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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게시물ID : panic_91598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과거시
추천 : 5
조회수 : 798회
댓글수 : 0개
등록시간 : 2016/11/23 18:2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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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는 도로를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 김청규는 조용히 시트에 몸을 기댄 채 밖을 바라보았다. 칠흑같이 깜깜하다.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김청규는 상반된 기분을 느끼고 있었다. 즐거운 동시에 서글픈 느낌이 들었다. 도대체 왜일까... 그는 잠깐 기억을 더듬어 보았다. 어머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점심 때쯤이었나 그는 어머니께 전화를 했다.

"엄마, 내다. 이번에 휴가 냈다. 늦어도 7시나 8시쯤에는 집에 도착할 기다."
"아고, 이놈아~ 오면 온다고 미리 얘기를 하지 그랬누. 그래 뭐 먹고 싶어?"
"내야 뭐 엄마 해주는 김치찌개만 있으면 최고지~"
"오야오야, 어여 와라. 묵은지로 내가 제대로 해줄게"

어머니와의 통화를 떠올리며 청규는 미소지었다. 그의 어머니는 홀몸으로 어린 청규를 정성껏 보살폈다. 버스 탈 돈도 아깝다고 1시간 거리를 걸어가며 시장바닥에 좌판을 벌이셨다. "오구오구, 김대통령~" 어머니는 늘 그렇게 말하며 청규를 반겼다. "우리 청규는 머리가 좋아서 반드시 대통령 될 거여~" 애비 없는 새끼라고 놀림받는 때가 많았는데도, 청규가 비뚤어지지 않고 자랐던 건 그런 어머니의 사랑 때문일 것이다. 확 다 엎어버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는 늘 있었지만, 어머니가 눈물 흘릴 모습을 상상하면 금세 그런 화증은 수그러들고 마는 것이다. 청규는 이 악물고 열심히 공부했고, 시간은 흘러 한 사람의 직장인이 되었다. 비록 대통령이 되진 못했지만, 청규가 취직에 성공하자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셨다.

"아, 보고 싶네..." 남자새끼가 한심하게 눈물을 흘릴 뻔했다. 청규는 억지로 울음을 참으며 후드를 더욱 깊이 눌러 썼다. 그는 후드티를 좋아했다. 후드를 눌러 쓴 모습을 거울로 보고 있자면 왠지 수수께끼의 영웅 같은 분위기가 들어서 멋있다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간혹 그 수상한 차림새 때문에 오해를 사기도 했지만, 그는 자신의 패션 스타일을 끝까지 고수했다. 출근할 때를 제외하면, 그의 복장은 언제나 후드티였다.

"다음 소식입니다. 오늘 오후 3시 경 OO고속도로에서 버스가 탈선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승객 OO명이 사망했습니다. OOO씨를 포함한 4명의 승객이 현재 병원으로 이송 중이나 중태입니다."

라디오에서 뉴스가 들려온다. 빠르게 달리던 택시가 일순 느려지나 싶더니 멈췄다. 청규가 보니 도로변에 세 명의 사람들이 서 있었다. 그들은 차례대로 택시에 탑승했다. 한 명은 젊은 여성이었고, 다른 한 명은 정정해보이는 중년의 남성이었다. 조수석에는 점잖은 인상의 노신사가 탔다. 청규는 자리를 옆으로 옮겼다. "아저씨, XX 가죠?" 옆에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택시기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차는 다시 출발했다. 청규는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아까 기사 아저씨한테 어디로 간다고 얘길 했던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말했던가 안 했던가.... 혹시 모르니 말해둘까? 청규는 택시기사를 향해 말했다.

"아까 제가 말씀드렸나요? 저는 OO역으로 부탁드릴게요."

청규의 말이 끝나자, 돌연 옆의 두 승객이 청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기,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거길 갈 리가 없잖아요?"

여인이 이상하다는 투로 말을 걸었다. 중년 사내도 거들었다. "그렇지... 젊은이가 이상한 말을 하네그래." 뒷좌석의 사람들을 지켜보던 노신사가 물끄러미 택시기사를 바라보더니 물었다. "이보오, 혹 내가 잘못 탄 건가? XX 안 가나?" "아뇨, XX로 갑니다. OO역 안 갑니다." 기사가 대답했다. 도로를 달리던 택시의 속도가 다시 느려진다.

청규는 기가 막혔다. "아니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거에요! 거길 왜 안 가! 제가 먼저 탔구만 지금 뭔 소리를 하는 겁니까?!" 그러나 세 사람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쳐다보기만 할 뿐이었다. 도저히 청규를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뭐야 이 사람들... 어떻게 이렇게 뻔뻔하지? 괜시리 흥분하여, 청규는 후드를 벗고 맨 얼굴을 드러내며 따졌다. "대체 뭔 짓이에요, 이게! 새치기도 아니고!"

청규가 후드를 벗자 갑자기 세 사람의 안색이 변했다. 다음 순간 갑자기 택시가 멈췄다. 백미러로 청규를 보던 택시기사는 갑자기 차에서 내리는가 싶더니 청규 쪽의 차문을 열었다. "뭐, 뭡니까?" 기사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내려." 그는 대뜸 한 손으로 청규의 멱살을 붙잡더니 그를 밖으로 끌어내려 했다. 당황한 청규는 좌석을 붙들고 버티려 했지만, 그의 팔힘은 상상 이상이었다. 1초도 버티지 못하고 청규는 길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이봐요, 잠깐만요!" 청규는 급히 택시를 향해 소리쳤지만, 택시 기사는 그를 무시한 채 다시 택시에 탔다. 차는 청규를 두고 출발했다.

"뭐야, 이거...." 청규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밤중인지라 손조차도 보이지 않는다. 못 갈 거 같았으면 미리 말을 하든가... 길 한복판에 이렇게 내팽개치면 뭘 어쩌자는 거야... 엄마 기다릴 텐데.... 이대로면 집에 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여기서 노숙을 해야 할 것 같은데... 청규는 곤란해하며 울상을 지었다.

"어... 어?"

갑자기 청규의 왼팔이 저절로 들어올려졌다. "이거 왜 이래? 뭐야?" 알수 없는 힘이 왼팔을 부여잡고 있는 게 느껴진다... 청규는 왼팔에 끌려가다시피하며, 어딘가로 날아갔다..... 왼팔에서 온기가 느껴진다...








청규는 힘겹게 눈을 떴다.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전신이 지끈거리며 아팠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청규는 간신히 눈만 굴리며 주변을 바라보았다. 온통 하얀 가운데 사람들이 지나가고 있다. 어지럽긴 하지만, 정신은 확실히 든다. 어떻게 된 거지....

"아이고 청규야!!!! 청규야아!!!!!"

누군가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린다. 곧 청규의 눈에 어머니의 모습이 들어왔다.

"괜찮나!? 니 괜찮나!? 청규야!!!!"

어머니는 눈물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한 채 청규의 왼손을 끌어안고 있었다. 다음 순간 청규의 머릿속에서 기억이 되살아났다. 달리는 버스 안에서 핸드폰으로 어머니에게 전화하던 순간. 어머니의 김치찌개를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던 순간. 그리고 갑자기 버스가 크게 흔들리더니, 그리고....

청규는 억지로 쥐어짜내어 입을 열었다.

"괘안타, 엄마. 내 괘안타..."

어머니는 안심했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곧 간호사들과 의사가 청규의 병상으로 찾아왔다.

"자기야! 자기야!!!! 일어나봐, 자기야아!!!!"
"여보! 여보! 이리 가면 나는 어찌 살라고!!!"
"할아부지~! 할아부지이!!!!!"

주변에서 통곡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목의 깁스 때문에 누군지 보이진 않았지만, 어쩐지 청규는 그들이 누군지 알 것 같았다. 김청규는 왼손을 붙잡고 있는 어머니의 온기를 느끼며 정신을 가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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