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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국, 어머니의 시
손끝이 부산하다
멀리 우련 푸르러진 는개 빛의
그 너른 들녘 다 팔고 오실 적엔
혼자서 멀거니 저문 서천만 바라보시더니
화색이 밝다 한 아름의
부챗살 햇귀를 받아 든 손바닥에서
꾀꾀로 여릿한 싹이 돋고
묵정밭처럼 생산이 끝난 아파트 길제
자투리땅에 상추며 고추 호박 넌출이 파다하다
힘줄 불거진 장딴지를 드러낸 채
채마 등속을 키워 올리는 손끝은
여전히 넓고 푸른 논밭이다
건성드뭇하니 도드라진 잡풀을
가끔 솎아내는 첨삭도 하면서 퇴고를 거친
행간 자간이 완벽한 푸른 여백의
시를 여태 본 적이 없다
김시천, 그릇
그릇이 되고 싶다
마음 하나 넉넉히 담을 수 있는
투박한 모양의 질그릇이 되고 싶다
그리 오랜 옛날은 아니지만
새벽 별 맑게 흐르던 조선의 하늘
어머니 마음 닮은 정화수 물 한 그릇
그 물 한 그릇 무심히 담던
그런 그릇이 되고 싶다
누군가 간절히 그리운 날이면
그리운 모양대로 저마다 꽃이 되듯
지금 나는 그릇이 되고 싶다
뜨겁고 화려한 사랑의 불꽃이 되기보다는
그리운 내 가슴 샘물을 길어다가
그대 마른 목 적셔줄 수 있는
그저 흔한 그릇이 되고 싶다
허수경, 바다가
깊은 바다가 걸어 왔네
나는 바다를 맞아 가득 잡으려 하네
손이 없네 손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손이 없어서 잡지 못하고 울려고 하네
눈이 없네
눈을 어디엔가 두고 왔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에 두고 왔네
바다가 안기지 못하고 서성인다 돌아선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하고 싶다
혀가 없다 그 어디인가
아는 사람 집 그 집에 다 두고 왔다
글썽이고 싶네 검게 반짝이고 싶었네
그러나 아는 사람 집에 다, 다
두고 왔네
정현정, 귀
입의 문
닫을 수 있고
눈의 문
닫을 수 있지만
귀는
문 없이
산다
귀와 귀 사이
생각이란
체 하나
걸어놓고
들어오는 말들 걸러내면서 산다
이하석, 이월 바람
바람은
나의 안에서 생겨나도
여전히 너의 향기인 것
높이 구름 뒤져
무거운 것들 골라 내던져
비 오고
낮게는
눈석잇길에 새로 피어난
연한 풀을 반짝이게 한다
가까이 다가가
내 마음 흔들려 하면
멀리 외따로 소용돌이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