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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재학, 앰뷸런스
앰뷸런스는 사자(死者)에게 빌린 옷을 입고 지나간다
바꾸지 못한 시트에는 잔설이 묻어난다
붉은 빛이 내 몸 뒤에서 토악질을 한 건 피 때문이었을까
앰뷸런스는 하나하나 불빛으로 바뀌는 울음의 슬로우 모션이다
폭우 사이를 뚫고 달리는 앰뷸런스 쫓아가 문 열리는 시간까지 기다린다
늦은 밤 냉장고 문을 열 때 당혹스레 쏟아지던 불빛처럼
두 손이 잠기는 늪이 내 눈알의 뒤쪽인지 알고 싶다
금방 터져 버려 퍼 담지 못할 양수 같은
산성(酸性)의 육체는 별을 기다리는가
앰뷸런스는 구겨지는 길을 지나간다
이안, 메꽃
뒤뜰 푸섶
몇 발짝 앞의 아득한
초록을 밟고
키다리 명아주 목덜미에 핀
메꽃 한 점
건너다보다
문득
저렇게
있어도 좋고
없어도 무방한
것이
내 안에 또한 아득하여
키다리 명아주 목덜미를 한번쯤
없는 듯 밝히기를
바래어 보는 것이다
조말선, 고향
벗어놓은 외투가 고향처럼 떨어져 있다
내가 빠져나간 이후에 그것은 고향이 되었다
오늘 껴입은 외투와 나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면
한 번 이상 내가 포근하게 안긴 적이 있다는 것이다
나는 비로소 벗어놓은 외투를 찬찬히 살펴보는 것이다
내가 빠져나가자 그것은 공간이 되었다
후줄근한 중고품
더 이상 그 속에 있지 않은 사람의 언어
천양희, 실패의 힘
내가 살아질 때까지
아니다 내가 사라질 때까지
나는 애매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비가 그칠 때까지
철저히 혼자였으므로
나는 홀로 우월했으면 좋겠다
지상에는 나라는 아픈 신발이
아직도 걸어가고 있으면 좋겠다
오래된 실패의 힘으로
그 힘으로
김수열, 그믐
한때 너를 아프게 물어뜯고 싶은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