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수능 망치신 분들... 작년 생각나서 올려요
게시물ID : gomin_125909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시지.
추천 : 4
조회수 : 405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1/13 22:13:10


오늘 버스에 앉아 집에 오는데 마침 수능 끝나는 시간이랑 겹쳐 어느 고등학교 정류장에서 수험생들이 우르르 타는 모습을 봤어요.

두꺼운 패딩을 입고 백팩을 메고 손에는 종이가방, 그 안엔 도시락과 물통. 딱 제가 1년 전 수능 치러가던 차림이랑 똑같았어요.




음.. 제 얘길 하자면 저는 제가 수능을 보기 전에 지구가 멸망할거라 생각했어요 ㅎㅎ 수능이라니... 내가 수능을 본다니....?!

근데 생각보다 시간은 빨리 갔고, 저는 어느 새 패딩 입고 가방 메고 도시락 들고 수능 시험장에 들어서 있었습니다.

저는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이에요. 중요한 시험을 볼 땐 배아프고 손발 떨리고 심장 쿵쾅거리고 그래요. 집중도 잘 못하구요. 그래서 평소보다 점수가 안 나올 거라는 건 이미 각오를 하고 시험을 봤어요.

근데 각오한 것 그 이상으로 망쳤죠.

평소에 국어는 어렵든 쉽든 25~30분 남기고 다 풀고 등급은 거의 1등급, 뭔가 틀렸다 싶으면 2등급 초반이였는데 수능 땐 시간이 안남았어요. 지문이 눈에 하도 안 들어와서 계속 눈알굴리기만 했어요.

그렇게 멘붕의 1교시를 보냈더니 자신없던 수학도 완벽하게 망쳤어요. 수학 끝내고는 배고픈 것도 안느껴져서 밥도 먹는 둥 마는 둥하고 영어를 봤죠.

네 망쳤어요 영어도.. 어려웠다던 9월 모의고사 쉽게 풀어서 1등급 받았던 전데 ㅎㅎㅎ..

탐구요?

작년 화학1 정말 어려웠죠.. 화학1 보고 나니까 생명과학2 볼 때는 TCA회로...뭐더라......하고 있는 절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머릿속이 백지라는 말을 잘 체험했어요.

그렇게 수능을 망쳤고,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수험표 뒤에 답을 옮겨 적을 여유도 없었기에 가채점도 못했어요. 사실 풀었던 거 기억해내서 하려면 할 수야 있었겠지만 문제도 보기 싫었어요.





수능 끝나면 친구들끼리 성적 얘기를 하잖아요.... 그럼 평소보다 잘봤다고 하는 친구한테는 질투심이 들었어요. 친한 친구인데도... 나 진짜 못됐다 라고 생각하면서도 어쩔 수가 없었어요. 수능은 보통 시험이 아니니까요. 그냥 평소 학교 시험 망친거랑은 차원이 다르죠.

인터넷 커뮤니티에 들어가면 수능 얘기가 판을 쳐요.. 그 중 망쳤다는 사람이 있으면 동지애 생기고 그랬어요.

그렇게 수능 후기 글들을 보고 논술 시험도 보고 학교 드문드문 가고 집에서 컴퓨터만 하는 잉여로운 나날을 보내고 나면 수시 합격자 발표 시즌이 와요. 

저는..... 그 때가 최고로 괴로웠어요.

제 친구들이 다 수시를 붙었거든요. 인서울 좋은 학교들로요.

기쁜 일이니까 축하한다고 말을 해줬지만 속은 타들어갔어요.. 전 희망도 없는 예비 번호를 받았고, 정시로 가면 평소에 생각도 안 하던 대학교를 가야하니까요. 

매일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어요. 재수할 생각으로 카톡을 지우고 전화가 와도 안받았어요.

제가 정말 죄인 같았어요. 반 아이들 한 명 한 명 신경 써 주시던 담임선생님, 점수가 점점 오르니 보람있어 하시던 학원 영어선생님, 수능 전날 기도한다고 말해주셨던 학원 수학선생님, 초콜릿 포장에 편지 적어서 주신 학교 생물선생님..... 절 가르쳐 주셨던 선생님들이 다 생각났어요. 심지어 중학교 때 선생님들 까지도요.

그렇게 죄책감 느끼면서 폐인 생활하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내가 또 수능을 보면 긴장을 안 할 거란 보장이 어디 있을까.. 점수가 오르긴 할까... 다시 수험생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그래서 그냥 망한 수능 성적으로 정시 지원을 했습니다. 추가 합격으로 겨우 붙어서 지금은 대학교 다니고 있어요. 사실 아쉬운 마음이 좀 있긴 하지만 만족하면서 다녀요.





이번 수능 시험 잘 못보신 분들... 막 죄책감 들거에요..... 부모님, 학교나 학원 선생님들 생각도 나고.. 잘봤다는 친구 있으면 겉으론 웃어주지만 난 뭘까 하면서 속으로는 울고, 더 열심히 할 걸 후회되고 주변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들어도 와닿지가 않구요.

많이 괴롭다는 거 알아요. 그냥 울어요... 전 1년이 지났지만 그 때 생각하면 지금도 눈에 눈물 고여요.

좀 울다가 시간 지나서 마음이 추스러질 쯤에 재수를 할 지 성적에 맞춰서 갈 지 천천히 생각해 봐요.



여러분에게 전 얼굴, 이름도 모르는 인터넷 상의 네티즌 한 사람이지만.. 응원할게요.....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이 훗날 여러분에게 좋은 거름이 되길 바라요. 




생각하는대로 막 쓰다보니 두서가 없네요.. 긴 글 읽어줘서 고마워요!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