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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누구 얼굴에 쇠필통을 던져본적 있나요
게시물ID : gomin_910745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하헤후헤호
추천 : 18
조회수 : 862회
댓글수 : 107개
등록시간 : 2013/11/21 20:06:19
오늘 저녁 집에 돌아오는 길에 다리가 불편한 아이를 보았다. 교복과 헤어스타일로 보아 중학생 정도 되어보였다.
 
 
 
다리 한쪽이 짧아 절뚝이며 걷는 아이였다.
 
 
 
모습이 많이 불편하고 안쓰러워보여  뒤돌아 몰래 보게 되었다.
 
 
 
대놓고 쳐다보면 다른이에게도, 더욱이 그 아이에겐 실례고 상처이므로...
 
 
 
평범한 아이들보다 얼마나 힘든 성장과정을 겪고 있을까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집에 돌아와 차가운 맥주 한캔을 마시다가 문득 15년전 그때 그 애 생각이 났다.
 
 
 
중학교 1학년 때 일이다.
 
 
 
지역명이 들어간 남중에 입학하게 된 우리 5반엔 어렸을때부터 장애가 있어 왼쪽 다리가 오른쪽다리보다 10cm 정도 짧은 아이가 있었다.
 
 
 
그래서 뛰는건 고사하고 걷는 것 조차 위태위태하게 휘청휘청 뒤뚱뒤뚱 천천히 걸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우리반이 굉장히 대견하고 착하게 느껴지는게, 첫날부터 우린 그 애의 장애를 가지고 마치 짠것 처럼 단 한마디도 그애를 놀리지 않았다.
 
 
 
오히려 청소 때 최대한 걷지 않아도 되는 역할을 양보해 주는 등 최대한 그 아이를 배려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축구를 하고 싶어하던 그 애를 위해 최전방 공격수를 시켜주고 그 아이의 아주 약한 (그애 입장에선 최선을 다한 강슛이었다. 우린 아무리 천천히 공이 굴러가도 비웃지않았다.) 슛도 상대 키퍼는 일부러 막지 않았고 그 애가 슛을 성공시키면 우리팀이든 상대팀이든 다같이 환호했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직 꽃샘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때로 3월 중순의 일로 기억된다.
 
 
 
우리 교실 앞을 지나가던 다른반 녀석이 복도쪽 창가 자리에 앉은 그 애를 보고 "오 쩔뚝이?" 하면서 창문 너머로 그 애 뒤통수를 후려쳤다.
 
 
 
순간 우리반은 시간이 멈춘듯 정적이 흐르고 모두 그녀석을 바라보았다.
 
 
 
(나중에 안 얘기지만 그녀석은 그 애와 초등학교를 같이 나온 녀석으로 초등학교때 그 애를 많이 괴롭혔었다고 한다)
 
 
 
"쩔뚝이 우리학교였었냐?ㅋㅋ"하고 다시 그 애 머리를 때리려는 순간 내 쇠필통이 그녀석 머리로 날아갔다.
 
 
 
나중에 생각하면 그 때 내가 무슨생각이었는지 모르겠다. 뇌를 거쳐 한 행동이 아니라 내 오른팔이 그냥 던졌다.
 
 
 
그녀석은 소위 일진으로 덩치도 컸던 반면 나는 보통체형보다 조금 외소한 편이었다.
 
 
 
필통을 맞고 화나서 교실로 들어와 내게 달려드는 그녀석에게 날라차기를 했던것을 끝으로 내 기억이 없다.
 
 
 
짝궁 말로는 내가 그녀석을 발차기로 넘어뜨리고 주먹으로 얼굴을 한대 치긴했는데 바로 세댄가 얼굴을 쳐맞고 기절했단다.
 
 
 
그 직후 그녀석은 우리반 아이들 네댓의 다굴로 얼굴이 망가져 한달간(정확히 기억은 안남)학교를 쉬게 되고 싸움에 연루된 아이들은 한달간 방과후 교내 청소를 하게되었다.
 
 
 
(그 때 일로 내 코는 살짝 부러졌었는데 지금 굉장히 코가 오똑하고 높고, 코가 잘생겼단 얘기를 자주 듣는다. 그 녀석에게 이 영광을 돌린다.)
 
 
 
 
 
 
이런 일 이후 우리반은 더 결속력이 강해졌고 우정도 깊어갔고 그 애에게 더 잘해 주었던 것 같다. 그 애도 다리만 불편하지 공부는 중상위권 정도는 했기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아이들을 곧잘 도와주었다.
 
 
 
12월인가 겨울방학이 얼마 남지 않았을 무렵 그 애 어머니가 학교에 오셨다. 우리반 아이들 숫자에 맞춰 햄버거 세트와 함께....
 
 
 
2학년때 안 일이지만 그 애네 집은 아버지는 안계시고 어머니가 식당일을 하시며 어렵게 산다고 했다..
 
 
 
그 애가 어머니께 2학년 올라가기 싫다고, 지금 자기네반과 헤어지기 싫다고 하며 막 울었다고 했다. 초등학생때 지독히 괴롭힘을 받았다고 했다.
 
그 애 어머니가 이런 말씀을 하시며 우리에게 1년동안 너무 고마웠다고 하시며 우리 앞에서 우셨다.
 
 
 
우리반 애들중에도 같이 우는 애들도 있었고 그애 어머니께 2학년 되서도 그애와 같은반 되는 아이들도 있고 다른반이 되도 그애를 잘 지켜주겠다고 어머니께 약속했다.(그때 나도 울었던것 같다. 그 이후 최근 15년간 울었던 적이 있었나?.. 거의 없었던 것 같다... .. 아... 화생방훈련때..?)
 
 
 
우리는 그 약속을 잘 지켰다. 나는 그애와 다른반이 되었지만 2학년이 올라가서도 그 애와 같은 반이 된 우리반 아이들은 그 애와 잘 놀고 그 애를 괴롭히는 녀석들은 주먹으로 응징했다(물론 일방적으로 때리진 않았다고 했다.  일진도 아니고 다 싸움도 안해본 애들이라 서로 때리고 쳐맞았다고한다. 사실 더 맞았을듯)
 
 
 
그런일이 몇번 있고 나서는 아무도 그 애를 괴롭히지 않았다.
 
 
 
 
 
그렇게 3년간 그 애와 같은 중학교를 다니고 다른고등학교를 다녀 우린 헤어지게 되었다. 그 당시엔 핸드폰 있는 애들이 거의 없어서 연락처도 서로 몰랐고, 그렇게 세월이 흘렀다.
 
괜찮은 국립대를 가긴 했지만 특출난 면이 별로 없었던 중고등학생 시절, 나는 내새울게 하나도 없다. 하지만 가끔 어떻게 받던 상장이나 좋은 성적보다도 가장 자부심 느끼고 뿌듯한 학창시절의 일은, 중학교 1학년때 내 필통을, 그 일진녀석에게 던진 일 인 것 같다.
 
 
그 애가 보고싶다 그때 1학년 5반이 너무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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