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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모든 악은 군대에서 출발한다.'
게시물ID : military_508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metal1004
추천 : 2
조회수 : 590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1/17 11:30:42

'사회의 모든 악은 군대에서 출발한다’고 단정짓는 것은 너무 군대라는 것을 몰아붙이는 게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 당시에는 정말 그렇게 느꼈습니다.

사실 생각해보면 저는 군대에서 잘 풀린 쪽에 속하네요. 우선 저의 군 생활을 말해보자면...


1. 가장 친했던 동생과 함께 입대해서 함께 신병 훈련까지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동반입대 따위는 없었으니까, 이 정도면 운이 좋았던 거죠.ㅎ 

그 후에는 갈라졌기는 하지만, 가장 힘든 시기를 아는 사람과 함께했다는 것이 힘이 되었죠.


2. 어떤 부대를 가든 전입하면 가장 중요한 것일 텐데...

말하자면 풀린 군번이었습니다. 그게 뭐냐면, 딱 부대에 전입했는데, 바로 위의 선임이 높은 계급이었던 것이죠. 또 그 위로 주루룩 병장들뿐이고요. 이게 뭐가 좋냐면, 이등병 때 상병 이상인 선임이 만약 바로 윗 선임이라면 그 이등병이 일병 쯤 됐을 때는 이미 그 소대에서 왕고가 되어 있을 테니까요. 이등병 때의 병장들이야 그때 되면 전부 제대했을 테고요. 고작 일병 달았는데, 왕고가 되는 것은 남은 군생활을 지나치게 편하게 보낼 수 있다는 것이죠.ㅎ

암튼 제가 그런 군번이었습니다. 부대에 딱 들어가니 제 바로 위에 일병 두 명, 그 바로 위에 상병 말 이상들뿐이더군요. 나머지는 죄다 병장들...ㅎㅎㅎ 게다가 일병 두 명은 다 다른 부대 지원병. 한 명은 운전병, 한 명은 취사병. ㅎㅎㅎ 그야말로 풀려도 제대로 풀린 군번이었죠.

그런 덕분에 전입하자마자 이유도 모른 채 침상으로 끌려올라와 흠씬 두들겨 맞긴 했지만요.ㅎ


3. 전방에서 무려 군생활의 반 이상을 보냈습니다.

제가 전입한 부대가 전방에 배치되는 사단이어서 저 또한 철책 근무를 서야 했죠. 이건 장단점이 있겠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좋은 점은 훈련이 없다는 것. 군 생활에서 힘든 게 여러 가지이지만 훈련은 제일 귀찮고, 짜증나고, 힘들거든요. 혼나고 맞아도 훈련이 저는 젤 싫더군요;

그래서 전방에 들어가니 훈련이 없어서 저는 좋았네요.

물론 사방에 사람은 없고, 온통 초록초록... 생명이 있는 건 짬고양이, 고라니, 너구리, 멧돼지, 토끼... 그런 것들뿐이기는 하지만 말이죠.ㅎ 

밤새 북쪽을 바라보며 멍한히 바라보며, 깊은 명상에 잠길 수 있는 것은 덤 중에 덤이기도 하고.ㅎㅎㅎ 


4. 교육 훈련을 가서 군단 표창을 받은 것은 그때까지 인생 최대의 성과였네요.

폭파 교육이라고 군단 단위로 시행하는 교육이 있었거든요. 군대 단위를 보자면 ‘군단’은 일개 병사가 생각할 수 있는 최상위라고 할 수 있을 텐데, 무려 모든 사단의 브레인들이 모인 그 교육에서 1등을 해버린 거죠.ㅎㅎㅎ

사회에 있을 때는 항상 실패만 하던 사람이었어요. 도전하던 것들은 거의 다 실패로 돌아갔고, 어찌보면 어쩔 수 없이 군대라는 곳으로 몰아세워졌던 시절이죠. 마치 불주사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군입대를 기다리고 있었고, 그저 얼른 지나가야 하는 하나의 체벌처럼 생각했죠.

그런데 이런 성과를 이루고 보니 군대에서의 자신이 대단하게 느껴지기도 했어요. 교육을 좋은 결과로 마치고 돌아오니 부대에서도 엄청나게 인정을 받기 시작했죠. 괜히 우쭐해지기도 했고, ‘나는 군대 체질인건가.’ 착각하기도 했죠.ㅎ 

하지만 행운 같은 것에도 불행이 숨어 있었는데...

당시 사단장이 바뀌면서 포상휴가가 너무 많다며, 이 후로는 포상휴가는 없다고 못을 박고 들어오셨거든요; 있던 휴가도 다 자르시고; 하필이면 그때랑 맞물려 있어서...

사실 군단 표창이면 사단장 포상휴가로 13박 14일 휴가는 당연한 거였는데...

대대장님도 미안하다시면서 사단장님의 원칙이라서 어쩔 수 없다라더군요. 그래도 대대, 연대 쓸 수 있는 휴가를 다 모아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끌어온 휴가를 함께 교육받은 다른 부대원들에게도 나눠주자셨고... 함께 고생한 교육 동기들을 생각하며, 있지도 않았던 의리에....;

결과적으로 저는 고작 연대장 표창으로 5박 6일 휴가... ㅎ

그래도 그게 어딘가 했어요. 뭐 휴가 나가도 사실 그다지 할 것도 없었고, 나가면 좋지만...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려고 했던 기억이네요. 지금과 다르게...

여하튼 이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인정받아서, 뒤에는 또 더 잘 풀리게 되지요.ㅎ


5. 병장 때부터는 밴드 동아리를 구성해서 거의 놀고 먹었던 기억이네요.ㅎ

전방 근무를 마치고 부대가 후방으로 내려왔을 때 저는 이미 병장이라는 계급을 달고 있었죠. 풀린 군번이다 보니 병장까지 순식간에 조기진급이 가능했고요.ㅎ 남들보다 한 4개월 정도 먼저 병장 달았죠.ㅎ

그런데 시기가 잘 맞은 건지... 당시 ‘병영선진화’라는 요상한 용어가 흘러들어왔고, 동아리라는 것을 만들고 활동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준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저도 얼른 동아리를 만들었죠. 처음에는 영화 제작 동아리. 동아리 발표회가 있을 것이고 결과물이 있어야 한다는 말에 뮤직비디오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ㅋ 더불어서 밴드 동아리를 만들었어요. 영화 제작 동아리는 후임에게 넘기고 저는 밴드 동아리에 전념했죠.

그게 신의 한 수였을지...ㅎ

동아리 발표의 꽃이라면 역시 공연이니까요. 그때부터 또 부대의 지원이 이어집니다. 워낙에 윗선에 인정받은 게 있는 것일까..ㅎ 커다란 동방뿐만 아니라 드럼, 기타 등을 빌려주었어요. 심지어 부족한 악기는 직접 나가서 사오라고 돈도 주고, 2박 3일 특박도 줬습니다. 그렇게 자주 들락날락할 수 있었죠.ㅎ

당시 가을 쯤이라 추계진지공사가 한창이었는데, 저는 쏙 빠지고 동아리 활동이나 하고 특박이나 다녀오니... 사실 소대원들에게 엄청나게 미안했죠. 분대장이고 소대 선임이라는 사람이 만날 소대 주요 행사는 빠지고 동아리 활동이나 하고 있으니... 나중에 저녁 점호도 열외였으니 말 다했죠.^^;

동아리는 승승장구했네요. 적어도 지금 생각하기로는.ㅎ 

다른 부대의 기타 잘 치는 이등병을 영입하고, 드러머, 보컬도 잘 구하게 돼서 서로 다른 부대원들로 이루어진 밴드를 구성했습니다. 다들 실력이 좋아서 특별히 연습도 많이 필요없었죠. 지금와서 밝히지만, 동아리 활동한다고 정말 많이 놀았네요. 수다떨고 간식먹고, 음악 틀어놓고 헤드베잉이나 하면서 말이죠.ㅎㅎㅎ 거의 병장 시절은 그렇게 보낸 것같네요.ㅎ

그런데 변명하자면 대대장님의 지시이자 명령이었으니 어쩔 수 없기는 했어요. 무조건 동아리 활동에 전념하라는 지시였으니까요. 군대는 명령과 복종의 사회니까... 라고 변명해봅니다.;^^;


이렇게 잘 풀려서 군 시절을 잘 보낸 것에도 불구하고 ‘사회의 모든 악은 군대에서부터 나온다’라고 생각해버리는 것은 몇몇 사건들 때문입니다.

동아리 발표회도 끝나고 저는 슬슬 말년으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좀 일찍 말년을 맞이한 편이었죠.ㅎ 힘들고 짜증나는 훈련이 이어지고, 미래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은 복잡해져 있었죠. 인정받아서 ‘말뚝박아’라는 소리도 자주 듣게 되었고(사실 병장 쯤 되면 누구나 한 번은 이런 유혹을 겪게 되죠.) 병기하사는 극딜까지 하면서 자신의 후임으로 들어오라고 꼬였습니다. 

사회에서 실패만 경험했던 사람이니 사회에 다시 나가는 게 자신없기도 했고, 병기하사의 꼬임이 입맛 다시게 하는 수준이라... 조금은 생각해보는 때였습니다.

그쯤 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러 기억이 1부터 100까지 정확하지는 않네요. 사실 각 장면 장면이 뚝뚝 끊어지는 느낌. 

솔직히 별거 아닌 사건일 수 있지만, 생각해보면 별거 아닌 게 아니라 별거 인 사건이라 생각이 드네요.


훈련 때였는데, 부대 주변에 진지를 구축하고 우리 부대를 사수하는 훈련이었습니다. 말년이니 부대에서 제일 가까운 데서 자리 잡고 쉬고 있었지요.ㅎ

그러다 부대 건물 뒤편에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게 되었어요. 중대장, 소대장 두 분과 일부 병사들이 둥그렇게 모여 서있었습니다. ‘뭐지?’라는 의문이 들어 슬금슬금 그쪽으로 가보게 되었죠. 그다지 관심없는 척 좀 거리를 두고 그쪽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모두의 얼굴은 황당하다는, 멍한 표정이었습니다. 조금 더 궁금해서 가까이 다가가니...

그들이 둥그렇게 모여 있는 그 중앙에는 작은 구덩이가 파져 있었습니다. 구덩이에서 시체라도 나온 건가 했는데...

구덩이 사이로 보이는 것은 다행히 시체는 아니더군요. 시체보다야 덜하지만...

신형 탄띠, 탄입대, 엑스반도, 물통 그리고 군장, 철모 등... 각종 신형 보급품들이 그 구덩이 안에 묻혀 있는 것이 보이는 겁니다. 그 수도 적지 않아서 단순히 한 개인이 묻은 게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죠.

중대장님은 그 주위를 더 파보라고 군수병에게 시켰습니다. 얼굴이 하얗게 질린 군수병은 삽질을 하기 시작했고, 예상보다 더 많은 신형 보급품들이 쏟아져 나왔죠. 다들 맨붕인 상태로 그 구덩이를 쳐다만 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소대장님이 군수병에게 물어봤습니다.

“이게 뭐냐, 어떻게 된거냐?”

답은 우리 부대가 전방에 투입되기 전 검열이 나온다고 했을 때 이미 전역한 군수병이 급하게 장부를 제대로 정리하지 않아 남는 것을 다른 부대원들이 작업이니 교육이니 나갔을 때 몰래 막사 뒤에 땅을 파고 자신이랑 둘이서 함께 묻었다는 겁니다. 그 많은 신형 보급품들을...

말하자면 보급받고 체크하지 않은 보급품들을 장부에 정리도 안 하고 나눠주지도 않고 짱박아 둔 걸 검열나오면서 들킬까봐 묻어서 처리한 것이죠. 이게 어떻게 가능한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도저히 머리로 생각해서 나올 답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한숨만 흘러나오다가, 소대장이 꿀밤을 먹이며 농담하듯...

“하려면 안 들키게 하지, 이놈아.”

그냥 군대라는 데가 썩었구나 느꼈죠.

그동안 이유없이 맞기도 하고 부당하게 얼차려 받아도 군대니까라고 넘겼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졌습니다. 사실 당시에는 그다지 충격도 아니었어요. 그래 그냥 제대하면 그만이다 생각하기도 했고... 하지만 이등병 시절 보급이 부족하다고 6.25 때나 썼던 것같은 낡고 낡은 장비를 지급받아 사용했던 기억이 억울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그 오래되고 지저분한 장비를 몸에 달고 얼마나 개고생했던가...

책임질 놈은 이미 제대했고, 그 말을 따른 공범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제대한 놈에게 다 뒤집어 씌우고 있는 상황이라니...

기억으로는...

그리고 기억하는 것은...

무겁게 흐르던 중대장님의 말입니다.

“다시 덮어.”


그 군수병이 어떻게 되었다는 것은 정확하지는 않지만, 적어도 아무런 일도 그 후로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기억합니다. 

병장 정도 됐으면 정의로운 고발자가 되어야 했을까요? 하지만 그저 군대를 도망가야 할 대상이라고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좀 더 정의로웠으면 뭐가 어떻게 달라졌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의 심각함은 오히려 제대하고 느껴졌어요. 세상이 돌아가는 것을 지켜보고 분노하면서, 군대에서의 이야기를 끄집어내보니 그게 그렇게 웃고 넘어갈 일은 아니었구나 하고요.


사회의 악은 군대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말은 너무 과한 말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큰일을 저지르고 서로가 책임지지 않으려는 상황에서, 악이 결국 그대로 묻고 넘어가는 것을 경험한 사람들은 마음속에 그 경험을 간직한 채 사회로 넘어가게 되겠죠. 그리고 악이라는 것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못할짓은 아니구나 배우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겁니다.

군대 가기 전 학생 때는 하다 못해 회초리라도 맞았는데, 책임질 일에 그냥 이렇게 덮고 넘어가는 것이 익숙해지면 사회로도 전염이 되겠죠. 어차피 다들 제대해서 사회로 나가게 되어 있으니... 그리고 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일들이 이러한 무책임에서 일어나는 것과 다르지 않네요.


그 외에도 이런저런 크다면 큰 사건들이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고, 군대는 등지고 무조건 사회로 도망치는 것으로 마음을 정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때의 그런 일들이 규모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것에서 조금 소름이 돋기도 합니다. 군이라는 사회에서 그러한 것들이 잘못된 것이고 책임과 처벌이 따른다는 것을 배우고 사회로 나온다면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다르지 않을까 생각도 듭니다.

군에 입대해서 나라를 지키고 가족을 지키고... 좋죠. 당연히 그래야 하는 건데...

주변에 군대 못가게 될 것같은 상황인 사람들은 무조건 빠질 수 있으면 빠지라고 합니다. 불법을 저질러서는 안 되겠지만... 안 가는 게 이익이다. 모든 부분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비겁하다고 생각지 말고 피해가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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