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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작 에세이] 올해 봄에 썼던 에세입니다.
게시물ID : readers_913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게이게이거
추천 : 1
조회수 : 177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3/10/06 22:35:27
 버스커 버스커 2집이 나오고 나니 버스커 버스커를 좋아했던 한 친구가 생각이 나서 한번 올려봅니다. 예전에 쓴거라 지금 다시보니 감회가 새롭긴 하네요. 좀 부끄럽지만 글이란건 나를 위하기 보단 남에게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올려봅니다.

 

학교 식당 근처에는 수많은 벤치가 있다. 그 곳에 가만히 앉아 귀에 이어폰을 꼽고 앉아서 주위를 살피다보면 나와 같은 사람들이 여럿 보인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여학생은 혼자 가만히 앉아 누구를 기다리는지 노래를 들으며 시간을 계속 확인한다. 그러다 이분쯤 지나면 키가 쭉 뻗고 말끔하게 생긴 남자가 그녀의 앞에 선다. 그가 내민 손을 그녀는 수줍게 붙잡고 사뿐하게 일어나 나와는 반대방향으로 걸어간다. 그녀가 사라지는 방향을 유심히 보다가 다시 정면으로 고개를 돌리면 이번에는 남녀가 함께 앉아있다. 둘은 서로의 손을 마주잡고 이야기를 하다가 활짝 웃는다. 그러다 여자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부끄러운 듯 다시 고개를 돌려 남자와 이야기를 한다. 주위에는 커플로 가득하다. 이 벤치에서 혼자 앉아서 음악을 듣고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다. 따가울 것 같은 햇볕은 시원한 바람이 불면서 따사롭게 만들어주고 있다. 그래서 그런가. 점점 봄에는 커플들이 북적인다. 웃기게도 그것이 실내나 실외나 별반 의미는 없는 것 같다.

바람결에 나뭇가지는 살랑이고 발끝을 흔든다. 반년전만 해도 귀찮은 듯이 발을 털어내 나뭇잎들이 모두 후드득 떨어지곤 했는데, 지금은 무엇이 그렇게 부끄러운지 살랑이기만 한다. 바람결에 나뭇가지가 몸을 흔들 듯, 여자들이 입은 스웨터도 흔들리고 여자들의 마음도 흔들리는가. 여자가 봄을 탄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것은 아닌 것 같다. 매년 봄만 되면 여자들도 자신의 가지를 살랑이고 나는 그 가지들이 흔들리지 않게 붙잡아 버리고 싶다.

작년에 만났던 그녀는 나에게 우리 벟꽇 축제보러 가자고 매일 날 흔들었다. 그때는 벚꽃이면 벚꽃이지, 왜 벟꽇축제라고 하나 싶어서 뭐라고 하려고 했지만, 나는 여자 앞에선 항상 연약해져서 그런 것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녀는 틈만 나면 벚꽃 축제를 보러가자고 했고, 그 다음달에는 서울 재즈 페스티벌에 가자고 독촉했다. 그다지 재즈란 장르엔 관심도 없었는데 가격 또한 하루에 10만원이라니, 알바해서 내 밥값하기도 힘든 상황에 기가 차긴 했다. 그런 곳에 가자고 하는 그녀가 한심스러웠다. 그날 그녀에게 연락했다. ‘재즈 페스티벌이 언제야? 벟꽇 축제는 언제 갈까?’

아침 4시에 일어나 밥을 먹고 지하철 첫차를 탄다. 그렇게 6시에 호텔에 도착하고, 일할 준비를 한다. 손님께 음식을 가져다주고 돌아오며 연락하고, 식기들을 챙기며 연락하고 뭘 하던 연락했다. 일이 늦게 10시에 끝이 나고 집에 오면 열한시 반쯤 된다. 씻고 잘 준비를 하고 나면 열두시. 그때부터 그녀와 또 연락을 한다. 아침 두시까지. 두 시간 뒤에 나는 다시 출근준비를 했다.

벚꽃 축제, 재즈 페스티벌은 가본 적도 없다. 그 전에도, 그 이후에도 지금까지 가 본적 없다. 나는 혹은 그녀는 봄을 그렇게 많이 탔고, 봄이 끝날 때 우리도 끝났다.

그녀와 재즈 페스티벌에 가기러 했던 날은, 나도 모르게 술을 많이 마셨다. 집에서 우리형에게 그녀를 데려와라며 발로 걷어찼다고 하던데, 기억나지 않는다. 봄이 애매하게 지나며 여름이 되듯, 그녀와 나도 애매하게 지나며 각기 다른 사람에게 넘어갔다. 그렇게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게 우리는 서로 기억에서 잊었다.

누군가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면 하나의 러브 스토리처럼 생각할 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단 하나다. 나는 그녀에게 봄을 느꼈고 그녀는 나에게 봄을 느꼈다. 계절 또한 봄이었을 뿐이었다. 매년 지나가는 일 중에 하나다. 올해도 봄이 오는 것 같지만, 매년 이런 봄은 그리 반갑진 않다. 봄처럼 조용히 왔다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연락을 하는 나를 발견하며 봄이 왔다는 것을 느낀다. 그녀도 봄일지는 아직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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