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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흥글] 의지의남자, 마음 없는 너
게시물ID : panic_91640짧은주소 복사하기
작성자 : 못된야옹
추천 : 13
조회수 : 1226회
댓글수 : 2개
등록시간 : 2016/11/28 05:5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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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창작글
 

의지의 남자, 마음 없는 너.
 

 

 

느 날 TV에 의지의 남자가 나타났다.
 

“여러분, 제 의지의 힘을 보시겠어요?”
 

영상속의 의지의 남자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테이블 위에 놓인 젓가락을 노려보고는 한 손을 들어 손가락을 까딱했다. 그러자 테이블 위에 있던 젓가락이 순식간에 남자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남자는 손에 들린 젓가락을 빙그르 돌리더니 씨익 웃었다.
 

“젓가락을 손에 넣고 말겠다는 간절한 의지의 결과이죠. 이건 어떠한 연출도 아니며, 마술도 아닙니다. 오로지 ‘의지’ 하나의 능력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대답은 달랐다. 자신들이 모르는 눈속임이 분명 가미되어있을 거라는 의견이 대다수였다. 솔직히 요즘 같은 세상에 어느 누가 이런 기이한 모습을 곧이곧대로 믿겠는가? 그들의 반응은 당연한 것이었다.
 

“그렇게 반응하실 거란 것 쯤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 이런 건 어떨까요?”
 

남자는 갑자기 자신의 뒤통수를 클로즈업 시켜줄 것을 부탁했다. 이내 화면 가득 남자의 뒤통수가 적나라하게 비추어지자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머리칼을 들추며 입을 열었다.
 

“저는 사실 원형탈모를 앓고 있습니다. 이 반들반들한 두피가 보이시나요? 이 날만을 위해서 아직까지 의지를 불태우지 않았는데요, 자! 이번엔 제 의지로 머리칼을 나게 해보겠습니다.”
 

남자의 비듬 한 올까지 적나라하게 비춰진 영상을 보며 사람들은 어처구니없다는 얼굴로 눈살을 찌푸렸다.
 

“우리랑 장난하는 거야? 지금 저 남자 뭐하는 거야?”
“살다살다 저런 또라이는 처음본다.”
“설마 머리칼이 자라겠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하지만 사람들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대로 멈춰 있었다. 그렇게 몇 초가 지났을까? 정말 믿기 힘든 일이 일어났다. 반들반들했던 남자의 두피에 검은 점들이 생기는가 싶더니 순식간에 길쭉길쭉한 머리칼들이 자라나기 시작했다.
 

“세상에….”
“무슨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이….”
“저 남자는 초능력이라도 부린단 말인가?”
 

아까와는 확연히 달라진 사람들의 반응에 남자는 방긋 웃으며 손을 내렸다.
 

“의지가 있다면 못하는 일은 없죠. 이번엔 조금 더 재미난 걸 보여드릴까요?”
 

남자는 갑자기 입을 벌리곤 이~하고 웃었다. 들쭉날쭉한 덧니와 뻐드렁니로 불규칙한 치열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비싼 돈 들이고 교정시술을 받을 필요가 없답니다. 의지만 있다면요.”
 

남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순식간에 남자의 불규칙한 치열이 제각각 자리를 잡아가더니 어느 순간 가지런하고 예쁜 치열로 변해있었다.
 

“이것은 초능력이 아닙니다. 단순히 의지만 있다면 가능한 일이예요. 어느 누구나 말이죠.”
 

남자는 천진난만한 웃음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맞아! 의지만 있다면 못할 일이 어디 있어?”
“의지박약인 한심한 사람들이나 실패하고 좌절하는 거야.”
“나도 저 남자 같은 강한 의지를 손에 넣고 말겠어!”
 

사람들의 뜨거운 반응에 남자는 돌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내 그의 안색이 일순간 어두워졌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의지만으로 되지 않는 일도 있답니다.”
 

순간 영상이 흐릿해지는가 싶더니 어떤 어린 아이의 모습이 화면에 비춰졌다.
 

“화면에 나오는 아이는 저입니다. 한 번 지켜보실까요?”
 

영상 속 어린아이는 부모에게 학대당하고 있었다. 처참하게 일그러진 얼굴로 옷장 속에 숨어있는 나날이 길어진다. 영상 속 교복을 입은 아이는 반 아이들에게 따돌림 당하고 있었다. 입술이 터지고 얼굴이 새파랗게 멍이 들어도 아이들의 발길질은 끝나지 않는다. 쩔뚝거리며 집에 돌아온 그를 마주하는 건 싸늘한 시선뿐. 영상 속 성숙한 아이는 교도소에 들어가고 있었다. 억울한 살인 누명을 뒤집어 쓴 걸 알아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많이 지쳐있을 뿐이었다. 영상 속 어른이 된 아이는 괴한들에게 쫓기고 있었다. 더 이상 도망칠 곳은 없어 보인다. 영상 속 남자는 모든 것을 놓아버리기로 정했다. 지칠 대로 지친 이 지독한 삶이라는 끈을 놓기로. 그는 시커먼 강물 위로 몸을 던졌다.
그렇게 영상은 끝이 났고 이내 남자는 입을 열었다.
 

“저는 의지가 부족했던 것일까요? 오로지 이건 제 의지가 나약했기에 벌어진 일들일까요? 지금도 수많은 아이들이 저와 같은, 혹은 저보다 더 비참한 인생 속에서 죽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아이들의 의지 문제라고 하실 건가요? 의지가 약할지언정 없는 삶은 없습니다. 하지만 마음이 없는 삶은 언제나 늘 우리 곁에 있습니다. 주변을 한 번 돌아보세요. 당신은 가족에게, 친구에게, 이웃에게 마음이란 것을 제대로 줘본 적이 있습니까? 지쳐가는, 죽어가는 그들에게 관심을 줘본 적이 있습니까? 혹, 본인 개개인의 의지문제라고 넘기고 있진 않으셨나요?”
 

남자는 그 말을 끝으로 화면에서 눈 녹듯 서서히 사라져갔다. 사라져버려 이제는 희미하게 조차도 보이지 않은 텅 빈 화면을 응시하는 사람들은 말이 없었다. 그저 그들 각각의 죽은 A군을 혹은 B양을 떠올리며 먹먹한 가슴을 움켜쥘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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