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11년 2월 어느날. 무서운 꿈을 꾸게된다. 자고 일어나서도 빠짐없이 냄새며 감각이며 감정이 지워지지 않았다. 일단 쓰자고 결심하고 퇴근 후 컴퓨터 앞에서 단박에 소설을 써내려갔다.
다시 읽어봐도 무서웠다. 쓰고나서 참 뿌듯했다. 모 사이트에 연재를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후 진격의 거인이라는 작품을 접했다. 1권을 보자마자 아주 많이 놀랐다. 내가 꿨던 꿈의 도입부와 겹치는 이미지가 많았다. 그대로 소설을 접나 싶었다.
결국 소설의 시놉을 완전 갈아엎어야 했다. 문득 머리속에서 은사님의 명언이 지나갔다. 동 시대를 사는 비슷한 연배의 창작자들의 머리속엔 비슷한 아이디어가 나올 수밖에 없다고. 중요한건 누가 먼저 그리느냐다. 그러했다. 저 만화는 이미 몇년 전 부터 일본에서 연재를 하고 있던 만화였다고 했다.
그렇게 소설은 모험활극호러액숀물에서 특정 장르물로 변했다.
소설은 완결 되었다. 연재 후 일년 반을 공개하고 이제 습작 처리 했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1화를 공개해본다. 혹시 보는 분들 중. 모 사이트에서 본 분이 있다면 그거 맞다.
다행히 촬영은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 미리 영화사에서 연락을 받고 취재를 하기 위해 온 기자들로 인해 일정이 늦춰진 모양이었다. 넷북과 카메라가 든 무거운 가방을 고쳐 매고 나는 간신히 숨을 돌렸다.
보도자료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거대한 댐이었다. 한때는 물이 흐르고 있었을 강 바닥에 널린 마른 자갈을 밟고 있으려니 댐을 둘러싼 숲이 산처럼 높아 보였다. 휴대폰을 열어본다. 여전히 전파가 터지질 않는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아직까지 전파가 닿지 않는 곳이 있다니 이것 참 놀라운 일이다. 하긴 길 한 번 막히지 않았는데도 서울에서 이곳까지 자가용으로만 3 시간이었다. 운전을 하는 내내 믿는 네비게이션에게 거듭 배신을 당하며 여기까지 왔다. 정비된 길이라고 볼 수도 없는 자갈길을 1 시간 가까이 운전하며 올라 왔더니 엉덩이에 쥐가 날 것 같다.
한 여름 푸르름에 젖은 숲은 공기마저 묵직했다. 달큰한 나무 비린내에 숨이 뚫린다. 간간히 새 울음소리가 숲에서 들려왔다. 나는 계곡을 바라본다. 물이 흐르고 있어야 할 강 바닥은 푸석푸석하다. 숲과 마른땅의 경계가 선명하다. 아마도 경계 아래부터 지금 내가 서있는 자갈 밭까지가 파두강이었을 거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태백산맥에서 부터 이어졌어야 할 여러 수원의 물이 일시에 뚝 끊겼다고 했다. 개울은 모두 씨가 마르고 그나마 고여 있었어야 할 1억 톤의 물은 거인이 단번에 들고 마신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단 몇 주 사이에 물이 이렇게 말라버리고 강이 사라져버렸으니 강을 터전으로 하는 파두시 외각에 거주하는 농부들이야 천지가 개벽할 노릇일 거다. 그러거나 말거나 취재는 취재다. 만들었다 하면 블록버스터, 제작만 했다 하면 500만은 껌인 보증수표께서 이번 신작 영화를 말라버린 파두호를 배경으로 촬영한다고 하니 이슈 좋아하는 우리 나라 영화잡지, 연예계 관련 기자들은 여기 다 모인것 같다. 언정과 1학년. 이제 갓 대학 물 맛이 어떤지 감이 오기 시작한 햇병아리인 나에게는 놓칠 수 없는 현장이다. 이런 큰 이벤트에 가십잡지 견습 기자라는 타이틀 하나만 가지고 구경 오게 해준 하느님이 보우하사 우리 형님 만만세다.
[김무리. 존만한 새끼가 군기가 빠져가지고, 이제 도착한 주제에 태평하게 경치 구경이냐? 카메라나 내놔 임마]
눈에서 불이 번쩍 한다. 정통으로 얻어맞은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나는 뒤를 돌아본다. 역시나 세상 만사가 다 불만인 머저리 바보 형이 인상을 쓰고 나를 바라보고 있다. 빌어먹을. 우리 형님 만만세 취소다. 편집부 선배님들이나 편집장 마저도 우리 형 빽이 어떻고 라면서 알바인 나에게 낙하산 운운하며 놀리는데 이 자식은 어떻게 된 것이 누워서 침뱉기 인줄도 모르고 옆에서 같이 놀리기 일쑤다.
[내가 여기 길을 어떻게 안다고 시간 맞춰서 오냐! 그러니까 같이 오면 좀 좋냐! 너는 회사 차 타고 나는 내 차 기름 들이며 힘들게 물어물어 여기까지 왔는데 고생한 사람을 왜 때려! 네비가 자꾸 절벽으로 안내 하는데 어떻게 하라고!]
[취재증은?]
내 말은 당연하다는 듯 무시한다. 하여튼 우리 엄마는 저렇게 싸가지 없는 놈을 낳고 나서 미역국이라도 잘 드셨을지 모르겠다. 저 놈은 태어나자마자 엄마한테 '나오니까 배고프다. 젖부터 줘.' 라고 말했을 놈이다.
투덜거리며 주머니 안에서 취재증을 꺼낸다. 목에다 걸고 있으라는 말을 끝으로 형은 내 가방에서 카메라와 렌즈케이스를 꺼내 휘적휘적 먼저 가버린다. 넷북과 녹음기를 대충 확인하고 서둘러 형을 따라 이끼가 말라붙어 먼지처럼 바스라지는 말라버린 강을 걷는다.
평소라면 일반인 출입이 통제 되어 있어야 할 댐 주변은 바쁘게 오가는 기자들과 스텝들로 분주했다. 다가갈 수록 급격한 경사를 가진 콘크리트 댐의 크기는 어마무지하게 커져서 그 아래 드리워진 그림자만 하더라도 거대한 육식 공룡의 마른 뼈처럼 음울한 분위기를 풍겼다. 그 아래서 담당 공무원으로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취재증을 확인한다.
완만한 경사의 여수로 옆에 난 작은 쪽문을 통해 댐 안으로 들어간다. 가동을 멈춘 댐 안은 발자국 소리가 울려 작은 동굴을 연상하게 한다. 댐 반대편으로 통하는 터널을 한참 지나고 나서야 댐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바닥이 드러난 호수가 보인다. 저수량 1억톤이 빈 말이 아닌 듯 했다. 빈 땅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댐은 고개를 꺾어야지 간신히 꼭대기가 보일 정도로 높다.
댐의 반대편보다 경사는 완만했지만 암벽가가 아닌 이상 기어올라가긴 무리일 듯 했다. 댐 양쪽으로 녹이 슨 철 사다리 두 개만 앙상하게 세워져 있다. 사다리를 따라 고개를 들자 오륙층 정도 위치에 댐 관리실이 보였다. 이제는 쓰지 않는 듯 녹슨 철장만 어렴풋이 보였다.
무거운 장비를 고쳐 매고 나는 형을 따라 호수를 거슬러 올라간다. 어떻게 들어온 것인지 신기하게 중장비 차와 촬영용 장비등으로 촬영장은 시장바닥 못지 않게 소란스럽다. 이미 인터뷰를 시작한 것인지 연신 여기저기서 목청을 높여가며 취재가 한창이다.
[헉!]
[왜 그래 임마? 녹음이 안 챙겨 왔어? 아니면 넷북 예비용 배터리 안챙겨 왔냐?]
[이수지다!]
[...... 미친놈]
형이 혀를 차던 말던 나는 눈 앞에서 화사하게 웃고 있는 쭉쭉빵빵 늘씬한 여배우에게 시선이 꽂혔다. 실물로 보니까 더 이쁘다. 아니 몸에서 빛이라도 나는 것 같다. 한창 연예 프로그램에서 취재를 하러 온 듯 자신을 찍고 있는 카메라를 향해 손도 흔들어주고 웃어주기까지 하니 이건 선녀가 따로 없다.
영화사에서 배포한 자료를 보면 촬영팀이 말라버린 파두호로 메인 촬영지를 정한 이유는 몇 주 만에 마른 파두호의 모습 보다는 파두호가 마르면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아직 탐사가 완벽하게 되지 않은 동굴 때문이라고 한다. 동굴은 무시무시할 정도로 거대했다. 마치 아귀가 입을 벌린 것처럼 가로로 길게 드러난 동굴의 입구에서 본 안쪽은 한 낮임에도 그림자가 드리워져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어두웠다.
취재 전 읽어본 보도자료에 따르면 총 길이는 추정 20km. 사람이 간신히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의 좁은 장소부터 공룡이 단체로 모여 회식을 벌여도 될 만큼 거대한 공터까지. 상당히 독특한 형태를 갖춘 동굴인 듯 했다. 종유석, 석순 뿐만 아니라 흔히 동굴에 거주하고 있어야 할 동 식물의 흔적이 전혀 발견이 되지 않은 것은 댐이 생성 된 직후에 암반의 융기가 어떻고 저떻고 하는데 그것 까지는 귀찮아서 읽지를 않았다. 내가 감독이라고 하더라도 이 장소는 탐낼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 동굴이라고 해봤자 그 사이즈가 그 사이즈겠거니 생각 했는데 이건 다른 외국 영화에서 봤던 것보다 더 크고 무섭다. 영화가 뜨고 나면 분명히 이 곳은 관광지가 될 것이다.
무시무시한 배경음악 깔지 않아도 동굴은 모습 만으로 이 한여름에 등 뒤에 소름이 돋게 만든다. 손이라도 한번 잡아보, 아니다. 싸인이라도 한 장 받았으면 내가 이 여름에 아부지가 물려준 조선시대 유물같은 우리 애물이를 타고 엉덩이에 쥐나도록 3 시간을 달려온 고통을 한 여름 눈 녹듯 잊어버릴 수 있을 텐데 이렇게 가까이 있어도 우리 수지씨는 눈길조차 닿지 않을 정도로 멀게만 느껴진다.
[조명발 아닌갑다. 우리 수지씬. 이런 곳에서 봐도 예쁘네]
[누가 우리 수지씨야 임마. 우린 연기자 취재 예약 안했어. 감독도 마찬가지고. 어차피 저쪽에서 보내준 보도자료랑 오늘 있을 발표회 내용하고 믹스하고 오늘 찍을 사진 섞어서 기사 나갈거야. 저 쪽은 우리 잡지 명함 줘도 이도 안쑤셔. 그러니 취재는 꿈도 꾸지마라]
[자기 일터를 이쑤시개보다 못하게 말하는 형도 참 대단하셔? 누가 뭐라고 했냐? 예쁘다고 했지]
[쪽팔리게 가서 싸인 받지 말란 말이야. 김무리]
티셔츠 등 쪽에 받을까 아니면 코팅하게 연습장에 받을까 고민하던 나는 뜨끔 해서 입을 다물었다. 아직 포토타임이 아닌지 촬영용 카메라를 들고 있는 기자들은 많았지만 사진을 찍는 기자는 없었다. 부럽다. 저사람들은 전부 사진기자겠지? 사진도 찍고 기사도 쓰고 교정도 보고 가편집도 해야하는 알바랑은 다르게 사진만 찍으면 할 일 다 하는 거겠지?
해가 중천에 떠오르자 기온은 급격하게 올라갔다. 포토타임과 세미나식 영화 문답이 끝나고 나니 등에서 땀이 줄줄 솟기 시작한다. 아직 시작하지 않은 촬영 때문에 대기를 타는 것 만은 우리 뿐이 아닌 듯 영화 스텝들과 단역 배우들이 지친 듯 자리에 주저 앉아 커피를 마시거나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열심히 타자를 두드리는 형을 노려보며 나는 입고 온 셔츠를 벗는다. 여름이래도 산 속이니 추울거라고 한 자식 어디 사는 누구야? 형을 노려보다 말고 나는 다시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한 배우들과 감독을 살핀다.
[촬영 시작 하는 것 같은데?]
[촬영은 무슨, 홍보 하겠다고 카메라 좀 돌려가면서 폼 잡는 거니까 대충 찍고 가자.]
어 그래 너 잘났다. 누가 모르는 줄 아냐? 취재 경험 없는 내 앞에서 경험 많은 척 냉담한 척 하면 누가 멋있어 보일줄 알고? 이런 일은 일상다반사라는 식의 건방진 행동. 친 형만 아니었다면 한 대 쳤다 진짜. 투덜거리면서도 나는 카메라를 들었다. 이왕 이렇게 된거 개인 소장용 수지씨라도 좀 더 찍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눈치껏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데 연기자들 쪽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어, 형 ?]
[왜 또?]
[연기자들 심상찮은데? 문제 생겼나 봐]
[뭐? 무슨 문제?]
잡지사로 보낼 기사를 쓰다 말고 형이 고개를 든다. 심상찮은 것을 느낀 것은 나 뿐만이 아닌지 기자들이 술렁 거리며 연기자 쪽에 연신 카메라를 들이댄다.
연기자 한 명이 촬영 시작 직전 쓰러진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게 이수지 같다. 스텝들이 둘러 싸고 있으니 보고 싶어도 볼 수가 없다. 촬영 직전 쓰러지는 배우라는 것은 좋은 이미지는 아니어서 인지 스텝들도 다들 당황한 눈치다. 다행히 심각한 것은 아니었던 듯 이수지는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표정은 여전히 심각하다. 그녀의 말에 당황한 스텝들이 자꾸 뒤를 돌아 동굴 쪽을 바라본다.
뭐지? 동굴이 어떻다는 거야? 감독이 직접 나서 그녀를 달래보려 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감독에게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그 표정에 섞인 공포와 당황스러움에 나는 저도 모르게 카메라를 들고 그녀를 찍기 시작했다.
[여기서 벗어나야 한단 말이예요!]
비명소리와 같은 외침이었다. 그녀를 만류하는 스텝의 손을 피해 이수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자신을 찍고 있는 기자들을 향해 외쳤다.
[이 소리 안들려요? 나만 듣고 있는 거예요?]
이벤트도 아니고 뭐란 말인가. 혹시 기다리기 지루한 기자들을 위해 영화의 한 장면을 연출하는 건 아닐까 했지만 그러기에는 표정이 절박하다. 옆에서 다른 기자 한 명이 하, 이수지 표현력 많이 늘었네. 라며 감탄을 하지만 그 기자의 얼굴에도 긴가민가 하는 의문만 가득했다.
[제발요!]
울음을 터트리기 직전의 그녀의 표정에서 아까 댐 아래 쪽문이 닫혔을 때 느꼈던 불길한 예감을 다시 읽는다. 나도 모르게 뒷걸음질을 치고 있을 찰라 기묘한 소리와 함께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진 안나는 우리나라 만만세 아니었던가? 영문도 모르고 엉거주춤 자세를 낮추지만 진정을 하기는 커녕 진동과 소리는 점점 더 커지기 시작했다.
소리와 진동의 시발점이 땅 속이 아니라 부들부들 떨기 시작한 이수지 너머 미탐사 지역이라는 동굴 속이라는 것을 깨닫자마자 나 역시 다리 힘이 풀리기 시작했다.
예감은 압도적이다. 한 밤중에 집으로 돌아가는 좁은 골목에서 차마 뒤를 돌아보지 못하고 무작정 발걸음을 빨리 해야 했던 압박감. 새벽녘 잠에서 깨어 화장실에 소변을 보는 내내 세면대 앞 거울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하게 만든 불안. 등 뒤로 식은 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소리가 커졌다. 마치 수천마리 개미들이 나무를 갉는 것 같던 소리가 점차 커진다. 젠장. 기분나쁜 소리다. 아니 좀 무섭다. 진동은 이제 지진이라고 불릴 만큼 강해져서 작은 모래들이 진동에 맞춰 튀어 오르고 있었다. 힘없이 벌어지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나는 엉거주춤 뒤로 물러섰다. 불길하고 끔찍한 것이 오고 있다는 무시할 수 없는 예감이 점점 내 안을 가득 채웠다.
지독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마치 썩은 계란에서 나는 것 같은, 그리고 동굴 안에서 흘러 나오는 소리가 킬킬거리는 웃음 소리, 낮은 비명과 윽박지르는 신음. 물어 뜯고 씹어삼키는 맹수의 송곳니와 마른 뼈를 갉아먹는 듯한 갉작거림이 되어 점점 가까워진다. 동굴 안에서 무엇인가가 나오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끔찍한 무언가일 것이다. 예감은 이제 확신이 되고 있었다.
[도망 가자구요!]
울음 섞인 이수지의 목소리를 경계로 누구랄 것 없이 다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달리기 시작했다. 전신에 소름이 돋았다. 아직 닥치지 않은 어떠한 것에 대한 공포는 전신을 잡아 누르는 것 같아 엉거주춤 아직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던 나를 형이 후려친다.
[김무리, 가자!]
어딜 어떻게 간다는 말도 없이 형 역시 도망치는 사람들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나도 형을 따라 몸을 돌렸다. 동굴을 등 뒤에 둔 순간. 무언가가 내 목덜미를 잡아챌 것 만 같은 공포에 절로 입에서 비명이 튀어 나왔다. 무섭고 무서웠다.
[으아악!]
찢어지는 비명에 뒤를 돌아봤다. 젠장 돌아보는게 아니었다. 호러 소설에 나올 것 만 같은 끔찍한 광경이 내 등 뒤의 풍경을 지배했다. 타르처럼 끈적해 보이는 검은 물이 동굴밖으로 꿀럭거리며 튀어 나온다. 마치 검은 입을 쩍 벌린 거인이 구토하듯 검은 물은 거침없이 쏟아졌다. 저것에 닿으면 죽는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확신에 가까운 예감으로 나는 이를 악 물고 아까보다 더 빠른 속도로 달렸다. 카메라와 넷북은 이미 집어 던진지 오래고, 뒤쳐지면 죽는다는 신념이었지만 더러운 체력 때문에 숨이 곧 턱에 닿을 것 처럼 차올랐다. 자갈이 발에 채일 때마다 걸음을 헛디딘다.
[정신 안차리지 김무리! 더 빨리 안달려?!]
형이 고함을 지르며 내 팔을 잡아 끌었다. 핏발이 선 형의 눈을 보자 저도 모르게 비명이 튀어 나온다.
[저거 뭐야! 뭐냐고!]
[시팔 내가 알거 같아?! 닥치고 뛰라고!]
[아으으 미치겠네 저게 대체 뭔데!]
공포는 난폭함을 동반한다는 것을 나는 처음으로 깨달았다. 내 앞에서 앞서 달리고 있는 자식들을 전부 후려 치고 싶다는 생각이 절실하다. 다행히 댐이 넓어서 검은 물이 우리가 있는 곳 까지 흐르기에는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여전히 동굴은 잘린 경동맥으로 뿜어져 나오는 피 처럼 검은 물을 토해내고 있었다.
[아아악!]
등 뒤에서 난 비명소리에 뒤를 돌아본다. 수 천만원을 호가하는 카메라를 들고 뛰느라 뒤쳐졌던 스텝중 한 명이 넘어진 것이다. 주춤거리며 걸음을 멈춘 순간 스텝의 몸위로 검은 물이 치솟았다. 마치 수십 개의 손갈퀴 처럼 물은 스텝의 몸을 잡아 뜯고 찢어 삼켰다. 피는 튀지 않았다. 피마저 삼킨 물이 걸음이 뒤쳐진 사람들을 하나 둘 씩 집어 삼켰다.
[아아악!! 후영아 후영아!]
발을 헛디딘 듯 여자가 자갈위로 굴렀다. 검은 물에 닿은 여자가 울며 앞서 달리던 남자를 불렀다. 남자는 잠시 망설이더니 여자의 팔을 잡아 끌었다. 얼마나 힘을 준 것인지 여자가 단번에 끌어 올려졌다. 제 힘을 이기지 못한 남자가 여자와 함께 나뒹굴었다. 그러나 남자가 끈 것은 검은 물에 미처 삼켜지지 못한 여자의 상반신 뿐이었다.
[흐아악!!]
쏟아지는 피와 함께 비명을 지르던 남자의 몸마저도 검은 물에 삼켜졌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멈추지 않고 달리면서도 발을 헛디딜 때마다 심장이 터질 것 같다.
[잠겼어!!]
먼저 도착한 사람들이 자신들이 들어왔던 댐의 쪽문을 격렬하게 두드렸다. 그러나 문은 잠겨있었다. 정해진 시간이 아니라면 문은 열리지 않을 거다. 약속된 시간 까지는 아직 두 시간이나 남아 있었다. 오늘 생전 처음으로 봐서 얼굴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 담당 관리인에게 듣기 좋지 않은 욕설을 퍼부어보지만 알리바바와 사십인의 도적도 아니고 잠긴 문이 욕 듣고 열릴리도 없다.
[우선 사다리로 올라가요!]
[거기 밀지 말라고! 녹슨 거 안보여?!]
[닥치고 올라가라고 새끼야! 안갈거면 비키라고!]
삿대질과 욕설 섞인 고함이 오가는 가운데 누군가가 앞서서 사다리를 올라가기 시작했다. 성질이 급한 사람들은 바로 댐을 가로질러 맞은 편에 있던 사다리를 향해 달려갔다. 사다리를 올라가기 위해 언성과 시비가 오가는 가운데에서도 다들 재빠르게 철 사다리를 오르고 있었다. 어느새 차 오른 검은 물이 코 앞까지 흐르고 있었다. 짐승의 썩은내와 피냄새가 역했다. 검은 물은 온천이 끓어오르듯 계속해서 부글거리며 부풀어 올랐다. 그 안에서 튀어나오는 것이 무엇이 되었던 단순한 증기는 아닐성 싶었다.
[김무리 빨리 안 올라와!]
윽박 지르는 형 덕분에 서둘러 사다리를 밟고 올라설 수 있었다. 이미 태반은 타고 올라간 듯 내 뒤에 있는 사람은 이수지와 그녀의 매니저. 그리고 여성 스텝 뿐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레이디 퍼스트는 개나 주라지. 젠장, 그녀 등 뒤로 차오르는 검은 물을 보고 있으려니 양보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내 뒤에 달리고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은 이미 검은 물에 잡아 먹혀 죽었다.
미쳤다고 목숨을 버릴까보냐! 앞서서 사다리를 오르는 형의 신발에서 모래가 떨어져 얼굴을 뒤덮는다. 눈 안에 들어간 듯 따갑기 그지없다. 잠시 눈을 비비면서도 나는 사다리를 열심히 오른다.
[뭐야 저건!!]
숨막히는 신음 소리에 저도 모르게 시선을 아래로 둔다. 검은 물은 바로 밑에서 찰랑 거리고 있었고 끓어오르는 듯한 움직임은 여전했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댐의 완만한 벽에 거북이 처럼 생긴 이상한 괴물이 붙어 있다는 것. 검은 등껍질과 껍질 밖으로 튀어나온 네 다리는 거북이와 비슷하다. 하지만 머리가 있어야 할 부분이 그저 둥글고 두꺼운 곤봉같은 모양이다. 저게 생식기인가? 하고 상황에 어울리지도 않는 생각을 떠올린 순간. 괴물이 빠르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벽을 붙잡고 마치 땅 위를 달리는 것처럼 빠르게 다가온 괴물이 신음 소리를 낸 이수지의 매니저에게 가까이 다가간다.
맨들맨들한 곤봉 같은 것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다가와 마치 살펴보는 것 처럼 이리 저리 흔들리며 덜덜 떨고 있는 매니저를 향한다.
[저, 저리 가!]
매니저가 손사래를 치며 공포에 질린 고함을 지르자. 순간 굳어버린 곤봉이 허공에서 움직임을 멈춘다. 그리고 마치 도라지 꽃이 펴지듯 다섯 갈래로 곤봉이 좍 갈라진다. 붉은 속 살에서 썩은 내가 풍겼고 갈라진 끝마다 날카로운 이빨 같은 것이 촘촘히 박혀있다. 그리고 입을 벌리고 비명을 지르기 시작한 매니저의 목을 문다.
-으적-
사람의 머리가 저렇게 쉽게 잘리는 거였나? 머리를 후루룩 거리며 빨아 들인 괴물은 절명한 매니저가 철 사다리에서 손을 놓자마자 목 아래 남은 몸과 함께 아래로 떨어진다. 그 순간 검은 물 안에서 괴물들이 튀어나와 매니저와 함께 분명 같은 편일 거북이 괴물까지 순식간에 해체해 씹어 삼킨다. 등껍질이 갈라지며 그 안에서 내장과 피가 솟구친다. 악몽을 실체화 하면 저런 모습 일 것이다.
[꺄아아악!]
눈 앞에서 아는 사람의 죽음을 목격한 이수지가 찢어지는 비명을 지른다.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매니저의 시체를 해체한 괴물들이 동시에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본다. 숨막힐 것 같은 정적이 지나고 괴물들은 우리를 발견하고 미칠듯 펄쩍 거리며 튀어 오른다.
[올라가아! 빨리 올라가란 말이야악!]
혼비백산한 사람들이 아까보다 빠르게 철 사다리를 오른다. 이미 먼저 올라간 감독은 잠긴 댐 관리실의 자물쇠를 자기가 아끼고 있었을 것이 분명한 일제 카메라를 휘두르며 열심히 내려치고 있었다. 문이 열리자, 이번에 비명소리가 들린 것은 우리가 오르던 사다리의 맞은 편에 있던 사다리였다. 고개를 돌리자 부들부들 떨며 사다리에 매달려 꼼짝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발 밑에서 서서히 치솟아 오르는 거대한 손가락을 보고 나는 숨을 삼킨다. 마치 일출 처럼 손가락과 손바닥. 그리고 손목과 팔이 천천히 치솟아 오른다. 사람 하나보다 더 큰 손가락에는 노랗고 날카로운 손톱이 매달려 있다. 그야말로 괴물. 혹은 거인의 것으로 보이는 팔은 나오기가 무섭게 맞은 편 사다리를 빠르게 훑어버린다. 떨어진 사람들의 비명은 괴물들의 고기 씹는 소리에 묻혀 곧 들리지 않게 되었다. 앞서 오르던 형이 간신히 사다리 위 난간에 올라와 나에게 팔을 뻗는 순간. 나는 이를 악 물었다. 이쪽에서도 팔이 솟구치고 있었다.
[빨리 올라와! 병신 새끼야!]
형의 재촉을 받으며 열심히 올라가 보지만 이미 거대한 팔은 사다리를 훑고 있었다. 나는 눈을 질끈 감고 있는 힘껏 몸을 뒤튼다.
[!!]
등 뒤로 아직 미처 올라오지 못한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리고 비명은 아까와 마찬 가지로 곧 사라졌다. 난폭한 손놀림에 부러진 사다리가 사람들과 함께 댐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다행히 난간을 움켜쥐긴 했지만 한 손으로 난간을 잡기엔 벅차다. 그리고 아래를 내려다본다. 무리를 하면서 까지 쥔 이수지의 손목은 다행히 손 안에 있었다. 하반신이 통째로 날아간 그녀의 몸과 함께.
욱신거리는 옆구리와 다리가 죽을 맛이다. 형이 비명을 지르며 내 팔을 움켜 쥔다. 무슨 힘이 이렇게 센 건지. 언제부터 나를 이렇게 챙겼는지 모르겠다. 나는 절명한 그녀의 손을 놓는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악력 만으로 나를 끌어 올린 형은 피에 흥건하게 젖어있는 내 등과 살점이 뜯어진 내 옆구리를 보고 털썩 그 자리에 주저 앉는다. 다리가 이상한 각도로 꺾였다. 고통 때문에 잠깐 기절이라도 한 것처럼 눈 앞이 순식간에 깜깜해진다. 숨을 쉴 수가 없다. 거칠게 호흡하면서도 나는 형의 등 뒤에서 사람들이 앞다퉈 댐 관리실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본다.
젠장. 이름값 한다. 김무리. 목숨 아까운줄 모르고 객기를 부린 결과를 봐. 이수지는 죽었고 너는 죽을거야. 미친 새끼. 하지도 않던 짓을 해서 왜 둘다 죽게 만들어.
[들어가자 형]
밖에 있다가는 다 죽을거야. 라고 뒤 이어 말할 수가 없었다. 미치겠다. 이렇게 긴급한 상황임에도 자꾸 의식이 날아갔다가 돌아온다. 돌아올 때마다 고통은 더 심해진다. 소변이라도 지릴 것 같다. 몸이 뜨거워졌다 차갑게 식는다. 옆구리를 누른다. 물컹거리며 만져지는 것은 아마도 빌어먹을 내 내장이라는 걸 거다. 뭐에 스친 건지 몰라도 무슨 거대한 푸줏간 칼이 몸을 훑고 지나간 기분이다. 나는 죽을거다. 하지만 형은 아니다.
[들어가자고!]
형이 부들부들 떨면서 나를 부축한다. 미친. 이거 보면 모르겠냐? 응급 처치를 해도 죽을 판에. 지금 이 상태라면 난 반드시 죽는다. 부축을 하긴 왜 해. 그냥 혼자 들어가지는. 반쯤 열린 댐 관리실 문을 노려본다. 시팔. 우리 형 안들어갔는데 문 먼저 잠가버리면 귀신이 되어서도 죽여버릴거야 새끼들아. 나와 눈이 마주친 사람들이 내 시선을 외면한다.
형은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는 내 의사를 무시한 체 나를 끌고 관리실 문까지 간다. 그리고 나는 젖먹던 힘까지 짜내 형을 민다. 뒷걸음질 치던 형이 문에 걸려 넘어진다. 활짝 열린 문 안에 형이 들어간 것을 확인한 나는 철문 밖에 난 철장을 잡고 민다. 녹슨 소리를 내며 철장이 닫힌다.
[뭐해! 미친 새끼야! 빨리 들어오라고!]
[미친건 김우리 너거든? 내가 가망이 있겠냐?]
형은 이제 내가 너라고 불러도 때릴 수가 없다. 형이 철장을 잡아 뜯으려 하자 괴물에게 죽고 싶지 않았던 사람들이 거세게 형을 막았다.
[문 하나로 막긴 힘들잖아. 새끼들이 똑똑해 보이진 않을 테고. 어찌 됐든 그 안에 있으라고 죽든 살든. 철장 하나지만 졸라 튼튼해 보이잖아?]
[들어 오라고! 시팔놈아!]
내가 들어오지 않을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철문을 닫는다. 철문과 철망으로 이제 나는 생에서 멀어졌다.
어느새 튀어 나온 괴물들이 개미 새끼처럼 숲과 계곡을 뒤덮는다. 이게 세계의 종말 같은 걸까 하고 나는 고민해본다. 심장이 뛸 때마다 통증이 온 몸을 압박한다. 등 뒤에서 형이 발악한다. 하여튼 저 새끼는 소리만 지를줄 안다. 하긴 그래야 내 형이긴 하다. 우선 급한대로 난간 아래를 내려다본다.
그리고 거인이 기립하는 것을 본다.
이미 양쪽에서 튀어나온 거대한 팔이 검은 강을 내리 누른다. 마치 알 껍질을 깨트리는 것처럼, 검은 강이 찢어진다. 거인의 움직임에 괴물들이 으깨지고 터진다. 서서히 몸을 일으키는 것 같은데 벌써 상반신은 검은 강 위에 떠오른 상태다. 그 상태 만으로도 괴물은 눈높이가 나와 같다.
찐득찐득한 핏덩어리가 꿀럭거리며 옆구리를 적신다. 마지막 가는 길에 이런 살풍경한 것을 보여주다니 위에 계신분이 누군진 몰라도 참 너무 하다. 검붉은 눈동자를 가진 검은 거인이 나를 바라본다. 아니다. 괴물의 시선은 딱히 어느 곳을 보고 있지 않다. 그러나 놈은 나를 보고있다. 나는 그것을 안다.
괴물이 팔을 뻗는다. 느린 동작이지만 놈이 나를 움켜쥘 때의 충격은 차에 치인 것만 같다. 나는 피를 토한다. 형의 비명이 등 뒤에서 나를 붙잡는다. 그러나 이미 의식이 흐릿하다. 괴물이 입을 벌린다. 거대한 송곳니가 마치 상어의 이빨처럼 가지런히 돋아있다. 그 덩치로 나 하나 먹는다고 배가 부를까마는 이왕이면 그랬으면 좋겠다. 괴물이 입 안에 나를 밀어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