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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심리] ROOM - 9. 응답 - ①
게시물ID : panic_911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카스_네팔
추천 : 2
조회수 : 552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0/13 16:5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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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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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 문 ( http://todayhumor.com/?panic_910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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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OM

                                                                  akash_nepal


9. 응답


그녀의 제안은 너무나 간단했고 옳았다. 우리는 쪽지에 쓰인 대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야만 했고 혹여 실수가 있어 그 대가가 죽음이라 할지라도 감당해야만 했다. 이 방에서 탈출하지 못한다는 것은 끊임없는 지옥의 반복을 의미하므로. 그리고 이제 가능성이 있다. 열쇠를 발견했고 그 열쇠로 열 수 있는 문이 눈앞에 있다.
제길. 무엇 때문에 내가 이 방에 들어오게 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나는 지금 이방에서 탈출하고 싶다 미치도록. 그녀도 아마 그럴 것이다. 내가 이 방에 나타나면서부터 뭔가 꼬여버린 규칙. 죽어야만 다시 시작되는 이 끔찍한 반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눈앞에 있는데 무얼 망설이겠는가?
나는 말없이 캐비닛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시발...새끼.

벽 가운데 걸려 있는 괘종시계를 지나치면서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 나왔다.

너때문에 죽었었어. *새끼..야...

새로 생긴 분침과 시침, 가운데 중심을 잡고 있는 괘종이 못에 박힌 듯 미동도 없이 유리 안에서 버티고 있다. 조금 있다가 난 확인해야 한다. 이 새끼가 언제 움직이기 시작하는 지를. 당장 때려 부수고 싶지만 그것으로 인해 또 무엇이 꼬일지 모르니 그건 최후의 선택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역시 캐비닛 두 번째 서랍에는 쪽지가 있었다.

"탈출하라.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여"

첫 번째 서랍의 쪽지는 캐비닛의 거울 속에 있겠지. 니들이 도와 줬다면 이 고생은 안했을 텐데.

똑!
...그래. 어쩔 수 없었다는 뜻이겠지. 그래 알았어. 이해한다.
?
사람이 힘들어지면 약해지나 보다. 이상하게도 거울이 내는 그 소리를 듣고 나는 온전히 짧은 순간 캐비닛과 거울만을 생각했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캐비닛 한쪽 면을 쓰다듬어 주었다. 어느새 내가 그녀를 닮아 있다. 이것저것들을 반려동물 대하듯 만지고 쓰다듬던 그녀를 말이다. 참나..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뒤로 돌아서 있어. 한 발 물러서서. 그래야 이전처럼 황당한 일이 없을 테니."

그래. 발아래 거울이 생기면서 허둥대느라 시간을 허비했었지. 그녀에게 쪽지를 넘기면서 나는 말없이 뒤로 물러섰다.

성공할 수 있을까?
"너 왔다 갔다 하는구나. 지금?"

그래 너는 항상 내 마음을 나보다 더 잘 읽었었지. 그래 흔들리면 안 된다. 더 이상의 선택지가 없으므로.
?
알았어. 이제 방해하지 마.

정신을 집중했다. 물에 젖듯 빨려 들어가던 느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바닥에 붙은 듯 움직이지 않던 몸뚱이, 서서히 손끝에서부터 마비되던 감각, 그리고 사방에서 엄습하던 절망과 공포. 반복되는 상상이었지만 여전히 이마에 식은땀이 맺힌다.

"됐어!"

그녀의 목소리가 들리는 순간 나는 두 눈을 번쩍 떴다. 예상대로 등 뒤엔 커다란 거울이 바닥에 놓여 있었고, 천정의 문은 마치 양각의 조각처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거울에 천정의 문이 서서히 비치면서 거울 전체가 떨리고 있었고 그 떨림은 파동으로 퍼져나가 빗방울이 쏟아지는 아스팔트처럼 거울 면을 요동치게 하고 있었다. 참으로 그로테스크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시계. 그녀와 나의 시선이 약속이나 한 듯 정면의 벽을 향했다.

아! 저...미친.

분침이 원을 그리며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었다.

"내가 손 내밀 때 잡아주는 거 잊지 마. 문이 들어가면 바로 따라 들어 갈 거야."
지금 들어가는 게 더 낫지 않아? 시간이 없어.
"아니. 밖에서 잠근 문은 밖에서 열어야 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천정의 문이 거울에 비치면, 아니 거울 속에 그대로 빨려 들어간다면 거울밖에서 볼 땐 마치 문 밖에 있는 것과 같다. 어차피 문을 잠근 것은 그들일 테니 문 밖에서 열어야만 한다는 말이었다. 그럴 듯 했다.
고개를 치켜 들었다. 천정에선 이미 문이 거의 떨어진 채 간신히 매달려 있는 형국이었다. 문을 이루는 모든 직선들이 흔들리고 있었고 점점 더 형체가 흐릿해져 갔다. 거울은 이제 표면의 요동이 귀에 들릴 정도로 심해지고 있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철컥! 철컥!

문이 떨어지지 않는다! 녀석이.. 마지막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저거 뭐야? 왜 안 떨어져?
"문이 거울을 기억하고 있는 것 같아."
뭐라고?

고개를 괘종시계로 돌렸다. 망할 시계의 분침은 방안 분위기는 알 바 아니란 듯 스톱워치의 숫자처럼 미친 듯이 돌아가고 있었다. 입안이 바짝 타들어갔다. 전혀 예상 못한 곳에서 문제가 터지고 말았다.

철컥! 철컥! ... 끼기긱...

갑자기 천정에서 철판 구부러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저 소린? 안 돼..

야... 저 소리는 또 뭐야?
"어..아닌데? 이럴 리가 없는데."
아..뭐야..또 방이 사라지는 거야? 아아..

입에 담기도, 떠올리기도 싫은 끔찍한 종말을 또 봐야 한단 말인가?

아...안 돼. 난.....난 죽기 싫어!

압사.
난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내 몸을 그냥 내버려두었다. 별 수 없는 줄 알면서도 입에선 제멋대로 말이 튀어 나왔다. 그런데 그때 그녀가 손을 내저었다.

"자...잠깐. 아니야. 그게 아니야. 이번엔."
...?

끼기기기기긱.

"저길봐...천정은 그대로야. 소리만 나고 있어. 아마도.."
.....?
"문을 끌어당기고 있어...우리가 탈출하려는 걸...그들이 아나봐."
그럼 어떡해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괘종시계의 분침은 쉬지 않고 돌아가고 있었다. 아마 남은 시간은 많지 않으리라. 세상에서 가장 긴 1분이었지만 그 1분도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문의 한쪽 귀퉁이는 여전히 천정에 매달려 있고, 문이 있었던 자리엔 시커먼 그림자만이 남아 우릴 비웃듯이 내려다보고 있었다.

철컥! 철컥!

녀석도 반복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걸까? 이미 새로 나타난 거울이 자기에게 무슨 해코지를 할 지 다 알고 있다는 듯 녀석은 거칠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고 있었다. 그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이번에도...어려울 것 같아..."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그녀도 떨고 있었다.

그래...압사보다는 한 번에 가는 게 낫지.

그녀의 내민 손을 잡으려는 순간, 등 뒤에서 육중한 소리가 들려왔다.

드르르르륵! 드르륵!

구석에 놓여 있던 캐비닛이었다. 캐비닛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쯤 되면 꼭 들려오던 거울의 노크소리도 없이 캐비닛은 마치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다는 듯 우리 쪽을 향해 돌아서고 있었다. 거울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광광광광광!
벽에 걸려 있던 괘종시계가 갑자기 귀청을 찢는 굉음을 내는 것이었다.
광광광광광!
마치 그 소리는 시간을 알리는 것이 아닌 절규처럼 방안에 울러 퍼졌다. 그리고 서서히...벽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아...!"

그녀가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캐비닛 뒤에 붙은 거울, 그 속으로 괘종시계가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아니 거울이 시계를 끌어당기고 있었다.
광광!
비명 같은 단말마를 남긴 채 시계가 벽에서 사라져 버렸다.
구우웅...구웅...
그리고 다음 순간 거울 속에서 괘종시계의 울부짖음이 무겁게 새어나왔다.
구우웅...구우웅...

야, 저기봐..저기 천정!

천정의 문이 조금씩 사라지고 있었다.

끼이이익...끼이익.

마치 힘겨루기라도 하듯 머리위에서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지만 결국 가까스로 붙어 있던 문의 한 귀퉁이가 떨어지자 검은 그림자만 남긴 채 녀석도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녀석이 남겼을 마지막 소리는 바닥의 거울 안에서 희미하게 들려왔다.

철컥...

모든 일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캐비닛의 거울이야. 거울이 문을 당기고 있었어.."
녀석들이 왜...?

무엇이 저들을 움직이게 했을까. 저들에게도 '마음'이라는 것이 있었을까. 괜히 마음 한 구석이 찡해 왔다. 한마디라도 해주려고 다시 캐비닛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였다.

콰아아앙!!!

거울에서 번뜩이는 섬광을 본 것 같다는 느낌과 함께 난 정신을 잃었다.
.
.
.
.
.
.
으..음...

두 눈을 다시 떴을 땐 그녀가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괜찮아?"
아...또 다시..시작된 거야?
"아니.....리셋 되지 않았어. 괘종시계가 폭발했어...거울 속에서."

몸을 일으키며 난 반사적으로 캐비닛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 곳엔 캐비닛도 거울도 남아 있지 않았다. 시커멓게 그을린 채 찌그러진 고철조각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녀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녀가 내 앞에 펼친 손바닥엔 거의 가루가 된 채 부서진 거울의 흔적이 있었다.

"이번에 우린..반드시 성공해야 돼."

그 말의 의미를 난 잘 알고 있다. 성공을 위해 절묘하게 짜 맞춰진 각본처럼 모든 것이 흘러갔었다. 가장 위급한 순간에 캐비닛과 거울이 움직여 줬고, 재깍재깍 종말을 향해 가던 괘종시계를 없애버렸다. 거울은 천정의 문마저도 끌어당겨 주었다. 다시 되풀이 된다면 천정의 문은 더욱 저항이 심해질 테고 괘종시계 또한 거울에게 호락호락하게 당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캐비닛과 거울... 무엇보다 그녀는 그들의 희생을 또 다시 지켜볼 수 없으리라.....나또한 그들에게 우리의 절박함에 응답하라고 요구할 수 없다. 사물로부터 느끼는 이 묘한 감정이라니. 내가 이렇게 변했다니. 그녀는 내가 깨어나기 전 한참을 울었던 것 같았다.

"마지막 기회야."
...

난 대답대신 고개를 끄떡여 주었다. 그녀가 쪽지를 쥔 채 바닥에 놓여 있는 거울 앞에 섰다. 물결처럼 조금씩 일렁이는 거울 면 너머로 문이 놓여 있었다.

"내말 잘 들어. 내가 손을 내밀면 꼭 잡아줘야 해. 알겠지?"
알았어. 당연한 거 아냐?
"절대 놓으면 안 돼. 알겠지? 꼭 끝까지...잡고 있어야해. 알겠어?"
야..너 왜 그래? 죽으러 가는 것처럼.

그녀는 아무 말없이 고개를 돌렸다.

추워?
"응. 이상하게 몸이 떨리네. 들어가면 괜찮을 거야."

거울을 향해 발을 내딛는 그녀의 등이, 어깨가 떨리고 있었다. 괜히 어깨에 손 한 번 올려주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이 들려왔다.

"넌 마음이 너무 약한 게 문제야. 이번엔 실수하지 마.."

거울 속으로 그녀가 사라졌다.

<계속>

- 아카스_네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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