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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창우, 거푸집
합판 등어리에
치오푼 각목 대어 못 박아
거푸집이 된다
동서남북 둘러서서 만든 빈 집 속에
날콘크리트를 채워 진주조개의 아림처럼 참아 익히면
첫 기둥 서고
빛 가린 천장에 드러누운 열흘 밤 열흘 낮
짓누르는 시간을 잠재워 흘러보내면
마지막 지붕이 덮인다
붙음과 떨어짐의 되풀이 삶 속에
비바람 맞아 옆구리 터지거나 가슴 구멍난 놈은
타는 저녁노을에 싸여 아궁이 밖 연기로 사라지며
한 세상 같이 살자던 타일, 유리, 미송판자들
목욕탕, 창문, 거실 마루 꼭 붙들고 눌러 붙어 사는데
가쁜 숨 돌리기 전
다시 낯선 공터로 떠나야 한다
네모꼴 몸으로 둥근 난간 만든 재미있고
망치질 아래 또 태어나면서
대개 꿈속에서만
그들이 지은 집안에서 살게 된다
이성선, 우물을 보는 소
동네 우물을
소가 들여다본다
우물 속에는 상수리 나뭇잎 피고
새가 날고
하얀 구름이 흐른다
물속의 소는 유난히 귀가 크다
우두커니 올려다보는 얼굴
흔들리는 굴레
먼 옛날 어느 족장의 훙예 같다
종처럼 일하다가
거지처럼 떠돌다
늙어서 바리때 하나 짊어지고
떠나왔다
물에 나비 미끄러지고
민들레 피어
그의 얼굴을 만진다
꽃관을 썼다
문정희, 사람에게
사람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그리워한다
사람, 너는 누구냐
밤하늘 가득 기어나온 별들의 체온에
추운 몸을 기댄다
한 이름을 부른다
일찍이 광기와 불운을 사랑한 죄로
나 시인이 되었지만
내가 당도해야 할 허공은 어디인가
허공을 뚫어 문 하나를 내고 싶다
어느 곳도 완벽한 곳은 없었지만
문이 없는 곳 또한 없었다
사람, 너는 누구냐
나의 사랑, 나의 사막이여
온몸의 혈맥을 짜서 시를 쓴다
사람을 피해 여기까지 와서 사람을 그리워한다
별처럼 내밀한 촉감으로
숨 쉬는 법을 알고 있는
사람, 나는 아름다우냐
김영태, 녹차
푸른 풀로 만든
물 위에 한 사람이 지나가는 차
하얀 정강이가 잡힐 듯
웃고 있는
울고 있지만
지금은 없어진 꽃
천양희, 다음
어떤 계절을 좋아하나요? 다음 계절
당신의 대표작은요? 다음 작품
누가 누구에게 던진 질문인지 생각나지 않지만
봉인된 책처럼 입이 다물어졌다
나는 왜 다음 생각을 못했을까
이다음에 누가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한다면
나도 똑같은 대답을 할 수 있을까
나는 시인인 것이 무거워서
종종 다음 역을 지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