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공포 심리] ROOM - 10. 탈출
게시물ID : panic_91197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아카스_네팔
추천 : 2
조회수 : 590회
댓글수 : 1개
등록시간 : 2016/10/17 22:45:04
옵션
  • 창작글
* ROOM - 9화 '응답' : http://todayhumor.com/?panic_91139




                                  ROOM

                                             

                                                                  akash_nepal



10. 탈출
 

거울 속에서 유영하는 그녀의 모습은 마치 투명한 바다 속을 거니는 열대어처럼 자연스러웠다. 괘종시계가 없는 지금, 더 이상 시간의 촉박함에 쫓기지 않아도 되었기에 난 거울 귀퉁이에 앉아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천정의 문 그림자가 음영을 바꿔가며 일렁이고 있었다.

너 너무 느긋한 거 아냐? 이제 문을 열어봐.
"이 느낌이 너무 좋은 걸? 언제 다시 느끼겠니? 조금만... 조금만 더 있다가."

그녀가 손끝에 쪽지를 흔들어 보이면서 대답했다.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짙게 묻어 나왔다. 하긴...그 속은 더없이 포근하겠지. 바라보는 나조차도 이렇게 마음이 평온할 정도니.

열쇠 맞지?
"응."

두 손을 활짝 편 채 거울 속을 둥둥 떠다니는 그녀가 부럽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쪽지를 손에 쥐고 들어간다면 나도 문을 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반복되어선 안 된다. 조금의 실수도 없이 이번이 마지막이어야 하니까.

자 이제 문을 열어야지? 또 무슨 일이 벌어지기 전에.

그녀가 나를 향해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서운함과 아쉬움이 잔뜩 묻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녀는 정색한 채 내 눈을 바라보았다.

"니가 약속하면 문을 열게. 내 손을 절대 놓지 않는다고 약속해."
걱정 말라니까? 뭐..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내가 손을 놓을 이유가 뭐 있겠냐? 문이나 빨리 열어.
"알았어..."

그녀가 고개를 돌려 발치에 놓여 있는 문을 내려다보는 순간엔 나도 만감이 교차했다. 이 모든 공포와 고통과 끔찍한 죽음의 반복도 이젠 끝이라고 생각하니 괜히 가슴 한구석에서 먹먹함이 올라왔다. 이제 저 문을 열고 그녀가 내민 손을 잡으면 모든 것이 끝날 것이다. 마무리가 어떨지는 몰라도 이 고통의 반복이 끝나기만 한다면 아무래도 상관없다. 사실 열쇠로 문까지 열었으니 더 이상의 방법도 있을 수 없다.
이윽고 그녀가 손끝에 쥐고 있던 쪽지, 아니 열쇠를 문손잡이로 가져갔다.
이 방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이 사실 말도 안 되는 것들 이었지만, 난 이 마지막 순간의 움직임을 놓칠세라 고개를 쭈욱 내밀었다.
쪽지가 문 가까이로 다가가자 손잡이 주위가 환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손잡이가 빛나는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쪽지가 황금빛 열쇠로 바뀌면서 내는 빛이었다. 동시에 문 전체의 테두리에서 빛이 새어 나왔다. 문이 조금씩 열리면서 그 빛은 더욱 강해져서 눈이 부실 지경이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천정을 덮고 있던 문의 그림자에서도 황홀한 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었다. 천정의 빛은 그대로 허공을 가르면서 거울로 내려와 문에서 새어 나오는 빛과 이어져 통로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저 빛 속으로 들어가겠구나.'

문은 더 이상 열리지 않았지만 한 줄의 두꺼운 빛을 뿜어내며 천정의 같은 위치에서 내려온 빛과 이어져 허공에 커튼처럼 넓은 막을 이루고 있었다.
거울 속에 앉아 빛의 장막을 한참이나 바라보고 있던 그녀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손을 내밀어 왔다.

"손을 잡아줘."

그녀는 얼굴 가득히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녀를 보고 있는 내 모습도 그럴 것이리라.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따뜻한 손이 손끝에 잡혀 왔다. 나는 뭔가 북받쳐 올라 그녀가 내민 손을 꼭 잡아 주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나를 향해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가 그렇게 좋아? 입이 귀에 걸리겠네.
"그럼 좋지. 얼마만의 휴식인데..."
어..그런데 잠깐..뭐..뭐야 이게!

이번엔 그녀가 내 손을 움켜쥐었다.

"괜찮아. 아무것도 아니야. 이제 이방에서 나가는 거라구."
아니..사라지고 있잖아? 아냐 이건 뭔가 이상해!
"이제 마지막이야. 약속했잖아.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그녀의 모습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다! 손끝으로 전해오는 온기도 서서히 사라지며 감촉 또한 옅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느낌, 무언가 ... 느낌이 있었다. 그 느낌은...뭐라 표현하긴 어렵지만 분명한 것은 새로운 시작의 설렘이나 행복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이게 정말 방에서 나가는 과정의 하나일까? 아니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전조일까? 만약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는 거라면 정말 이상하다. 지금까지의 리셋 중 단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다. 죽음만이 그 끝에 있었고 그 끔찍함이 끝나고서야 시작으로 돌아 갈 수 있었다. 만에 하나 이것이 그냥....끝이라면? 무언가 다음이 있는 게 아닌 그냥 모든 것의 끝이라면? 두려웠다.
그녀의 몸은 이제 투명하게 변해 형체만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난 내 손을 붙잡고 있는 그녀의 손을 기어이 뿌리쳤다. 투명해진 그녀의 손은 힘을 쓰지 못하고 거울 속으로 서서히 잠겨 들어갔다. 그리고 역시 손을 놓자마자 그녀의 몸이 다시 돌아오기 시작했다. 점점 모습을 회복하는 그녀의 몸을 보며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이제 우리는 끝을 맞으며 죽어가겠지. 그래도 다시 만날 테니까 괜찮아. 사라지는 것보다는 그게 나아..'

휴... 다행이다.
"약속했잖아? 왜 손을 놓은 거야..?"
미안...하지만 분명...어..엇 너!

이번에는 열린 문틈에서 새어 나와 천정까지 이어진 빛의 장막이 그녀를 끌어 들이고 있었다.

아..안 돼!

하지만 그녀의 몸은 연기처럼 빛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리고 머릿속을 조여 드는 지독한 현기증이 찾아왔다.
.
.
.
.
.
.
드르르르륵! 드르륵!

구석에 놓여 있던 캐비닛이었다. 캐비닛이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으흐흑! 아...어떡해..."

갑자기 등 뒤에서 그녀의 울음이 터졌다.

"미안해...정말 미안해."
끼기기기긱! 끼기기기긱!
광광광광광!
철컥철컥!

아수라장이었다. 벽과 천정에서는 떠올리기도 싫은 철판 구겨지는 소리가 연신 들려왔고, 괘종소리와 철컥거리는 문소리가 비명처럼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드르르륵.

캐비닛은 무슨 할 말이라도 있다는 듯 우릴 향해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와 함께 거울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진이라도 맞은 양 마구 흔들리고 있는 캐비닛을 보며 그녀는 계속 눈물을 쏟고 있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괘종시계의 단말마가 들려왔다.

끼기기긱....광!

시계가 벽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느새 녀석은 캐비닛 거울 속에서 의미 없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흡사 그 소리는 물속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웅얼거림 같았다.

구웅...

그리나 귀를 찢는 듯 한 비명소리는 여전히 들리고 있었다. 천정에서 반쯤 떨어진 문이 거세게 저항하고 있었다.

끼이익! 철컥! 철컥!

"아...어떡해! 이젠 틀렸어...."

끼기기기긱!

기괴한 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상황은 절망적이었다. 그런데 그 순간 바닥에서 강한 진동이 올라왔다.

아...

이번엔 나의 탄식이었다. 바닥에 뉘여 있던 거울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거울 면이 마치 끓는 물처럼 떨리는가 싶더니 놀랍게도 천정의 문이 거울로 떨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천정에서 바닥의 거울을 잇는 그 공간을 타고 문의 조각조각이 하나씩 떨어져 내려와 거울 속에서 퍼즐처럼 다시 맞춰지고 있었다. 문이 있던 천정 자리엔 어두운 문의 그림자가 들어서기 시작했다. 동시에 귀청을 울리던 소리도 사라져 버렸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캐비닛과 거울.
나는 복잡한 감정에 쌓여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뭐라도 말을 건네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더 이상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콰아아앙!!!

번뜩이는 섬광과 함께 난 바로 정신을 잃었다.
.
.
.
다시 눈을 떴을 때 캐비닛과 거울의 흔적은 더 이상 찾을 수 없었다. 그저 군데군데 찢어진 고철조각과 유리파편이 그들이 존재했었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정신이 드니?"
으음......또 다시 시작된 거야?
"너...이 등신 같은 새끼야!...흐흑."

그녀가 울음을 터뜨렸다. 얼떨떨한 정신을 추스를 새도 없이 난 그녀를 달래야 했다.

뭔가 좋은 방법이 있을 거야. 이제 괘종시계도 사라졌고 문도 거울 속에 있으니까..
"그만해 이 새끼야! 넌...기억이 없으니까 편하겠지? 도대체 이게 몇 번째인지 알아?"
....
"얼마나 끔찍한 반복이 있었는지 알기나 해? 점점 더 강해지는 문을...거울이...문을 거부해서 폭발과 반복이 얼마나 되풀이 되었는지 알기나 하냐고! 캐비닛과 거울이 움직여 주지 않았다면 우린 영원히 갇혀 지냈을 지도 몰라! 시계를 없앤 후에 가까스로 문을 거울에 넣었는데 그 기회를 니가 몇 번이나 날려 버렸는지 알아? 그저 손만 놓지 말아 달라고... 내가 부탁한 건 그거 하나뿐이었는데..그게 그렇게 힘들어?"
미안해...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하겠는가?

"기억을 가진 채 리셋이 되었을 땐 넌 폭발 후 다시 시작된 거냐고 묻지 않았어. 다짜고짜 못하겠다고 고집부터 부렸었지. 그런 너를 설득하고...넌 결국 또 손을 놓아 버리고. 나보고 도대체 어떡하라는 거야?"

그녀가 캐비닛과 거울이 있던 자리를 가리키며 말했다.

"캐비닛과 거울이 처음부터 움직인 건 아니야. 폭발로 죽어가는 내 모습을 지켜봤겠지. 이 방에 혼자 있을 때 거울 속에 있으면서 내가 유일하게 마음으로 의지했던 애들이야. 그리고 캐비닛과 거울은 한 번도...시계를 거부 한 적이 없었어. 점점 더 강해지는 시계를 안고 갈가리 찢기면서도 말이야!"
미안해..미안한데...난... 뭔가 잘못된 것 같아. 뭔가..돌이킬 수 없는 실수를 하는 게 아닌가하는 불길한 생각이 들어...
"너... 내가 거울 속에서 문을 열고 난 뒤 뭘 봤는지 아니?"
뭐가 보였어? 뭘 봤는데?
"병원. 안에서 바라 본 천정의 그림자에 언뜻 비치는 건 바깥 풍경이었어. 복도에 간호사가 지나가고 의사들이 보이는 평범한 병원 풍경 말이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아니, 난 확신이 필요해. 그곳이 안전한지도 모르겠고..야..야 잠깐!

그녀가 거울 속으로 이미 발을 들여 넣고 있었다.

'몸을 들여놓은 이상 바로 나올 수는 없다.'
거울의 규칙이었다.

"확신은 못주지만 이건 말해줄게. 이번이 나에겐 마지막이야. 난 너무 지쳤어. 이번에도 니가 포기한다면 나도 그만 둘 거야. 캐비닛의 거울 속으로 들어갈 거야..."

젠장, 제멋대로인 성질머리하고는. 난 급하게 그녀의 어깨를 잡아 세웠다.

야,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지금까지 살면서 날 욕하고 나를 미워했던 거...다 용서하고 서운해 하지 않을 테니까 이번만은 내가 하자는 대로 따라와 줘..부탁이야."

그녀가 어깨에 손을 올려 내 손을 잡아 주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도 그녀의 작은 어깨를 두 손으로 감싸 주었다.
이렇게 보내지 못해 아쉬웠었는데 다행이다. 하지만 그녀는 모를 것이다. 다행이다.

내가 들어갈까? 너처럼 쪽지를 손에 쥐고 들어가면 문제 없을 거야. 그러면 사라지는 일도 없을 테고..니가 남아 있으니까 다시 되풀이 되면 또 만날 것 아냐?
"안 돼. 이 방의 문제는 내가 풀어야해. 더 이상 실수해선 안 돼. 내가 들어갈게. 그리고.. 너...이번엔 정말 내 손 놓치마. 부탁이야..."

작은 물결을 일으키며 그녀는 결국 거울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거울 속은 여전히 평온해 보였다. 아래에는 엎어진 채 놓여있는 문이 보였지만 그녀는 마치 오래전부터 그곳에 살았던 것처럼 익숙하게 공간을 누비고 있었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거울 표면에 물결이 일었으며 그때마다 천정의 문 그림자가 일렁거렸다. 나는 거울 귀퉁이에 앉아 한참을 그렇게 지켜보고 있었다.

"왜 문 열라고 안 해?...이전엔 그랬었는데...하하"

그녀가 장난기어린 표정으로 날 바라보고 있다. 행복한가보다. 나는 대답대신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히 뭐라도 말을 하면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이윽고 그녀가 열쇠를 문으로 가져갔다. 손잡이 홈에 열쇠가 꽂힘과 동시에 빛이 나기 시작했고, 그 동그란 빛은 문의 사각 테두리를 따라 도화선에 붙은 불꽃처럼 번져 갔다. 열린 문틈으로 한줄기 또 다른 빛이 새어 나왔으며, 그 빛은 천정의 그림자가 걷히면서 내려 온 빛과 이어져 허공에 커튼처럼 막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녀는 고개를 들어 나보다 더 높은 위를 보고 있었다.

'밖을 보고 있구나'

그녀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지만 나는 왠지 그녀가 아쉬움의 눈물이라도 보여 주었으면 했다. 오히려 지우지 않고 있는 얼굴의 저 미소가 더 말을 못하게 하니까. 어쩌면 그녀도 지금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녀가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얕게 터져 나왔다.

"손을 잡아줘."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손을 내밀었다. 아...빌어먹을 눈물이 난다. 그녀가 고개를 들라고 말하면 어떡하지? 눈물이 마구 흐르고 있는데. 아...이 무슨 주책이야. 언제부터 내가 너한테 정을 줬다고.
다행히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마도 꾹꾹거리며 우는 소리를 들은 것이 틀림없었다. 그렇게 손끝이 점점 허전해진다.

다시 만나는 거 맞지?

유치하지만 다른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이게 끝이 아니지? 다시 만나는 거 맞지?

난 쪽팔림을 무릅쓰고 고개를 들었다. 그녀의 모습은 벌써 물처럼 투명해져서 형체조차 점점 희미해지고 있었지만 나는 그녀의 입가에서 선으로 남은 미소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녀도 나처럼 울고 있을까?

"그럼. 이제부터는 같이 있을 거야."

하지만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사라졌고 나 혼자 남았다.
울고 있는 나 혼자 말이다.
이 텅 빈 방 안에.
.
.
.
.
.
.
'괜찮니? 이제 가야지?'
'누...누구야? 혹시..너?'
'그래. 내가 얘기했잖아. 같이 있을 거라고.'
'너....죽은 거야?..'
'넌 변함없이 유치하구나. 자유를 얻었다고 생각해줘. 일어나. 가야할 곳이 있어. 너한테 줄 것이 있거든. 진짜 너한테.'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난 여기 있는데?'

그녀의 웃음소리가 머릿속에 들려왔다.

'믿지 않겠지만 넌 내가 떠올린 대상이었어. 그립기도 했었지만 넌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걱정 마. 이젠 더 이상 니가 무섭지 않아. 오히려 가끔씩 귀엽기도 한 걸?'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어. 어딜 간다는 거야?'
'너를 불러낸 건 정말 잘한 일이었어. 언젠가부터 넌 방의 한 부분처럼 사라지지 않았지. 덕분에 이제 내가 자유를 찾았으니 너도 이제 떠날 때가 된 거지. 넌 내 의식속의 한 부분이니까. 자, 일어나.'
' ...아..뭐가 뭔지..'

그녀의 목소리는 밖에서 들려오는 듯도 하고, 머릿속에서 몽롱하게 속삭이는 듯도 했다. 내가...그럼 내가 그녀의 의식이었다는 말인가? 말도 안 돼. 믿을 수 없다. 무언가에 뒤통수를 맞은 듯 얼떨떨한 기분에 멍하니 내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발끝에서부터 서서히 몸이 투명해지고 있다.

'받아들여. 금방 익숙해질 거야. 아...그리고 너한테 사과할 게 하나 있어. 내가 거울 속에서 봤다는 병원 풍경. 사실은 좀 달랐어. 그때 난 알았지.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할 수 있었고. 미안해. 자...이제 가자.'

난 그녀의 손에 의지해서 일어났다. 하지만 다음 순간 비로소 나는 알았다. 더 이상 생각할 필요도 더 이상 움직일 필요도 더 이상 슬퍼할 필요도 없다는 것을 . 왜냐하면 나는 이제 '자유'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이 가능한 존재가 되어 원래 내가 있던 곳으로 돌아가고 있었기에. 그녀의 손위에 나 있는 작은 빛의 길을 통해서 말이다.
.
.
.
.
.
.
"자 운동하셔야죠? 어....아니! 간호사님 빨리!"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차트를 들고 뒤를 따르던 김간호사가 달려왔다. 보호사 최 씨를 밀치고 들어간 방 안엔 환자복을 입은 한 여인이 바닥에 엎드린 채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었다.
맥을 짚어 본 간호사가 다급하게 외쳤다.
"맥박이 잡히지 않아요! CPR 시작할 테니 보호사님 바로 가서 선생님 콜하시구요, 응급 키트 보내주세요! 빨리요!"
환자를 돌려 눕히고 CPR을 시작하는 간호사의 눈에 침대 아래 수북이 쌓여 있는 약봉지가 보였다.

<계속>

- 아카스_네팔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