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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안, 불 쬐기
손님이 뜸한 토막 틈새
화톳불에 젖은 신발코를 대어봅니다
엄동추위 생선갈무리에 질척해진 시장바닥
물기젖은 얇은 장화발이 얼마나 시려우실지
저 작은 화톳불 온기가 기별이나 갈지
정일근, 쑥부쟁이 사랑
사랑하면 보인다, 다 보인다
가을 들어 쑥부쟁이 꽃과
처음 인사했을 때
드문드문 보이던 보랏빛 꽃들이
가을 내내 반가운 눈길 맞추다 보니
은현리 들길 산길에도 쑥부쟁이가 지천이다
이름 몰랐을 때 보이지도 않던 쑥부쟁이 꽃이
발길 옮길 때마다 눈 속으로 찾아와 인사를 한다
이름 알면 보이고
이름 부르다 보면 사랑하느니
사랑하는 눈길 감추지 않고 바라보면
모든 꽃송이
꽃잎 낱낱이 셀 수 있을 것처럼
뜨겁게 선명해진다
어디에 꼭꼭 숨어 피어 있어도
너를 찾아가지 못하랴
사랑하면 보인다, 숨어 있어도 보인다
이한직, 온실(溫室)
그 유리창(琉璃窓)너머
오월(五月)의 창궁(蒼穹)에는
나근나근한 게으름이 놓였다
저 하늘
표운(漂雲)이 끊어지는 곳
한대 비행기(飛行機) 간다
우르릉 우르릉
하잔히 폭음(爆音)을 날리며
진정
첫여름 온실(溫室) 속은
해저(海底)보다 정밀(靜謐)한 우주(宇宙)였다
엽맥(葉脈)에는
아름다운 음악(音樂)조차 담고
정오(正午)
아마릴리스는 호수(湖水)의 체온(體溫)을 가졌다
풍화(風化)한 토양(土壤)은
날마다
겸양(謙讓)한 윤리(倫理)의 꽃을 피웠지만
내 혈액(血液) 속에는
또 다른 꽃봉오리가
모르는 채 나날이 자라갔다
이달균, Solitary man
70년대 닐 다이아몬드는 고독을 노래했다
한 미국 사나이의 잃어버린 사랑을
어두운 지하 다방에서 열광하며 들었다
그때 우린 그 실연이 못내 부러웠다
한 생에서 사랑 잃고 신파조로 울면서
울어서 퉁퉁 부은 채 쏘다니고 싶었다
김종삼, 어머니
불쌍한 어머니
나의 어머니는 아들 넷을 낳았다
그것들 때문에 모진 고생만 하다가
죽었다 아우는 비명에 죽었고
형은 64세때 죽었다
나는 불치의 지병으로 여러 번 중태에 빠지곤 했다
나는 속으로 치열하게 외친다
부인터 공동 묘지를 향하여
어머니 나는 아직 살아 있다고
세상에 남길 만한
몇 줄의 글이라도 쓰고 죽는다고
그러나
아직도 못 썼다고
불쌍한 어머니
나의 어머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