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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욕설이 조금 있습니다.)
내가 그것을 처음 자각했을 때는 그 전날 밤 술을 거나하게 마시고 들어와서 일어난 직후, 숙취로 머리가 깨질 듯 아팠던 와중이었다. 누워서 흐린 눈을 깜빡이며 하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와중, ‘그것’을 처음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것은 별거 아니었다. 새까만 점, 아주 작은 까만 점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 티끌을 신경 쓰기에는 그 전날 먹은 술기운에 몸이 푹 절어있었다. 그 때 내가 했던 생각은 크게 쳐 봐야 ‘천장에 저런 흠집이 있었네’ 정도였을 것이다.
“일어났어?”
익숙하고 달콤한 목소리. 2년째 사귀어 오고 있는 내 여자친구 진서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도 잠시, 진서가 이 시간에 여기 있다는 사실에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어제 내가 그렇게 과음하고 들어올 수 있었던 이유도 진서가 어제 부모님께서 찾으신 다며 부산에 있는 본가에 내려갔기 때문이었다. 모처럼 여자친구가 없으니 친구들과 신나는 여흥의 밤을 보내고 싶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내가 하룻밤 잠깐 비웠다고 그새를 못 참아서 얼마나 마셔댔으면 술 냄새가 진동을 하네!”
“하하하, 미안미안. 네가 없으니 너무 외로워서 술로 달랠 수 밖에 없었다고.”
“말만 잘해요 말만!”
진서가 사정없이 내 옆구리를 꼬집어대며 날 채근하기 시작했다. 아직 숙취가 남아있어 머리가 아파 죽을 것 같다. 나는 뒹굴면서 반항을 하고 진서는 끈덕지게 날 괴롭혀댔다. 진서는 그렇게 한참을 괴롭히다가 손을 떼고 일어나며 말했다.
“내가 한번만 봐준다.”
“다시는 안 그럴게. 그런데 어떻게 이렇게 일찍 왔어?”
“일찍?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너 정말 정신 없구나.”
진서는 그렇게 말하고 깔깔깔 웃기 시작했다. 지금이 몇 시지? 더듬더듬 핸드폰을 찾아서 확인한 시각은 오후 1시 47분이다. 어제 밤을 샐 기세로 마셔댔으니 지금 일어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진서는 아마도 아침에 기차를 타고 출발한 모양이다.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됐네.”
“하여튼 못 말려. 아직 술 덜 깼지? 밥은 나중에 먹을래?”
“아니 지금 먹자. 배고파.”
“정말? 그럼 잠시만 기다려. 집에서 반찬 가져왔어. 내가 오랜만에 솜씨 발휘 좀 해볼게.”
“와! 내 여자친구 최고!”
“이럴 때만?”
진서는 예쁘게 눈을 흘기며 부엌으로 나갔다. 진서가 나가고 나서 나도 몸을 일으키며 기지개를 폈다. 아직 머리가 띵하긴 하지만 물 한 컵 마시면 괜찮아 질 것이다. 나른하고 평화롭다. 내 이름은 ‘수완’. 올해로 25살로 현재는 휴학생이다. 벌써 이런 생활을 한지도 7개월이 다 되어간다. 제대를 하자마자 자취를 하겠다고 집을 구하고, 바로 복학을 하려니 시기도 애매해서 1년만 휴학을 하자고 결심했다. 그러다 사귀던 여자친구 진서도 몇 번 자취 집을 들락날락 하다 보니 거의 같이 살다시피 되었던 것이다. 진서 또한 나랑 동갑으로, 그녀는 이미 졸업한 뒤 자대에서 석사과정을 이수하고 있었다.
“그럼 나는 수업 갈게. 오늘도 저녁까지 연구실에 있을 것 같으니까 저녁 챙겨먹어, 알았지?”
“알았어. 잘 다녀와.”
“응, 나중에 봐.”
밥을 먹고 나서 그녀는 집을 나섰다. 혼자 남은 나는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배도 부르고, 아직 숙취도 덜 가셨겠다, 오늘은 진서가 올 때까지 집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품을 늘어지게 하고 눈을 깜빡였다. 흐려진 시야에 일어난 직후 보였던 검은 점이 천장에 보였다. 별로 티는 나지 않는다. 그때의 나는 너무나 느긋하고, 느긋했다. 그렇게 나는 여느 때처럼 며칠을 보냈다.
주말이 되었다. 나와 진서는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쉬고 있었다. 그 때 핸드폰이 울렸다. 오랜만에 걸려오는 익숙한 번호. 정말이지 끈질기다. 난 더 들여다 보지도 않고 통화를 거절했다.
“전화 하지 말라니깐 끝까지 이러네.”
“누구야?”
내가 사납게 전화를 끊어버리자 진서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누구인지 물어보았다. 하필 이런 타이밍에 전화가 오다니.
“예전 친군데, 저번부터 계속 돈 빌려 달라고 연락이 오지 뭐야. 처음에는 정 때문에 몇 번 빌려줬는데 점점 얘가 염치가 없어져서……”
“어머, 그런 애가 있어? 누군데?”
“너는 몰라. 중학교 동창. 요즘 전화를 안받으니까 아예 다른 번호로까지 연락을 해대서 엄청 화냈거든. 한동안 연락 안 오더니 또 그러네.”
진서는 마치 자기 일처럼 화내주었다. 역시 착한 여자다. 착하고 예쁜 내 여자친구. 나는 사랑스러운 시선으로 진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어?”
그때 나는 ‘또’ 보았다. 천장에서 본 것과 비슷한 점. 이제는 진서의 이마에 찍힌 검은 점. 손을 들어 그녀의 이마를 문질러 보았다.
“무슨 일이야?”
“아니 여기 점이……”
“점? 무슨 점?”
그녀는 화들짝 놀라서 거울을 들고 자기 얼굴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에이, 없잖아. 깜짝 놀랐네.”
그래, 그녀의 이마에 점은 없었다. 놀랍게도 그 점은 내 시선을 따라오고 있었다. 나는 문득 머리에 뭔가 스치는 것이 있어서 천장을 올려다 보았다. 침대에 누워있는 것도 아닌데 하얀 천장에는 점이 찍혀있었다. 저번보다 조금 더 커진 점이. 이제는 티끌이 아니라 확연히 존재감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커진 검은 점이었다.
내 시선을 따라오고 있는 점이라니. 그 뒤로 이틀이 지났다. 이틀 동안 내가 알아낸 것은, 저 검은 점이 내 시선 중앙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그것의 크기가 점점 커져가고 있다는 것. 처음엔 좁쌀만했던 점이 지금은 쌀알 정도의 크기이다. 처음 내가 진서의 얼굴에서 점을 발견했을 땐, 단순히 눈이 피로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며칠이 지나도 낫기는커녕, 점점 커지다니. 진서는 많이 걱정하며 바로 안과를 가라고 했다. 녹내장인가? 하지만 녹내장은 시야가 바깥에서부터 좁아지는 것 아니었나? 가운데서부터 크기를 키워가는 실명이라니. 처음 들어본다. 이대로 놔두면 실명 될지도 모른다. 실명이라니! 갑자기 공포에 휩싸인 나는 부랴부랴 병원에 갈 채비를 했다.
병원에 가는 동안에도 그 점은 끈질기게 나를 쫓아왔다. 버스 번호를 볼 때도 약간 시야를 빗겨봐야만 했다. 버스에 타고나서부터는 아예 눈을 감고 있었다. 보고 싶지 않다.
“어디가 문제시라고요?”
“눈 가운데 점이 생겼어요.”
“점이요?”
“시야 한가운데 까만 점이 가리고 있어요.”
“아 네…... 크기가 어느 정도입니까?”
“점점 커져요. 처음엔 좁쌀 정도였는데 지금은 쌀알 크기 정도……”
“음, 한번 검사를 해봅시다.”
몇 시간 동안 여러 검사를 해본 결과 놀랍게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 의사선생은 한참을 고개를 갸우뚱하며 시신경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아마도 스트레스 때문에 일시적으로 안 보이는 것일 수도 있다며 집에서 푹 쉬어 보라고 했다. 불안했지만 우선 집에 갈 수밖에 없었다. 그 점은 밥을 먹을 때도, 씻을 때도, 잠깐 쉬면서 스마트폰을 볼 때도, 진서와 같이 시간을 보낼 때도 끈덕지게 쫓아왔다. 그것이 유일하게 보이지 않을 때는 불을 끄거나 눈을 감고 있거나 잠을 잘 때 뿐이었다. 도대체 저것은 무엇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그것은 내 공포심의 크기를 먹어가며 크기를 키워가고 있었다.
“여전히 안 사라진다고요! 매일매일 와서 약도 타먹고 주사도 맞아봤잖아요! 그런데 심지어 3일 동안 크기도 더 커졌어요! 이제는 팥알 크기 정도라고요! 말씀대로 아무것도 안하고 푹 쉬었는데 전혀 나아진 게 없잖아요!”
의사선생은 굉장히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3일간 꼬박꼬박 이 병원에 와서 검사를 받고 진단을 받았다. 나아진 것은 ‘하나도’ 없었다. 정말 미쳐버릴 것 같다. 집에 며칠간 있는 동안 진서가 나를 달래다가 나의 히스테리에 지쳐버렸다. 결국 오늘 아침에는 심하게 다툰 뒤에 그녀는 학교로 가버렸다. 얼른 이 망할 점을 지워버리고 싶다.
“저기…… 정말 검사상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몸에는 이상이 없으시단 말이에요.”
“그런데 이게 왜 안 없어집니까!”
“그…… 이런 말씀 드려도 될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몸에는 전혀 이상이 없어도 정신적 문제가 육체적으로 표현될 수도 있는 거거든요.”
“하! 그래서요? 제가 정신병에라도 걸렸단 말입니까?!”
“저기…… 조금만 진정하시고 들어보세요. 환자분의 케이스가 특이해서 다른 의사 분들에게 상담을 요청했었습니다.”
의사는 책상 위에서 명함을 한 장 집어 나에게 건네주었다.
“다행히도 우리 병원 의사 분의 지인인 의사 분께 똑 같은 케이스의 환자가 있었나 봅니다.”
그가 하는 말이 사실이라면 한 가닥 희망이 있다. 나 같은 사람이 또 있다니. 나는 희망이 생겨서 한층 누그러진 목소리로 물었다.
“정말입니까?”
“예. 그리고 제가 아까 했던 말 기억하시죠?”
“네.”
“여기 근교의 병원입니다. 정신과라고 해서 너무 거부감 갖지 마세요. 현대사회에선 흔히 있는 일이라고들 하니까요.”
“네……”
나는 명함을 집어 들고 터덜터덜 병원문을 나섰다. 내 시선이 머무르는 명함 위에는 여전히 내 시야를 거추장스럽게 가리고 있는 점이 있다. 정신과 전문의 정ㅇㅇ 박사. 하, 정신과라니. 나랑 똑 같은 증상이 있는 사람이 있다는 곳이 정신과라니. 나 진짜 미친 건가? 이렇게나 멀쩡한 느낌인데 문제가 생겼단 말인가? 별로 유쾌하진 않지만 그래도 약간은 희망이 생겼다. 그래, 우선 집에 가면 진서에게 사과부터 해야겠다.
명함에 적인 전화번호로 정신과 의사라는 정의사님께 전화를 하고 사정을 말하니 우선 병원 사무실로 찾아오라는 말을 들었다. 그날 저녁 진서에게 사과를 하고 나와 똑 같은 사람이 있다는 걸 말해주자 진서는 정말 다행이라며 날 위로해주었다. 그래, 진서도 있는데 내가 힘을 내야지. 저 정신과 의사를 만나고 오면 어떻게든 될 것이다. 어떻게든.
“그러니까, 증상이 시야 한가운데 점이 생겨서 그게 점점 커지는 거라고요?”
“예.”
그는 나에게 한참이나 증상을 되물었다. 마치 확인이라도 하듯이. 그렇게 세네 번을 되묻고 나서 선생님은 카르테를 한참을 뒤적거렸다. 그리고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이런 케이스를 또 만나게 될 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지 않았습니다만.”
선생님은 거기까지 말하고선 어두운 표정으로 카르테를 한참 들여다 보다가 천천히 나에게 내밀었다.
“여기 한번 보시겠습니까?”
나는 의사 선생님이 내민 종이를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증상, 시선 상에 크기가 커지는 점이 존재함. 내 증상이다.
“사실 이런걸 보여드리면 안됩니다만. 이 케이스가 워낙 독특하기도 하고, 기억에 남기도하고. 그리고…….”
의사는 다시 말을 멈추었다. 뭔가 굉장히 생각이 많은 듯한, 고민이 많은 듯한 얼굴이었다. 원래는 환자의 진료기록을 함부로 보여주는 건 엄중한 법적 처벌을 받을 일일 것이다. 그것이 걱정되어서 저렇게 어두운 얼굴인 걸까?
“이 사람은, 선생님의 환자분이었던 거죠?”
“그렇죠.”
“이 분은 완쾌되셨나요?”
나는 나와 같은 증상에 54년생이라는 김창선씨의 진료 기록과 치료 과정을 유심히 들여다 보았다. 비록 의학용어가 뒤섞여있고 간단하게 기록했을 뿐인 카르테지만 여기에 답이 있을 것만 같았다.
“돌아가셨습니다.”
“예?!”
방금 전까지의 희망이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수렁으로 잡아 끌어내려졌다. 갑자기 정신이 아득해졌다. 이게 무슨 소리지 지금. 돌아가셨다고? 죽었다고? 도대체 왜? 사고인가? 병은 완치되었던 건가? 아니면 병이 목숨에 직결되는 문제였던 걸까? 내가 한동안 패닉 상태에 빠져 말을 잇지 못하자 의사가 단호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 분은 수완씨와 같은 증상으로 이 병원을 찾아오셨고, 열심히 치료를 받으셨지만 완쾌되지 못하셨습니다.”
“그럼, 왜…… 왜……!!”
“이 분은 제 환자셨지만 제가 끝내 편하게 해 드릴 수 없었습니다. 약물치료, 통원치료, 입원치료, 모든 것을 시도했지만 이 분은 날이 갈수록 오히려 불안정해 지셨고 나중에 가서는 시야 속의 그 까만 점이 문제가 아닌 다른 것에 시달리는 듯 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요?”
나는 불안했다. 내가 마지막 희망이라 믿었던 것에서 믿고 싶지 않은 절망적인 말들이 쏟아져 나왔다.
“결국 자살하셨습니다.”
맙소사.
나는 고개를 떨구었다. 믿기지가 않는다. 온갖 치료를 했지만 완치는커녕 오히려 자살했다고? 도대체 왜? 실명이 그렇게나 끔찍한 일인가? 죽고 싶을 정도로?
“…그런데 이건 왜 보여주시는 겁니까?”
“아까 말씀 드렸듯이, 이 케이스를 가진 분을 또 볼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고…… 저에겐 이분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있습니다.”
그는 고개를 돌렸다. 표정이 내내 어두웠던 건 그 때문이었나.
“사실 창선씨가 처음 여길 찾아왔던 때 까지만 해도 창선씨는 그냥 순박한 시골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제가 무리하게 치료를 하겠답시고 약물에, 입원까지 시켜서 완치를 시켜보겠다고 했습니다. 그가 진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가정을 철썩 같이 믿으면서요!”
그는 몹시 괴로운 목소리였다.
“창선 씨의 불안 증이 심해질수록 더 센 약을 투약하고 치료의 강도를 키웠습니다. 하지만 차도도 없고 창선씨는 더욱 더 공포에 떨었죠. 치료에 많이 지치신 것처럼 보였기에 퇴원을 시키고 당분간 집에서 안정을 찾게 했는데 그 뒤로 찾아 오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한달 쯤 뒤에 아내 분께 연락이 오더군요. 그렇게 가셨다고…… 결국 그는 자신이 미쳤기 때문에 이런 일을 겪는다고 생각하고 자살했을 겁니다!”
그는 한번에 말을 토해내고는 얼굴을 손바닥으로 감쌌다. 이 사건에 대한 그의 죄책감은 뿌리가 깊은 모양이었다. 그가 자살한 탓을 자기에게 돌리다니.
“그래서 수완씨에게는 기회를 주고 싶어요. 이 병은 제가 고칠 수 없습니다.”
결국 그런 거였나. 이 병을 치료할 공식적인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유도 모르고, 정신적인 문제인지도 확실치 않다. 하지만 박사씩이나 되는 분이 사력을 다했는데도 결국 원인조차 모르는 병이라면 정신적인 문제도 아닐 것이다. 내 주변이 까맣게 물들어 가는 것만 같다. 점점 더 커져간다지만 아직은 조그마한 점일 뿐인데. 시야를 가릴 뿐인 이 점이 내 삶에 얼룩을 찍어 내는 것 같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점이 내 시야에 난 ‘구멍’이라고 느껴졌다.
의사선생님은 김창선씨의 카르테를 나에게 복사해주었다. 내 병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많이 고민해서 준 것이니만큼 절대로 다른 사람에게 말하거나 보여주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어제 받았던 명함처럼 이 진료기록을 희망이라 생각하고 믿을 수 있을까? 여기에는 이 병을 고칠 답이 있을까? 하지만 정확한 건, 어제만큼 나는 기쁘지 않았고, 앞으로 희망이라는 말이 아득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다녀왔어?”
어둑해져서야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진서가 반갑게 맞아준다. 낮 까지만 해도 진서를 생각해서 힘내야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 웃음조차 무겁게 느껴진다. 어떻게 말을 해줘야 할까.
“응.”
“어땠어? 괜찮대? 치료할 수 있대?”
“응. 며칠 동안 꾸준히 치료 받아보래.”
아무래도 도저히 못 말하겠다. 치료방법이 존재하지 않을뿐더러 예전에 나와 같은 증상을 가졌던 사람이 자살했다는 것을 이렇게 환하게 웃는 진서에게 어떻게 말한단 말인가.
“잘됐다! 빨리 나으면 좋겠다.”
“금방 치료할 수 있을 거야. 그런데 앞으로 한동안 치료 때문에 바쁠지도 몰라. 입원해서 치료받아야 될지도 모르고.”
“그 정도야 괜찮지. 낫는 게 중요한걸.”
“고마워. 사랑해.”
“나도.”
진서를 껴안았다. 슬픔과 공포와 절망이 뒤섞인 감정이 끊임없이 밀려든다. 진서를 안고라도 있지 않으면 무너질 것만 같다. 웬일로 어리광을 부리는 거냐며 진서가 한마디 했지만 그래도 난 그녀를 놓을 수 없었다.
다음 날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한 일은 김창선씨의 집에 찾아가 보는 것이었다. 진료기록에 적혀있는 핸드폰 번호로 연락을 해봤는데 전혀 다른 사람이 번호를 쓰고 있었다. 아마 죽고 나서 바뀐 거겠지. 그러고 나니 남은 것은 주소 밖에 없었다. 그가 예전에 살고 있던 집은 이곳에서 버스를 타고 3시간 정도 걸리는 외곽. 나는 출발 할 수밖에 없었다.
열심히 물어 물어 도착한 곳은 논밭이 펼쳐진 탁 트인 한가한 곳이었다. 하지만 시야가 트여있는 만큼 시야에 뚫린 구멍도 또렷하게 보인다. 그것의 크기가 점점 커져가는 속도가 빨라지는 것 같다. 이제 거의 새끼 손톱만한 크기의 그것은 점점 내 시야를 좀 먹어 가고 있었다. 지긋지긋한 놈. 버러지 같은 놈. 주소에 적힌 집에 도착해서 벨을 누르니 한 아주머니가 나왔다.
“누구세요?”
“아, 이곳에 김창선이라는 분께서 살고 계시지 않았습니까?”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있었죠. 지금은 없어요.”
“그럼 아주머니는 김창선씨의 부인 분 되십니까?”
“왜 그러시는데요?”
“초면에 실례인줄은 알지만 그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겪었던 병에 대해서 여쭤볼게 있는 데요.”
“이봐요. 어디서 무슨 말을 듣고 취재하러 오셨나 본데, 이미 죽은 지 몇 년이나 지난 사람 일을 이제 와서 이렇게 찾아와서 꼬치꼬 치 캐묻고 그러는 거 불편하네요. 돌아가주세요.”
“저기, 잠깐만요!”
냉랭하게 말하고는 돌아서는 아주머니를 다급하게 불러 세웠다. 여기까지 어떻게 찾아왔는데. 절대로 이대로 보낼 수는 없다. 등 뒤로 식은땀이 한줄기 흐른다.
“저도 같은 병을 앓고 있습니다!”
나에게 저지당한 아주머니가 날 의아하고 불신에 찬 눈으로 날 바라보았다.
“못 믿으시겠지만, 저도 김창선씨와 같은 병을 앓고 있습니다. 시야 한 가운데에 까만 점이 커져가는 병이요. 증상이 나타난 지 일주 일이 좀 넘었습니다.”
내가 말을 이어감에 따라 아주머니의 표정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바뀌었다. 충격을 받으신 것도 같았다.
“병원에선 치료 할 수 없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도와주세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아니 사실이라고 해도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아주머니는 횡설수설하며 몹시 당황하셨다. 아주머니의 눈빛에는 숨길 수 없는 불안함이 드러났다. 안 좋은 기억이겠지. 김창선씨가 자살로 돌아가셨다고 했으니, 최초 발견자는 아내 분께서 하셨을 확률이 높다. 어쩌면 트라우마 일지도 모르는 기억을 내가 끄집어 내려고 하는 것이다.
“그냥 아는 대로 말씀해 주세요. 한마디라도 저에게 도움이 됩니다.”
“아니…… 무슨…… 휴……”
아주머니가 다리가 풀린 듯 휘청거렸다. 얼른 부축을 해드리자, 고개를 절래 절래 저으며 나지막이 따라 들어오라고 한마디 하신 뒤 문 안으로 들어가셨다. 아주머니를 따라 대문을 넘자 좁지 않은 마당에 평상이 보이고 그 뒤로 집 마루가 보였다. 전형적인 시골집의 느낌.
아주머니는 평상에 털썩 앉으며 나보고 옆에 앉으라는 의미의 손짓을 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주머니와 살짝 거리를 둔 채로 앉았다.
“좋은 손님이면 안에 들여서 마실 거라도 한잔 내주면서 천천히 얘기 하겠구만, 청년은 그닥 반갑지가 않아. 내 말 무슨 뜻인지 알 지?”
“……예.”
사실이다. 이렇게 말씀을 해주시는 것만 해도 백 번 머리를 숙이며 감사를 드려도 모자랄 판이다.
“뭐가 궁금해요?”
“그 분이 처음 병을 발견했을 때부터 그…… 돌아가시게 된 경위를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아주머니께선 잠깐의 침묵을 유지하시더니 곧이어 입을 여셨다.
“몇 년 전 일이라 기억이 흐릴 수도 있어요.”
“괜찮습니다.”
아주머니는 한숨을 푹 내쉬신 후 말을 이었다.
“그때가 아마 오 년 전이지 싶어요. 신문을 보다 말고 갑자기 눈에 뭐가 들어간 거 같다고, 앞에 뭐가 가리고 있다고 그러더라구요. 사실 그때는 녹내장인줄 알았지. 우리 나이쯤 되면 그런 거 하나씩 걸릴 만 하니까. 그런데 병원에 가니까 아니라는 거야. 그런데도 이 양반이, 낫지는 않고 점점 더 심해진다는 거야. 자꾸자꾸 커진대. 그…… 것이. 차도는 없고 점점 심해진다니까 그쪽에서 먼저 정 신과를 추천해 줬어요. 혹시 모르는 거라고.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으면 그런 환각이 보일 수도 있대. 처음엔 길길이 날뛰었지. 내가 정신병자인 거 같냐고. 그이가 좀 다혈질인데다 고집이 세서 설득하는데 시간이 좀 걸렸죠. 다시 병원에 갔더니 이것저것 많이 검사를 하더라고. 약도 많이 주고. 그 사람은 치료를 받으면서도 매번 불평불만 했었어요. 딱히 낫지도 않는 것 같은데 괜히 돈만 버 리는 거 같다고. 사실 지금은 나도 좀 후회하고 있어요.”
“왜죠?”
“그이가 ‘진짜’ 환각을 보기 시작했거든요.”
아, 의외다. 의사선생님이 말해준 그 점점 더 불안해 했다는 것이 커져가는 점뿐만 아니라 다른 환각증상도 보게 돼서 그런 걸까. 약물이 안 좋은 영향을 미친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정신병원이라는 환경에서 압박 감을 너무 심하게 받았을 수도.
“티비를 보던 중 이었어요. 그이가 눈이 그렇게 되고 나서부터는 티비를 좋아했죠. 화면 이 어지러우니까 그게 그렇게 거슬리지 않 았었나 봐. 다른 거에 집중 할 수도 있고. 그런데 갑자기 티비를 보다 말고 천장을 보는 거야. 그러더니 얼굴이 파랗게 질려. 그리고 는 한참을 혼자서 중얼중얼 혼잣말을 했어요.”
“뭐라고 하시던가요?”
“’아니었네…… 그게 아니었네……’ 이러면서 자꾸 뭐가 아니라는 거야. 옆에서 무서워져서 뭐가 아니냐고 물어봤는데 날 보더니 점 이 아니었대. 내가 무슨 말이냐고 계속 다그쳤는데 그 말밖에 안 하더라고. 난 진짜 이 양반이 정신병원에서 미쳐서 나왔나 했어요. 그 이후 부터 그이가 이상해졌어요. 말만 걸어도 소스라치게 놀라고 일부러 눈을 가리고 다니기도 하고 하여튼 엄청 불안해 했어요. 결국 입원까지 했었죠.”
“점이 아니라는 말은 무슨 뜻이었을까요?”
“나도 모르죠. 의사는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었어요. 점이 다른 걸로 바꼈다고 해서 그게 환각이 아니었던 건 아니라면서. 입원한 동 안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겠어요. 면회도 안 된다 그러니까 기다리기만 했죠. 그런데 문제는 퇴원하고 나서였어요.”
아주머니는 목이 타는지 물을 벌컥벌컥 들이키고 난 뒤 말을 이었다.
“퇴원하고 나서부터 그이는 누워만 지냈어요. 그냥 누워 있는 것도 아니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 쓰고 바깥은 나올 기색도 안 하니 무섭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하고…… 진짜 저러다 사람이 훼까닥 돌아서 내 목을 조르거나 하지는 않을까 저도 불안했어요. 그 런데…… 그런데……”
아주머니는 입술을 조금씩 물어뜯었다.
“그날은 부엌에서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갑자기 그이가 비명을 지르면서 뛰쳐 나가는 거야. 무슨 일인가 싶어서 나도 뛰어 나 갔는데, 나물 다듬으려고 놔둔 가위를 들고 휘두르고 있더라고. 정말 무서웠지. 정말로…… 정말 한 발짝도 못 움직이겠더라고. 그 사람은 그냥 무작정 휘두르고 있었어. 비명을 지르면서. 가끔 저리가, 저리가 이러면서 그냥 휘두르더라고. 그러다가, 그러다가 저 질렀지.”
아주머니의 손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
“가위를 그대로 눈에 찔러 넣었어.”
“네?!”
“진짜에요. 말릴 새도 없었지. 사실 가까이 갈 수도 없었는걸. 두 눈에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 뭐가 모자랐는지 그 다음엔 목을 푹 찌 르지 뭐야. 몇 번 컥컥 하더니 그대로 쓰러졌지. 그 때는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고. 비명소리를 들은 동네 사람이 와서 그 사단을 보 고는 119에 신고해줬어요. 그런데 손쓸 틈도 없이 그대로 죽었어.”
아주머니는 팔을 들어 마당 한 구석을 가리켰다.
“저기 저 얼룩이 그때 그 사단 나면서 생긴 거야. 정말 열심히 박박 닦았는데 저기는 안 지워지더라고.”
아주머니의 손끝을 따라가보니 검은 얼룩이 시멘트 바닥에 점점이 흩뿌려져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차라리 밧줄을 쥐어줄걸 그랬어. 가는 길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 아이구 내가 무슨 소릴 한담. 사실 나도 그 때 일 이후로는 정신이 좀 없어.”
아주머니는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나는 도저히 웃을 수가 없었다. 무엇이 그를 그렇게 비참한 최후로 몰아가게 한 것일까. 마치 그는 자살을 결심했다기 보단 무엇인가에 의해 죽음으로 몰린 것처럼 보였다. 이런 기억을 떠올리게 만든 것이 죄송스럽다. 분명 트라우마가 될법한 기억이다. 난 부랴부랴 아주머니께 인사를 드리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주머니께서는 날 물끄러미 보시더니 혹시 병이 치료되면 연락해 달라며 연락처를 주셨다. 도대체 그 망할 것이 뭐길래 멀쩡하던 사람이 그렇게 변했는지, 나을 수는 있는 건지 궁금하다 하셨다. 나는 알았다고 인사를 드리고는 황급히 자리를 떴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온갖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했다. 평범한 자살도 아닌 비정상적인 자해. 나도 그렇게 되는 걸까? 병원 치료만 받지 않으면 그냥 이대로 쭉 살수도 있는 걸까? 너무나도 불안했다. 날 놀리듯이 내 눈앞에는 여전히 구멍이 크기를 키워가며 내 시야를 갉아먹고 있었다.
집에 돌아와서 어땠냐며 환한 웃음을 지으며 물어보는 진서에게 나는 솔직하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이 병의 원인도 모르겠으며, 과거 이 병에 걸렸던 사람은 결국 돌아가셨다고. 환각에 미쳐 스스로를 자해했다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진서는 충분히 충격을 받은 듯 했다. 그녀는 진심으로 나를 달래주며 등을 토닥여 주었다. 설령 내가 완전히 눈이 멀어버린다 고해도 절대로 떠나지 않겠다는 달콤한 맹세와 함께. 그리고는 자기도 한번 알아보겠다고 했다. 과연 방법이 있을까. 반쯤은 자포자기 상태다. 하지만 이렇게 사랑스러운 진서를 놔두고 포기를 쉬게 해선 안 된다. 힘을 내야지. 구멍은 이제 새끼 손톱보다 살짝 큰 정도가 되었다.
“수완아, 수완아!”
“응? 왜 그래?”
다음날 저녁 퇴근한 그녀는 나를 다급히 불렀다.
“내일 나랑 같이 어디 좀 가지 않을래?”
“내일? 어디를?”
“예전에 내가 연구실 선배랑 같이 갔었다던 거기.”
“거기?”
거기라 함은…… 나는 예전 기억을 되살려보았다. 아, 생각났다. 잠깐. 하지만 거기는……
“거기 점집이잖아.”
“응. 가보자, 응?”
“내가 거길 왜가. 이제는 정신병으로도 모자라서 귀신까지 씌였게?”
“별 다른 방법도 없잖아. 밑져야 본전이니까 한번 가보기라도 하자. 거기 엄청 용하다니까? 나 대학원 시험 붙는 거랑 언니 결혼하 는 것도 맞췄단 말야. 응?”
“휴…… 알았어. 한번만이다?”
“고마워!”
그녀는 나를 안고 뛸 듯이 좋아했다. 이렇게 좋아하는데 해줄 수 밖에 없지. 게다가 지금은 정말 별다른 방법도 없으니까. 밑져야 본전이다.
다음날 그녀는 나를 끌고 그곳에 갔다. 언젠가 한번 나와 궁합을 보고 싶다고 했었던 곳이란다. 그녀는 은근히 이런 면에서 귀엽다. 그녀가 나를 이끌고 도착한 곳은 겉보기엔 평범한 가정집이었다. 요즘은 점집이 막 화려하지 않다던데 이런 의미였나. 하지만 건물 안에는 묘한 향 향기도 나고 이곳 저곳에 세워진 장식물, 그림들, 그리고 화려한 벽지가 이곳이 평범한 가정집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안내를 받아 방문을 열자 그곳에는 한 아주머니가 한복 같은 것을 입고 앉아계셨다. 그 점쟁이와 눈이 마주쳤다.
“나가!”
뭐지? 지금 나보고 한 말인가? 진서는 당황하며 그 점쟁이에게 말했다.
“저, 신녀님. 왜 그러세요? 저희 점 보러 왔는데요.”
“아가씨 말고. 저 쌍놈! 저 놈 나가라고!”
나한테 왜 그러는 거야. 거기다가 내가 그런 상스러운 욕까지 들어가며 이 곳에서 쫓겨나야 하는 건가. 살살 화가 나기 시작했다.
“저, 아줌마.”
“수완아!”
“제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왜 그런 욕까지 듣고 쫓겨나야 합니까?”
그 점쟁이의 눈이 매섭게 올라갔다.
“염치도 없는 놈. 아주 그냥 눈이 멀어버려야 정신을 차리지.”
“!!!”
순간 입이 벌어졌다. 눈이 안보이게 된다는 것을 알아챈 건가?
“신녀님. 한번만 봐주세요. 아무데서도 치료 방법이 없대요.”
“저건 내가 못해줘. 내가 한 것도 아닌데.”
“그럼 누군가는 했다는 말인가요?”
“내 영역이 아니라니까!”
“제발 부탁 드려요.”
진서가 하얀 봉투를 내밀었다. 굳이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샐쭉 올라갔던 점쟁이의 눈이 살짝 내려오더니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고는 근처에 있는 아무 종이에 볼펜을 들고는 무언가를 써내려 가기 시작했다.
“여기로 가봐.”
건네 받은 종이에는 주소가 써있었다. 무당은 날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이건 네놈한테 주는 게 아니라 저 아가씨한테 주는 거야! 네놈이 한 짓은 생각도 못하고 벌받는 게 마냥 싫은 애새끼 같은 놈.
“가자 진서야.”
“아…… 수완아 인사 드려야지!”
“감사합니다. 이제 가자.”
“아가씨!”
막 일어나려는 순간 무당이 진서를 불러 세웠다.
“네?”
“지금 행복하지?”
“네? 네……”
“아가씨가 행복한 만큼 누군가는 피눈물을 흘리는 거야.”
“네??”
“가자니까!!”
당황하는 진서를 얼른 잡아 일으켜 기분 나쁜 점집을 빠져 나왔다. 돌팔이 선무당 같은 게 진서한테 이상한 말이나 지껄이고 나한테 욕을 하고. 몹시 불쾌하다. 밖에 나오자 진서가 나를 다그쳤다.
“수완이 너 왜 그래?”
“내가 뭘.”
“자꾸 버릇없이 굴고, 화내고. 이렇게 단서까지 주셨는데 왜 그렇게 화내는 거야.”
“나에게 욕하고, 너한테까지 이상한 말을 하는데 기분 나쁘잖아. 게다가 이런 거, 맞는지도 모르고.”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아봐야지. 내가 좋은 마음으로 데려왔는데 네가 이러면 내 기분 도 상하잖아.”
“알았어, 미안해. 여기 가보면 되는 거지?”
“됐어. 난 안 갈래. 신경 써줬더니 화만 내고. 네 일이니까 네가 알아서 해.”
진서는 그대로 뒤돌아서 가버렸다
“진서야, 진서야!”
목이 터져라 진서를 불렀지만 그녀는 매정하게 택시를 타고 가버렸다. 정말 이 망할 구멍이 뚫리고 나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다. 진서가 떠난 뒤 나에게 남은 건 주소가 적인 종이 쪼가리뿐이다. 젠장. 진서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지 않는다. 어쩔 수 없어서 문자로 사과의 말을 남겼다. 그나저나 여기…… 가봐야겠지?
주소에 적힌 곳은 공교롭게도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곳 근처였다. 주소를 따라가는 동안 내가 다녔던 학교가 보인다. 운동장에는 축구를 하고 있는 남학생들, 벤치에 앉아서 수다를 떨고 있는 여학생들이 있다. 비록 그 가운데 뻥 뚫린 동그란 구멍이 있지만 새록새록 솟아나는 추억들은 가릴 수 없었다.
주소에 적힌 집은 딱 봐도 허름한 주택이었다. 계단을 한참 걷고 오르고 올라 도착한 곳이었다. 숨을 몰아 내쉬며 문을 두드렸다.
“계십니까?”
문을 두드리고 불러봐도 대답은 없었다. 아무도 없는 건가? 하긴 이런 허름한 집에 누가 살고 있겠어. 역시 그 선무당한테 속은 것 같다고 생각하며 돌아가려던 참이었다.
“들어와요.”
갑자기 문이 빼꼼 열리며 누가 부르는 목소리만 들렸다. 사람이 있었나? 하지만 살짝 열린 그 문틈으론 사람의 기척은커녕 안에 무엇이 있는지도 보이지 않았다.
“실례하겠습니다.”
낡을 대로 낡은 문을 밀고 들어서자 기분 나쁜 소리가 났다. 소름이 끼친다. 이 안에는 무엇이 있는 걸까. 집 안은 놀라울 정도로 컴컴했다. 막 해가 지는 시간이라 집안에는 더욱 어둡고 무거운 푸르스름함이 전체적으로 깔려있었다. 내가 디딜 바닥만 겨우 보이는 상황에서 조심스럽게 전진했다. 딱 한군데서만 빛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형광등 빛이 아닌 흐릿한 촛불의 불빛. 노랗고 붉은 빛이 흘러나오는 방문을 열자 한 여자가 바닥에 앉아있었다. 촛불은 그녀의 옆에서 타고 있었다. 한 삼십 초 중반쯤 되어 보이는 젊은 여성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날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서 촛불의 불꽃이 일렁거리고 있었다.
“소개로 왔죠?”
“아, 네.”
“못 고쳐요, 그거.”
도대체 이 점쟁이라는 사람들은 보자마자 본론부터 튀어나오는 게 습성인가보다.
“도대체 이게 뭐죠?”
“무엇 같아요?”
“뭐라니…… 그냥 큰 점이잖아요. 구멍. 점점 더 커지는……”
그녀는 날 잠깐 바라보다가 눈을 깔았다. 그 모습이 대답을 회피하는 것 같아서 답답했다. 시간은 점점 어둑해지고 있고 언제 이것이 내 눈을 삼킬지 모를 일이다. 이젠 어떻게든 끝내고 싶다.
“ 가르쳐 주세요! 이것이 제 삶을 망치고 있다 구요. 미쳐버릴 것 같아요! 제발요.”
그녀는 여전히 아무 말이 없었다. 눈을 들어 날 바라보는 그 눈동자에 일렁이는 불꽃과 왠지 모를 원망이 담겨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도대체 왜, 나한테 왜들 이러는 거지?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나에게! 내게 이런 끔찍한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고 도대체!
“그녀가 지켜보고 있어요.”
“무,뭐라구요?”
“그건 그녀에요. 구멍이 아니에요.”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거에요?”
“여기가 뭐 하는 곳 같아요?”
그녀는 뜬금없이 화제를 돌렸다.
“뭐라뇨, 점집 아닙니까?”
그녀가 살짝 웃었다. 그 웃음이란 게 미소가 아닌 자조적인 웃음이라는 것이 왠지 그녀를 슬프게 보이게 했다.
“여긴 소원을 들어주는 곳이에요.”
소원? 이 무슨 얼토당토 않은 소리란 말인가. 그녀는 내 얼굴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은 이만 돌아가세요.”
“네? 왜요?”
“돌아가주세요. 아직 준비가 안되어있습니다.”
“무슨 준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말씀해주시면 안됩니까? 한시가 급해요.”
하지만 그녀는 내 말은 들은 척도 안하고 방 밖으로 나가버렸다. 일렁이는 촛불만이 이 방안에 존재했다. 도대체 이 며칠 사이에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이상한 나라로 떨어진 기분이다. 정답이 없는 문제를 풀고자 애를 쓰고 있는 걸까. 나는 약간의 현기증을 느꼈다. 일단은 밖으로 나갈 수 밖에 없을 것 같다.
바깥은 푸르스름하다. 조금만 있으면 이제 아예 해가 질 것이다. 얼른 돌아가야 하지만 너무나도 갑갑하고 무기력해서 움직일 힘 조차 나지 않았다. 소원? 그녀? 도대체 무슨 말이지? 그녀와 소원이 무슨 관계란 말이야. 어떤 여자가 소원을 빌었나? 여기서? 뭐 때문에? 나한테 원한이라도 있었단 말인가? 아…… 설마 창선씨도 그것 때문에? 나는 급하게 폰을 들어 창선씨 부인 분의 전화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아주머니, 저에요. 어제 찾아갔었던 학생이요.”
‘아, 예. 무슨 일이죠?’
“혹시 그, 실례되지만 아저씨에게 안 좋은 감정을 품은 분이 있습니까?”
‘네? 원한 같은 거 말씀하시는 거에요?’
“예. 죄송합니다. 혹시 있었나요?”
‘사실 그이의 성격이 다혈질이라 독단적인 성격 때문에 이리저리 마찰은 많았어요. 아, 그 중에 특히 심했던 집이 있는데 특히 그 집 안주인이랑 사이가 안 좋았지. 남편이 일찍 죽어서 미망인이었는데 이런 말 하긴 남사스럽지만 그이가 많이 추근덕 댔었거든요. 나 한테 걸려서 혼쭐이 나고서는 안 그러는 것 같았는데, 하여간 그 집은 몇 달 뒤 이사 갔었어요. 그게 한, 5년 전이던가?’
5년 전. 아저씨의 발병 시기와 일치한다. 아주머니는 왜 그런 것을 묻는지 의아해 하셨지만 나는 짤막하게 감사인사만 드리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방금 나왔던 그 집에 다시 들어섰다. 여전히 어둑어둑한 집 안. 처음 들어갔던 것처럼 불빛을 따라 방안에 들어가자 처음처럼 그녀는 방 중앙에 앉아있었다. 나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그 애죠?”
그녀는 잠자코 뒤쪽에 놓인 파일 첩에서 사진을 하나 꺼내주었다. 작은 증명사진이었다. 거긴 익숙한 얼굴이 있었다. 하지만 결코 보고 싶지 않은, 기분 나쁜, 그 년의 얼굴.
“얘 사진을 왜 당신이 갖고 있죠?”
“이 분이 찾아오셨으니까요. 소원을 가지고. 전 그 소원을 들어드렸을 뿐입니다.”
“알아 들을 수 있게 얘기를 좀 해주세요!”
“말했다시피 여기는 소원을 들어주는 곳이에요. 간절한 소원을 가지신 분에겐 그 소원을 이루어 줍니다. 이 사진 속의 여자분은 당 신에 관한 소원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제가 가진 능력껏 그 분을 도와드렸습니다.
“그 소원이랑 이 눈이랑은 무슨 관계인데요?!”
“소원이라는 것은 비는 분의 마음에 따라 달려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 사람은요?”
나는 창선씨의 카르테를 내밀었다.
“이것만 봐서는 몰라요. 저는 소원을 빌러 오신 분이 아니면 기억하지 못합니다.”
“이분도 저랑 똑같이 눈이 안보이게 됐어요! 그리고 아주 끔찍하게 자살하셨구요!”
“아……”
그녀는 작게 탄성을 내뱉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5년 전쯤 이겠네요.”
“맞아요!”
“한가지 말씀 드리자면, 저는 눈을 멀게 하는 능력을 가진 게 아닙니다. 의뢰인들의 소원을 들어드리는데 그것이 의뢰인 마다 구현 되는 방식이 달라요. 이분과는 공교롭게도 비슷한 방식으로 이루어졌나 보군요. 이분의 의뢰인께서도 아주 큰 소원을 가지고 오셨 었죠.”
“무슨 소원인데요?”
“여기 적힌 이 사람이 자기에게 사과했으면 좋겠다는 소원이었죠.”
“고, 고작 그런 소원 때문에 눈이 멀고 자살을 했다구요? 게다가 그 년이 나한테 이런 저주를 내렸다고요?”
그녀가 눈을 바닥으로 내리깔더니 입으로 작게 저주, 라고 중얼거렸다.
“그래요, 저주일수도 있겠죠. 사실 이런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아요. 이 일은 할머니에게서 물려받아 어머니를 이어서 다시 제가 짊어지게 됐어요. 일부러 없는 듯이 지내는 것도 제발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으면 하는 것도 있고요. 그런데도 여기에 운명처럼 이 끌려 오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녀나, 당신처럼.”
“그럼 제 소원도 들어주세요!”
“당신은 안돼요.”
“왜죠?!”
“당신은 자격이 없으니까요.”
“그럼 이거 고칠 수 있는 무슨 방법이라도 내란 말이야!!”
순간적으로 이성을 잃어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촛불이 넘어져서 바닥을 나뒹굴었지만 다행이 불이 번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갑자기 꺼진 불빛 때문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어둠 속에서도 그녀의 형형한 눈빛만은 느껴졌다. 우악스럽게 움켜쥐었던 그녀의 옷깃을 슬며시 놓고는 제자리에 앉았다. 잠시간의 침묵이 흘렀다. 눈이 어느 정도 어둠에 익숙해지자 그녀의 어슴푸레한 실루엣이 보였다. 나도, 그녀도 서로를 지켜보고 있었다. 어느 순간 그녀가 입을 열었다.
“당신은 소원 때문에 여기에 이끌린 게 아니에요. 그냥 우연과 우연이 겹쳐서 운명처럼 보였을 뿐. 당신은 이미 글렀어요.”
“그럼 걔, 이거 소원 빈 그 년은 풀 수 있습니까?”
“그 분요?”
그녀는 다시 눈을 내리깔았다. 손을 다소곳이 모으고는 아까 나에게 보여준 사진을 다시 주섬주섬 파일 첩에 집어넣었다.
“할 수는 있죠. 그런데 해주실지 모르겠네요.”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아깐 죄송했어요.”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나며 인사를 했다. 이제 마지막이다. 그 년한테 연락해서 결판을 지을 것이다.
“그녀가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는 안 궁금하세요?”
나가기 직전 그녀가 질문했다.
“제 인생 조지게 해달라고 빌었겠죠 뭐.”
어둠 속에서 벽에 부딪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출구를 찾아나가고 있는데 문을 나서기 직전 그녀의 속삭이는 듯한 읊조림을 들었다.
“그 여자 소원 하나는 잘 골랐네.”
밖에 나오니 완전히 깜깜해져 있었다. 얼른 집으로 가는 차에 몸을 실었다. 그래. 그 년이. 그 여자가 문제였다. 왜 생각을 못했을까 한번도. 그년이라면 내 삶을 송두리째 날려 먹을 정도의 여자였다. 끈질기고 독한 것. 우선 지금은 진서가 퇴근 했을 시간이니까 얼른 가서 진서부터 달래줘야겠다. 아직까지 화가 나 있는지 전화를 받지 않는 진서가 걱정된다. 들어가는 길에 작은 선물이랑 과자를 사 들고 가서 그녀에게 사과를 했다. 그녀는 아직까지 살짝 토라져 있었지만 곧 마음을 풀고 나를 용서해 주었다. 그녀에게 이걸 고칠 방법을 찾은 것 같다고 말하니 역시 그녀는 기뻐해주었다. 무슨 방법이냐고 물어보았지만 그 점쟁이가 다른 사람한테 절대 가르쳐 주지 말랬다고 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넘어가 주었다. 너무나도 착하고, 순진한 나의 연인.
그 다음날 나는 일어나자마자 그 년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길게 울리고 시간이 한참 지날 때까지 그 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고객님이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안내원의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전화를 끊고 다시 걸고, 다시 걸었다. 그렇게 몇 번을 했을까, 드디어 상대편에서 전화를 받는 딸깍, 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하지만 반대 편에서는 아무 말이 없다.
“여보세요.”
여전히 대답은 없다.
“여보세요. 대답 좀 해봐.”
길게 이어지는 침묵이 갑갑하다.
“조해원.”
입에 담고 싶지 않은 이름까지 불렀지만 여전히 대답은 없다. 신호가 좋지 않은가 하고 생각하며 다시 전화를 걸어볼까 하는 도중에 대답이 들려왔다.
“무슨 일이죠?”
드디어 듣게 된 상대방의 목소리는 생각 외로 내가 모르는 사람이었다. 나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 조해원씨 전화 아닙니까?”
“맞아요. 무슨 일이죠?”
“해원이 바꿔 줄 수 있습니까?”
“안돼요.”
도대체 왜 이렇게 한번에 되는 일이 없을까.
“부탁 드립니다. 해원이 언니 분이신 것 같은데 급한 일이에요.”
“부탁이요?”
수화기 건너편에서 코웃음 치는 소리가 들린다.
“해원이가 몇십번씩 전화할 때는 어디서 무슨 개가 짖나 하는 태도로 일관하더니 그쪽에서 급한 일이 생기면 무조건 연락을 덥석 받 아줘야 하나 보죠? 해원이 못 바꿔줘요. 아니 바꿔줄 수 있었어도 안 바꿔 줬을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해원이 죽었어요.”
뭐?
“자살했어요. 속이 시원해요? 양심의 가책은 죽어도 못 느끼겠죠? 네까짓 놈한테 미쳐가지고 간이고 쓸개고 내놓을 때 내가 죽더라 도 말렸어야 했어, 이 개새끼야.”
잠깐 충격을 받아 할 말을 잃어버렸지만, 곧이어 나는 대답했다.
“저기요, 해원이가 죽은 게 왜 제 탓입니까? 저는 걔가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다구요.”
“뭐? 왜 네 탓이냐고? 중학교 때부터 해원이가 너 좋아한다는 거 알고 너 고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때까지 심심하면 불러내고는 해원 이 함부로 대했잖아! 심지어 너 군대 갔을 때는 면회 매번 불러서 해원이를 가지고 놀았지! 너 같은 놈은 쓰레기보다 더 썩은 놈이 야. 그러다가 여자 친구 생기자 마자 해원이 연락은 무조건 무시하고, 찾아가면 욕하고 쫓아내고! 심지어 때리고! 해원이는 혹시나 그러다가 자기한테 정이라도 줄까 해서 그 대접을 참아냈어. 그런데도 뭐?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줘? 이 양심도 없는 새끼.”
“말은 똑바로 하셔야죠. 걔가 저 좋아했잖아요? 걔가 저 좋아한다니까 저랑 같이 있게 해줬다구요. 하지만 저는 걔를 안 좋아했으니 까 그런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해원이와 놀아줬는데 해원이도 그 정도 희생쯤은 했어야죠. 게다가 그 뒤로도 얼마나 연락을 해댔 는지 생활이 힘들 지경이었다고요. 여자친구한테도 들킬뻔했고.”
“뭐라고? 너…… 너 이……”
“해원이가 죽은 건 유감이지만, 저는 지금 그 아이 때문에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 쪽에선 아무런 말이 없었다. 그리고 나 또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년이 풀 수 있다고 했는데. 죽어 버렸다니. 이제 어떡하면 좋단 말인가. 나는 다시금 절망감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해원이가 죽은 사실을 알면 슬픈 척이라도 해 줄거라 생각했는데 아주 큰 착각이었네. 해원이 장례식 날 너한테 예의상으로라도 알 려주려고 전화했는데 끝까지 안받더라 너. 그 땐 몰라서 그랬을 거라 생각했는데 넌 그냥 재활용 불가능 한 쓰레기야. 개새끼. 너랑 사귀는 여자가 불쌍하다.”
그녀는 그 말만 하고 끊어버렸다.
다시 전화를 걸어봤지만 여전히 전화기는 꺼져있었다.
“이 씨발년이. 끝까지 나한테 엿을 주네.”
그래. 마지막 희망이었는데.
“응? 이제 만족하냐? 네 소원이 이루어 진 거냐고?”
그 년의 존재를 떠올리게 해준 그 점집은 찾아갔더니 완전히 빈 집이 되어있었다.
“씨발……”
그 년의 마지막 소원이 눈 앞에서 눈웃음 짓는다. 그렇다. 그 검은 점은 점점 크기를 키워나가다가 어느 순간 커져 가는 것을 멈추었다. 그 점은 딱 눈동자 정도의 크기만큼 커졌고 그 이후로는 흰 자위가 나타나고, 속눈썹이 나타나고, 눈썹이 나타났다.
‘아니었네…… 점이 아니었네……’
‘그녀가 지켜보고 있어요.’
‘그건 그녀에요. 구멍이 아니에요.’
그 년은 처음부터 날 지켜보고 있었다. 내가 그것을 단순한 점이라 생각했을 때부터. 내가 밥을 먹을 때나, 잠을 잘 때나, 쉴 때에도 그 년은 날 들여다 보고 있었다.
“수완아……”
내 사랑스러운 진서는 여전히 날 떠나지 않고 걱정해 주고 있다. 눈 앞에 그 년의 눈동자가 쭈욱 그녀를 따라 가는 것이 보인다. 혐오감이 치밀어 올라 눈동자를 향해 핸드폰을 집어 던졌다. 핸드폰은 눈동자를 뚫고 지나가 벽에 쿵,하고 부딪쳤다.
“꺅! 수완아!”
젠장, 젠장, 젠장, 젠장! 저 눈동자가 너무나도 소름 끼친다. 징그럽다. 뽑아 버리고 싶을 정도로 증오스럽다. 날 걱정해주는 사랑스러운 진서의 얼굴조차 그년의 눈동자가 가리고 있다. 망할 년. 죽어서도 도움 안 되는 년.
“진서야.”
“응, 수완아. 이제 제발 정신차려 응? 다시 병원에 가보자.”
웃음이 났다.
“소용 없어. 소용 없다고 말했잖아.”
“고수완, 어떡하려고 그래. 제발…… 나 무서워……”
진서가 흐느꼈다. 나는 가만히 진서를 안아주었다. 울고 있는 그녀를 그 년이 지긋이 쳐다보더니 샐쭉 웃는다. 소름 돋는다.
“진서야.”
“……왜?”
“나 안 떠날 거지?”
“……”
“왜 대답이 없어.”
“……”
“약속 했잖아.
그녀의 길기 만한 침묵이 마치 거절로 느껴져서 순간적인 오싹함이 온 몸을 휘감는다.
“임진서.”
“모르겠어!”
한참의 침묵 뒤에 거의 비명에 가까운 울음 섞인 대답이 들렸다.
“지금 너, 너무 무서워. 이상하고. 혼잣말 하고…… 정말 미친 것 같아. 예전의 네 모습이라고는 찾을 수도 없어! 그…… 이상한 병에 걸리고 나서부터 모든 게 이상해졌어.”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믿었던 남자친구가 나조차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변했으니 무서울 만 하다. 이것이 다 저 년 때문이다. 저 망할 눈깔 때문에. 저 눈깔이 점점 더 커져가면 그 년의 보기 싫은 얼굴까지 다 보일 것이다. 끔찍하다. 내 삶뿐만 아니라 진서의 삶까지 망쳐버리려 하는 이기적인 년. 진서의 우는 모습이 너무나도 가슴 아프다. 그래. 나는 결심을 굳혔다. 창선씨의 말로를 들었을 때부터 어렴풋이 예감한 그 것. 아니기만을 바랐는데. 나는 비척거리며 일어나서 부엌으로 향했다.
“수완아……?”
식기들이 꽂혀 있는 곳에서 익숙한 손잡이를 빼어 들었다. 그것의 뾰족하고 예리한 끝부분이 형광등 불빛에 반사되어 빛난다.
“수완아, 과도 들고 뭐 하는…… 수완아 그거 내려놔!”
진서의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걱정 마 진서야. 이제 곧 이런 지긋지긋한 상황은 끝날 거야. 마지막으로 진서의 예쁜 얼굴이 보고 싶은데 내 눈앞의 얄미운 눈깔이 날 가로막는다. 그리고는 또 샐쭉 웃는다. 증오스럽다. 죽여버리고 싶다. 그 년이 다시 한번 날 향해 눈을 크게 치켜 떴을 때 나는 그것을 향해 한치의 고민 없이 칼을 찔러 넣었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악!!!!!”
어마어마한 고통이 날 덮쳤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한쪽 눈에서 날 지켜보는 그 년이 있었기에 난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칼을 잡아 뽑아 한번 더 반대쪽 눈에 칼을 쑤셔 박았다. 아, 눈앞에 어둠이 있다. 안락한 어둠이 날 감싼다. 귓가에서 진서의 비명소리가 요동을 치지만 지금은 이 어두운 안락함이 너무나도 좋다. 나는 정말로 오랜만에 편안한 잠에 빠져들었다.
“일어났어?”
지금이 몇 시 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더 이상 빛 같은 건 보이지 않으니까. 오늘도 내가 잠에서 깼다는 것이 중요하다. 일어나서 더듬더듬 땅을 짚으며 몸을 일으키려 하자 어디서 손이 튀어나와 날 일으켜주었다. 난 손을 뿌리치며 비틀비틀 화장실로 향했다.
“잘 잤어?”
바로 옆에서 다정하게 속삭이는 목소리. 나는 얼른 수도꼭지를 틀어 세수를 했다. 쏟아지는 물 소리에 목소리가 묻히는 것 같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고 나오려는데 순간 물을 밟아 휘청거렸다. 그러자 다시 부축해주는 손길.
“조심해야지.”
나는 다시 비틀거리며 화장실을 나와 침대 속으로 파고들었다. 그 일 이후로 진서는 떠나갔다. 이제 모두 끝났다며 그녀를 설득하려 했지만 눈이 멀어버린 나는 그녀와 연락 할 방법조차 알지 못했다.
“너무 행복해, 수완아.”
그 점쟁이가 그 년의 소원을 물어볼 때 제대로 들었어야 했다. 그랬으면 눈 대신 목이나 관자놀이를 찔렀을 텐데.
“이제 평생 네 옆에서 널 지켜 볼 수 있게 되었어.”
이불을 뒤집어 쓰고 귀를 막았다.
“내 소원대로.”
(작가의 한마디): 눈치 채셨나요? 공동을 뒤에서 보면 동공이 있답니다.
[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
[꿈과 공포가 넘치는 공포게시판으로 오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