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시판 즐겨찾기
편집
드래그 앤 드롭으로
즐겨찾기 아이콘 위치 수정이 가능합니다.
자작.단편)바다
게시물ID : panic_91536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김보경♡
추천 : 6
조회수 : 621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1/16 18:35:03
옵션
  • 창작글
바다  폭이 10m도 되지 않는 아담한 백사장. 바로 옆의 족구장과 약수터, 2채의 정자를 품고 있는 소나무 숲. 그 옆에는 왕복 2차선의 도로. 마음이 답답해서 안정을 느끼고 싶을 때마다 찾아가는 작은 해수욕장이다. 

심지어 바다 이곳저곳에 마을 주민들이 굴이나 바지락 등을 캐러가는 아무도 없는 무인도로 둘러싸여 있어 답답한 시야를 자랑하는 곳이지만 나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한 나만의 아지트 같은 곳이다.

뜨겁고, 더럽고, 시끄러운 일을 하다 보니 정반대의 장소에 끌리는 것인지, 어릴 적부터 찾아오던 장소라서 익숙해서 그런 것인지, 집에서 자전거로 15분이면 올 수 있다는 지리적 이점이 작용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내 방 침대보다, 높은 산 위에 올라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것보다, 분위기 좋은 카페에 앉아 독서를 즐기는 것보다 내 상처받은 마음을 치유해주는 고마운 장소이다.

오늘도 우울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 비번을 맞아 아침 일찍 아지트를 찾으려 했지만, 하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화재가 발생했었다.

대장님과 선배들은 괜찮다고 쉬는 날이니 돌아가라고 했지만, 아이가 갇혀 있다며 울부짖는 피해가족들. 지금껏 그들에게 마음의 안식처가 되어줬을 집과 그들이 소중히 가꿔왔을 텃밭과 닭장이 불타오르는 모습을 바라보니 모른 체 할 수가 없었다.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가려줌으로써 도망갈 구실을 만들어 주려는지 시커먼 화재 연기가 다가왔지만 나는 그 연기를 묵묵히 받아내고 싸웠다.  

나는 반짝이는 달님과 별님의 빛을 배웅 삼아 가로등이 드문드문 박혀 있는 어두운 시골길을 내달렸다.

파도 소리가 찰싹거리며 내 마음에 들어오려고 발버둥 쳤지만 때가 이르다는 듯이 매서운 바람과 차가운 냉기가 막아섰다. 나는 조금이라도 빨리 아지트로 가기 위해 힘껏 페달을 밟았다.

소방관이라는 직업은 99개의 의로운 일을 했어도 1개의 실수. 아니, 실수가 있지 않아도 유가족과 피해가족들의 쓴소리를 받아내야 하는 직업이다.

‘너희가 조금만 빨리 왔어도 내 아들은 죽지 않았어. 차가 막혀서? 골목길이 복잡해서? 핑계 대지 마! 뛰어오면 되잖아. 그게 너희 일이잖아!’

‘우리 강아지 핑키가 못나왔어요! 구해주세요. 저 불 속에서 꺼내주세요!' 

‘조심히 들어! 무사히 병원으로 데려가. 구급차에서 잘못되면 다 너희 탓이야.’ 

‘애초에 이런 교통사고가 발생하지 않도록 대책을 마련하는 게 너희 일 아니야? 세금 받아 처먹으면서 이 정도밖에 못해?’ 

‘구해내. 구해내라고! 너희 목숨을 바쳐서라도 내 아들을 저 화마에서 빼내 오란 말이야. 그 빌어먹을 사명감인지 책임감인지 어서 발휘해!’ 

물론 사고를 당해 제정신인 상태는 아니겠지만 무작정 눈앞에 보이는 우리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대고, 우린 그저 죄송합니다만 반복해야 하는 상황은 꽤 곤욕이고 고문이다.

사고의 원인이 피해가족의 부주의로 인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피해자니까. 가여우니까 넘어간다. 소방관들의 대처 미흡이라는 말로 말이다. 우리가 뭘 그리 잘못했는지 우리도 알 수 없다. 억지. 모든 게 억지이다. 물론 이런 생각을 하는 것 자체가 아직 진정한 소방관이 되지 않았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허나, 이해할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지희라는 이름을 가진 6살 꼬마였다. 불이 난 것도 커피를 마시기 위해 올려놓은 물이 원인이었다. 지희 어머니는 그 사실을 잊고 밭으로 향했고, 지희는 결국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지희 어머니는 오열했고, 자신의 잘못으로 자신의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엔 그녀는 너무 약했다. 

그녀는 책임을 우리에게 돌렸다. 왜 구하지 못 했냐고 왜 바로 진입하지 않았느냐고 다그쳤다. 시골이라는 특성상 낮에는 다들 일하러 떠난다. 유동인구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 보니 신고가 늦을 수밖에 없었고, 도착 당시에는 이미 불길이 모든 걸 집어삼킨 이후였다.  

그녀는 대원들의 가슴팍을 때리고,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다 나를 바라보고는 모든 화살을 나에게 돌렸다. 이웃이라고 부를 만큼 가까운 곳에 있지 않았냐고. 우리 지희 알지 않냐고. 이웃이 소방관인데 이런 사고를 당하는 게 말이 되냐고. 이렇게 무능한 게 어떻게 소방관이냐고 자격 없는 소방관은 죽어버리라고. 네가 죽어버리고 우리 지희 살려오라고.  수많은 말들이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혔다. 

대장님과 선배들은 뜯어말렸지만, 그녀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은 얼굴이었다. 그녀 나름대로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은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한참을 내달린 끝에 아지트에 도착했다. 

나는 정자로 다가가 주저앉았다. 다리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검게 물들어버린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내 마음도 저 바다와 같았다. 

지희는 날 존경했었다. 내 제복을 보고는 멋있다고 칭찬해주었고, 퇴근하는 길에 지희와 마주치면 나를 올려다보며 이렇게 묻곤 했었다.

'오늘도 이겼어요?’  

내가 무엇과 싸웠는지는 알 수 없지만 웃으며 고개를 끄덕여주면 내 손을 붙잡고는 해맑게 웃어주었다. 

‘역시 아저씨는 최고예요.’  

그랬던 아이가 죽어버렸다. 내 잘못인가? 내가 어떻게든 구해냈어야 했나? 아직 진정한 소방관이 되지 못한 건가?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 

잠시 고개를 들어 밤바다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웠다. 부서지는 파도에 달님의 별님의 빛이 들어가 있어 반짝반짝 빛난다. 지희도 별이 되어 저 바다에 들어가 있을 텐데. 

 “살려주세요…….”  

어디선가 미약한 신음과 함께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생기라고는 전혀 들어있지 않은 목소리였다.  

“누구세요? 어디세요?”  

나는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사고인가? 

 “여기…….”  

나는 목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내달렸다. 백사장 옆 크게 우거진 갈대밭에서 들리는 듯했다. 이제는 말할 기운도 없는지 희미한 신음만이 내 청각을 자극했다. 나는 숨소리도 죽인 채 최대한 집중했다.  이윽고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내었다. 

그곳에는 웬 비키니를 입은 여자가 물에 흠뻑 젖은 채 쓰러져있었다. 길게 기른 머리는 아무렇게나 뒤엉켜져 얼굴을 가리고 있었다. 왜 이런 시각, 이런 장소에, 이런 차림의 여자가 쓰러져 있는 건지 의문은 들지 않았다. 

그저 빨리 상태를 살펴봐야 한다는 생각에 신고해야 한다는 것도 잊은 채 무작정 달려갔다. 내 눈앞에서 생명이 사라져 가는 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이다. 

 “괜찮으세요? 제 말 들리세요?”  

나는 여자에게 다가가 머리카락을 옆으로 치웠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밤바다보다, 밤하늘보다 더욱 검게 빛나는 눈동자. 빛나는……? 정신이 아득해졌다. 

 여자의 모습은 점점 지희로 변해갔다. 그러나 내가 알고 있던 지희는 아니었다. 코는 녹아내려 귀와 붙어있었고, 눈두덩이는 이마를 지나 정수리에 안착해있었다. 입은 좌우로 찢어져 어릴 적 유행했던 괴담인 빨간 마스크와 흡사했고 손가락은 모두 붙어버려 오리의 그것과 흡사했다. 빨갛게 익어가던 몸은 어느 순간 검게 물들어갔다. 그리고 검은색으로 물들어가던 몸은 과자처럼 부서져 한 조각 한 조각 떨어져 나갔다. 이윽고 몸에 붙어있던 모든 검은색 퍼즐이 분해되었다. 하얗게 뼈만 남아버린 지희는 고개를 돌려 나를 바라보았다. 

 “아저씨…….”  

난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입이 움직여지지 않았다. 

 “저 왜 죽였어요……?”  

울고 싶었지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게 아니야. 내가 널 죽인 게 아니야. 

 “이번엔 죽이지 마세요…….”  

이번엔? 그게 무슨 말이야. 그러자 갑자기 지희의 모습이 생전의 모습으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 날아갔다. 날아가? 왜? 생각을 깊게 할 수 없었다. 그곳은 불타고 있는 지희의 집이었다. 

 “안 돼!”  

지희는 나를 바라보며 뒤로 날아가고 있었다. 지희의 표정엔 슬픔이 담겨 있었다. 정말로 이번에는 꼭 자신을 구해줬으면 하는 마음을 담은 듯했다. 나는 달음박질쳐 지희를 따라갔지만, 거리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았다. 그 사이에 지희는 어느샌가 화마가 깃든 집에 다다랐다. 

 “안 돼……. 안 돼!”  

시야에 지희가 사라졌다. 이번엔 망설일 수 없었다. 구해야 한다. 지희를 빼내와야 한다. 푸른 불꽃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런데 불이 뜨겁지 않았다. 이 차가운 불꽃은 흘러 흘러 나에게 다가왔다. 이게 뭐야. 이해가 가지 않는 상황투성이였다.  이 푸른 불꽃은 어느새 내 코앞까지 다가왔다. 내 코로, 입으로 들어가 호흡기관을 얼려버렸고, 눈으로 들어가 앞을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지희를 찾아야 하는데. 답답했다. 이런 데서 불꽃에 가로막혀 방해받을 시간 따위는 없는데. 이번엔 꼭 구해야 하는데.  

이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리를 움직일 수도, 팔을 움직일 수도 없었다. 그런데 몸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누군가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그게 아니었다. 이제 알고 싶지도 않았다. 그냥 이대로 편하게 쉬고 싶었다. 가만히 있으면 점점 떠올라 이 집에서 나갈 수 있겠지. 잠깐 쉬고 나면 괜찮아 질 거야. 지희도 같이 구해주겠지. 같이 나갈 수 있겠지. 



사람 한 명, 자동차 한 대 지나다니지 않는 야심한 시각. 작은 해수욕장에 비키니만 입은 채 누워있던 여자가 서서히 몸을 일으켰다. 

 “아으우으에.”  

입을 푸려는 듯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뱉었다. 그리고는 팔과 다리를 움직여 딱- 딱- 소리를 내며 관절들을 깨웠다. 초점 없이 검게 빛나던 여자의 눈은 어느새 생기가 깃들며 흰색과 검은색으로 나뉘었다. 표정없는 인형 같았던 여자의 얼굴에 미소가 꽃피웠다. 여자는 신발도 신지 않은 맨발로 터벅터벅 걸어가 정자 옆에 세워져 있는 자전거로 다가갔다. 자전거에 몸을 실으려던 여자는 멈칫한 후 뒤를 돌아 바다를 바라보았다. 

“미안해. 날 너무 원망하지 마. ” 



부제 : 물귀신 
전체 추천리스트 보기
새로운 댓글이 없습니다.
새로운 댓글 확인하기
글쓰기
◀뒤로가기
PC버전
맨위로▲
공지 운영 자료창고 청소년보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