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늦기전에 살아온 나의 인생을 기억 못하기 전에 적어 놓는 일기장 같은 글입니다.
나의 기억력을 토대로 적는 글이니 틀리거나 미화된 부분 과장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1982년 어느 가을 날 2형제 중 둘째이자 막내로 태어났다.
나는 기억력이 좋은 편이였다.5살 전후로 크고 작은 사건들이 기억이 난다.
경기도 어느 마을. 태어나 나의 정확히 기억나는 사건은 동네 아이들과 숨박꼭질을 하다 쥐 덫에 다리가 물리면서 다친 기억부터다.
그날 피를 흘리는 나의 발과 아버지께 맞아 입술이 터진 어머니의 흘르는 피와 눈물 섞인 발악으로 시작된다.
나의 어린 시절은 상반된 기억이 많이 존재한다.
5살 전후로 기억 된다. 낮에는 친구들과 뛰어 놀며 메뚜기 방아깨비 잠자리 등 곤충잡기. 하천에서 멱감기를 하며 환하게 웃는 나의 모습과
아버지께서 술을 마시고 찾아와 부리는 행패.눈물.상처.피.오토바이소리 등이 기억이 난다.
1년 365일 쉼없이 마시는 술과 흘러 내리는 어머니의 피와 눈물.
속하지 아니하고 보면 지겹기만한 일상과 함께 세월은 흘러 6살 무렵 어머니의 무릎에 난 종양과 함께 나는 고모님 댁으로 입양 아닌 입양을 가게 된다.
대전에 거주하시는 고모님과 고모부님 나와 나이가 6살 차이가 나는 고모님댁에 사촌형과 나.
지금 생각하면 이날이야 말로 나의 행복한 어린시절에 정점이였다.
나는 참 개구쟁이였다. 고모님댁 동네에선 또래에 당할자가 없는 개구쟁이와 골목대장으로 행세 꽤나 했었다.
동네 온갖 사고는 다 치고 다니며 뛰어 놀던 어느 날 어머니께서 이제는 몸이 괜찮아져서 나를 보러 오셨다는 말을 듣고,
놀던 친구들을 본체 만체하며 고모님댁으로 뛰어간 기억이 있다.입양 아닌 입양한 날로부터 약 8개월 뒤였다.
그때 당시를 회상해보면 나는 굉장히 기쁨으로 가슴이 뛰었다. 그냥 좋았던 것 같았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어머니께 자랑하고 싶었다. 어른 키보다 약간 큰 나무를 타며 난 이렇게 건강하게 지냈어요 라는것을 보여드리고 싶었나보다.
들뜬 기분으로 자랑을 하는 나를 보며 위험하다면 빨리 내려오라고 하시던 어머니. 내려오며 미처 보지 못한 삼지창에 발바닥이 찍히며 다쳤다.
그런 나를 병원 응급실에 데려가 치료하고는 화장실을 가신다는 어머니를 울며 불며 같이가자고 매달렸었던 기억이 있다.
아직도 어머니께서는 그때 기억이 나시나보다. 그때 너를 안데려 왔으면 더 잘 컸을텐데. 어찌 알고 그렇게 매달렸던 거냐고 가끔 물으신다.
나도 잘 모르겠다. 지금에서야 기억 나는건 평소와 다르게 엄청 들떳었던 기분과 응급실에서 화장실 다녀온다며 나가는 어머니를 잡았을까.
이렇게 나의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