 한 켠이 간질여지던 것도.

 

 

내 자취방에서 15000원짜리 동네피자 시켜먹으면서 무한도전 보던 것도 생각난다.

그 때 우린 피자 한판정도는 둘이서 한끼식사로 거뜬히 먹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다 먹고 무한도전도 끝이 나서 배가부르면

둘이 츄리닝 뒤집어쓰고 삼선슬리퍼로 털레털레 학교주변을 걷다가 슈퍼에서 아이스크림 사들고 슈퍼 앞 벤치에 앉아서

다 먹을때까지 얘기하고 지나가는 사람들한테 인사하고.

집에 들어가기 아쉬우면 편의점에서 맥주 한병씩 사들고 앉아서 먹고. 먹다가 또 알딸딸한 기운에 기분이 좋아지면

노래방에서 둘이서 신나게 놀고. 둘이 있으면 심심할 틈이 없었다.

노래방에서 최고조에 다다랐을 때엔 걸스온탑을 불렀다. 나는 보아처럼 남자친구 등에 올라가서 말타기춤을 추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렇게 서로가 애인이자 베프였고 가족이었으며 하나처럼 반쪽처럼 더할 것도 모자랄 것도 없었다.

 

 

 

아, 더 쓰려니 오글거리고 또 4년동안 쌓인 기억의 조각들이 너무 많아서 도저히 못쓰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지난주 남자친구가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언제 돌아오겠다는 기약없이.

잠시 사랑도 멈추자며 약속을 했지만 결국 떠나는 그 날 공항에서 펑펑 울며 그 약속을 물러버렸다.

끝까지 기다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소진되는 그 날까지는 서로 지켜보자고.

우리마음은 4년 전 설레이던 그 때 그대로인데, 아니 그 때보다 더 사랑하는데

우리 현실은 자꾸만 변해간다.

보고싶다 J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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