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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물ID : panic_745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머리개큼
추천 : 5
조회수 : 1270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4/11/16 03:45:28
0.
시커먼 하늘에 실눈 뜬 달은 눈길을 내리찍으며 껄쩍인다. 간간히 은빛 바람이 콘크리트 건물사이를 내리 앉았으며 사람들은 미동도 않는다.
쭉 뻗은 도로에 간간히 박힌 가로등 몇 개가 사람들을 비쳤으나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몸도 천때기로 둘둘 감추어 놓았다.
어디선가 고양이 우는 소리가 울린다.
 
1.
잠은 끝내 오지 않는다.
아마 저 너머 침대 위의 구멍난 필통 때문일 것이다.
발목째 뽑힌듯 발바닥은 시렸으나 떨리진 않다.
눈은 의무감에 사로잡혀 이리저리 굴러 하늘높이 날라가 버린다.
하늘은 추웠다. 12월의 마지막 주였다.
스위치는 손에 닿았으나 누르지 않는다. 보온병을 하얀색 머그컵에 따른다.
피다!
동물의 육신을 고아낸, 진하디 진한 물이다!
그녀는 속을 게운다. 께림직한 소리가 울린다.
손은 보나마나 빨갛다. 컵 사이로 시뻘건 폭포가 떨어진다.
떨어트린다.
그와 동시에 바닥엔 반듯한 금이 가고 그대로 접히기 시작한다. 그녀는 추하게 사기 유리 덩어리에 엉덩방아를 찧었으며 중력에 의해 싱크대 구석으로 굴러간다.
쿵 소리와 함께 경고하는 '삐삐-'소리가 났으며 심장은 진동하기 시작한다.
저 멀리서 어떤 늙은 사내가 우는 목소리로 부르 짖는다.
그러나 그녀는 그 소리를 듣지 못한다. 검은 고양이는 그녀의 귓등에 다가와 "아가야, 저기를 보아라." 라 속삭인다.
거기엔 필통안에 있던 갈비뼈 속의 새파란 눈이 나를 노려본다.
숨이 안 쉬어진다.
다리는 무서워서 도망을 치고 싶어한다.
억센 나뭇가지가 끊어지는 소리가 울리며 무릎 연골이 부서진다. 그대로 종아리는 방 밖으로 도망친다.
몸이 너무 춥다. 감기인 것 같다.
그녀는 넓찍한 침대 위로 올라갔으며 잠을 청하기 위해 벽에 걸려있는 빳빳한 머플러로 목을 베고 칭칭 감아 눈을 감는다.
늙은 사내는 기어이 기어와 그녀의 다리를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잠깐 몸이 덜덜 떨리나 싶더니 이어 그녀의 소원대로 꿈속에 깊히 빠진다.
 
2.
그녀는 일어나며 머리를 찧는다.
한 번은 모자랐던 것일까?
다시 머리를 더욱 힘차게 쿵 박는다.
 
3.
그녀는 침대 위에서 일어나며 이번 달 동안 컨디션이 저조했음을 인정한다.
보았던 끔찍한 일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이럴 바엔 차라리 죽는 게 낫다.
거지 같은 악몽이다.
 
4.
의문스럽게도 누워 있던 자리에 필통이 있었다.
잠꼬대는 심한 편인 것을 알고 있었으나 이 정도일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녀는 배에 살이 찐 것을 자각한다. 필통은 배에 눌려 속에 있던 것이 비집어 나와 있다.
배로 필통을 터트린 것이다.
세상에.
 
5.
깜짝이야!
배에는 피가 흥건하다.
그녀는 눈을 뜨고 처음으로 빨갛게 물든 옷을 인식한다.
놀라 침대에서 벌떡 일어난다.
 
6.
그녀는 체리 매니큐어를 닦아낸다.
수건으로 박박 문질러 댔으나 지워지진 않는다.
짜증이 확 달아오른다. 신경질 적으로 빨간 병을 던진다. 깨지진 않는다.
피곤에 모든 것을 미루고 잠을 청한다.
될 대로 대라.
 
7.
시계를 던지고 문을 쾅 닫는다.
시끄러. 짜증나니까 꺼져버려.
 
8.
상당히 늦은 시간이다.
밖은 칠흑같은 어둠이 끼어 있다.
그녀의 아빠는 거실에 앉아 그녀가 문을 열고 오자 무슨 일 있었냐며 온다.
 
9.
괜찮아.
별일 아니야.
그녀는 나지막히 혼잣말 하듯 웅얼거린다.
울리는 두통을 참으며 주먹을 꽉 쥔다.
 
10.
그녀는 피시방에 가서 선불로 자리를 잡는다.
사이트에서 자신의 등급을 계산한다.
숫자는 손가락 개수를 넘어간다. 전부 글러먹었다.
 
11.
다 그놈때문이다.
자신과 같은 반인 그는 항상 자신을 이따금씩 보는 것 같았다.
얼굴은 반반하고 어깨가 넓직한게 참 다부졌다.
이번 3학년때 처음으로 같은 반이 되어 알게 됬고, 항상 웃으며 다가와서 바로 친해졌으나 꼴랑 낚인 꼴이 되었다.
너 때문에.
그녀는 이를 박박 간다.
이대로는 대학 진학도, 앞으로 미래도 힘들거야.
스스로 자책하며 주저 앉으나 이내 다시 벌떡 일어나 달려 간다.
 
12.
그녀는 공터로 간다.
공터에서 마냥 뺑뺑 다섯바퀴 넘게 돌았으나 누구도 오지 않는다.
그네를 타며 찬 바람을 느낀다.
맑은 콧물이 질질 흐르지만 닦지 않는다.
 
13.
가던 도중에 친구한테 늦게 메일이 온다.
누군가 시험 중에 나갔다고 하는데 학교에서는 애들이 난리도 아니었다 한다.
참 웃지기도 않는 일이다.
그 사람이 누군지도 본인이 모르면서 나한테 한단 말인가.
 
14.
앉아있던 자세를 고치고, 그녀는 일어서서 빨리 자리를 뜬다.
또 두통이 도질 것만 같다.
 
15.
두통은 느닷없이 영어 듣기 시간에 왔다.
첫 번째 문제부터 명랑한 여자의 목소리에 구토감이 밀려왔다.
입 밖으로 새나오는 욱 소리에 주변 애들이 힐끔 쳐다 보았다.
목을 감싸고 머리를 찬찬히 뉘었으나 소용 없는 짓 같다.
기분은 엉망이다.
 
16.
그는 바로 옆 반이다.
그는 점심 시간이 되자 와서 무슨 일 있냐며 물어 본다.
그녀는 저절로 배시시 웃는다.
아니? 없는데?
말이없다.
되려 이리저리 말을 하니 멋쩍은듯 웃지를 않는다.
그의 팔을 툭 치며 준 커피 잘 먹었다 하니 그렇냐며 슥 가버린다.
그녀의 볼이 발그랗다.
새끼. 쑥쓰러워 하긴.
 
17.
그녀는 아직도 떨리는 마음으로 국어 문제를 교실에서 풀어 나간다.
얼풋히 그의 눈매가 참 날카롭다고 생각한다.
사람의 감정이란 참 묘하고 애매한 것이다.
문제를 다 풀고 시계를 보니 10분이 남아 그의 반반한 얼굴을 어루만지는 생각을 한다.
 
18.
학교 교문 앞에 사람들이 북적인다. 학생들이 미꾸라지 마냥 슥슥 지나가는 사이로 그녀는 같이 끼어 들어간다.
그때 그는 그녀를 붙잡는다.
그는 커피를 들고 마시라며 건네 주고 간다.
그녀는 그가 주는 커피라면 언제든 받아 마실 것이다.
커피가 따뜻하다.
그녀는 손을 둘러 녹인다.
 
19.
집 안에서는 그녀가 사랑하는 고양이 새끼 한 마리가 있다.
태어난지 몇달도 안되어 주먹만하며, 눈을 뜬지 몇 일도 안 됬다.
그녀는 작은 고양이 새끼를 길거리에서 주웠으며 강한 애착심을 느낀다.
아마 제 애미에게서 버림을 받은 모양이다.
이 생각에 그녀는 새끼에게서 동질감을 느끼고 엄마 처럼 애를 아꼈다.
그녀의 아빠는 요 근래 다리를 다쳐서 걷지도 못하여 누워 있는 통에 고양이를 신경 쓰지 않는다.
단 아빠는 내일이 수능인 딸이 고양이에게 정신이 팔려서 시험을 망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든다.
그녀는 그런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
이 고양이는 그녀 스스로에게 복을 물어다 줄 고양이라고 생각하며 수능 전날의 운 좋은 네잎클로버 같은 기분이 든다
둥글둥글한 외관에 시험 성적이 오르라는 뜻에서 그녀는 고양이에게 '필통'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20.
그녀는 고질적인 조울증을 겪었다.
감정기복이 매우 컸는데 그녀의 선천적인 정신 질병이 한 몫을 했다.
몇 년간 살아오며 그로인해 어려움이 많았고, 마찬가지로 수능 전날인 그녀는 매우 떨린다.
허나 그녀는 좋아하는 그와 '필통'이 있기 때문에 잘 해낼 수 있을 거라 장담한다.
 
21.
거꾸로 읽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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