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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급한 반전] 진정한 햄버거
게시물ID : readers_172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명확한정성
추천 : 2
조회수 : 279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1/18 22:00:10


진정한 불고기 버거를 찾아 헤맨 지 22년째다. 이젠 중년이 된 남자는 벤틀리 뒷좌석에서 힘겹게 내린다. 기사는 주차장으로 차를 몰고 가고 남자는 허리를 펴 네온사인을 올려다본다. 202번째로 찾은 경북 영덕읍의 맥도날드. 파도소리 섞인 바닷바람이 남자의 가르마를 넘긴다. 오늘은 왠지 기대가 된다.

“이상득 씨 계십니까?” 남자의 물음에 앙상한 소년이 고개를 든다. 버거를 만들던 와중이었던 것 같았고, 맥도날드에는 아무도 없었다. “네가 이상득이니?” 소년은 대답하지 않는다. 낯을 가리는지 우물쭈물하고 얼굴만 벌개진다. 답답해진 남자가 버럭 소리 지르려는데 주방문이 열리고 노인이 나온다. 소년이 노인의 뒤로 숨는다. 노인은 웃는다. “이 아이는 제 도제입니다. 저를 찾아오셨나 보군요.” 동그란 안경테가 빛났다. 불고기 버거 장인 무형문화재 제 22호 이상득 씨였다.

남자는 자리에 앉아 불고기 버거를 기다린다. 적어도 기본 소양은 갖춘 장인임에 분명했다. 패티를 플랑베하며 이일 드 누와를 바를 것이라고 했다. 그 정도면 기본 이상이지, 그럼. 남자는 흡족하게 밤바다를 바라봤다. 바다는 새카맸다. 그때의 맛을 되찾을 수 있을까? 남자의 동생은 새벽까지 맥도날드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남자는 고시생이었고 굶주린 배를 안고 동생네 가게로 찾아갔다. 동생이 빼돌릴 수 있는 건 불고기버거 뿐이었다. 남자는 그것이 미안하면서도 너무 맛있게 먹었다. 매일 새벽 찾아갔고, 지친 동생의 눈 밑은 검게 번들거렸다. 어느날 아침, 퇴근을 하던 동생은 차에 치였다. 까만 아스팔트에서 죽었다.

“불고기 버거 나왔습니다.” 소년은 버거를 서빙하고 주방으로 돌아갔다.

남자는 햄버거 포장지를 벗겨 눈물을 닦았다. 그리곤 엄중하게 버거를 집어들었다.

씹는다. 이에 구겨지던 번이 결국 꿰뚫리며 탄력적으로 튀어올라 입술을 치고 동시에 양상추가 부러지기 시작한다. 양상추 즙이 샐러드 소스를 녹여 혀로 흘러들고 앞니가 패티를 찍어누른다. 고기가 결결이 튿어지며 이일 드 누와, 호두기름 향이 입 안에 뜨겁게 퍼졌다.

최상… 이지만 동생의 것과는 달랐다. 동생의 것이 더 맛있다고 할 수 있었다. 이상득 씨와 소년이 옆에서 그를 보고 있다. 물론 헤맨 지 20년을 넘기고서는 남자는 그 맛을 되찾겠다는 기대를 버린 지 오래였다. 그러나 오늘은 왠지 이상득 씨에게 기대를 걸었던 것이다.

“맛있네요.”

남자는 포장지로 입을 닦았다. 모든 것을 알아챈 것인지 이상득 씨의 얼굴은 실패감에 무너져 가는 표정이었다. 남자는 일어서려 했다. 이상득 씨가 남자를 붙잡는다.

“얘야, 너의 버거도 이 분께 보이거라.”

이상득 씨가 남자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소년에게 말한다. “네가 아까 만들었던 그 불고기버거는 사실 내 것을 뛰어넘었다. 난 아직도 어떻게 그렇게 만드는지 알 수가 없다.” 소년이 뒷걸음질 친다. “딱 아까 같이만, 정확하게 똑같이 만드는 거야. 이 손님을 만족시켜 보는 거야.” 소년의 얼굴이 창백해진다. 고개를 젓는다. “부탁한다.”

소년의 눈에서 뚝뚝 눈물이 떨어진다. 눈 밑이 검었다. 남자가 소년의 손을 잡는다.

“한 번만 해 주겠니? …넌 참 내 동생을 닮았구나.”


불고기 버거. 아직 서툴러 야채가 이리저리 삐져나와 있었다. 남자는 어떻든 맛있다고 말해주기로 했다. 그러고 싶었다. 한 번도 못해줬던 말. 소년을 한 번 쳐다보고, 씹는다.

그는 그제야 깨달았다. 동생이 해줬던 그 맛을 세월이 너무 흘러 이미 잊어버렸음을. 그리고 이 버거가 지금 다시 기억을 살려냈음을. 모든 것을 묶어주던 그 공백의 맛, 그 정체를 알 수 없는 것이 여기에 더 들어가 있다, 모든 식감을 정리해주며 맛의 조화의 간극을 오히려 넓혀주어 맛을 느끼게 되는 시간차를 조절하는! 버거 한 입을 베어물지만 차례차례 빵, 시저스 샐러드, 미디움 레어로 통마늘 간을 한 목살 스테이크, 그리고 마지막으로 빵으로 다시 입안의 남은 음식물을 정리해주는, 코스요리를 먹는 것과 같은, 한 입에 A코스, 두 번째 입에는 B코스, 세 번째, 네 번째,…, 이 공간을 맥도날드가 아닌 레스토랑으로 바꿔버리는 이 귀신같은 공백의 맛! 세상에, 똑같잖아!

이상득 씨는 그를 들여다보고, 소년은 그 뒤에 숨어있다. 남자가 고개를 든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봐야만 한다. 이 감동의 공백을 알아내야 하고 동생이 보고 싶다.

“만드는 모습을 한 번만 보여줘.”

소년은 이제 새햐얘졌다. 온 몸을 떨기 시작한다.

“싫은가 보구나, 이러면 어때. 내가 이 가게로 매월 2000만원씩 지원금을 기부하는거야, 이제 아무 걱정 없이 불고기버거만 연구해도 이 가게를 꾸려갈 수 있는 거야, 어때요!”

마지막 말은 이상득 씨를 향한 것이었다. 남자는 22년동안 이 말을 하기만을 기다려왔다. 이 모든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다.

이상득 씨가 소년에게 말한다. “돈 때문은 아니지만, 어쨌든 보여주는 게 손님께 예의일 것 같구나. 보여주거라.” 소년은 대답하지 못했지만 남자는 자리에서 일어났고, 셋은 주방으로 걸어갔다. 주방문을 잡고 소년이 멈춰선다. 남자를 올려다본다.

“꼭 보고 싶으신 거죠..? 어떤 걸 보게 되더라도..?”

남자는 소년의 차가운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쥐었다.

“난 네게 고마울 따름이란다.”

셋은 주방으로 들어간다.


탕탕탕탕 칼로 하나하나 내려쳐 고기를 다지고 한 쪽에선 반죽한 번을 굽는다. 모든 과정이 정성이다. 이상득 씨와 남자가 모든 과정을 바싹 달라붙어 지켜본다. 남자는 동생이 만들어주는 모습을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받아가기만 받아갔다. 동생이 쏟던 정성이 저 정도일 줄은 몰랐다. 싫어질 법도 할 것을 그렇게 매일…, 남자는 지금 동생이 요리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너무 미안하고, 고마웠다. 불고기버거는 완성됐다.

남자가 눈물을 흘리며 허겁지겁 포장을 뜯어 한입 베어물었다.

"동생아!…… 이 맛이 아니잖아!"

"아직 안 끝났어요." 소년이 누구를 향해 말하는 것인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소년이 번을 연다. “오늘은 정말,”

패티에 침을 뱉는다.

“일하기가 싫었어요.” 검은 눈 밑이 번들거렸다.

번을 닫았다.


남자가 씹는 것은 햄버거가 아니라 아스팔트였다. 분명히 그럴 것이었다.


"이봐 진정해요! 세상에, 진정하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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