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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쌔신 크리드: 유니티 리뷰 (약스포)
게시물ID : gametalk_22226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한솥매니아
추천 : 5
조회수 : 9796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4/11/17 16:21:41
안녕하세요. 겜토게에 글을 쓰는 건 처음인 것 같습니다.

제가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를 참 좋아합니다. 제 글목록을 보시면 알겠지만 이번 유니티도 상당히 기대했고, 사양을 맞추기 위해 무리하게 그래픽 카드도 질렀지요. 그런데 나온 결과물이 영 좋지 않아 울분을 풀 길이 없어, 몇 자 적어 한풀이나 해볼까 합니다.

아직 게임이 안정화되지 않은 초반이고, 퀘스트도 전부 해 본 것은 아니라 완전한 리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일하는 중간에 짬짬이 쓰는 거라 따로 스샷 같은 걸 준비하지도 못해서, 글만 줄줄 이어지는 다소 심심한 리뷰가 될 것 같네요.

지루하실 분들을 위해 두괄식으로 요점부터 정리하겠습니다.

1. 게임의 프로그램적 요소를 중심으로 - 말 많은 개적화, 극복 가능하지만 그 정도가 심하다.
2. 게임의 인플레이 경험을 중심으로 - '암살자'의 유능함을 체감하기 어렵고 쓸데없는 부가요소가 거슬린다.
3. 게임의 시나리오와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 역대 최악의 시나리오이고, 배경과 이야기가 따로 논다.



1. 게임의 프로그램적 요소를 중심으로

프로그램적 요소, 아웃게임 상에서의 경험을 얘기하자면 일단 개적화와 버그 얘길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유니티가 출시된 시점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토로하고 있고, 스팀 유저 평가란은 붉은색 thumb-down으로 도배가 되었죠. 여기 겜토게에도 몇몇 분들이 황당하다 못해 우습기까지 한 버그 스샷을 많이 올려 주셨습니다.

어디까지나 제 경험상에서 말하자면, 전 그런 현상을 거의 체감하지 못했습니다. 시네마틱 상에서 인물 얼굴에 눈과 치아만 둥둥 떠다닌다던가, 아르노가 아무것도 없는 공중에 웅크려 매달리는 기적을 선보인다던가, 파리 시민들이 허리 아래까지 땅 밑에 파묻은 상태로 돌아다닌다던가 하는 문제는, 최소한 저에겐 일어나지 않더군요.

참고삼아 말씀드리자면 현제 제 PC의 스펙은 i5 4670, 램 8G, 라데온 R9 290x입니다. CPU와 램은 원래 쓰던대로고, 그래픽 카드만 최근 교체했죠. 공시된 사양에 따르면 제 R9 290x는 딱 권장사양입니다. 이 정도만으로도 일단 문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버그와 프레임 드랍을 호소하는 사람들의 얘기가 징징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제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그래픽 카드 딱 1~2단계의 차이만으로 극심한 플레이 경험 차이가 나타날만큼, 이 게임은 그래픽 카드 메모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로 만들어졌다는 점입니다. 때문에 사실상 출시 직전 유비소프트에서 발표한 권장사양은 실제 플레이어 입장에선 최소사양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실제로 이 스펙이 갖춰지지 않으면 다른 부품이 아무리 좋아도 문제는 발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게임이 왜 이토록 그래픽 카드 의존적으로 만들어졌는가? 기본적으로는 일단 유니티가 제공하는 그래픽의 질이 워낙 높다는 게 가장 큰 이유겠지요. 실제로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 환경에서 본 유니티의 그래픽은 정말 환상적입니다. 출시 이전 짤방으로도 많이 돌아다녀 친숙하시겠지만, 실제 노트르담과 게임 내 노트르담을 절반씩 붙여놨을 때 어느 쪽이 진짜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엄청나죠. 노트르담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이름없는 집과 도로 포장조차도 디테일의 극치를 달립니다. 이런 퀄리티 자체는 좋아요.

문제는 이 처리가 전적으로 그래픽 카드에 의존한다는 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겁니다. 원래 CPU, 램, 그래픽 카드가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게임 하나를 구동해야 정상인데, 지금 유니티는 그래픽 카드에 너무 심하게 부하가 걸리고 있다는 거에요. 제가 뭐 프로그래밍을 배운 건 아니지만, 최소한 상식적으로 이렇게 한 부품의 중요성이 크다면 좀 이상하다는 생각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습니까? 실제로 제 PC 스펙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CPU의 경우 공시된 권장사양에 미치지 못합니다. 램이야 권장사양대로지만, 인터넷에 올라오는 체험담들을 보면 램의 충분함과 부족함이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래픽에 힘을 준만큼 좋은 그래픽 카드가 필요해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입니다. 실제로 어느 정도 수준이 맞는 카드 사용 시 문제가 없어진다는 건 게임 자체가 플레이 불가능할 정도로 잘못 만들어진 건 아님을 뜻하죠. 하지만 문제는 이 '수준'이 너무 높다는 겁니다. R9 290x면 지금 이보다 더 좋은 그래픽 카드가 손에 꼽는 수준입니다. 물론 라데온이 아니라 지포스를 사용하면 좀 더 낮은 등급의 카드를 써도 되긴 하지만, 역시나 거의 최상급 GPU를 요구하는 건 똑같습니다. 이건 어느모로 봐도 최적화에 실패했다고 봐야겠죠.

더욱이 문제가 되는 점은 이토록 하드웨어를 혹사시키기까지 하면서 손에 넣은 그래픽의 품질이 사실상 인게임 플레이 경험에 있어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유니티 제작진이 뭔가 착각하는 모양인데, 게임의 그래픽은 인플레이 경험에서의 몰입도를 높여주기 위한 수단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에요. 위에서 칭찬하긴 했지만, 사실 스쳐 지나가는 도로 포장이나 시장 좌판의 품질이 그렇게 높아서 대체 뭐하겠습니까? 게임 단물 다 빨아먹고 할 일 없어서 돌아다닐 때나 겨우 눈에 띌까 말까한 것들입니다. 스쳐 지나가며 덩어리로 인식해도 그 품질 차이가 체감되는 것들 - 이를테면 풍성한 나뭇잎, 빛 효과 처리, 전반적인 텍스처의 색감 같은 것들은 공을 들일 만 합니다. 하지만 출시 전부터 자랑하던 수천 명의 독립적 AI를 가진 NPC 하나하나의 의상 메쉬가 그렇게 정교할 필요는 없죠.

결국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유니티의 개적화는 게임을 플레이 불가능한 쿠소게로 만들 정도로 심각한 수준은 아닙니다. 버그 역시 실제 프로그래밍 상의 문제라기보단 개적화 문제에서 파생된 것에 가깝다고 보여집니다. 하지만 그 허들을 넘기 위해 요구하는 하드웨어의 기준이 비상식적으로 높은 것은 명확하고, 이는 유비소프트가 게임의 정체성을 세우는 데 있어 경중을 거꾸로 쟀기 때문에 발생한 필연적 결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게임의 인플레이 경험을 중심으로

이 파트가 정말 할 말이 많습니다. 일단 몇 가지 항목으로 나눠서 설명해 보도록 하죠.

1) 암살, 이동, 전투

개인적인 소감을 얘기하자면, 저는 많은 분들이 좋아하시는 어쌔신 크리드 4를 정말 싫어합니다. 왜냐면 제가 아는 어쌔신은 지붕에서 날카로운 눈으로 표적을 찾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이고선 군중 속으로 사라지는 간지가이지, 술집에서 럼주 퍼먹고 돛을 펼쳐 바다로 나가 보물을 찾는 트레저 헌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유니티의 출시를 굉장히 기대했죠. 전투가 전보다 더 어려워지고, 훨씬 인구밀도가 높은 대도시에서 오랜만에 제대로 암살 플레이를 할 수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웬걸,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일단 전작들에서 이미 호평을 받고 검증이 된 암살 시스템을 너무 많이 삭제했어요.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건 대체 왜 트윈 블레이드와 휘파람을 삭제했냐는 겁니다. 트윈 블레이드가 없어져도 이중 암살은 남아 있다지만, 2편 트릴로지 때에 비해 타이밍이나 위치를 잡기가 너무 어려워졌어요. 그리고 중요한 게 트윈 블레이드 있을 때보다 간지가 떨어집니다. 휘파람은 더 심각한데, 침투 장소에 경비병 밀집도가 높을 때 잠행 플레이를 할 수 있기 위해선 거의 필수요소였습니다. 물론 3편 이후 추가된 거긴 하지만 실제로 2편 트릴로지에 비해 3편과 4편이 경비병 밀집도가 높으니까요. 그런데 유니티에선 밀집도는 별 차이가 없으면서 휘파람만 없어진 겁니다. 폭죽탄은 주변 경비병들 있는대로 다 끌어들이니 휘파람을 대체할 수가 없고요. 그럼 최소한 휘파람 없이도 잠행 플레이를 할 수 있을만큼 은폐 스팟이 잘 짜여져 있느냐, 그렇지도 않습니다.  이에 관련된 자세한 얘기는 밑의 2) 스테이지 디자인 항목에서 얘기하도록 하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목격된 지점에 잔상이 남는 시스템의 경우, 일단 다소 비직관적입니다. 어느 시점에서 잔상이 남고 어느 정도까지 잔상 이후에 못 찾으면 익명이 되는지 잘 와닿지가 않아요. 전보다 길거리에 사람이 많아졌으니 훨씬 빠르게 사라질 수 있을 것 같은데 또 실제로 해 보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허리를 숙여 잠행 모드로 들어가는 시스템도 비슷한 문제가 있는데, 어느 지점에서 내가 보이고 어느 정도 수준까지 숨으면 안 보이는지가 모호합니다. 그렇다고 3편의 코너 숨기처럼 숨은 지점 너머로 이동된 시점을 제공하지도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실제로 플레이어는 열심히 잠행을 유지하려기보단 그냥 적당히 척척 걸어가서 푹푹 찌르는 방식을 선호하게 돼요.

파쿠르에 대해 얘기해 봅시다. 전 이 부분은 상당히 높게 평가합니다. 일단 기본적으로 파쿠르 모션 자체가 전작들에 비해 굉장히 경쾌해졌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모션 캡처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활용 가능해진 부분을 충분히 활용했다는 느낌이 들고, 무엇보다도 모션의 컨셉을 처음부터 아주 즐겁게 잘 잡았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몇몇 분들은 3, 4편과 달리 스페이스 바를 또 눌러줘야 위로 올라갈 수 있게 된(에지오 트릴로지까지의 시스템이죠) 부분을 까시기도 합니다만, 그냥 달리고 싶었는데 갑자기 벽을 타는 라둔하게둔 때문에 짜증내던 저로선 만족스러운 회귀입니다. 또한 건물 위에서 아래로 내려올 때 부드럽게 지면까지 쭉쭉 내려올 수 있게 바뀐 시스템은 프랜차이즈 전체를 통틀어도 혁명적이에요. 다소 이동이 과하게 쉬워졌다는 느낌도 없는 건 아니지만, 그 반대급부로 진짜 달인같은 속도감과 체험을 제공해 준다는 점에 만족합니다. 후속작에서 다른 모든 단점은 수정한다고 해도 이 점만큼은 계승해 줬으면 좋겠군요.

전투... 일단 어려워진 건 확실합니다. 카운터 일격사가 없어지면서 일대 다수 전투가 어려워졌기 때문에 웬만해선 마구잡이로 돌격하면 안 됩니다. 문제는 이게 위에서 말한 암살의 문제, 그리고 후술할 스테이지 디자인의 문제 때문에, 개발 의도대로 플레이를 하려고 해도 잘 안 된다는 겁니다. 게다가 전작들보다 중무기(양손도끼, 창 같은 물건들)의 데미지가 강해진 것으로 보이는데, 아이템이 잘 갖춰지지 않은 초반엔 한 방에 반피 정도 까입니다. 기본적으로 중립인 경찰들은 중무기를 잘 안 들고 다니고, 보통 어그레서 무리 중 한 놈이 들고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얘 섞여 있으면 일단 짜증이 팍 납니다. 가능하면 연막탄 터뜨리고 암살검으로 처리하는 게 좋죠.

전반적으로 원거리 무기가 약화됐다는 느낌입니다. 기대했던 팬텀 블레이드는 초반에도 웬만한 적은 한 방 킬이 잘 안 나요. 그렇다고 권총이나 소총이 한 방 킬을 내 주는 것도 아니고... 무성 원거리 무기인 팬텀 블레이드가 약해 빠지다 보니 안 그래도 여러 요소가 칼질된 암살이 더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종합해서 얘기해 보면, 기본적인 이동은 좋지만 과제 해결을 위해 동원해야 할 두 축인 암살과 전투가 삐걱대는 형국입니다. 아르노가 뭔가 유능한 암살자라는 느낌을 전혀 제공해 주질 않고 있어요. 뭘 어떻게 잘 해 보려고 해도 뻑하면 들키고, 경종 울리고 난리 납니다. 그렇다고 디스아너드처럼 불살 플레이를 허용해 주는 것도 아니고....(물론 비살상 무기를 들면 됩니다만 디스아너드의 그것과는 다름) 이러다 보니 게임에서 제공하는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 자체가 그다지 즐겁지가 않고, 플레이어가 머리를 잘 굴리면 어떻게 해결이 되겠다는 복안도 잘 서지 않습니다. 이건 난이도의 문제가 아니라 인플레이에서의 직관성 문제기 때문에, 결국 유비소프트가 디자인을 잘못했다고 봐야 할 겁니다.

2) 스테이지 디자인

이어서 게임 내부에 설치된 장애물, 보조 요소, 클리어 루트에 대해 말해 보겠습니다. 일단 게임에서 장애물이라고 하면 기본적으로는 적입니다. 그리고 적을 제거하기 위해 배치되는 보조 요소는 주로 은폐 스팟이죠. 결론적으로 말하면 이 부분의 조화가 안 좋습니다.

일단 적의 배치에 대해 얘기하죠. 지붕에서 적들을 싹 없앤 건 좋았습니다. 어쌔신이 간지나게 좀 뛰어다녀 보겠다는데 툭하면 소리지르는 활쟁이들 총잽이들 솔직히 짜증났잖아요? 물론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고, 몇몇 발코니 포인트에 남아 있거나 혹은 협동 미션에서 목표 지점 근처에 등장하긴 하더군요. 까짓거 수도 많지 않으니 쭉쭉 앞으로 나가서 몇 명 처리해 주면 됩니다. 문제는 바닥에 배치된 애들인데, 일부 미션에선(특히 3인 이상 협동미션) 경비병이 너무 많아요. 아무리 어쌔신이 유능하다 해도 경비의 감시에 좀 구멍도 있고 해줘야 거길 파고들어 암살에 성공할텐데, 서로서로의 사각을 봐주는 배치를 과하게 잘 해 놨습니다. 사실 이 문제는 싱글 플레이에선 그리 심각하지 않아요. 아무리 배치를 잘 해놨다고 해도 구멍이 아주 없는 건 아니고, 시간을 들여 전술을 고안하고 실행하면 되니까요. 하지만 필연적으로 싱글보다 속도감 있게 진행될 수밖에 없는 멀티 플레이에선 이 문제가 아주 심각하게 다가옵니다. 이후 4) 멀티 플레이 부분에서도 얘기하겠지만, 대화도 안 되는 상태에서 어느 세월에 애들 패턴을 관찰하고 전술을 짜겠습니까?

특히 이건 보조 요소와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상당히 짜증을 불러 일으키는데, 일단 에지오 트릴로지나 켄웨이 사가에 비해 보조 요소와 장애물이 따로 논다는 느낌이 강합니다. 예를 들어 에지오 트릴로지에선 침투해야 하는 금지 구역에도 일반인 무리가 주기적으로 이동해서, 그 무리에 섞여 들어가는 것이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답이었어요. 하지만 유니티에선 그런 거 없습니다. 대부분의 일반인 무리는 한 자리에 붙박혀서 자기들끼리 담소를 나누거나 깃발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거나 할 뿐, 어쌔신의 임무에 뭔가 도움을 준다는 성격이 거의 없습니다. 움직이는 무리? 물론 있죠. 하지만 결코 이들이 내가 닿아야 하는 목표에 가깝게 가도록 연결되지 않아요. 수천 명의 NPC들이 각자의 AI를 가지고 움직이게 하겠다는 장대한 발상은 좋았는데, 결과적으로는 그게 오히려 이 NPC들이 내 플레이와 아무 상관없이 돌아가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이럴 거면 차라리 딱 프로그래밍된 패턴으로 움직이도록 하는 게 낫죠. 얘네는 그냥 내 달리기를 방해하는 인간 벽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장애물과 보조 요소의 조화가 안 좋다는 걸 극명하게 보여주는 부분을 하나 꼽자면 무엇보다도 경종입니다. 경종을 울리면 주변에서 지원군이 와 불리해지니까 경종 주변의 적을 미리 처리한 후 경종을 고장내야 한다, 여기까진 좋은데, 문제는 경종을 몰래 처리할 방법을 제공하질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종은 눈에 잘 띄는 개활지 한 가운데 있고, 주변에 무슨 일반인 무리나 코너, 짚더미 같은 것도 없어요. 경종 주변엔 반드시 한 두 명 정도의 경비병이 지키고 있고요. 결국 경종을 고장내려면 주변의 적을 다 처리해야 하는데, 이미 적이 없게 비워놓은 상태에서 굳이 경종을 고장내야 할 이유는 또 뭡니까? 결국 아무 의미 없이 사람 짜증나게 하는 역할밖에 안 하고 있는 거죠.

파쿠르 포인트에 대해서도 비슷한 얘기를 할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의 특성상 파쿠르 포인트는 장애물인 동시에 보조 요소인데, 이 두 속성을 왔다갔다 하게 해 줄 수 있는 퍼즐성이 완전히 사라져 있어요. 위의 이동 부분에서 호평한 호쾌한 속도감이 오히려 안 좋은 결과를 낳은 게 이 부분인데, 유니티의 인플레이에서 거의 모든 건물은 영혼없이 방향키 + 하이 프로파일 + 스페이스만 누르고 있어도 천장까지 올라가는 데 지장이 없습니다. 즉 이동 루트를 고민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이건 어드벤처로서의 정체성과도 관련되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어쌔신 크리드 2에서 피렌체 시계탑 올라가는 거나, 브라더후드에서 바티칸 카스텔로 올라가던 것 같은 침투의 재미는 아예 포기한 건가요?

퀘스트는 잘 만들었습니다. 이름도 모르겠는 익명의 NPC가 아무 맥락도 없이 툭 던져주던 기존의 서브 퀘스트들에 비하면, 나름대로 역사적 인물을 동원해 맥락이 이어지도록 만들어 준 건 좋죠. 마리 앙투아네트의 패션장관이나 나폴레옹의 심령 조언가 같은 흥미로운 인물들을 만나볼 수 있으니까요. 살인 미스테리 해결도 그럭저럭 추리물 느낌이 나게 잘 배치해 놨고요. 노스트라다무스 수수께끼 같은 경우는 좀 불만인게, 수수께끼가 너무 단서 하나만 툭 던져주고 알아서 찾으라는 식입니다. 좀 단서를 분석해 볼 단계를 주고 무슨 의미인지 주변에 물어볼 수라도 있어야지, 뭐 짤막한 시 하나 던져주고 다음 표식 찾아가라고 하면 그 넓은 파리에서 그걸 언제 다 찾고 있습니까? 물론 실제로 이런 보물찾기가 있다면 이런 식으로 만들어져 있기야 하겠지만, 다른 요소들(메인 퀘스트, 서브 퀘스트, 협동 퀘스트)에 비해 너무 급격히 속도감이 확 떨어져요. 좀만 더 친절하게 만들어졌으면 좋을 뻔 했습니다.

다만 퀘스트의 해결 과정에서 쓸데없이 게임을 다시 시작하게 하는 풀 싱크로나이제이션 개념을 삭제한 건 좋은데, 너무 게임을 막 하게 만드는 경향도 분명히 있습니다. 퀘스트에 있어 '실패'라는 것이 사실상 죽는 것 외엔 없어진 셈이라 미션의 수행 자체에 긴장감이 없어요. 전투와 암살은 짜증나지만 미션 수행 자체는 너무 쉽고... 디자인이 극심하게 언밸런스하다고밖엔 할 수 없습니다.

3) 캐릭터 커스터마이징

아시다시피 커스터마이징이 대폭 강화됐습니다. 아이템별로 스탯도 다르고, 스킬을 올려서 캐릭터를 특화시킬 수 있죠. 하지만 어딘가 만들다 만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일단 첫째로, 스킬이 너무 단편적이고 조잡합니다. 처음 스킬 열어서 격투 탭 봤을 때 진짜 깜짝 놀랐어요. 아니, 이게 실제 전투하는 데 뭐 도움이 되긴 해요? 무엇보다도 스킬 2개 빼고 나머지 4개는 주력 무기 종류 하나만 올려주면 되는 거고, 적 넘어뜨리는 거랑 넘어진 적 원킬하는 건 다수 전투에선 아무 도움도 안 되잖아요? 암살 스킬은 좀 많나 싶었더니 3개가 자물쇠 열기인데, 정작 진짜 침투와 암살에 도움되는 건 변장밖에 없더라고요? 이중 암살이랑 공중 이중 암살은 필요하긴 한데, 이걸 꼭 싱크 포인트까지 써가며 올려야 하나 싶기도 하고.... 애초에 이중 암살하라고 만들어놓은 배치가 그리 많지도 않고요. 원거리 스킬 중에 팬텀 블레이드 강화해 주는 건 한 개도 없고, 방어는 숫제 받는 피해 감소로 싹 발라놨더라고요. 대체 이게 뭐하자는 겁니까? 내 암살자가 좀 강해지면서 동시에 특별해졌다는 느낌을 주는 게 전혀 없잖아요?

둘째로, 아이템 스탯의 역할이 미묘합니다. 매의 눈 쿨타임이나 지속시간 같은 건 그나마 좀 눈에 띄는 편인데, 사회적/비사회적 소음 감소나 사라지는 시간 감소 같은 건 효과가 있긴 있는지 느낌조차 안 와요. 적용이 안 되는 버그가 있어도 알아챌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돈 약탈량 증가는 뭐... 애초에 참새 눈물만큼 주는 거 퍼센티지로 올려준다고 몇 푼이나 늘어나겠습니까. 결국 HP 증가 외엔 특별히 체감되는 효과가 없고, 뭔가 자꾸 방어 쪽에 치우치게 됩니다.

셋째로, 커스터마이징에 들어가는 포인트가 쓸데없이 다양하고(돈, 싱크 포인트, 크리드 포인트, 헬릭스 포인트의 4종류) 너무 짜게 줍니다. 싱크 포인트의 경우 어차피 스킬 몇 개 있지도 않으니 팍팍 퍼줬다간 결국 전부 다 찍은 똑같은 캐릭터만 양산될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그냥 처음부터 스킬을 많이 만드는 게 낫지 않았을까요? 나한테 필요한 스킬을 찍기 위해 너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플레이와 함께 지속적으로 캐릭터가 강해진다는 느낌이 안 듭니다. 크리드 포인트는 암살자다운 행동을 할 때마다 주어지는데, 이건 또 미묘하게 많이 줘요. 당장 리프트만 한 번 타도 100포인트씩 주니까요. 문제는 이건 돈으로 새 아이템을 사지 않으면 쓸 일이 없습니다. 돈의 경우 협동 플레이와 서브 퀘스트를 통해 벌라고 만들어 놓은 것 같은데, 이게 또 결국 어느 정도 서브 퀘스트를 강제해서 자꾸 메인 퀘스트 호흡을 끊어먹는 역할을 합니다. 메인 퀘스트만 하면 돈이 부족해지고 서브 퀘스트를 몰아서 하면 싱크 포인트가 부족한 관계인데, 그렇다고 그 균형을 잘 맞추도록 게임 내에서 안내해 주는 것도 아니고 서브 퀘스트가 아무 기준 없이 그냥 막 쏟아져 나와요. 최소한 메인 퀘스트를 몇 시퀀스까지 진행하면 서브 퀘스트가 이만큼 더 풀리고 하는 방식이 나았을 것 같습니다. 헬릭스 포인트의 경우... 이건 말을 말죠. 싱글 플레이가 메인인 게임에 왜 현질 요소를 넣는 건지...

4) 멀티 플레이

협동 플레이 자체는 좋은 아이디어였고, 여전히 매력적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멀티 플레이를 인게임에서 돌입할 수 있다는 건 아주 좋은 구조에요. 암살자 실루엣 시스템을 통해, 굳이 내가 시작하지 않아도 친구가 하고 있는 게임으로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장점은 여기까지.

유니티가 제공하는 멀티 플레이 경험의 가장 큰 문제는, 대체 나와 함께 플레이하는 동료들이 어떤 성향과 어떤 특화를 갖고 있는지 내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저 녀석이 암살 기술을 많이 올렸는지, 격투 기술을 많이 올렸는지, 아니면 원거리 기술을 많이 올렸는지 알 방도가 없어요. 하긴 위에서 말했듯 스킬 시스템 자체가 조잡하기 때문에 뭘 많이 올렸든 사실 할 수 있는 일에 큰 차이는 없긴 합니다. 그래도 최소한 얘가 대체로 어떤 방식으로 플레이를 하고 싶어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할 것 아닙니까? 기껏 나한테 변장 스킬이 있고 암살자 은신처 스킬이 있으면 뭐합니까, 내가 사용하는 걸 동료들은 보지도 않고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데.

게다가 마치 당연하다는 듯 플레이어가 헤드셋을 차고 현실 친구와 대화를 나눌 거라고 기대한 건지, 게임 내에서 서로간에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어요. 이건 진짜 말도 안 되는 겁니다. 아니 하다못해 수신호라도 넣을 수 있잖아요. 가라, 멈춰라, 기다려 보자, 내가 죽일게, 뭐 이런 것도 서로간에 소통하지 않는 암살단이 대체 어떻게 '단결'한다는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이것과 결합하여 커지는 문제가 뭐냐면, 멀티 플레이의 스테이지 디자인이 싱글 플레이에 비해 특별히 더 조잡하다는 겁니다. 미리 시연 영상이 나와 익히 아실 노트르담 고해실 암살처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 여러 방법과 루트를 알려주는 단계가 아예 없어요. 내가 자물쇠 열기 스킬이 있으면 어디로 갈 수 있게 되는지, 내가 이중 암살 스킬이 있으면 어디의 적을 더 편하게 처리할 수 있는지 알려주지도 않고, 사실 그런 대안적 루트를 많이 만들어 놓지도 않았습니다. 이러니 게임 내 목표를 통해 동료의 행동을 유추할 수도 없고, 그냥 녹색 점이 떠 있는 곳으로 돌격하는 식으로 끝나는 거죠. 그러다 적 좀 몰리면 죽는 거고요.

그리고 누적 싱크 포인트나 장비의 질이 미션 난이도와 어떻게 비교되는지 알 수가 없으니, 플레이어가 능동적으로 미션 난이도를 맞춰서 선택하기 어렵습니다. 차라리 내 암살자 레벨이 좀 올라야 미션도 나오게 하고 좀 그러지 그랬나 싶습니다.



3. 게임의 시나리오와 내러티브를 중심으로

사실 저는 개인적으로 게임의 시나리오는 어디까지나 부가적인 역할을 할 뿐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플레이 경험에 대한 부분보단 이 부분에 대해선 관대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어쌔신 크리드 프랜차이즈가 그 동안 보여준 시나리오의 질에 맞춰줄 거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죠. 그래서 이게 게임의 가치를 결정적으로 깎아먹지는 않지만, 실망은 실망이라는 입장입니다.

가장 큰 문제는 이겁니다. 대체 이 게임, 배경을 왜 프랑스 혁명으로 잡은 건가요? 메인 시나리오에서 보여주는 이 이야기를 꼭 프랑스 혁명을 통해서만 할 수 있는 건가요? 18세기 말 프랑스라는 특성이 시나리오 진행에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정말 웃긴 게, 1789년 혁명의 발발이 이 배경에선 가장 중요한 시발점인데도, 주인공 아르노의 시점에선 마치 외부에서 터져 나온 일종의 사고처럼 전달돼요. 아르노가 거기서 하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에지오가 암살자가 되는 계기는 르네상스 이탈리아의 음모와 탄핵으로 점철된 정치적 배경과 밀접히 연관되어 있고, 라둔하게둔의 경우 백인 이주민과 아메리카 원주민의 갈등이라는 요소가 핵심적입니다. 그에 반해 아르노는 그냥 영문도 모른 채 그 어떤 배경에서든 일어날 수 있는 살해 행위로 아버지와 후견인을 잃고 마치 싸구려 무협소설의 기연처럼 감옥에서 암살단을 만날 뿐이에요. 18세기 말 프랑스의 그 부패와 역동성이 아르노 개인의 일생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있단 말입니다. 그러고선 겨우 암살단에 가입했나 싶었더니 바로 1791년, 국민의회고 여성들의 행진이고 다 건너뛰어 버리더군요. 뭐하자는 겁니까?

게다가 아르노는 작중에서 뭔가 주체적인 목표의식을 전혀 가지지 않는 인물입니다. 그냥 이미 지나가버린 죽음을 계속 곱씹고, 보이지 않는 연인 뒷꽁무니를 쫓아다니는 것 외엔 아무런 목적이 없어요. 템플러를 왜 적대하는지도 사실 묘연합니다. 암살단의 신조를 추구하고자 하는 모습도, 그 이상을 구현하기 위해 뭔가를 해야 한다는 의지도 아무것도 없습니다. 애초에 아버지와 후견인의 죽음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엘리제를 왜 계속 쫓는지에 대해서도 작중의 추상적이고 모호한 표현 몇 개를 보고 플레이어가 열심히 유추해 내야 하는 상황입니다.

이러니 배경, 인물, 동기, 갈등이 다 따로 놉니다. 암살단과 템플러의 갈등? 프랑스 혁명과 우연히 같은 시간대에 있을 뿐 그게 프랑스 혁명이라는 사건 자체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아르노의 죄책감이라는 동기? 프랑스 혁명과 연관이 없는 건 당연하고 암살단과 템플러의 갈등과도 관련이 없습니다. 그 동기와 아르노라는 인물 자체? 대체 개연성 있고 설득력 있게 설명이 안 되니 이 둘이 왜 연결되는지를 모르겠어요.

내러티브 내적인 부분에만 국한해서 봐도 이렇게 엉망인데, 외적인 부분은 더 엉망입니다. 서양사와 혁명사에 대해서 기초적으로라도 공부를 한 사람이면 최소한 미라보가 암살단의 수장이라는 말도 안 되는 무리수는 안 뒀을 겁니다. 아무리 유비소프트가 암살단을 절대선의 영웅 조직으로 그릴 마음이 없더라도, 최소한 인민의 자유와 평등을 위해 싸웠다는 정체성을 헌신짝처럼 내다 버리지는 않아야 할 것 아닙니까? 미라보는 혁명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왕정에 꼬리를 치며 뒷돈을 받아먹은 대표적인 부패 정치인인데 얘가 어떻게 암살단 수장입니까? 아 좋아요. 에지오 트릴로지에서도 카테리나 스포르차 같은 별볼일 없는 폭군을 띄워준 적은 있었죠. 레벨레이션의 술레이만 같은 경우도 그렇고요. 하지만 최소한 얘네는 암살단에 협조하면서 공통의 적을 상대하는 애들이었지, 무슨 암살단 핵심 수뇌부는 아니었잖아요?

로베스피에르와 상퀼로트에 대한 설정은 뭐 허술하다 못해 악의적이기까지 합니다. 중학생 대상 프랑스사 교과서 펼쳐서 대충 공포정치 시기만 훑어본 것도 아니고, 왜 이렇게 경직적으로 묘사가 된 건지 모르겠어요. 로베스피에르는 템플러 수장이고 혁명을 선도하는 상퀼로트는 죄다 어그레서이자 어쌔신의 적이라니, 어쌔신 크리드 3 이후로 뭐 어떻게 흑화가 되면 이런 설정을 만들 수 있는 겁니까? 에지오 트릴로지에서도 켄웨이 사가에서도 항상 암살단은 인민의 봉기를 지원하는 쪽이었고 템플러는 그걸 무마하려는 쪽이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핵심 설정이 손바닥 뒤집듯 바뀔 수 있는 거에요? 꼭 프랑스 인민은 영웅적으로 묘사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 어쌔신 크리드 3에서 그랬듯 미묘한 갈등 요소나 좀 넣어줘도 되는 일 아닙니까. 이건 뭐 지롱드는 다 어쌔신 편이고 산악파는 죄다 템플러 소굴이라니, 차라리 혁명을 이상화하는 게 오히려 덜 이분법적일 겁니다.

결국 종합하면, 유니티에서 유비소프트는 그간 어쌔신 크리드 프랜차이즈의 최대 강점 중 하나였던, 굉장히 그럴싸하게 가상의 개인사와 실제 역사를 엮어내는 능력을 쓰레기통에 처넣고 돌아왔음을 명백히 보여줍니다. 참고로 이미 프랑스 게이머들은 '이럴 거면 처음부터 건드리지나 말지, 뭐 파리 관광이라도 한 번 와보고 싶었던 거냐'고 반발하고 있고, 프랑스 혁명을 정체성의 뿌리로 삼는 프랑스 좌파들이 항의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고 합니다.



상당히 길고 지루한 악평을 늘어놨습니다.

물론 그래도 아마 계속 게임을 하긴 할 거에요. 실망스러운 부분이 많지만, 스카이라인을 날아다니며 악을 처단하는 간지가이의 체험을 쉽게 포기할 수는 없거든요.

하지만 서양사에서 가장 흥미롭고 가장 역동적인 순간을 소재로 채택한 작품이 하필이면 망작이라니, 많이 안타깝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또 이런 식의 실패가 나오면 프랜차이즈를 버릴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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