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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어떤 마을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
개울물 맑게 흐르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
물바가지에 떠 담던 접동새 소리 별 그림자
그 물로 쌀을 씻어 밥 짓는 냄새 나면
굴뚝 가까이 내려오던
밥티처럼 따스한 별들이 뜬 마을을 지난다
사람들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 떴다
박봉우, 휴전선의 나비
어데로 가야 하나
어데로 날아가야 하나
피흘리며 찾아온 땅
꽃도 없다
이슬도 없다
녹슨 철조망가에
나비는
바람에 날린다
남풍이냐
북풍이냐
몸부림 몸부림친다
우리가 살고 있다는 것은
고층빌딩이 아니다
그보다도 더 가난한 노래다
심장을 앓은
잔잔한 강물이다
바다이다
한 마리 나비는 날지 못하고
피투성이 된 채로
확 트인 하늘을 우선
그리워한다
오세영, 강물은 또 그렇게
강물은 흘러 흘러 어디 가는가
바람인가, 하늘인가, 꽃구름인가
하늘은 높아 높아 그리움 되고
바다는 깊어 깊어 슬픔 되는데
흰 구름 저 멀리 무지개를 하나 걸어 놓고
강물은 울어 울어 어디 예는가
빛 고운 슬픔 살포시 안아
조약돌로 가라앉는 그리움이여
들녘을 헤매던 하늬바람도
해어름 모란으로 지고 있는데
강물은 흘러 흘러 어디 가는가
지평선 넘어서 수평선으로, 수평선 넘어서 하늘 끝으로
강물은 또 그렇게 흘러가는가
길섶에 내리는 실비같이, 눈썹에 내리는 이슬같이
목숨은 또 그렇게 흘러가는가
신동엽, 서둘고 싶지 않다
내 인생을 시로 장식해 봤으면
내 인생을 사랑으로 채워 봤으면
내 인생을 혁명으로 불질러 봤으면
세월은 흐른다. 그렇다고 서둘고 싶진 않다
김현승, 고독의 끝
거기서
나는
옷을 벗는다
모든 황혼이 다시는
나를 물들이지 않는
곳에서
나는 끝나면서
나의 처음까지도 알게 된다
신은 무한히 넘치어
내 작은 눈에는 들일 수 없고
나는 너무 잘아서
신의 눈엔 끝내 보이지 않았다
무덤에 잠깐 들렀다가
내게 숨막혀
바람도 따르지 않는
곳으로 떠나면서 떠나면서
내가 할 일은
거기서 영혼의 옷마저 벗어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