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즉흥글] 점주 4년차 순덕의 고민
게시물ID : panic_91531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못된야옹
추천 : 12
조회수 : 1978회
댓글수 : 4개
등록시간 : 2016/11/16 05:09:42
옵션
  • 창작글
 
<점주 4년차 순덕의 고민>
 

 

   

의점을 운영하고 있는 순덕은 오늘도 고된 스트레스로 지쳐가고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하루에도 수십, 수백 번 그녀와 마주하는 수많은 손님들 때문이었는데, 문제는 그 손님의 대부분이 미개하다는 것에 있었다. 그래도 나름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는 ‘헬 조선’의 이름에 먹칠을 해도 유분수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들은 나라의 발전에 비해서 한참이나 진화가 덜 된 모양이었다.
 

테이블에 버젓이 두고 간 먹다 남은 컵라면 용기를 비롯해, 바닥에 수많은 담배꽁초들과 이름조차 알 수 없을 정도로 뭉개진 쓰레기들. 그건 비단 순덕의 가게만의 이야기가 아니었지만, 다른 곳은 아무래도 좋았다. 침을 뱉든, 담배꽁초를 버리든, 똥을 싸든, 그녀가 알바 아니었다. 솔직히 이것역시 짜증을 유발하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이 부분은 애초에 그녀 혼자의 힘으로 어떻게 바꿀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하지만 가게는 달랐다.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보내야하는, 그것도 힘겹게 대출까지 받아가며 처음으로 차린, 자신만의 이 보금자리가 저 글러먹은 거리와 동화되고 있다는 것은 도무지 참으려야 참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4500원이예요.”
 

순덕은 오만 원 권 한 장을 던지곤, 마치 똥마려운 강아지마냥 안절부절 못하며 담배각의 비닐을 벗기는 할아버지를 매섭게 노려봤다. 고작 돈을 던진 것 때문이 아니었다. 어차피 던지는 인간들은 쌔고 쌨다. 이정도 각도의 손목 스냅을 이용한 돈 던지기는 4년차 편의점 점주의 눈썰미로 봤을 때 어린애 장난에 불과하다. 고작 이정도로 기분 상한다는 것은 4년의 진상 퇴치 경력에 흠이 가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순덕이 할아버지를 노려본 것은 마술의 트릭을 능가하는 저 교묘한 손동작에 있었다. 포물선을 그리던 손끝에 아슬아슬하게 걸려있는 비닐을 마치 갓난아기 다루듯 어루만지는가 싶더니, 어느 샌가 나비가 날갯짓처럼 파르르 떨리는 그의 손. 그 끝에 비닐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그 우아함의 극치에 홀려 저도 모르게 ‘아’ 하고 탄성을 지를 때면 언제나 그렇듯,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온몸에 자연스러움을 두르고 누런 이를 보이며 싱긋 웃는다. 천진난만하게 싱긋….
 

‘두근두근…. 안 돼! 또 홀릴 뻔 했어!’
 

순덕은 뺨을 두드리며 정신을 바로잡았다. 하마터면 저 자연스러움의 극치에 동화될 뻔 했다. 그녀는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곤, 애써 차분한 척 잔돈을 건네며 말했다.
 

“할아버지, 쓰레기는 쓰레기통에 버려주세요.”
“…….”
 

그는 순덕의 말에는 일언반구도 없이 잔돈을 거머쥐었고, 이에 질 새라 순덕은 지폐를 잡은 손에서 힘을 풀지 않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었어도 사내는 사내인지라, 여자인 순덕의 악력으로 지폐를 지키는 것은 무리였다. 그는 잔돈을 쟁취한 희열에 젖어, 마치 묵찌빠에서 이긴 소년처럼 시크하게 ‘피식’ 웃고는 순덕에게 등을 보이곤 가게 밖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순덕은 그의 마지막 발자취를 쫓듯 카운터 밖으로 훨훨 날아, 그가 남긴 마지막 흔적을 주워 미련 없이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아오, 열불나! 대체 이유가 뭐야!? 대체 바로 옆에 쓰레기통을 놔두고 왜! 대체 와이!?”
 

당장이라도 바닥에 누워 문자 그대로 ‘지랄발광’을 떨 기세로 순덕은 발을 동동 구르며 얼굴을 구겼다. 이내, 그런 순덕은 안중에도 없이 어린 초중생의 무리가 가게 안으로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순덕은 마지못해 분을 삭이고 카운터로 돌아갔다.
 

“나 이거!”
“시바! 나도 사줘! 왜 순실이만 사주는 건데!”
“너 돈 있잖아. 나 2천원 밖에 없다.”
“근애야, 저거 얼만지 물어봐봐!”
“니가 물어봐!”
“아줌마 이거 얼마에요?”
“야야! 그건 니가 사먹어! 나 순실이 사주면 돈 모자라!”
“라면 먹을까?”
“저거 뭐야? 새로 나온 건가 봐! 우 와 우 와!”
“야! 최근애! 너 짤짤이 얼마있냐?”
“나 교통카든데?”
“야야! 근애한테 사달라고 해! 교통카드에 돈 존나 많아!”
“아 나도 나도!!”
“대박! 순실이 닌 절로가. 뭘 더 얻어먹으려고!”
 

순덕은 이 불협화음의 콘서트를 즐기는 단 한 명뿐인 관객이 되어 살며시 미소를 머금은 채, 마치 잘 익은 수박을 고르는 주부처럼, 잠긴 문을 두들기며 빛 독촉을 하는 사채업자처럼, 아이들의 머리를 흠씬 두드리는 상상을 했다. 강약중강약강강강강강강강강…. 이건 그야말로 토니스타크의 스펙타클한 비행만큼이나 짜릿한 기분 좋은 상상. 순덕은 저도 모르게 눈알까지 까뒤집으며 비열하게 웃었다. 허나, 재빨리 정신을 추스르고는 혹여 누군가 방금 자신의 모습을 본 건 아닐까 노심초사하는 순덕이었다.
 

“계산해주세요.”
“담아 줄까?”
“먹고 갈 건데요?”
 

‘먹고 갈 건데요?’ 라는 한마디가 이토록 끔찍한 말이었던가? 순덕의 눈앞에 벌써부터 어질러진 가게의 모습이 펼쳐지고 있었다.
 

“국물 버리는 곳은 저 쪽에, 쓰레기통은 저쪽에 있으니까 거기다 버리면 돼. 알겠지?”
“네”
 

그로부터 정확히 9분 42초 후, 순덕은 시식대를 뒤덮어버린 에펠탑을 능가하는 웅장함이 느껴지는 컵라면의 탑 앞에서 자라나는 ‘헬 조선’의 어린 꿈나무들의 미래를 보았다.
 

“차라리 대답이나 하지 말지…훌쩍.”
 

분명 그녀는 긴 머리로 가린다고 가렸겠지만, 제법 고성능의 CCTV 화면 속에서, 그녀의 눈에 고인 눈물은 꽤나 선명하게 반짝이고 있었다.
 

 

 

***
 

 

 

다음날, 순덕은 전날의 참변을 애써 밀어내며 아무렇지 않은 듯, 차분하게 집을 나섰다. 그런 순덕을 마주하는 건 천둥 번개를 동반 한 살인적인 빗물이었는데, 그녀는 대문 앞에 서서, 흙탕물로 등목중인 자신의 차량과 보랏빛 하늘을 번갈아 바라보며, 고요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어젯밤 일기예보를 맡았던 기상캐스터의 얼굴을 떠올렸다.
 

[내일은 구름한 점 없는 청명한 가을 날씨로 외출….]
 

이내 전날 밤의 고된 세차시간이 머릿속을 스치는 찰나, 순덕은 진지하게 기상캐스터의 명치를 강하게 후려쳐보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니, 이미 그녀의 머릿속에선 언젠가 보았던 무협영화 속 살수가 펼쳐지고 있었다.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고 있는 힘을 다해 펼치는 비범한 초식이.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덕은 기상캐스터의 상상으로 꽤나 기분이 풀린 듯, 평소처럼 온화한 얼굴로 우산을 접고 있었다. 하지만 그건 얼마가지 못해 흔적도 없이 사라져갔다.
누가 봐도 우산 꽃이. 이렇게 보나 저렇게 보나 이건 분명 우산 꽃이다. 헌데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물은 우산이 아닌 음료 캔, 담배 각, 과자 봉지 등….누군가의 욕구를 채워주었던, 덕분에 쓰레기가 되어버린 구슬픈 흔적들이었다. 헛바람을 들이키던 순덕은 하마터면 들고 있던 우산을 떨어트릴 뻔 했다.
 

“아이 씨…. 후, 후우. 그래, 참자. 참아!”
 

목 끝까지 올라온 욕 짓거리를 간신히 눌러 넣은 그녀는 주변을 쓱 훑어보았다. 겉보기엔 어제와 다를 게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반인이 봤을 때 이야기이다. 이런 쪽으로 도가 튼 순덕의 매의 눈은 빠르게 가게를 잠식해 들어갔다.
 

“…!”
 

순덕은 날렵하게 박스를 세워둔 곳으로 몸을 날렸다. 마치 아끼는 장식품을 진열장에 고이 모셔두듯 가지런하게 빈 드링크 병 3개와 찌그러진 맥주 캔 2개가 박스 맨 위에 놓여 있었다. 품목의 종류와 수량을 짐작해보아 시간차를 둔 여럿의 소행이 분명하다.
 

‘아마 저 드링크 1병의 주인이 초석을 다졌던 것이겠지.’
 

그들은 따라 하기를 그 누구보다 좋아한다는 것을 오랜 경험으로 잘 알고 있던 그녀였다. 순덕은 빠르게 정리를 끝내고 가게 구석구석으로 연달아 매의 눈을 발동시킨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났을까? 평온함을 유지하고 있는 그녀의 표정으로 보아 매장 내부는 이걸로 클리어인 모양이었다. 순덕은 작게 ‘후우’ 하는 한 숨을 끝으로 매장 밖으로 몸을 날렸다. 바닥에 널린 담배꽁초들이야, 이미 들어오면서 파악해두었다. 문제는 쉽사리 눈에 띄지 않는 쓰레기의 파악이다.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떠올려라 김순덕! 너라면 그동안 보았던 그들의 습성을 모조리 기억하고 있을 터! 그때의 그 울분을 떠올려라! 분명 몸은 기억하고 있을 테니까!’
 

감겼던 순덕의 눈이 참새가 날갯짓하듯 파르르 열렸다.
 

‘저기다!’
 

순덕은 접힌 채로 세워져있는 테이블로 빠르게 다가갔다. 그리고 마치 이미 알고 있다는 듯 가볍게 손을 스윽 뻗었다. 역시나, 있다. 일명 파라솔로 불리는 이런 플라스틱 테이블은 대부분 중앙에 구멍이 존재한다. 이는 무게중심은 물론, 지붕역할을 하는 우산처럼 생긴 천을 끼워 넣기 위함인데, 예전에 한 번 누군가가 그 중앙 구멍에 담배 각을 구겨 끼워 넣은 것이 생각났던 것이었다. 그녀는 볼썽사납게 구겨진 담배 각과 아이스크림 껍질을 끄집어내 쓰레기통에 쑤셔 넣었다.
 

‘자, 다음은 어디냐!’
 

그녀는 다시금 눈을 질끈 감았다. 이내 그녀의 감겼던 눈이 부릅떠졌다.
 

“교활한 놈, 하마터면 놓칠 뻔 했어….”
 

순덕은 차갑게 중얼거리며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는 ‘고등어 깡’의 무리 속에 자연스럽게 동화되어있던 빈 과자 껍질을 낚아챘다. 크기도, 재질도, 색감도 비슷한 것이 일반인이었다면 분명 쓰레기인줄도 몰랐을 것이었다. 순덕은 매장 안으로 들어오며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이지 요즘 들어 놈들의 패턴이 눈에 띄게 대범해지고 있다. 단순히 신체적 결함이나 기본적인 개념의 무지라고 치부하기엔 그 정도를 넘어서고 있었다. 백날 말해도 말귀를 못 알아먹는 건 덤. 이건 예전의 단순히 돈을 던지고 막말을 하는 정신적인 데미지에 올인 하던 그들의 모습이 아니다. 그때의 그들에게 교활함 따위의 지능적인 측면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그저 머물렀던 자리를 더럽히면 그뿐, 어딘가에 자신의 흔적을 숨기는 행위 따위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었다. 헌데 작금의 그들의 모습이 이렇게 변화했다는 건….
 

‘탁!’
 

순덕은 카운터를 쾅 치며, 눈을 치켜떴다. 그리고 떨리는 입술로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그, 그들은, 덜 떨어진 게 아니었어, 그들은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진화하고 있었던 거야….”
 

 

 

***
 

 

 

더 이상 그들을 깨우치는 것은 무리라는 것과, 더 이상 그들이 이 거리를 활보하도록 두어선 안 된다는 것을 깨달은 순덕이었지만, 혼자만의 힘으로 그들 전부를 어찌할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이미 그녀 자신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매일 매일이 고군분투였던 그녀의 앞에 창백한 피부의 젊은 여성이 별안간 허공에서 ‘짠’ 하고 나타났다. 그리곤 순덕이 놀랄 틈도 없이 푸른 장갑을 낀 손가락을 흐느적거리며 빠르게 말했다.
 

“소원이 있는 얼굴이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 내라면 들어 줄 수 있는데, 들어 줄까?”
 

순덕은 그녀의 등장보다, 그녀가 입을 움직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음성은 입이 아닌 흐느적거리는 손가락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에 더욱 놀라는 눈치였다. 순덕은 그녀의 입과 긴 손가락을 번갈아 바라보며 자신이 애용하던 블루투스 스피커를 떠올렸다.
 

“그,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
 

여성이 부끄러운 듯 수줍게 말하고 나서야 순덕은 호기심 충만했던 시선을 거두고 담아두었던 속내를 꺼내보였다. 대략 12시간 분량의 열변을 30분 동안 뱉어낸 순덕의 열정에 감탄이라도 한 것일까? 순덕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여성의 얼굴엔 따분함이나 지루함 따위는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고 싶어? 그들을 죽여주기라도 해달라는 거야?”
 

순덕은 제법 구미가 당기는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 막상 그들을 죽일 엄두는 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럼, 나보고 청소라도 해달라구?”
 

순덕은 여성이 자신의 매장 안에서 빗자루를 들고 긴 손가락을 흐느적거리며 청소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꽤나 만족스런 얼굴로 입 꼬리를 올렸다.
 

“그, 그런 표정 짓지 말아줘.”
 

여성의 말에 순덕은 손을 펴고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취하고는 굳게 닫혀있던 입을 열었다.
 

“당신은 다른 차원에서 온 건가요?”
“뭐, 그런 셈이야.”
“그럼, 순간이동 같은 것도 할 수 있겠죠?”
“그런 건 누워서 떡 먹기 보가 쉬운 걸, 방금 네 눈앞에 ‘짠’ 나타났잖아?”
 

의기양양한 여성의 모습에 ‘아’ 하고 탄성을 지르는 순덕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그럼, 그들을 전부 순간이동 시켜서 당신이 사는 세계로 데리고 가줘요!”
“그건 안 돼! 내 세상이 더렵혀지는 건 나 역시 참을 수 없으니깐!”
 

여성의 말에 순덕은 잠시 고민을 하는 듯 머리를 이리저리 갸웃거리더니, 다시금 입을 열었다.
 

“그럼, 제게 순간이동 능력을 주세요.”
“정말 그게 소원이야? 보통 인간들은 돈이나 권력 같은 걸 원하던데, 넌 제법 고단수구나?”
“그런가요?”
“설마, 너! 이 힘으로 내 세상에 그들을 보내려는 수작은 아니겠지? 아, 넌 내가 어디 사는지도 모르지 참! 으잉, 바보 같긴! 그래도 난 귀여우니깐 이정도 쯤은 눈감아주자, 헷!”
 

순덕은 순간 여성의 명치로 눈이 돌아가는 자신을 볼 수 있었다.
 

“너 지금 내 명치를 강하게 치고 싶다는 얼굴인데?”
“설마요.”
“진짜야?”
“그럼요.”
“정말이지?”
“그렇다니깐?”
“그런가? 알겠어. 그럼 소원대로 능력을 부여해줄게! 요긴하게 쓰도록 하라구!”
 

순간 여성의 긴 손가락이 늘어나 순덕의 이마를 짚는가 싶더니, 엄청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그 빛이 모조리 사라졌을 때, 그곳엔 순덕만이 평온한 얼굴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
 

 

 

***
 

 

 

민성은 여자 친구인 지현과 함께 편의점 테이블에 앉아 컵라면이 익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근사한 곳에 데려가겠다고 철썩 같이 약속했던 주제에, 빌어먹을 공시충의 직책을 1년 더 맡게 된 그는 최대한 태연한 척, 화제를 돌리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는데, 때마침 최근에 이슈화 되고 있는 소식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던 참이었다. 물론 그 어떤 화제로 바꾼다한들 돈을 들이지 않고서는 지현의 기분이 풀릴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밑져야 본전이라고, 민성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최대한 위축되지 않으려 애쓰며 자연스럽게 입을 열었다.
 

“야야, 요즘에 별 희한한 인간들 많더라?”
“오빠?”
“미친! 내가 아무리 정신 줄을 놓고 살아도, 컵라면 용기까지 먹지는 않는다!”
“어? 지금 ‘않는다!’ 이거 별의연인 ‘이 준기’ 성대모사 아냐? ‘두 번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 햐! 우리 ‘소’ 오라버니!”
 

자기 때문에 이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 내 앞에서 그깟 연예인이 뭐라고 저렇게 싱글벙글 하는 것인지, 민성의 마음엔 처음과 달리, 질투의 화신을 능가하는 짜증이 솟구치고 있었다.
 

“넌 뉴스도 안 봐? 요새 난리도 아니잖아? 엑스레이 찍었는데 컵라면 용기가 통째로 들어있질 않나, 담배꽁초에, 깡통에, 심지어 이번엔 위에서 병까지 나왔다니까? 세상에 그 긴 맥주병이 통째로 위에 들어가 있는데, 와, 이게 진짜 말이 되냐?”
“됐고, 다 익은 것 같은데, 얼른 라면이나 드셔! 간만에 오붓하게 분위기 좀 내자니까 편의점에서 라면이 뭐니 라면이! 아휴, 내 팔자야.”
“라면이 뭐 어때서!? 네가 몰라서 그렇지, 이만한 요리도 없다, 너? 맛있지, 값도 싸지, 종류도 다양하니 선택의 폭도 넓지! 네가 그렇게 좋아하는 베스킨라빈스보다 종류가 다양할 걸? 이만한 요리 봤니?”
“어이구 됐네요. 내가 말을 말아야지.”
“아냐, 더 들어봐, 끓여먹으면 식사, 날로 먹으면 간식! 식사와 간식을 이렇게 싸게 할 수 있는 음식이 세상 천지에 또 어디 있어!? 더군다나 이 컵라면은 물만 부으면 바로 먹을 수 있으니, 이 편리함이란…. 진짜 라면이란 이름부터 ‘스마트면’이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본다, 오빠는. 캬~! 스마트면~! 스마트폰? 노노~ 오우, 스마트면! 어때? 죽이지 않니? 앗!?”
“아악!! 뜨거!!!”
 

민성은 어째 과하다 싶을 정도로 격하게 팔을 움직인다 싶더니, 그만 테이블 위의 뜨거운 라면을 지현에게 통째로 쏟아 붓는 비극을 창조해내고 말았다.
 

“지현아! 괜찮아?! 어디 봐봐, 지현아!!”
“꺼져!! 이 라면 오타쿠새끼야!!!”
“지현아, 아무리 그래도 오빠한테….”
 

꽤나 소란스러워진 그들의 모습에 흘러나오는 음악에 심취해있던 순덕은 평온한 얼굴로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얼굴까지 벌겋게 달아올라 열을 올리며 악을 쓰는 그들과, 그들에 의해 더럽혀진 자리가 그녀의 동공 깊숙이 자리 잡는다. 허나, 순덕의 미간에 주름은 잡히지 않았다. 명치를 강하게 치고 싶단 상상조차 그녀는 하지 않았다. 순덕은 그저 아무런 말도 없이, 무척이나 평온한 얼굴 그대로 그들의 몸 구석구석을 주의 깊게 관찰하고만 있을 뿐이었다.
 

 

 

[버리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다? 따라함을 최우선으로 습득하는 여러분, 나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은 이제 그만! 버리는 사람이 본인도 모르는 사이 치우게 해드립니다. - 순덕공주]
 

순덕의 가게 맞은 편 횡단보도.
누가 썼는지, 누가 걸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이 현수막은 바람 한 점 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오늘따라 유난히 펄럭이고 있었다.
 

 

 

 

<完>
 

 

   

 

꼬릿말 보기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