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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영웅
게시물ID : panic_9153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Y-
추천 : 20
조회수 : 1741회
댓글수 : 8개
등록시간 : 2016/11/16 23:2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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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어제 민수가 죽었어.”



영범은 까끌까끌한 턱수염을 어루만졌다.


다만 우리 둘은 서로의 잔에 담긴 소주만을 쳐다 볼 뿐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술이 넘쳐흐를 것 같았기 때문이다.


우린 왜.


무엇을 잘못한 걸까.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거기엔 수많은 친구들이, 동료들이 웃고 있었다.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술잔을 걸치고 있었다.



나는 영범을 쳐다보았다.


그 깊게 패인 두 눈엔 고뇌가 담겨있었다.


그 때와 같은 총명함은 온데간데 없고.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 그에게 말했다.



“이제 단원도 두명 뿐이네.”



말로 담으니 그것만큼 현실감 있는 것은 없었다.


젠장할.


우리는 무엇을, 잘못한 것인가.


나는 술을 들이켰다.


오늘따라 더 쓰다.


영범은 담배를 꺼내며 입에 물었다.



“난 말이지. 민수놈이 싫었어.”



조용한 목소리로 영범은 말하기 시작했다



“그 새끼, 우리들이 좀비들 잡아 죽일때도 별로 참여도 안하고.”


“그 새끼가 살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고 다녔잖아. 기억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민수는 그런 녀석이었다.


항상 능글맞고 귀찮아 하던 녀석이었다.



영범은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씁, 하고 들이마시고는


영범은 회색 연기를 흩뿌렸다.



“그런데 그 놈이 죽었어.”


“넌 그게 이해가 되냐?”


“누구보다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던 녀석이 말이야.”


“집에서 목을 매달고 죽었다고.”



그리고 침묵에 빠졌다.


단지 영범은 담배를 피고


나는 술잔을 기울였다.


여전히 술은 쓰다.



“그 새끼, 유서도 썼었어.”



영범은 종이 쪼가리를 책상에 던졌다.


그곳엔 단지.



“단지 한마디. 미안하다라네?”


“하하하. 거참 이 도시를 구한 우리들은. 우리들의 단원은 무엇에 미안해야만 한걸까?”


“씨발…”



담배 연기만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그 연기는 마치 그때의 세상이 떠올랐다.


인간이 아닌, 인간이었던 것들이 세상을 뒤덮었던 그 때.



우리들은 조직을 만들었고 그들을 척결했다.


영범은 그 수장이었고,


나는 가장 말단의, 외부인이었다.


우리들은 이 도시의 모든 좀비들을 죽였고


이 도시에서 백신개발이 시작되었다.


백신이 완성되었던 것은 1년 전이었다.


좀비가 다시 인간이 되는 약이었다.



그리고 세상은 다시 인간의 것이 되었다.


우리들은 영웅, 구원자라고 불렸다.



“이제 영웅도 단 두명 뿐이네.”


“하하하. 영웅이라는 사람들이 전부.”


“전부 말이지.”


“자살로 목숨을 끊었다는게 웃기지 않아?”



영범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왜 다들 자살했다고 생각해?”


“넌 모르겠지만.”


“우리들은 말이야.”


“우리들의 손으로 죽였어.”



영범의 눈에는 절망과 한탄만이 담겨있었다.



“우리들의 손으로 가족을.”


“옆집 민철이네 가족도 내가 죽였어.”


“길건너 순이네 구멍가게도 내가 청소했어.”


“하하. 내 일생 다신 없을 친구인 송철이도 내가 죽였어.”


“다. 우리가 죽인거야.”



“약?”


“그 개같은 백신은 우리가 죽인 우리들의 친구들을 살려주지 않아.”


“우린 죽쒀서 개준거지.”


“우린 뭘 위해 싸운걸까.”



“그냥.”


“우리들은 이 마을을 떠날 수 없었던 거야.”


“그래서 모였고.”


“그래서 죽였고.”


“그래서 죽는거지.”



영범은 담배를 바닥에 던져 짓밟았다.


치익 소리가 단말마처럼 사그러들었다.



“사실.”


“어제 꿈을 꿨어.”


“내 가족들.”


“사랑하는 내 딸. 아름다운 내 아내.”


“옆집 민철이도 웃고 있었고.”


“민철이네 아들은 그때와 같이 나에게 장난치고.”


“순이네 할머니는 또 군밤을 들고 오시고.”


“내친구 송철이는 그때 같이 맥주 한캔 들고 너털웃음을 짓고.”


“그리고 우리 단원들이 있었어.”


“다들 웃고 있었어.”


“민수도 그곳에 있었어.”



“다들 손을 뻗고 있었어.”


“웃으면서 말이야.”



“모두들 다 그곳에 있는거구나.”


“나는 알게 된거야.”



“그래서 말이다.”



나는 영범에게서 위화감을 느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이미 늦었다.



권총에서는 불이 뿜어졌고


그 번쩍하는 사이에 나는 영범과 눈을 마주쳤다.



그는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미안하다고.



그리고 그는, 영웅은.


그렇게 죽었다.




난 혼자서 우리들의 장소에 남겨져 버렸다.


우리들의 영웅마저 붉게 물들었고.


이제 영웅은 한명만 남았다.


나는 영범을 바라봤다.


우리들의 영웅은 웃고 있었다.


그 얼굴을 나는 알고있다.



고개를 돌려 그 사진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웃고 있는 그때의 사진을.



그는 나에게 말했다.


나는 모를 것이라고.


하지만 나도 알고 있다.



사진을 들고 가슴에 품었다.


그래.


나도 알고 있다.



나도 ‘가족’을 전부 잃어버렸다.


그래.


나도 알고 있다.



수많은 '가족'들의 마지막을.


그들의 웃는 얼굴을.


그의 옆에 놓인 그 총을.



나는 알고 있다.



한 발이 남아있을 그 총과.


이제 사라질 영웅들의 이야기와.


마지막 남은 영웅의 말로를.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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