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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여움의 본질에 대하여
게시물ID : wedlock_911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허니순살치킨
추천 : 11
조회수 : 1811회
댓글수 : 26개
등록시간 : 2017/07/06 03: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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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일기체.

어느 주말에 있었던 이야기.


동네에 유명한.. 꽈배기를 주로 취급하는 집이 있는데
마침 빵나오는 시간에 맞춰 그 집 앞을 지나다가 평소와는 달리 줄이 별로 길지 않길래 충동적으로 꽈배기를 샀다. 두개.
나와 아버진 먹지 않지만 남편과 엄마. 이렇게 두 명의 꽈배기 신봉자를 위하여.
집에 와서 두 사람 앞에 꽈배기를 풀어놓으니 마침(!) 엄마가 속이 좋지 않아서 기름에 튀긴 건 별로 먹고 싶지 않다며 사위에게 다 먹으라고 양보를 했다.

잠깐 여기서 콩깍지+남편 자랑 잠깐.

내 남편은 귀엽다.
잘생겼는데 귀엽기까지 하다.
원래는 잘생기기만 했고 귀엽진 않았는데 어느 순간 귀여워지더니(아마 고양이와 대화를 하면서 그들의 습성을 연구하고 부터인 듯 하다)
그 동안은 내 앞에서만 귀여웠는데 내가 고양이들 쓰다듬을 때 같이 쓰다듬쓰다듬하면서 귀엽다 귀엽다 해주니 최근엔 귀여움이 흘러서 아무데서나 귀엽다.
아무데서나 귀여운데 별 제지를 하지 않고 역시 내가 귀엽다 귀엽다 깔깔거리면서 칭찬을 해주니 이젠 귀여움이 넘쳐서 귀여움 학원을 차리겠다는 헛소리를 할 정도다.
사랑받는 남자의 필수스킬은 귀여움이라며.
이 사실을 많은 무뚝뚝하고 대화할 줄 모르는 남자들에게 전수해주고 싶다며.(귀여운 대화라곤 멍멍멍멍 밖에 할 줄 아는게 없으면서)
난 그럼 그 근거없는 자신감이 귀여워서 또 귀엽다 귀엽다 하게 된다.
귀여움 강화의 무한 루프가 완성되었다.

이렇게 잔뜩 강화된 귀여운 남자가 평소에도 좋아라하는 꽈배기를 장모에게 양보받아 순식간에 먹을 수 있는 꽈배기가 두 배가 되었다.
남편은 야옹야옹하고 두번 외치더니 우리집 고양이가 츄르를 보고 달려올 때 내는 소리인 아우우아유우우 - 마치 인디언 소리 같은 - 하면서 꽈배기 두 개를 자기 앞으로 당기고 멍멍하더니 나를 보고 헥헥했다.(남들이 보기엔 끔찍한 종의 혼재일 뿐)
(기다려를 한 적도 없는데 내 반응을 살피며) 내가 먹어도 좋아.라고 하자 신나서 꽈배기를 폭풍 흡입.

엄마가 어처구니 없다는 듯이 실소하며 넌 남편을 개같이 대하냐고. 남편한텐 자넨 왜 개같이 구냐고.. 하다가 말해놓고 보니 뭔가 아닌가 싶어서 아니 그러니까 왜 니넨 왜 멍멍을 하냐고로 얼른 정정.
우리 아버지는 평생 애교라곤 눈꼽만큼도 없는 사람이라 가끔 엄마는 사위의 귀여움을 목격할 때 짜증 아닌 짜증을 내는데(과연 그런 이유일까)
역시나 그날도 살짝 짜증이 난 상태로 나에게 남편이 흘린 꽈배기 설탕이나 잘 닦으라며 행주를 집어 던졌다.

난 심각해졌다. 행주를 맞아서가 아니다.
아닌게 아니라 정말 아무때나, 아무데서나 귀여움이 넘치고 있다.
원래 샤프한 사람이고.. 얼굴 자체에서 잘생김은 몰라도 귀여움은 느껴지지 않기에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회사에서 고객과 기술 얘기를 할 때 진지하게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다가 갑자기 야옹해버리는 장면을 상상해버리곤 고개를 절레절레.
그러고 보니 최근 마트에서 감자칩을 들고 불쌍하게 머엉머어엉 헥헥헥헥하면서 사달라고 조르다가 지나가는 부부 중 여자쪽의 눈에 띄어 모르는 사람을 빵 터지게 한 적도 있고(터져주었으니 다행이지 눈살을 찌푸릴만한 일이 아닌가) 같이 버스를 타다가 완전히 자리를 잡지 못했는데 버스가 출발 했을때 손잡이를 급히 잡으면서 아코 냐아앙 같은 소리를 낸 적도 있었다.(그나마 이건 아마 나만 들었던 것으로 추정)
게다가 나까지 영향을 받아서 뭔가 힘을 쓰는 일을 할 때 나도 냐아오옹 소리를 기합으로 넣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귀여운건 내 앞에서만 하고 정도껏 귀엽게 굴도록 하자.. 귀여움도 적당히 해야지 심하면 주변에서 짜증을 낼 수도 있다.. 라고 꽤 진지하게 얘기를 꺼냈다. 예전엔 내 앞에서만 했었는데 요즘은 넘치는 것 같다고.

남편이 말하기를..

"귀여움의 본질은 과함에 있다고 하는 편이 맞겠지. 귀여운데 과하지 않은건 귀여운 척인거야. 자기도 모르게 선을 넘어 버리는 것. 그것이 순수한 귀여움 그 자체라고 할 수 있어. 우리는 고양이가 귀엽다고 말할때 그것이 본성이기에 즐겁게 바라볼 수 있는거야. 얜 너무 귀여워라고 생각하지만 그 너무라고 하는 과함 자체가 고양이가 가진 귀여움의 실체이며 본질 그 자체..."

따위의(정확하게 기억도 나지 않음) 진지하게 난 정말 귀여우니 괜찮아 나불나불.
변명이 길어져서 본질이니 외연이니 삼천포 토론에 휘말리면 나도 어느샌가 신나서 헛소리를 하고 있게 마련이라 당장 정신을 추스르고.

"그래서 절제하지 않겠다는거야?"

"더 이상 내 귀여움을 끝까지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면 절제해 보도록 할게. 본성을 억압하는 것은 좋지 않고 반드시 반동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만."

"다른데선 참았다 내 앞에서만 그 반동으로 더 귀여워지면 되잖아. 사람들이 오빠를 어떻게 생각하겠어"

"괜찮아. 사람들은 내게 관심이 없고, 귀여움의 완성은 얼굴이니까"

이럴수가. 남편의 자신감이 이 정도로 업그레이드 되었다니. 신이시여. 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나이까.
사실은 그냥 아저씨일 뿐인데.
이 미친듯이 스스로에게 치명적이고, 사회에 유해하며, 국가의 민폐덩어리 착각이 무한 루프에 빠져서 더 강화되기 전에.. 어서 조치를 취해야만...

"그러니까... 당.신.은. 조심해야지"

정색과 단호함을 날려주니 남편은 금방 의기소침해졌다. 남편은 쉬운 남자다.
하지만 나는 그 쉬움이 또 귀여워서 꺄아아 빠순이 모드.

"삐졌쩌요? 아냐아냐 잘생겼어. 귀여워"

아무래도...
세상에 못할 짓을 하고 만 기분이다.
사회 정의를 구현하려고 해도.. 그냥 귀여운 것은 몰라도 '본질적으로 귀여운 것'에는 이렇게 늘 지고 만다. 크윽. 분하다.




세줄 요약

남편은 귀여움
남편은 본질적으로 귀여움
그리고 잘생겼음(크윽. 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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