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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블로와 MBC 논란에 대한 두개의 글
게시물ID : sisa_91373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블라블라Ω
추천 : 10
조회수 : 687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0/10/05 10:31:04
인터넷 서핑중에 타블로와 MBC 스페셜에 관한 글을 읽어봤는데, 상당히 재밌던데요.. 
오유님들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MBC 스페셜>
MBC스페셜이 타블로 문제를 다룰 것이라는 예고를 보았을 때 솔직히 의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타블로의 학위조작 문제를 2회에 걸쳐 다룰 만한 사안인지 궁금했던 것이다. 그런데, 첫 방송이 나간 뒤에 나온 다음 편 예고를 보니 대충 감이 왔다. 처음부터 이 프로그램은 타블로 따위는 관심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프로그램의 의도가 이번 타블로 사건을 이용해서 '인터넷 여론'을 믿을 수 없는 악플러의 난동으로 이미지화려는 것에 있다는 느낌이었다. 

이런 짐작이 사실이라면 타블로나 타진요나 모두 어떤 정치적 의도를 위한 들러리에 불과할 것이다. 타블로는 타진요를 제물로 바치기 위한 미끼에 지나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아마 후속편은 타진요의 악플들을 사례로 제시하면서 인터넷이 얼마나 신뢰할 수 없는 마귀의 소굴인지를 설득하려고 들 것 같다. 특히 심각한 망상증을 보이는 타진요의 매니저 왓비컴즈가 여기 저기 싸질러 놓은 악플들은 이런 푸닥거리를 위한 좋은 장단이 될 듯하다. 

과연 이런 추론은 타당성을 가질까? 공정하게 접근할 수 있었음에도 노골적으로 편파성을 드러내며 프로그램이 제작되었다는 사실에서 다분히 이런 MBC스페셜팀의 의도가 읽힌다고 말할 수 있겠다. 인터넷에 대한 보수우파의 논리를 이번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에서 발견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하튼, 2편을 본 뒤에 최종 판단을 내려야겠지만, 이 추론이 사실이라면, 이번 타블로 논란을 다룬 MBC스페셜은 흥미로운 분석사례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일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런 기획이 가능했던 걸까?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지난 인사청문회에서 트위터를 위시한 인터넷 여론의 위력이 여전히 강고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다. 2008년 촛불에서 예상치 않게 일격을 당했던 한국의 보수우파에게 인터넷은 언제 다시 나타날지 모르는 무시무시한 크라켄이다. 이 프로그램을 만든 피디가 자신의 프로그램에 내재한 다층적 효과를 알고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타블로나 타진요나 피디나 영문도 모른 채 모두 인터넷을 악마화하는 작전에서 총알받이 노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사태가 돌아가는 큰 그림을 그려보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이번 MBC스페셜도 인터넷에 기반을 둔 시민사회의 역동성에 대한 기득권세력의 공포를 반영한다는 관점에서 접근해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타블로 논란?>

타블로가 '미움'을 산 이유는 예능프로그램의 특징을 잘 몰랐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의 예능프로그램에서 중요한 것은 '바보'나 '인형'이지 스탠퍼드대학 영문학과를 조기 졸업한 석사 '천재'가 아니다. 그가 예능프로그램에 나오지 않고 드렁큰 타이거처럼 음악만 했다면 상황은 상당히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인기'를 원했고, 이 과정에서 과장과 실수가 겹치면서 이른바 '미국 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사람들'의 반감을 초래했던 것이다. 한국 사회를 너무 만만하게 봤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한국은 겉으로 보기보다 훨씬 야만적인 구석이 있다. 게다가 법은 언제나 이 야만성에 대해 사후적으로 작동할 뿐이다. 외국에서 성장했을 타블로는 이 사실을 몰랐다고 할 수 있다. 

흥미롭게도 타블로를 집중적으로 공격한 이들이 대체로 미국에서 대학을 다녀본 사람들이거나 자녀들을 진학시킨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사실이다. 타진요의 매니저인 '왓비'는 미국 거주자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자신의 '경험'을 상식으로 삼아서 타블로를 비판했다. 전형적인 한국 시민사회의 논리를 여기에서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미국(또는 유럽)의 상식을 보편적인 상식으로 전제하고 대상에 대한 비판적 거리를 확보하는 사고의 구조가 한국식 민주주의의 메커니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는 경우이다. 어쨌든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엘리트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이들이 타블로의 학력을 의심하고 학위조작을 확신했다는 것은 상당히 의미심장하다. 이들이 타블로의 학력에 의문을 제기하는 근거 중 하나가, "미국의 명문 스탠퍼드대학을 나왔다는 사람이 그렇게 멍청할 수 있나?"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능프로그램에서 보여준 타블로의 어리숙한 모습들을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결국 이런 발언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미국의 명문대학 학위에 대한 무조건적인 신뢰라고 할 수 있다. 스탠퍼드대학의 교육체계는 거의 완벽하기 때문에 그 과정을 졸업하고 타블로처럼 행동할 수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여기에 깔려 있다. 

또한 타블로를 둘러싼 논란은 전형적인 마녀사냥의 형식논리를 체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개똥녀나 디워, 또는 황우석의 경우와 상당히 다른 측면이 여기에 도사리고 있다. 개똥녀 사건은 개인에 대한 이지메였고, 디워는 반지성주의, 그리고 황우석은 민족주의에 근거했지만, 타블로는 이 모든 것이 복합적으로 작동하는 한편, 세 범주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문제를 새롭게 드러내고 있다. 사회정의를 위해서 진실이 승리해야한다는 '신념'이 개입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이 사건은 단순하게 신정아처럼 학위조작 문제라고 볼 수 없다. 타블로 논란은 법과 사회, 그리고 국가의 관계 문제를 매개로 회전한다는 측면에서 다분히 근대적인 마녀사냥의 양상을 띠고 있다. 마녀사냥의 조건은 시민사회와 법의 관계가 완전히 정립되지 못한 상황, 급격한 사회변동으로 인한 가치판단의 혼란, 대상에 대한 혐오를 뒷받침할 합리적인 근거, 사회정의에 대한 집단적 공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을 주도하고 선동하는 집요한 지도자와 이를 추종하는 열렬한 군중의 존재이다. 마녀사냥에서 중요한 것은 개별 지식들을 판타지의 논리에 따라 재구성해서 현실을 설명하는 근거로 제시하는 행위이다. 타진요에 들어가보면, 이 과정들이 어떻게 그럴 듯하게 합리적 과정을 거쳐서 이루어졌는지를 명쾌하게 알 수가 있다. 

타블로에 대한 마녀사냥은 어떤 변화를 예고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논란의 중심에 선 이들이 '법'을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것도 재미있지만, 궁극적으로 마녀사냥은 법과 시민사회, 그리고 국가의 관계가 정립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징후라는 사실을 이번 사건은 다시 한 번 확인시켜준다. 마녀사냥에 대한 '비판'은 계몽주의로부터 공급되는 것이고, 이 과정에서 개인은 법의 금지를 내면화하고 국가는 이를 포섭하며 재현한다. 말하자면 마녀사냥은 시민사회를 요동치게 만드는 사드적 주이상스를 '나쁜 것'으로 규정하고 제거하는 과정을 필연적으로 수반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녀사냥 자체가 사드의 경우처럼 '자신의 억압'을 극장화해서 아버지의 법에 자신이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를 호소하는 도착적 퍼포먼스라는 사실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런 까닭에 마녀사냥의 주체는 결코 법을 넘어가는 주이상스적 지향을 끝까지 추구하지 못한다. 

마녀사냥에 대한 계몽주의적 비판과 규제는 곧 주이상스에 휘둘리는 주체의 망동을 법의 이름으로 심판하는 절차이기도 하다. 법의 금지를 내면화한 '깨어난 개인'이 그렇지 못한 '몽매한 개인'을 비판하는 구조가 여기에서 발생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근대사회의 가치체계를 구성한다. 이렇게 법은 계몽주의의 논리를 체득하게 되고, 개인은 근대적 시민으로 국가에 자신의 공백을 고정시키는 절차를 통해 다시 태어난다. 이런 맥락에서 이번 타블로 논란은 변화의 와중에 있는 한국 사회의 상황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거울상이기도 하다. 이런 전체 과정을 파악하지 못하고 인터넷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단순논리로 문제의 해결책을 찾는 것은 동그라미를 네모 속에 집어넣으려는 불가능한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인터넷은 단지 이 모든 것을 실시간으로 우리에게 보여주는 스크린일 뿐이기 때문이다. 

출처는 여기 : http://wallflower.egloo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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