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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목월, 사월 상순(四月 上旬)
누구나
인간은
반쯤 다른 세계에
귀를 모으고 산다
멸(滅)한 것의
아른한 음성
그 발자국 소리
그리고
세상의 환한 사월 상순
누구나
인간은
반쯤 다른 세계의
물결 소리를 들으며 산다
돌아오는 파도
집결하는 소리와
모래를 핥는
돌아가는 소리
누구나
인간은
두 개의 음성을 들으며 산다
허무한 동굴의
바람소리와
그리고
세상은 환한 사월 상순
김영랑, 좁은 길가에 무덤
좁은 길가에 무덤이 하나
이슬에 젖이우며 밤을 새인다
나는 사라져 저 별이 되오리
뫼 아래 누워서 희미한 별을
윤재철, 홍대 앞 풍경
홍대 앞
까페와 여관 사이 골목길
주차해둔 차들과 쓰레기봉투와
누군가 간밤에 토해놓은 오물
그런 사이에서
개 두 마리가 붙었다
어느 집에서 새어나왔을까
애완견 잡종 두 마리
키가 층이 지는 두 마리가 힘겹게
뒤로 붙어서서
불안하게 눈을 굴리는데
아무래도 햇빛이 너무 환해
그 생식이 너무 낯설어
우리는 누가 누구에게 빚진 것인가
나의 남루는 너의 살에 빚지고
너의 살은 또 무엇에 빚진 것인가
슬그머니 골목길을 빠져나오며
문득 허기가 져
곱빼기 짜장면이 먹고 싶었다
허행, 달리 할 말이 없네
달리 할 말이 없네
방 안으로 들어온 별에게
잠시나마
내 그림자를 만들게 할 뿐
달리 할 말이 없네
흔들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다가
문턱을 넘어
그 그늘 아래 주저앉을 뿐
이상화, 예지(叡智)
혼자서 깊은 밤에 별을 봄에
갓 모를 백사장(白砂場)에 모래알 하나같이
그리도 적게 세인 나인 듯하여
갑갑하고 애달프다가 눈물이 되네