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장거리 연애중인 20대 초반 대학생입니다. 남중 남고 공대를 와서 남자들만 득실득실했던 삶에 처음으로 절 좋아해주고 저에게 먼저 사귀자고 해준 여자가 있더랬습니다. 근데 저와 만난지 첫날에 바로 저에게 사귀자고 했고.. 전 처음엔 장난식으로 그냥 웃어 넘겼지만 다음날에도 아예 분위기를 잡고 사귀자고 하는 통에.. 어째어째 사귀게 되었습니다. 책임을 떠넘기려는건 아니지만, 사실 그 자리에 있던 여친과 제 친구들의 무언의 기류와 분위기가 한몫을 한것도 있었습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쓰자니 행여라도 아는 사람이 볼까봐 이 정도로 적겠습니다.
문제는.. 제가 여친을 좋아하질 않는단 거였습니다. 물론 제가 싫었으면 처음부터 아예 싫다고 잘라 말했겠지요. 싫어하는건 절대 아닙니다. 하지만 딱히 여자로써 좋아하질 않아요. 여친이 그 당시 저를 많이 좋아하는게 눈에 보였고, 당장은 아니지만 저도 차츰 좋아하게 될줄 알았고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고 표현도 많이 했습니다. 자꾸 말을 해야 그게 마음으로 발전될 것 같아서..
친구들한테도 나도 걔 좋아한다고 자꾸 이야기 했고, 장거리라고 걱정하는 여자친구에게도 나도 좋아하고, 공대생이라 주변에 여자 없으니까 걱정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100일이 됩니다.
여친이 생긴 뒤로 중간고사도 있었고, 여러 힘든일이 많았는데 그 여러 힘든때 단 한번도 여자친구가 생각난적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문득 깨달았죠. 아, 아무래도 난 얘를 좋아할수 없는가보다 하구요.
여자친구는 그래도 저 귀찮게 안하겠다고 연락 없어도 꾹꾹 참고 가끔씩 문자 한두개 보내서 제 기분 물어보는데.. 너무 미안합니다. 사실 여자친구가 문자 먼저 안하면 정말 생각도 안날것 같아요.
전 정말 아무것도 아닌 놈인데, 절 이렇게 좋아해줘서 너무 고마운데.. 아무리 생각해도 여자친구를 보면 처음 드는 감정은 좋다, 가 아닌 미안하다 입니다.
고민한지 꽤 되었는데, 어쩌다 주변 사람 (남 녀 한명씩) 두명에게 고민을 털어놓았더니 두명 다 여자한테 더 죄짓지 말고 어서 헤어져라, 라고 하네요.. (사실 [니가 개새끼다, 여자만 불쌍하다] 이런말을 안한 이유는 앞서 언급한 당시의 "구체적인 상황" 때문이에요. 보통은 제가 욕먹는게 당연한 경우지만 그 설명을 듣고나면 다들 한숨쉬면서 욕은 안하더군요.)
헤어지는거, 좋습니다. 말은 쉬운데 도대체 어떻게 말을 꺼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절대로 못할것 같아요.
헤어지는게 답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저를 그렇게나 좋아하는데 제가 먼저 헤어지자고 하면 얼마나 힘들어할지 너무 훤합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사귀자니... 절대로 안될일인게 뻔합니다. 좋아하지도 않는 상대에게 헛된 희망 주고싶지 않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