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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하 사회주의자 다룬 '경성 트로이카' 이야기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게시물ID : sisa_561789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이한크롬
추천 : 1
조회수 : 50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4/11/20 14:42:04

성깔 있는 진보 미디어' 칼라TV에서 만드는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김현진 (에세이스트)과 송기역 (르포작가)이 진행하는 논픽션 책 팟캐스트입니다.

논픽션과 르포르타주 분야 책을 다루며 매주 1회 업데이트 됩니다.

인권 감수성과 진보 감성을 키워줄 <붉고도 은밀한 라디오>
제1회는 안재성 작가의 『경성트로이카』입니다.

방송 주소
팟빵 : http://www.podbbang.com/ch/8412
아이튠즈  : https://itunes.apple.com/kr/podcast/bulg-godo-eunmilhan-ladio/id939503572?mt=2



조선의 체 게바라, 이재유
1925년 조선공산당이 생긴 이래, 일제의 탄압이 극심해 몇 년 후 공산당은 거의 와해되어 버린다. 무너져 내린 공산당 재건 책임을 박헌영이 맡았지만 그는 상해에 있었기에, 국내에선 이재유, 김형선, 권형택 등에게 공산당 재건의 책임이 맡겨진다.
이재유는 이현상, 김삼룡 등과 함께 ‘경성 트로이카’라는 자유롭고, 상하가 없는 위원회 방식의 민주적인 조직을 만들었다. ‘트로이카’는, 말 세 마리가 동등한 힘으로 마차를 끄는 러시아 특유의 삼두마차를 뜻한다. 이러한 명칭에서 이재유가 꿈꾼 사회주의가 어떠한 것인지 짐작할 수 있다.
1933년 여름부터 <경성 트로이카>에 대한 소문이 은밀하게 퍼져나가자, 국제공산당 코민테른의 지도를 받는 박헌영이 김형선을 국내 책임자로 경성에 보낸다. 김형선은 이재유에게 함경도로 가서 구속된 이주하를 대신해 노동운동을 할 것을 요청한다. 하지만 이재유는, 노동운동이 발달한 함경도는 자신이 아니어도 충분하지만 노동운동의 초기 단계인 경성에는 자신이 꼭 필요하다며 김형선의 제안을 거절한다.
당시 경성에는 소련 쪽에서 들어온 권형태가 이끄는 공산당 조직도 활동하고 있었다. 이재유는 권영태 그룹과도 노선 차이를 보인다. 토론과 협의를 중시하는 이재유의 트로이카는, 코민테른의 지시를 받아 노동자를 지도, 통솔하려는 권형태 그룹과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었던 것이다.
한 노인의 증언에 의하면, 해방 후 이재유의 이름은 들어봤지만 박헌영의 이름은 처음 들었다고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서대문 형무소를 4번이나 신출귀몰하게 탈출한 이재유를 각 신문사는 대서특필했고, 민중들은 해방 후 나라를 이끌 지도자 5인 중 한 명으로 이재유를 손꼽았다.
그동안 우리 역사에서 지워진 이름이지만, 당시 이재유의 인지도는 이와 같았다. 하지만 이재유는 검거된 후, 8년간의 긴 옥고를 견디지 못하고 해방 직전인 1944년 10월 26일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나이 40세였다. 이재유는 체 게바라보다 앞선 사람이었지만 해방 후 사람들은 그를 조선의 체 게바라로 불렀다.
경성트로이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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