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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GM 출처 : https://youtu.be/Vaq7rZxJW-k
손택수, 먹기러기
달에 눈썹을 달아서
속눈썹을 달아서
가는 기러기떼
먹기러기떼
수묵으로 천리를
깜박인다
오르락내리락
찬 달빛
흘려보내고
흘려보내도
차는 달빛
수묵으로
속눈썹이 젖어서
도광의, 이런 낭패
오랜만에 고향에 갔다
간밤에 마신 술 탓에
새순 나오는 싸리 울타리에
그만 누런 가래 뱉아놓고 말았다
늦은 귀향길 안쓰런 마음 더해가는
고향 앞에서 나는 또 한 번 실수에
무안(無顔)해 하는데
때마침 철 늦은 눈이
내 허물을 조용히 덮어주고 있었다
김완, 봄, 소주
벚꽃잎 분분분 날리는
부곡정에 들어선다
연탄불 돼지 삼겹살 구이
상추에 마늘, 매운 고추 얹어
된장 쌈 하니
세상살이 여여(如如)하다
도가지 헐어 내온 갓지에
소주 한 잔 하니
가야 할 길들 환해진다
윤성택, 오늘의 커피
갓 내린 어둠이 진해지는 경우란
추억의 온도에서뿐이다
커피향처럼 저녁놀이 번지는 건
모든 길을 이끌고 온 오후가
한때 내가 음미한 예감이었기 때문이다
식은 그늘 속으로 어느덧 생각이 쌓이고
다 지난 일이다 싶은 별이
자꾸만 쓴맛처럼 밤하늘을 맴돈다
더이상 돌아갈 수 없다 해도 우리는
각자의 깊이에서
한 그루의 플라타너스가 되어
그 길에 번져 있을 것이다
공중에서 말라가는 낙엽 곁으로
가지를 흔들며 바람이 분다
솨르르솨르르 흩어져내리는 잎들
가을은 커피잔 둘레로 퍼지는 거품처럼
도로턱에 낙엽을 밀어 보낸다
차 한 대 지나칠 때마다
매번 인연이 그러하였으니
한 잔 하늘이 깊고 쓸쓸하다
박시하, 옥수역
사랑해
공중 역사 아래 공중에게 고백을 하려다 만다
군고구마 통에 때 늦은 불 지피는 할머니가
내가 버린 고백을 까맣게 태우고 있다
이 허망한 봄날
겨울을 견딘 묵은 사과들이
소쿠리에 담겨 서로 껴안고 있다
또 다른 출발을 꿈꾸는 걸까
아직 붉다
역사가 흔들릴 때
문득 두고 온 사랑이 생각났다
푸른 강물 위
새로 도착하는 생과
변함없이 떠나고 있는 생들이 일렁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